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46화(14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46화
북부의 겨울(1)
“제법…… 날카롭구나.”
가슴을 크게 베인 탓에 갑옷 안에 입었던 옷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전신을 가리는 갑주도.
갑주를 입은 속의 맨살을 받치기 위한 기능성 속옷도.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근육과 흉터로 가득한 육신뿐이라는 듯, 태어날 적 그대로의 모습이 된 기사단장.
“날카롭다? 고작 그런 수준이 아니었을 텐데.”
“그래, 내가 그분께 하사받은 불가침의 갑주는 요새에 버금가는 방어력을 지녔다. 그런 갑주를 종잇조각 가르듯 베어내는 네놈의 예기는 실로 비정상적이다. 솔직히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부러울 정도다.”
“이 힘이? 아니면 경지가?”
“둘 다.”
내 눈을 마주한 그녀의 얼굴에 부끄러움은 없었다.
제 나신을 가리지 않은 기사단장 테르미야는 곧장 다음 자세를 잡았다. 나 또한 한창때의 청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부동심을 바탕으로, 아리따운 여인의 알몸을 꼼꼼히 훑었다.
“내게 너와 같은 힘이 있었다면, 자작님께서 이런 결정을 내리시진 않았을 것이다.”
“너도 참 한결같군. 이런 화마 속에서 시민들을 구하지 않는 귀족에게 무슨 매력이 있길래.”
나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찬찬히 그녀를 노려봤다.
어디를 베면 죽을까?
가슴은 무의미하다.
나름대로 빈틈을 노렸는데, 갈비뼈를 뚫고 장기를 박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관절이나 연골을 노릴까?
“살기가 저릿하군. 나를 죽일 셈인가?”
“글쎄, 죽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살릴 필요 또한 없지.”
“그렇다면 내 목을 취해라. 패배한 기사만큼 주군께 불충한 것이 따로 없다.”
“실로 명예에 미친 기사다운 발언이로군. 도리어 사지를 잘라서 무력화시킨 다음, 살리고 싶어졌어.”
설전이 섞인 신경전은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서로 더 이상의 대화가 무가치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스릉.
나는 다시금 요도를 치켜들었고.
쿵! 쿵!!
그녀는 제 몸만큼이나 큰 방패와 한 손 검을 흉기처럼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다만 무기를 휘두르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정정하도록 하지.”
“읊어라.”
“자작 각하께서는 시민들을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저 화마야말로 그분의 뜻. 우리는 그 뜻에 충성할 따름이다.”
“방관만 하는 줄 알았건만, 방화에 살인까지. 북부는 참 재미있는 땅이야.“
“당신과 어린아이들이 왔다는 남부의 땅은 좀 다른가 보지?”
“음…… 그곳도 상층부가 지랄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큰 차이는 없다.”
내가 온 곳에도.
이곳의 영주처럼 시민들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사람들은 없었어도, 무능한 판단과 지휘로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죽이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들을 전부 죽이고 위에 올라섰다.”
“그런 건 반란이다.”
“그 말이 맞다. 역모나 다름없었지.”
“그러면……!”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죽이고 올라서자,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었다. 분명 내가 위에서 군림한 덕에 목숨을 부지한 자들도 적지 않겠지. 그렇다면 이 경우에, 내 반란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을까?”
“!!!”
테르미야가 고뇌하고 고민하는 표정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신앙에 가까운 충심은 이윽고 광기가 되어, 소녀를 기사단장으로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흉터투성이의 나신을 남성 앞에서 드러내도, 수치심보다 명령을 우선시하는 기사도 없는 기사가 되었다.
‘자신의 의의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하는 인간은 언제나 지켜보는 맛이 있단 말이지.’
기사단장 테르미야의 삶은 오로지 충성과 광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충성의 말로가 무고한 자들의 학살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자유롭게 벌판을 누비는 금수만도 못한, 자율 의지 없던 기사가 깊은 고민을 하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자아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율법과 계율 아래에서 삶을 부지하는 나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고민이기에.
이 광경은 내게 있어서 최고의 오락거리이나.
‘더 이상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밤의 끝이 다가오고, 새벽의 차례가 온다.
그다음에는 여명이 떠오를 것이며, 이면 세계에 설계된 프로그램에 의해 우리는 전부 밖으로 쫓겨나겠지.
그렇게 된다면 예정된 멸망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삶을 파멸로 이끌릴 것이다.
“고민은 좋지만, 우선은 결착부터 내는 게 어떨까?”
“…….”
생각에 잠긴 사람을 현실로 이끄는 말.
그러자 현실로 되돌아온 사람은 다시, 자유 의지를 망각한 채 명예를 중시하고 주군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금수만도 못한 기사가 되었다.
다만 그 얼굴은 분명 방금 전보다 괜찮아졌다.
“……고맙소.”
“그 말투 집어치우라고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던가?”
“방금 전까지의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내게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망각하고, 험한 말만 지껄였다네.”
“그래서, 나와 싸우지 않겠다고?”
“아니.”
철컥.
검과 방패를 다시 고쳐 잡은 여인.
방금 전까지는 단순히 힘에 의존한 채, 휘두를 심산으로 보였으나 지금 그녀의 자세는 명확한 식(式)을 품고 있었다.
야만인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지성인이 되었구나.
“이건 기사단장 테르미야의 마지막 고집일세. 마지막까지 어울려 줄 수 있겠나?”
“나는 지금 당장 네 주인을 잡아서 죽일 생각이다만.”
“그러면 더더욱 내 아집에 어울려주는 수밖에 없다네.”
광기와 광신.
충군애국에 목을 매던 기사단장은 기로에 섰다.
자유 의지를 망각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와 같은 삶을, 금수만도 못한 인생을 구가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목에 걸린 족쇄를 풀 것인가.
모든 것은 나와 그녀의 생사결(生死決)이 끝난 후에 정해지겠지.
“싸움에 앞서 당신의 별호를 들을 수 있을까?”
“검성.”
“검의 성인이라……. 오만한 별호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대에게는 그에 걸맞은 격이 느껴지는군.”
“그러는 네 별호는?”
과연 이 질문에 테르미야는 뭐라고 답할까.
그 대답이 심히 궁금했다.
“방금 전까지, 7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사단장 테르미야’가 곧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그보다 한참 전에는 낭랑검객(浪浪劍客)이 나를 상징했었다네.”
“그렇다면?”
“낭랑검객 테르미야, 감히 검성에게 검을 내밀겠소.”
쾅!
주군을 지키기 위해 들었던 방패를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그나저나 낭랑검객이라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검객이라는 별호가 이토록 안 어울리는 사람에게 붙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오히려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새장 밖에서 태어난 새가, 새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새장 밖으로 나왔다.
자유와 구속을 경험해 본 그녀는 비로소 제 선택에 의해 새장 밖으로 나왔다. 이 어찌 낭랑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와라.”
나는 제자리에서 낭랑검객 테르미야의 검을 받기로 했고, 곧장 그녀의 검을 응수했다. 압도적인 속도와 점프력을 자랑하는 각력과 검을 빠르게 휘두르는 근력.
자작에게 받은 갑옷도, 그를 지키기 위한 방패도 버린 테르미야의 검은 무척이나 재빨랐다.
‘쾌검(快劍)의 끝을 본 검사도 이토록 빠르진 못하거늘!’
단순히 몸놀림만 날쌘 것이 아니다.
검 끝에 담긴 의념이 재빠른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챙─! 챙──!!
요도와 한 손 검이 맞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접전이 이어지는 계속해서 튀는 불꽃.
그러나 도를 쥔 나는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질 않았다.
“내 힘도 아무렇지 않게 흘릴 줄이야! 과연 별호답소!!”
오우거의 무식한 힘이 담긴 검.
그 검과 도가 부딪힌 순간, 자꾸만 검에 담긴 힘이 흩어졌다.
이화접목(移花接木).
교묘하게 흘리는 검의 묘수.
어찌 기예로 성인을 이길 수 있을까.
“너 따위가 검으로 날 능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진심으로?”
“부딪쳐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있는 법.”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그것도 격이 맞는 상대한테나 통하는 것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을 이기는 법.
그러나 아무리 부드러워도 압도적인 강함 앞에서는 무력하다.
흘릴 수 있어도 되갚지 못하면 부드러움에 가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부드러움 속에 우직함을 숨길 것이다.
가을바람 앞의 억새를 쉽게 고개를 숙이나.
절대로 꺾이지는 않는다.
챙──!!
강한 근력과 자유로운 의념을 바탕으로 휘둘러지는 그녀의 검.
그 검 위로 내 검이 내려앉았다.
타고난 근력 앞에 검은 흔들렸으나, 꺾이지 않는다.
“이건 대체……!!”
가볍게 휘두른 검 앞에 압도적인 근력과 쾌검이 주저앉았다.
외유내강(外柔內剛).
부드럽지만 강하다.
그 부드러움의 진면목은 속내를 아는 사람밖에 모를 터이니.
“내 승리로군.”
“!!!!”
이걸로 우리의 싸움은 끝이다.
결론은 확실해졌으니, 더 이상 검을 맞댈 필요는 없었다.
기사단장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이건 나와 그녀가 동시에 느낀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제 테르미야와 기사단장이 송별할 차례.
「검강(劍罡)」
검 위로 빛이 깃들었다.
그건 길 잃은 우자에게 앞을 점지해 주는 북두칠성의 별빛과 닮은 검사의 이상(理想).
「검환(劍丸)」
그 위로 구체가 빙글빙글 돈다.
검을 중심으로 도는 구체는 마치 행성이나 별을 닮았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테르미야의 눈이 반짝였다.
별빛이 반사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그녀의 눈에는 빛과 생기로 가득했다.
“검성이라더니. 성인(聖人)의 성이 아니라, 별이라는 뜻이었던가.”
어이없이 말하는 그녀였으나.
이것만큼은 인정하는 것 외의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범위가 너무 넓어서 피하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모든 마력은 신체에 집중해서 필사적으로 막는다.
각오를 다지는 그녀 앞에, 검을 맞댄 시종일관 감고 있던 눈꺼풀이 푸르르 떨렸다.
바로 그 순간.
“!!!!”
번뜩, 눈이 떠졌다.
아름다운 천체와 더불어,
그 황홀한 광경에 눈이 팔린 테르미야의 시야 사이로.
푸른 벽안의 효성(曉星)이 반짝였다.
“아…….”
아름답다.
피와 불길을 닮은 섬뜩한 눈동자는 어디에 갔는지.
그 자리를 대체한 푸른 벽안은, 새벽 밤하늘에 은은히 빛나는 푸른 별빛과 같아.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랑스러워해라.”
그런 테르미야에게, 무수히 많은 별들을 품은 승우가 말했다.
한때는 수천 개를 동시에 만들어내, 다루는 것도 가능했으나.
지금은 고작 열세 개의 환(丸)이 최선이었다.
“내가 종종 애용하던 최대의 기술 중 하나이니.”
검강과 검환의 조합.
궁극의 너머. 극(極)과 극의 융합은 둘이 합쳐질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니.
도신을 중심으로 자전하는 환들의 모습은, 하나의 행성계를 이루고 있었다.
“모든 무인들이 바라 마지않는 꿈의 경지에 짓눌려라.”
열세 개의 환은 적은 숫자처럼 보인다.
하나 이것은 검성(劍星)을 상징하는 뭇별의 극치이니.
숫자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충분히 곱절은 죽이고도 남는다.
“친히 검성의 검을 코앞에서 목도할 기회를 주마, 대신에.”
능히 랭커가 뽐내는 필살의 일격에 맞먹는 마력의 파장에 테르미야가 섬뜩하다는 표정으로 놀랐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그녀.
충분히 이해한다.
적어도 생물의 규격에서 벗어난 개체가 아닌 이상, 이 정도로도 대부분은 절명시키고도 남았으니까.
하지만 이걸 본 대가는 치러줘야지.
지금도 우주를 맴도는 항성들처럼 회전하는 열세 개의 검환.
환이 그리는 궤적은 그야말로 태극이 그려내는 우주 창생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예술 작품과 같았다.
멋들어진 예술에는 그에 걸맞은 값어치가 필요한 법.
그러므로─.
“─네 죽음을 표 값으로 가져가도록 하겠다.”
그거면 충분하다.
오늘을 기점으로 ‘기사단장’ 테르미야는 죽는다.
콰가가가가강──!!!!
순식간에 꽃밭을 집어삼킨 별의 검.
검을 치켜든 그녀는 모든 마력을 동원해 내 검을 막아냈다.
비록 그 대가로 몸에 가득한 흉터가 더 늘어났다.
필사적으로 막은 덕분에,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테르미야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검은 한 번 더 몰아친다.
「별무리의 파도」
그 모습이 마치 별무리들이 몰아치는 파도와 같아.
땅 위에 사는 자들은 휩쓸릴 따름이다.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테르미야였으나.
[검성의 이능이 작렬합니다!] [은하수가 휘몰아칩니다!]검은 하나의 거대한 궤도를 이루었으니.
일검으로 세계를 일구어낸 기적이 그곳에 있었다.
제아무리 무력의 상징과도 같은 오우거의 후손이라도.
장엄한 별들의 파도 앞에서는 한낱 미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일격입니다!] [은하수에 깃든 은광(恩光)이 일대의 모든 마법적인 개념을 상실시킵니다.]콰과과과과광────!!!!!
별이 박힌 파도가 하늘 위의 구름을 몰아치고, 거짓된 천체 그 위로 미지의 개념이 내려앉는다.
[「별무리의 파도」가 몰아치는 범위 내의 데이터가 무너집니다!] [밤하늘을 구성하는 리소스가 현저히 부족합니다.] [일시적으로 「별무리의 파도」가 하늘을 대체합니다.]이 세계는 이미 멸망한 세계.
결국은 이미 없는 사람들이니.
아무리 금수만도 못한 기사를 사람으로 만들어도 무의미하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오래된 영상의 재생과도 같다.
저 하늘 위에 일주일 동안 위치가 고정된 별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오늘.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드리운 것은 평소처럼 거짓된 천체가 아닌, 스스로 빛을 발하는 미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