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47화(14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47화
북부의 겨울(2)
검을 크게 휘두른 직후.
나는 곧장 발을 내디뎠다.
밟는 것은 바닥이 아닌 공간.
그 윤곽을 발에 담고 앞으로 나아가자, 거리가 접히며 순간 이동에 가까운 움직임이 펼쳐졌다.
신발에 내장된 「점멸」과 「신속」으로는 따라잡을 수도, 따라 할 수도 없는 신법(身法)의 극치.
「순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을수록 공간과 거리가 접힌다.
신묘한 걸음의 이치는 이내 나를 폐허의 밖으로 데려다주었다.
저 멀리에 보이는 거대한 공터.
분명 독으로 가득한 꽃밭과 하수도의 출구가 있었을 장소였으나.
남은 것은 잔뜩 파여 흙밖에 남지 않은 황량한 무저갱이었다.
오래간만이라고 검을 너무 세게 휘둘렀나?
자칫 잘못했다가는 나도 휘말려 들었을지 모르는 범위였다.
평소의 나라면 저 정도 충격은 아무렇지 않게 견뎠겠지만, 꽃보다 중히 다뤄야 하는 이 몸으로는 견딜 수 없다.
그나저나 용케 저기서 여기까지 왔다.
고생했다 내 발목.
툭툭.
손으로 두들기자 무언가 감각이 이상하다.
“망가졌나?”
우두둑.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왜 발목에 감각이 없나 했더니만, 발목뼈가 나갔다.
그나마 「조건부 검성」의 여러 부과 효과 중 하나인 불굴의 권능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다.
음…… 이것도 요양하면 나으려나?
‘안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신비가 만연한 세상에서 내 발목 하나 어떻게 못 하겠냐.
물론 내가 앓는 「태양절맥」은 이 세계의 수많은 신비들 가운데 가장 지독한 신비이기에 해결 방법이 거의 전무한 불치병이지만.
발목이 부서진 것 정도야.
별거 아니다.
진짜로.
……조금 아픈 것만 빼면 말이다.
“약발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군.”
─약이라니? 도련님한테 아편의 냄새는 안 나는데?!
“……그 뜻이 아니라, 단순한 비유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고 생각해야 될 것도 많은데, 이제는 귀찮은 식객(食客)이 한 명 더 늘었다.
하아.
한숨을 내쉰 승우는 자신의 검 끝에 갈라진 구름 너머.
하늘에 자욱한 별 무리를 보며 한탄했다.
귀찮은 동거인이 한 명 더 생긴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이딴 검 성연화한테 줘버릴까?
심히 고민된다.
* * *
저택으로 운신을 옮기기 전.
나는 잠시 깊은 무저갱에 발을 들였다.
“…….”
“용케 살았군.”
“…….”
내가 검을 휘두른 꽃밭의 중심.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깊게 파인 크레이터에는 알몸의 여성이 있었다.
“옷은 완전히 타버린 모양이군. 별빛이 뿜어내는 고열에 갑주와 방패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나?”
여인의 알몸을 보더라도 딱히 정욕에 영향이 가는 일은 없었다.
설령 경국지색의 미인을 보더라도, 아무런 이끌림을 느끼지 않도록 부동심 수련만 십 년을 넘게 해왔다.
심지어 첫사랑이었던 스승님을 품에서 떠나보낸 이후에는 사랑을 비롯한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성욕과 관련해서 정신이 망가진 것이다.
아니지, 오히려 오욕칠정 중 색욕과 사랑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으니 보다 진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관점에 따라서 말이다.
“아까부터 대답이 없군.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걸 보니 의식은 이미 아득해진 모양이야. 말 그대로 용케 살아만 있는 수준인가?”
─이 정도면 죽은 걸로 취급해 줘도 되지 않을까?
“아니, 녀석의 세포를 제대로 봐라.”
─대체…… 뭘 보란 건데? 음? 아…… 이만한 규모의 상처가 알아서 회복되고 있네?
뭐지.
이게 정녕 나와 같은 생물인가?
보통의 철도 아니고, 합금에 온갖 룬으로 강화한 갑주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던 검기에 휩쓸렸다.
그런 공격에도 육체가 버젓이 남아있어서 혹시나 싶었지만.
─이건 거의 불사에 가까운 육체인 것 같은데?
“’같은데?’가 아니다. 이건 이미 불사가 맞다.”
육체의 세포 재생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망가진 몸은 천천히 수복되고 있었다.
태고의 이종이자, 밤의 귀족인 옛 뱀파이어들과 오우거와 같은 절대종에 속하는 드래곤도 이 정도 재생력을 갖추진 못했다.
“오우거의 종족 특성인 것 같군. 그리고 그 원리는…… 마침 잘됐어.”
부글부글.
물이 끓는 것과 비슷한 소리.
그 소리의 근원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하군. 이건 학술적인 연구 가치가 있겠어.”
여인의 잘린 팔 부근에서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뜨거워서 피가 끓는 것이 아니다.
산소와 접촉한 이후 끓기 시작한 것이다.
“맹독? 독의 일종은 확실한데, 내 생각보다 독할지 모르겠군.”
하늘에 맞닿아 온갖 신통을 부리는 시조, 천호.
마법의 종주, 드래곤.
무력과 기의 화신, 오우거.
그들을 필두로 극소수의 절대종(絕對種)들은 그 위대한 힘을 바탕으로 쉽사리 상처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 탓에 그들의 피에 대한 정보는 현저히 부족하다.
다만 오래된 서기와 고대의 석판을 보면 그들의 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희석된 절대종의 피라도 자신보다 격이 낮은 개체에게 혈흔을 보이지 않으려는 본능은 여전한 모양이지?
그건 피에 독이 들었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분만 놓고 따졌을 때는 그 어떠한 독성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의 피는 그 자체만으로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에게 독처럼 생명을 갉아먹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나마 오우거의 후손이라서 이 정도지. 그녀가 희석된 피를 가지지 않은 하프였다면, 피가 난 순간 일대에 죽음이 만연했을 거다.”
물론 이 정도로 희석된 핏줄만으로도 자신보다 격이 낮은 상대를 죽이려 드는 오우거의 피는 여전히 일정 수준 이하의 초인에게는 맹독과 다름없었다.
나라서 망정이지.
학생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각혈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나마 너는 내 핏줄이라서 다행이네, 그렇지 않아?
“네 핏줄이 아니라 천호의 후손이겠지.”
─그래 봤자 천호가 가진 10개의 꼬리 가운데 반도 깨우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말이지?
“하!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삼미호가 된 나다. 그깟 깨달음 따위 일평생을 검에 몸담아온 내게는 어렵지 않은 고행이다.”
천호백가의 전신은 천호(天狐).
오우거와 같은 절대종으로.
비록 나는 절대종의 발자취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미약한 권능과 세 개에 불과한 꼬리를 가지고 있다지만, 이 정도 피에는 아무렇지 않게 저항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잘 먹겠습니다.”
이 정도 독성은 도리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팔 한 짝을 주웠다.
별을 담은 검으로부터 몸을 방어하고자 오른팔을 뻗은 그녀였으나.
안타깝게도 검성의 검을 피하지 않고, 방어한 시점에서 이 정도 피해는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잘린 오른팔은 만용의 상징이었으나.
동시에 그녀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내 검에 맞서 싸웠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콰득.
잘린 팔을 물었다.
그대로 뜯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섭취’하려는 의지였기에.
내 스킬은 그 의지와 행동에 호응해 잘린 팔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스킬, 「흡혈」이 잘린 오우거의 오른팔을 섭취합니다.] [방금 막 잘린 신선한 팔입니다! 선혈을 흡수해, 유전 정보를 확보합니다.]경매장에서 얻은 뱀파이어의 유산.
그 부과 능력은 「수혈」과 「혈우병」.
게임으로 따지면 마력 수급 수단이자, 상태 이상 유발 계열의 능력이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피를 통해 상대를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의 지식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
내 경우에는 「마도성」의 천재성 덕분에 어렵지 않게 분석할 수 있었다.
[‘절대종’ 및 ‘초월종’의 피를 흡수하셨습니다.] [뱀파이어의 권능 따위로 수용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을 아득히 상회했습니다!] [특성, 「마도성」이 보조합니다.] [‘오우거의 피’는 격 낮은 개체에게 있어서, 맹독과 다름이 없습니다. 스킬, 「약체내성지체」 속 「천독지체」가 내성을 구축합니다.] [온몸의 혈액이 변화……!] [피에서 강력한 독성……!]“으…… 속이 뒤집힌 기분이로군.”
허공에서 뻥 뚫린 검은 공간이 팔을 집어삼킨 이후.
몸속이 부글부글 끓는 감각이 느껴졌다.
어찌나 강렬한 독인지.
천 개의 독에 내성을 가진 내 몸으로도, 상당한 통증과 오한, 발열을 유발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들어오는 피에 관한 정보들을 차근차근 분석해서 이를 도리어 내 힘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통증이 상당해.’
어지간한 고통으로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 나이거늘.
어느새 눈가에서 촉촉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아, 눈 따가워라.
조금 아프긴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기에, 이번에도 「순보」를 밟으며 저택을 향하려던 순간.
우지끈.
무언가가 내 발목을 붙잡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족쇄가 다리를 붙잡아 늘어지고.
팔은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무거워졌다.
눈에 보이는 특별한 이상은 없다.
특성 「조건부 검성」이 풀린 것도 아니다.
내 마력과 체력의 한계로 미루어 볼 때 제한 시간은 앞으로 10분 이상 남았다.
그럼에도 내 몸은 무거웠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띠링!
언제나와 같은 경쾌한 기계음.
그러나 내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의 소리가 나를 반겼다.
[이면 세계 ‘얼어붙은 ■■■ ■■’의 데이터가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시스템에 기록된 로그는 당신이 범인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수위에 걸맞은 처벌을 부과합니다!]지지지지직!!
허공이 일렁이고 전기가 튄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원인을 알 것만 같았다.
‘무저갱 주변의 일그러진 우주.’
내 검기에 의해 오래전 멸망한 세계의 일부분이 훼손됐다.
그로 인해 생긴 빈틈.
비록 그 빈틈을 내 별 무리가 채웠다고 한들.
이면 세계를 이루는 데이터가 훼손됐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시스템은 그 대가로.
[특성, 「조건부 검성」이 내부의 개입으로 인해 「심검지로」로 변경됩니다.] [「조건부 검성」의 신체 능력 증강과 ‘불굴의 의지’가 삭제되었습니다!] [신체가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입습니다.]내게 큰 것을 빼앗아 갔다.
하.
가져가도, 내게 있어서 가장 큰 걸 가져갔네.
이럴 거면 차라리 주지를 말던가.
주고 빼앗으면 그거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이 있다.”
[…….]메시지에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마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모습이었다.
불쾌하지만, 대화에 응답하게 만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 여기 근처 어딘가에 있지?”
[…….]“이면 세계에 입장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을 목도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대충 넘어가려고 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뭔가 찜찜하더군.”
[…….]여전히 응답은 없다.
내가 바른길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 선택을 밀고 나갈 따름이었다.
“설령 네놈이 내게서 「조건부 검성」을 빼앗았다고 한들. 아직 그 특성이 내게 주는 전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천천히 흩어질 뿐이지.”
내가 다룬 가장 원초적인 권능.
이능(異能), 「별무리의 파도」.
이걸 사용한 것만으로 내 몸과 정신은 크게 반파되었다.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금방이다.
제한 시간이 다 된다면 상당한 고통을 호소하겠지.
하지만 아직 제한 시간이 남은 만큼.
큰 기술을.
방금보다 더 큰 기술을 날릴 기회가 있었다.
“딱 한 번, 목숨이 받쳐준다는 전제하에 내 검술을 펼칠 기회가 있다. 네놈이 누군지도 모르고, 내 전성기를 봤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세계의 종말을 앞당길 정도의 힘은 있다고 말해두지.”
[…….]“우리 관계 정립을 제대로 해두는 것이 좋겠지? 과연 이면 세계 밖에 네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1분 내로 응답이 없을 경우에는 휘두른다?”
진심으로 검을 휘두른다면 내 몸은 붕괴할 것이고.
과거의 잔상을 보여줄 뿐인 이면 세계는 금방 붕괴하리라.
그리고 학생들도 죽고, 공간을 이어둔 칠성 아카데미도 지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나, 이런 공간 따위는 가볍게 찢을 자신이 있단다? 설마 세계 너머에까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도련님, 아까부터 무슨 혼잣말이야?
“넌 좀 가만히 있어라.”
─넵.
아직 광인의 탈이 벗겨지지 않은 듯.
수틀리면 자폭할 각오를 마친 미친놈을 연기하자, 슬슬 무언가가 내게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운석이 머리 위에 가까이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온 우주가 나를 응시하는 것 같은 감각.
‘와, 이게 진짜로 통할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내 진실함이 통한 모양이다.
진짜로 수틀리면 답도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 자명했기에, 차라리 다 같이 영면에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다행히 생각은 생각으로 남겨둘 수 있을 것 같다.
“자, 그러면 시스템 양반. 아니, 상태창 선생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군. 우리 서둘러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어볼까?”
[……그래요, 좋습니다.]띠링, 그 빌어먹을 소리와 비슷한 음색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텔레파시] 마법과 같은 염화(念話) 계열의 마법이나 「전음입밀(傳音入密)」과는 차원이 다른, 깨끗하게 전달되는 목소리.대충 방식을 알겠다.
과연, 이렇게 하는 건가.
[설마 그 시끄러운 알림이 목소리였을 줄이야. 아, 어쩌면 TTS. 음성합성의 일종일지도 모르겠군.] [……이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저만으로도 충분하니. 평범하게 육성으로 답해주시면 됩니다.] [너무하군. 혼자서만 치사해. 나도 이 방식이 마음에 드는데 말이야.] [……마음대로 하십쇼.]사실 그냥 목으로 소리를 내면 더 편하다.
구태여 내가 이 방식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과 소통하려는 이유는.
‘이게 훨씬 재미있어 보여.’
순전히 재미.
그 이상의 가치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다만 여러모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
……먼 훗날에서야 깨달았지만, 아직 광인의 탈을 썼던 흔적이 남아 미치광이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기동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형성된 담화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리가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