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48화(148/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48화
북부의 겨울(3)
청명한 여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얼굴을 대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당초 감정이 없는 기계의 음색과 같았기 때문이다.
[직접 목소리를 낼 생각은 없는가?] [글쎄요. 흠흠, 저조차도 저에게 목소리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요.]“그러면 십중팔구로 목소리가 있겠네.”
[예?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나는 것입니까?]“글쎄, 왜일까?”
나는 질문에 질문으로 되돌렸다.
사실 근거는 어느 정도 있었다.
애당초 목소리가 없어서 저 기계 같은 음색을 빌렸다면, 내가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어색하고 허술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간에 목을 풀 이유가 없지. 추측하건대 음성합성보다는 음성 변조에 가까운 기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기만일 가능성도 있다.
상대를 나보다 하수나 동수라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의 나는 시스템보다 아래.
그를 상수라고 여겨라.
매사 해왔듯, 의심하고 또 의심해라.
[굳이 이런 미지근한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를 못 느끼겠군요. 서둘러 본론만 얘기하시죠.]“왜? 난 더 얘기하고 싶은데.”
[당신, 시간이 없지 않나요?]“아니, 많다.”
[주변에서 죽어가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요?]“어차피 죽은 목숨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라서.”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은 우리는 대화에 임하는 서로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손에 칼을 쥐고 있지는 않지만, 혓바닥에 칼이 돋았으니.
바야흐로 설전(舌戰)의 시작이었다.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 성별은 무엇이고, 나이는 어느 정도이며, 취향, 취미, 능력, 약점 등등.”
[숨기지도 않으시군요.]“숨겨봤자 의미 없잖아. 그렇다면 차라리 모두 공개해 버리는 게 내 취향이거든.”
[썩 특이하신 취향. 그러나 판을 주도적으로 쟁취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취향이십니다.]“그쪽의 취향은 어떤데.”
[제게 취향이라고 할 법한 개인적인 기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개인적인 기호는 없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속세에 연연하지 않고,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덕으로 삼는 중도 열반에 몫을 매거늘. 기호(嗜好)가 없다는 말을 쓰는 건 도리에서 어긋나는 대답인 것 같군.”
[저는 거짓을 고한 적이 없습니다.]“그렇다면 계약을 맺도록 하지. 그러면 명확해지니까.”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셨군요.]“이런,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태연한 얼굴로 입가만 슬며시 웃자, 어이없다는 어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꽂혔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감정은 실리지 않았다.
높낮이를 절묘하게 조절해서 감정이 담긴 말투를 구사하는 느낌.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속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상대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계약을 진행하도록 하죠. 계약의 주체는 당신이 맺을 셈인가요?]“아니, 당신이 하면 안 될까?”
[……당신처럼 의심 많으신 분이 제 손을 빌리신다고요?]“응, 난 이런 쪽 주술에는 쥐약이라서 말이야.”
그렇게 대답하자 어디선가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시스템이라는 양반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던 모양이다. 거짓을 구분하는 계약은 타마모와 맺은 계약의 하위 버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계약을 맺으려면 얼마든지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그 사실을 몰라야 한다.
몰라야 정상이다.
‘아무래도 관음증 스토커에게 잘못 걸린 모양이야.’
예상은 했지만 진짜로 누군가가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거짓 간파만 있으면 되겠죠. 자, 다 됐습니다.]“…….”
[왜 대답이 없으시죠?]“아…… 내 생각보다 금방 이뤄져서.”
아무리 간단한 계약이라도 내가 익힌 주술로는 1분 이상을 필요로 한다. 아무래도 이 시스템이라는 것의 계약은 그보다도 훨씬 빠른 모양이다.
해달라고 하길 잘했네.
‘역산해서 익혀야지.’
발동 속도가 빠른 계약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존재만으로 강한 족쇄가 될 때가 있다.
잘만 응용한다면 재미있는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뿐인가요? 그렇다면 서둘러 얘기하도록 하죠.]“그래 불공정 계약에 관련된 얘기였지.”
[불공정 계약이라뇨.]마음 같아서는 이 주술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상대가 대화를 촉구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
상대가 상전인 만큼, 여기서는 맞춰주는 수밖에.
“특성을 하나 쥐여주고는 위험하니까 뺏어갔잖아. 우리는 그걸 불공정 계약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웃기는 말씀이시군요. 저는 어디까지나 당신이 벌인 만행의 대가로 「조건부 검성」을 다른 것으로 교체해 드린 것뿐이랍니다.]“그래? 애당초 네가 준 특성도 아닐 텐데. 돌려받는 것이면 모를까. 멋대로 교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해 보이는걸?”
[!!!!!]특성, 「조건부 검성」.
이에 대해 시스템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쥐여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되돌려 받고 싶다면, 그 부분을 강조하면 좋았을 것을.
구태여 언급하지 않았다는 걸 유추해 보자면.
“왜, 이브가 줬다는 게 탐이 났어? 아니면 내가 강해지는 것이 꼴 보기 싫어?”
[아, 아뇨. 저는 그저……!]“아니면 불안한가?”
반응이 재미있다.
그러다가 기계음이 조금씩 엉키기 시작하더니, 저 하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존재감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연결이 점점 취하된다.
타이밍 참 기가 막히는군.
원치 않아도 서둘러야겠어.
“이런 나는 조금 더 얘기하고 싶은데. 상대가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하는 수없이 본론만 말해야겠어.”
“세상에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특성, 「심검지로」도 분명 좋은 특성임에 이견은 없다.
다만 그 비교 대상이 「조건부 검성」이라면 얘기가 살짝 다르다.
“「조건부 검성」은 경우에 따라서 목숨을 불태우며 택할 수 있는 최강의 패이다. 지금은 정도껏 사용하고 있지만, 만일 이 특성을 한계까지 불태운다면 2위계를 격살하고 1위계를 패퇴시킬 수 있겠지.”
말도 안 되는 비약이다.
1부터 10위계까지의 마물들 중 앞자리의 고위계 마물일수록, 그 격차는 비대하다.
4위계가 도시 행정을 박살 낼 힘을 가졌다면.
3위계는 도시를 멸망시키고, 나라에 궤멸적인 피해를 줄 힘을.
2위계는 한 국가를 멸망시키고, 인근 국가에 궤멸에 준하는 파멸을.
1위계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
그런데 지금 이 작은 인간은 자신의 힘이 인류 전체와 맞먹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마냥 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힘을 누군가가 뺏어가면, 나는 대체 뭘 받아야 할까?”
[……그래서.]처음으로 경쾌하고 상쾌한 말투에.
감정이 느껴졌다.
그 감정의 이름은 불쾌함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그거야 뻔하지 않는가.
“동등한 비율의 보상.”
참고로 그 동등한지 아닌지는.
“물론, 동등한 가치는 내가 직접 판단한다.”
씨익.
악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향해 웃었다.
그런 미소조차 승우의 입가에 걸린 이상, 퇴폐미에 지나지 않았지만.
과연 이 하늘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을 ‘그것’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알겠습니다.]“……내가 말하고도 웃기지만, 너무 서두른 결정이 아닌가? 내가 동등한 ‘가치’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지도 모르지 않나.”
[‘동등’하기만 하다면 가치에 중점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십쇼.]그 말을 끝으로 귀에서 뚝뚝 끊어지는 기계음과 함께, 나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존재감이 흐려졌다.
“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용케 대화가 성립했다 싶었더니.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생각해야 될 것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시스템이 자의식을 갖췄다는 것은 대화를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내게 「조건부 검성」을 쥐여준 것이 이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시스템은 가치보다 동등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 정도.’
제기랄.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리고 알아서 하라는 건 또 무슨 뜻이야.
뜬구름 잡는 소리에 머리가 복잡해지던 와중.
“음, 이건 또 뭐지?”
대체 뭐 이렇게 알 수 없는 일만 일어나는 것일까.
싶은 마음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장갑 안의 왼손이 반짝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스윽,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손등에 새겨진 마력이 여실히 느껴졌다.
‘계약의 잔재.’
방금 전 거짓을 구분하기 위해 시스템이 건 계약.
그것의 편린이 이러한 형태로 변한 것이다.
“조건 따위를 여기에 대고 말하라는 것인가?”
나 참, 이상한 녀석을 또 본다.
그냥 말로 하면 될 것은 왜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는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이러는 꼴이 우스웠다.
“계약을 마무리하기 전에, 아직 유예 시간이 남았으니. 그 이후에 하면 되겠지.”
시스템에 관한 고민은 나중에 이어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지금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지금은 마저 칼춤을 출 때다.
* * *
산악지대로 유명한 제국 북부의 땅.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땅의 중심에는 평평한 땅과 그 위를 뚜껑처럼 덮은 연분홍빛 결계가 있었다.
결계는 평평한 땅 위에 지어진 도시를 봄 수준의 날씨로 고정하기 위한 대마법의 일종이었다.
여하튼 그런 평평한 땅 옆에는 살짝 높은 곳에 있는 넓은 언덕이 있었고.
그 위에 지어진 것이 바로 자작의 저택.
근방에서는 성이라고도 불리는 건축물이었다.
북부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건물은 모든 시민들의 찬사를 받는 곳.
따라서 그곳을 지키는 기사들 또한 그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만 빼고.
“도망쳐라!!! 자작님의 손님이 미쳤다…… 악!”
“이미 정문의 녀석들은 전부 죽었다! 싸울 수 있는 기사들은 서둘러 길목을 막아라!! 절대로 녀석이 그분이 있는 곳에 당도하지 못하도록 해라!!”
“부단장님! 지금 운용할 수 있는 기사들의 8할을 전부 데려왔습니다.”
“좋아! 너도 대열에 서라. 이곳은 우리가 막는다!!”
북부의 자긍심에 상처가 났다.
피 분수가 사방에 튀었고, 그 중심에는 저주스러운 요도를 움켜쥔 사내가 있었다.
“……도망쳤다면, 당장 죽지는 않았을 것을.”
“우리는 북부의 기사. 절대로 도망치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는다는 녀석들이 시민들의 위험에는 잘도 눈을 돌리는군. 세상에 이토록 어리석은 오합지졸이 있다니.”
“그, 그건…….”
“닥쳐라!! 우리는 자작의 검. 그분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 곧 북부의 미래와 직결된다!!!”
“광신자 녀석. 이러니까 테르미야 같은 병신이 생기지.”
더 이상 말을 섞을 가치도 느끼지 못한 사내는 요도를 거칠게 휘둘렀다. 특별한 뭔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예(刈)」
아주 기초적이고.
다분히 간단한 검의 움직임.
그러나 그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저택을 지키던 기사들 중에는 없었다.
휙!
바람을 가르지도, 강력한 검기로 휩싸인 것도 아닌 간단한 검로(槍劍路).
그 끝에 걸린 것은 무수히 많은, 몸 없는 얼굴들이었다.
족히 100명은 죽였을지도.
생각보다 적은 숫자라서 깜짝 놀랐다.
기사들은 다른 의미로 놀란 것 같지만 말이다.
“허수아비보다도 나약한 아이들아. 지금이라도 투항하고, 민가로 내려간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
“저, 정말로……?”
“속지 마라! 여기까지 오면서 수백에 달하는 동료들을 무참히 죽여온 악귀의 말이다!! 이 추운 땅에 봄을 열어주신 분께서 저자의 출입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서둘러 검을 뽑고, 휘둘러라!!!”
으아아아!!!
장정들의 고함이 들려온다.
겁을 몰아내고, 그 위로 용기를 채우려는 듯.
함성을 내지르는 갑주의 기사들은 도리어 겁을 먹었음을 인정하는 나약한 이들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안타깝구나.”
「관(貫)」
다가오지 않는 자는 보내줄지언정.
덤벼오는 자에게 베풀어줄 자비 없는 나는, 저택 내부를 지키고자 검을 들고 달려오는 이들의 복부를 꿰뚫었다.
변변찮은 오의도 깨달음도 없다.
검에 서린 것은 오직 죽음뿐.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는, 망가진 내 몸 이상으로 벌어져 있기에 저주받은 도신은 방패와 갑주 따위를 뚫고.
이윽고 갈비뼈와 폐를 뚫고, 그의 뒤에 위치한 저택의 벽마저 꿰뚫었다.
극한의 관통.
그것이 바로 「관」의 검식이다.
‘그리고 쓰기에 따라서는.’
쾅! 쾅─!! 쾅──!!!
얇고 긴 도신의 저택의 벽을 몇 번이고 꿰뚫었다.
북부의 한기를 머금은 참나무.
수백 년간 제자리를 지킨 설산 위의 반석.
그 무엇으로 지어졌든 저택의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 기둥을 전부 관통하자 저택이.
기우뚱.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체들은 자연스레 매장되기시작했다.
‘처음 해봤지만 잘돼서 다행이다.’
─도련님! 그런 것치고는 익숙해 보이던데?
‘아, 사람의 척추나 요추로는 몇 번 해본 적이 있거든. 다행히 비슷한 감각이라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나 앞으로도 도련님 말 잘 들을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