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5화(1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5화
첫 번째 에피소드(5)
아카데미에 쳐들어온 사내는 경비실을 부순 후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이상 생각해 둔 작전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작전은 현장에서 짜야 하는 법인데…….”
그는 의뢰를 가리지 않고 수행하는 용병이다.
수십 년간 용병질을 해오며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아무리 멋진 작전을 세워봤자 하등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니 미리 대비하는 것만큼 무용지물도 없다.
그저 다가오는 현실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넓어도 너무 넓잖아.”
단순히 넓기만 하면 고민할 일도 없다.
이보다 넓은 땅덩어리에서 의뢰를 수행한 적도 있으니까.
그러나 아카데미는 단순히 땅만 넓은 것이 아니라 ‘환경’도 넓었다.
경비실 주변을 살피다가, 거대한 폭포와 야산을 발견했다.
계속 걷다 보니 드넓은 초원이 자신을 반긴 적도 있었다.
이어서 메마른 사막과 축축한 늪지대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세계 5대 아카데미는 다르다는 건가.
도대체 이 땅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랐다.
바닥에 거대한 지뢰가 설치되었을 수도, 길가에서 융단 폭격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상정 외의 강자와 조우할지도 모른다.
“하하, 이거 재미있네.”
사내는 긴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짜릿한 흥분감을 느꼈다.
그래, 칠성 아카데미면 이 정도 난관은 있어야지.
어쩐지 쉬워도 너무 쉽다고 느낀 참이었다.
이 정도 긴박감은 있어야 보람이 있다.
그는 부푼 기대를 안고 품에 넣어둔 뿔피리를 꺼냈다.
검은 외형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뿔로 장식된 피리. 이것은 공장에서 나온 인공품 따위가 아니다.
특별한 마물의 성대를 가공해서 만든 아티팩트였다.
이번 의뢰의 의뢰주인 마인에게서 빌린 뿔피리.
이 피리에 담긴 힘은 마물을 조종한다. 듣기로는 귀족의 힘으로 제조한 귀중품이라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꽤 쓸 만한 물건이다.
───뿌우우우우우!
뿔피리를 불자 곳곳에 산재한 마물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뿔피리로 내린 명령은 학살. 이제 마물들은 제 눈에 보이는 모든 생물들을 죽이리라.
“자, 그럼 난 학생들이 숨은 곳을 찾아볼까.”
마인에게서 받은 의뢰는 학생들의 몰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은 마물들이 알아서 죽여줄 테니, 자신은 숨어 있는 학생들만 죽이면 된다.
아이들을 죽인다는 사실은 못내 안타까웠으나, 의뢰의 보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디 나를 위해 죽어주렴.
사내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대피소를 찾아다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인지, 아카데미 내 대피소의 위치는 인터넷에도 없었다. 때문에 직접 발로 뛰어다닐 수밖에.
그는 눈빛을 일렁이며 돌아다니다가, 문득 마력이 잔뜩 엉켜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으음, 뭐지?
“……대피소나 은신처 같지는 않은데.”
호기심에 동그래지는 눈동자.
그의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자신의 뒤를 노리는 불꽃에 반응하는 것이 느렸다.
거대한 불꽃은 폭발하며 자신의 머리를 날리고, 시체마저 불태운다.
그리하여 사내는 죽는다.
그런 미래를 보았다.
“……은밀하고 강력한 공격인걸.”
사내는 곧장 거리를 벌렸다.
전력을 다해 1㎞ 즈음 도망쳤을까. 뒤를 돌아보자 자신이 있던 자리가 불지옥이 돼버린 것이 보였다.
음, 저 정도 화력이라면 자신의 단단한 돌머리가 날아가고, 시체조차 남지 않는 것도 수긍할 수 있다.
그는 이번에도 자신을 살려준 ‘눈’에 감사를 표했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는 짜릿함을 느꼈다.
모순된 감정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그런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느낄 만큼 망가져 있었다.
“자, 이번에는 내 쪽에서 가 볼까?”
상대의 위치를 확인한 그는 곧장 내달렸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든 그를 상대로 수십 발의 불꽃 화살이 날아왔다.
* * *
화살을 이용한 공격은 단조롭다.
아무리 곡사(曲射)를 해봤자 한계가 명확하다.
사방을 방패나 갑옷으로 보호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 화살이 탄도를 읽을 수 없는 마법이라면?
하물며 쇠가 아니라 화염으로 이루어졌다면 어떨까?
지금 사내는 그 의문의 해답을 얻고자 몸을 집어던졌다.
“하하하, 꽤나 교묘한 화살인걸. 마력을 다루는 센스가 뛰어난 모양인데!”
수십 발의 화살은 동시에 날아오지 않았다.
순차적으로 날아와 사내의 움직임을 강요했다.
그러고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퇴로를 차단해 숨통을 끊을 작정이었다.
마력을 다루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만약 자신에게 ‘눈’이 없었다면, 팔 한 짝 정도는 잃었을지도 모르는 교묘한 수였다.
“그러나 나한테 잔재주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커다란 검풍이 불어, 화살의 궤도를 비틀었다. 물론 마법으로 이루어진 화살이기에 곧바로 유도 폭탄처럼 사내를 노렸으나.
이미 물고기는 그물을 벗어난 뒤였다.
교묘한 화살의 그물을 빠져나간 직후.
화르르, 사람 머리만 한 불꽃이 날아왔다. 화력도 속도도 빠르지만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다.
사내는 불꽃을 검으로 튕겨내려고 했다. 일순 그의 눈동자가 멍해졌다.
검으로 불꽃을 튕겨내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피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저 불꽃은 일종의 시한폭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했다.
‘눈’으로 엿본 세상은 그에게 경고를 고했다.
불꽃의 화살에 이어서 멋진 한 수였다. 보통의 상대였다면 충분히 낚였으리라.
그러나 사내는 아니었다.
그의 눈과 경험은 범인의 것이 아니다. 고작 이 정도 술수로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후웅, 그가 검으로 찌르기 자세를 펼치자 검날이 예기를 내뿜었다.
마력에 의해 유형화된 예기는 불꽃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폭발한 순간조차 주지 않고 불꽃을 꺼뜨렸다.
자, 그러면 이제 내 차례인가.
사내는 자세를 잡았다. 멋진 공격들을 받은 만큼, 회심의 한 수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승우는 그러한 틈을 주지 않았다.
불꽃이 화륵, 하고 일렁이더니 바닥을 치고 올랐다.
가시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불꽃. 가시 꼬챙이는 2m가량 치고 올라와, 발을 디딜 수 없게 했다.
공중에 떠오른 사내는 이번에도 피했으나, 한 가지 변수를 놓치고 말았다.
그는 눈에 비치는 광경에 의존하며 몸을 비틀었다.
채앵, 불꽃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믿기지 않는 금속음이 울렸다. 승우가 몸에 불꽃을 두르고 덤빈 것이다.
사내는 형태와 물리력을 지닌 독특한 불꽃에 경각심을 품으며 물러났다.
기묘한 상황이었다.
사내는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상대를 공격할 기회나 틈이 일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빈틈없는 상대일지라도, 자신의 눈을 가지고도 공격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니.
처음 상대해 보는 부류의 상대.
그는 긴장하면서도 내심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지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그는, 마법사 사냥꾼이라 불린다.
마법을 역산하거나, 모든 마법을 방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그의 특성이 마법사란 족속과 상극 관계에 있는 탓이다.
찰나의 순간도 쪼개 쓰는 무인이라면 모를까.
계산과 거리에 의존하는 마법사는 절대로 자신을 이길 수 없다.
질 자신이 없는 사내는 재미있다는 말투로 말했다.
“오, 꽤 잘생겼는걸.”
별과 달빛이 구름에 가려졌다. 시야 확보도 간신히 하던 와중에,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 정도의 파이로맨서(Pyromancer)와 조우했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화염이 넓게 퍼지며 상대의 신수(身手)가 훤히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여자한테 인기가 많은 외모였다.
머리는 작고, 팔다리는 얇고 길다. 얼굴에는 그 흔한 잡티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
박제해서 딸한테 주면 좋아하려나?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어지간한 인형을 선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코를 간지럽히는 향기에 눈을 부라렸다.
어딘가 익숙한 향.
사방에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유유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냄새, 분명 기억에 있는 향기였다.
깊은 생각에 잠긴 사내.
그 틈을 놓치지 않을 승우가 불꽃의 세례를 퍼부었다.
퍼버벙, 연속되는 공격에 사내는 도망 대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녹색의 부적이 그의 손에 걸려 팔락거렸다. 초록빛 방어막이 사내를 감쌌다.
“……쯧.”
그 모습에 승우는 혀를 찼다.
모든 마법이 저 방어막에 막혔다.
보아하니 상당한 강도를 가진 방어막이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뚫기는커녕, 타격도 쉽지 않다.
승우가 잠시 숨을 돌리며 재정비하는 사이.
방어막 속에 몸을 숨긴 사내는 생각했다. 기억에 있던 향기.
쉽사리 잊을 수 없던 강렬한 향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아! 그거인가?!”
떠올랐다.
의뢰 때문에 종종 들렀던 환락가.
그곳의 기생들이 뿌리는 향수와 비슷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 했다.
본능적인 무언가를 자극하는 냄새였다. 이걸 뭐라고 부르더라.
“……뭐였더라. 아, 페로몬이라고 부르던가.”
맞다, 페로몬이었다.
이 달짝지근하고 몽롱한 향기는 분명 페로몬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냄새 나는 거지?
기생오라비처럼 생기긴 했는데.
진짜로 기생오라비였던 건가.
그러자 오래된 기억이 부상했다.
추억은 아니다.
오히려 저주에 가까운 기억이다.
아내를 잃고, 딸이 시름시름 앓게 된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런 향이 났지.
사내가 기억에 빠질 무렵. 재정비를 마친 승우가 불꽃을 흩뿌렸다.
여러 갈래의 불꽃이 회오리처럼 뭉쳤다.
콰과과과광!
또다시 방어막을 노리는 공격.
당연하지만 타격은 없었다.
사내는 여전히 방어막 속에서 사색이 빠져 있었다.
전투 중에 저런 짓을 하다니.
그야말로 광인의 짓거리였다.
사내는 거기서 한술 더 떴다.
“너 같은 기생오라비는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
영문 모를 말을 내뱉는 사내.
기생오라비와 얽힌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당연하지만 승우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마법사 사냥꾼은,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존재다.
미친놈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짐승 따위를 상대한다고 마음먹자.
바로 그때였다.
쾅, 초록빛 방어막이 깨지며 안에 있던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폐인처럼 거칠고 거세게 움직였다.
진짜 왜 저러는 걸까.
“……크윽.”
머릿속으로는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몸은 저 거친 움직임에 대응하기 바빴다.
야생 동물처럼 재빠르고, 날것 그 자체에 가까운 움직임.
그는 움직이는 족족 내 빈틈을 노리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화염으로 벽을 치거나, 방패를 둘러서 대응했다.
사내는 자신의 능력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돌파해 주마,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조금 무리를 하겠지만 괜찮다.
자신의 눈을 이용하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으니까.
지금 사내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하여 모든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에 나섰다. 반드시 공격당할 수밖에 없는 훤한 빈틈. 그런데──.
“─음?”
뭔가 이상하다.
자신은 방어를 포기했거늘, 승우는 훤한 빈틈을 단 한 번도 노리지 않았다. 오히려 방어에 급급하며, 공격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지, 쇼인가?
대놓고 맨몸의 상대를 두고도 공격하지 않는다고?
사내는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은 깊어지고, 의심은 확신이 됐다.
그의 사고방식은 광인의 것이지만, 상황을 추론하는 능력만큼은 뛰어났다.
용병 생활에 의해 단련된 판단력이다.
하하, 그런 거였구먼.
사내는 자신의 확신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구나?”
그래서 몸을 사리는 거였어.
사실 확신했다고 해도 스스로의 생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대의 무표정 너머. 동공의 미세한 흔들림을 확실히 잡아냈다.
빙고,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