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5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50화(15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50화
북부의 겨울(5)
계약에는 저울질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적정한 선을 지키는 한에서는 내가 갑의 관계를 가지는 듯했다.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은 내가 원하는 요구사항이 수락될 즈음이었다.
[제출하신 의견이 수립됐습니다.] [상대가 의견을 검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의견에 따라 계약이 성립됩니다.]어라?
‘이게 진짜로 성립된다고?’
혹시 몰라서 내게 유리하게 만든 계약이다.
이런 걸 성립시키다니.
제정신인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계약은 성립된 순간 이행을 시작했다.
이 세계는 우선 간단한 요구를 먼저 들어줄 생각인지.
내 몸에 넘쳐흐르는 전능감의 근원을 빼앗았다.
[특성, 「조건부 검성」을 ■■합니■.] [더 이상 본신의 힘■ 빌릴 ■는 없습니다.]상태창에서 특성 한 개가 사라졌다.
그로 인한 결과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아파.”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단련된 의념이 조금씩 흩어진다.
몸에 납 덩어리를 올린 듯, 움직임이 둔해진다.
아드레날린으로 잠시나마 잊었던 통증이 한 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며 신경계를 장악했다.
고통 말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 생각보다 훨씬 몸을 혹사시켰구나.’
이러니까 단명하지.
내가 일찍 죽는 이유를 알았다.
가뜩이나 수명도 길지 못한 육체로, 이런저런 지랄을 몸소 실천하니.
그 한계가 지나치게 빨리 찾아오고 있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그 사실을 너무나도 절실하고 분명하게 몸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이 계약은 내가 훨씬 유리하기에.
고통 그 이상의 단 열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요구한 조건은 총 세 가지.] [첫 번째 요구, 100 포인트(P)를 지급합니다!] [포인트(P)는 지금 당장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100 포인트.
시스템이 처음 불렀던 1,000 포인트의 1할에 불과한 양이지만, 사실 이 정도로도 부족하진 않다.
애당초 포인트는 이번 계약의 쟁점이 아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요구야말로 진정한 논점이라 볼 수 있으리라.
‘자, 내 요구를 얼마나 잘 지켰을까 지켜보도록 하지.’
수틀리면 난동을 부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 생각으로 눈에 떠오르는 다음 메시지를 읽어나갔다.
[두 번째 요구, 「성휘의 로사리오」를 지급합니다!] [원본이 외차원(外次元)에 있는 성물입니다!] [차■ 방벽 ■■로 원본을 ■■옵니다.]메시지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서는 마구잡이로 깨졌다.
단어가 여럿 깨져서 문장을 읽기는 힘들었지만, 내 손아귀에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진 순간.
저따위 문장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건…… 내게 맞군. 흠집과 십자가에 담긴 고유한 내력까지 동일해.”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장신구가 있을 줄이야.
─야, 달기. 저거 성유물의 일종인 거 안 보여? 나랑 같은 원혼. 심지어 그 근본이 마와 악에 있는 놈들을 저거에 닿는 순간 반쯤 제령(除靈)될걸.
허공에서 무언가가 손 위로 떨어졌다.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그것은 작은 십자가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기적이었다.
「성휘의 로사리오(Rosario)」
등급: 전설
설명: 세상에 고통받는 자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염원한 성인 <성모>가 목에 걸었던 로사리오와 검성의 로사리오를 귀걸이의 형태로 가공했습니다.
귀걸이는 검성이 세상을 구원하는 그 순간까지 함께 있었기에 전설에 기록될 장신구가 되었습니다. 귀걸이는 한 쌍이 있을 때 제힘을 발휘하며, 하나만 착용할 경우 효과의 일부만 적용됩니다.
*인과역전(因果逆轉)
상처와 부상에 대한 인과를 역전시킵니다. 능력을 일으킬 부위의 기원에 따라 인과를 빗겨나며 불합리한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 대신 상당한 체력과 마력을 요구합니다.
특정 대상에 한해서는 대가를 바라는 거래도 등가교환도 아닌 일방적인 편애를 불러일으키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악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성호 발현(聖護 發現)
일정량의 마나를 불어넣어 물리적인 공격을 비롯한 온갖 공격으로부터 대상을 보호하는 성호를 발현합니다. 성호의 범위는 20m를 넘지 못하며, 재사용에는 일각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정 구현(聖釘 具現)
성인(聖人)을 매달은 성정을 구현합니다. 성정은 성덕과 덕망이 높은 이를 부정하고 구속합니다. 성정의 길이는 한 척(尺, 23~30㎝)에 달합니다.
*부정 퇴치(不淨 退治)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퇴치할 때, 그들의 힘을 억압하고 억눌러줍니다. 그 강도와 세기는 대상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증가합니다. 그들의 퇴치는 성모를 위한 제사가 될 것이며, 그녀를 위한 추모가 될 것입니다.
“원래 이렇게 복잡한 주물이 아니었는데.”
염병할 것.
뭐가 이렇게 길고 복잡해.
본래 로사리오에 권능이나 능력 따위는 없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선생님에게서 받은 선물 중 하나임과 동시에 그분의 유산이 한 쌍을 이룬다는 것 정도?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없어야 했다.
‘시스템이라는 녀석이 로사리오에 얽힌 내력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부가 능력을 부여한 것인가?’
생각은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녀석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내 전력을 빼앗으려고 했던 걸 고려한다면, 애초부터 내재된 능력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나는 시스템과 상태창이라는 외부 요소를 거치고 나서야 선생님의 유품이 가진 진가를 알았다는 건가.’
낭패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아무리 선생님의 로사리오는 유품이라 애지중지한 탓에 몰랐다고, 정상 참작할 수 있어도.
나머지 한 개의 로사리오는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것도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한참 전.
18살 즈음의 생일에 받은 것이다.
‘……일단 귀에 끼고 생각하자.’
자책은 나중에 마저 하자.
지금은 해야 될 것이 있다.
나는 한 쌍의 로사리오를 귀에 걸었다.
기존에 능력치 상승 및 방어용으로 걸어둔 귀걸이는 반지 속 아공간에 던졌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광채로구나.”
십자가 형태의 로사리오.
흔히들 묵주라고 부르는 것은 목걸이나 손에 걸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스승님께 받은 묵주와 스승님의 유품으로 받은 묵주.
총 두 개를 가지게 되어, 동시에 가지고 다니고자 귀걸이로 가공했다.
선생님의 기도와 기적이 깃든 이 로사리오는 이렇게 걸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부적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시스템이 과연 이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하냐는 것에 따라서, 녀석에 대한 인식이 판가름 날 것이다.
[세 번째 요구, 「심검지로」의 내역을 수정합니다!] [내역 대부분이 수정된 요구 사항입니다.] [특성, 「조건부 검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요구 사항으로 추정됨.] [……!] [……!!!] [내역이 지나치게 「조건부 검성」과 닮아 있습니다!]그야 당연하지.
‘애당초 그걸 보고 비슷하게 따라서 만들었으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특성의 명칭이 심검을 가리키고 있는 이상.
능력의 초점이 심검을 향하고 있다는 것과 보다 강력한 페널티를 추가해서 균형을 맞춘 것 정도려나?
그 이상의 차이점은 없다.
그러게 나랑 뭘 할 때는 나한테만 집중해야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내게 신경을 못 쓰는지는 몰라도.’
이미 판이 이렇게 깔린 이상.
분명히 판은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남은 것은 이 판을 최대한으로 지키는 것뿐.
[당신의 요구에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기함을 쳤습니다. 이런 건 불공정한 거래라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인과율은 적절한 균형을 지키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강력한 페널티를 보고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담보로 세상 이토록 끔찍한 고문과 목숨을 비롯한 것들을 내놓는 사람은 우주에서 당신뿐일 것이라고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당혹스럽게 말합니다.]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내가 넣은 페널티는 그렇게 길지 않다.
특성, 「심검지로」를 사용한 후 입은 상처는 향후 10배 이상의 통증을 유발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며, 체력과 기력을 비롯한 생명력을 전부 소진한 직후에는.
사후를 저당 잡아 온갖 고문을 스스로에게 가한다.
상처에 꿀을 발라 벌레에게 먹이거나.
십자가에 못을 박아 매달리거나.
사지를 자의를 찢거나.
목을 무딘 칼로 내리찍어, 여러 차례에 걸쳐 천천히 죽도록 만드는 등.
내가 알고 있는 고문 중 가장 높은 수위의 것들은 차근차근 가하기로 했다.
‘물론 통증은 10배로 느끼는 상황에서.’
……이렇게 놓고 보니까.
피학 성향이 있는 변태가 쓴 요구사항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성향이 없다.
그 사실은 상태창을 휘어잡은 시스템도 알고 있었다.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페널티에 없는 눈살을 찌푸린 시스템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각오가 됐고.
이를 계약에 적을 각오가 된 사람에게 무언가를 운운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아는 그는 그대로 계약을 체결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세 번째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특성, 「심검지로」가 완전히 개편됩니다!] [개편까지 남은 시간 : 9분 59초] [개편까지 남은 시간 : 9분 58초]……
[10분 뒤 모든 계약이 끝맺어집니다.] [당신의 몸에 남은 ‘검성의 잔재’ 또한 10분 뒤에 사라집니다.]내가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0분.
그 뒤로는 검기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고, 아드레날린에 의해 고조된 몸이 점차 고통에 잠길 것이다.
아마 전투 불능 상태가 되리라.
“빠르게 끝내자.”
더 이상 천천히 움직일 이유가 없다.
속도를 내기로 마음먹은 이상.
나는 무릎과 발목의 부상에도 아무렇지 않게 공간을 접어 달렸다.
「순보」
공간과 공간이 접힌다.
그 위를 내달리는 한 번의 발걸음
그러다가 몸을 추스르고 한곳에 집결한 기사들의 잔당이 눈에 들어왔다.
무너진 저택 속에서 무거운 갑주와 검을 들고 살아남은 이들인 만큼.
나름대로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었다.
이 세계의 용어로는 익스퍼트.
전문가의 경지에 다다른 기사들의 집결이었다.
“저기! 검은 괴물이 온다!!”
“모두 검을 휘둘러라. 방어하거나 대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이 없다. 방금 무너진 저택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죽을 각오로 필사의 일격을 퍼부어라!!”
“……어째서 이만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 기사와 주군의 관계에 이토록 목을 매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
“이해할 필요 없다, 남부의 검은 여우여! 우리는 설령 북부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추운 땅에 봄을 가져다주신 분께 충성하기로 맹세했으니.”
“……고작 그런 것에 목숨을 건다고?”
“우리에게는 봄이 목숨보다 소중하다!”
속도를 높이기로 마음먹은 만큼.
기사들의 집결 정도는 가볍게 넘기려고 했으나, 검기로 무장한 기사들의 투지가 공간을 희미하게 일그러뜨렸다.
속도를 늦추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저들을 죽이고 발걸음을 마저 옮겨야 하는 상황.
‘안타깝구나.’
이만한 인재가 내 세상에 있었다면.
저따위 충성심이 아닌 대의에 목숨을 바치는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 있었을 텐데.
한낱 기사와 자신을 희생한 영웅.
둘 중 어떤 수식어가 더 마음에 와닿을지는 모두가 알고 있을 터.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속도를 살짝 늦췄다.
내딛는 걸음을 한 걸음 늦췄다.
스으으으윽!
발이 바닥에 쓸린다.
마찰로 인해 속도가 느려지고, 발목에 무리가 가는 상황.
연약한 내구의 다리가 그렇게 뒤틀리는 사이.
처억.
허리를 낮추고, 요도를 허리춤에서 발도해서 몸을 크게 움직였다.
고정된 자세에서 몸을 낮춰 균형을 조절.
허리를 크게 움직이며, 도신에 큰 힘을 담는다.
스릉!
그때 검에 반짝이는 순백의 검기.
찬란한 별빛을 담은 검기는 도신과 함께 눈앞의 광경을 위아래로 베었다.
움직임은 한 번.
「참(斬)」
참수하는 것은 수백.
검을 휘두른 순간.
검기는 세상을 반으로 갈랐다.
위아래.
그 사이에 있던 기사들의 허리는 속절없이 잘렸고, 그 뒤에 있던 건물들의 잔해도 반으로 잘렸다.
후두둑.
잘린 상반신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는 피와 장기로 흥건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장면을 만들어낸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간…… 무더기로 먹어볼래?”
─나한테 물어본 거야?
“여우는 간을 좋아한다는 속설을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흐음, 인간의 생살을 씹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닌데.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썩게 둘 순 없으니까.
“태워야겠네.”
다음에는 순대로 한번 먹어보자.
이 정도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딱─!
손가락을 튕기자 번갯불 튀듯 타오르는 화염.
시체들을 전부 태운 불은 순식간에 잿더미만 남기고, 싸늘한 북풍에 실려 허공으로 흩어졌다.
귀찮은 작업이다.
앞으로는 전부 태워야겠다.
─도련님! 저는 간 좋아하는데요?!
“진짜로 먹으라고 한 소리 아니야.”
─그래도 아까운데…….
“나중에 분식집에서 간과 순대를 사줄 테니. 둘이서 같이 먹어라.”
분위기 환기를 위해 내뱉은 농담.
그러나 정작 아무도 이를 농담으로 듣지 않은 모양이다.
뭐 이제 진짜 금방이니까.
분위기 환기 따위는 필요 없겠지.
‘이제 진짜 조금이다.’
바로 근처에 자작의 기척이 느껴졌다.
방향은 밑.
검으로 굴착기처럼 땅을 팔 수는 있지만.
뒷감당할 자신은 없기에 앞으로 내달렸다.
계속 앞으로 가자, 무너진 저택의 잔해가 진로를 방해했다.
그렇다면 방금 전 시체를 자르고 태운 것처럼.
잔해도 부서고 태우면 그만이다.
「관홍일(貫紅一)」
본래는 네게 창술을 가르쳐 준 노야에게 선물 받은 창과 함께 쓰는 기술로, 관통에 치중됐으나.
나는 불꽃으로 창을 만들어 그대로 길을 뚫었다.
지나온 길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남은 잔해가 어떻게 되건.
창으로 적의 몸통을 관통하듯.
잔해들을 비좁고 꿰뚫다 보니 어느새 지하로 가는 길을 찾았다.
바닥에 청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문이 있었다.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 모습에 들고 있던 불꽃의 창을 힘껏 내던졌다.
길고 곧은 투창.
자물쇠로 잠긴 문에 제대로 부딪힌 창은 그대로 연소했으나.
그와 동시에 거대한 압력으로 문을 강제로 뚫었다.
콰과과과과강!!!
거대한 금속음이 사방으로 퍼졌다.
문이 강제로 열리자, 그곳에서 드러난 것은 지하로 향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과 그곳을 지키는 갑주의 기사들이었다.
그렇게 죽였는데 아직도 다 안 죽었다니.
험난한 땅에 이토록 많은 기사의 재목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그래도 더 죽이면 그만이니까.
별생각 하지 않고 불의 창을 만들어.
지하를 향해 곧게 뻗어나갔다.
푹! 푹! 푹!
창에 복부가 찔리고 기사는 유언을 내뱉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타들어간다.
그렇게 한 30명쯤 죽였을까.
간신히 방패와 검을 휘둘러 내 창을 막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기사단장 테르미야만큼의 재목은 아니었는지.
방패와 검은 불에 달궈져 손에서 놓쳤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방금 그거 한 번 막았다고.
이 꼬락서니가 된 것이다.
“거듭 안타까워. 기사가 아니라 무인으로서 정진했다면, 막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반격까지 했을 재능이거늘.”
“다, 당신 누구야? 대체 누구길래 이곳에서 이토록 피를 남발하는 거야?!”
“그대들의 주인의 손님.”
다른 말로는 암살자라고도 하지.
뭐, 보통의 암살자치고는 많이 요란하지만.
어차피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너, 너 아이들을 찾으러 온 거지?! 그렇지! 맞지!”
“……뭐라고?”
아이들?
혹시 학생들을 얘기하는 건가.
‘그 아이들의 기척은 전부 도심에서 느껴지는데?’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단어인가 싶었는데.
숨을 헐떡이는 기사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살고 싶어서 전부 토로하겠다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 난리 틈에서 거지 꼴의 아이들을 전부 잡아와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면 여기까지 올 일이 뭐가 있는데?!”
“부랑아들을 납치됐다고?”
“……몰랐어? 그러면 설마 그분을……!”
서걱!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서 창으로 목을 베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창은 베는 것과 동시에 상처를 지져, 출혈을 막았다. 그래 봤자 목이 잘린 사람은 살 수 없지만, 더럽게 피가 뚝뚝 흐르는 것은 방지할 수 있었다.
망설임 없이 기사를 죽인 나는 더 밑으로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10명의 기사를 더 죽였고.
마침내 지하 공동까지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지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넓은 공간이 지하에 펼쳐져 있었다.
‘이 넓은 공간 어딘가에 자작이 있고…… 부랑아들도 있다고 했지.’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지나치게 넓어서 자색의 마안으로도 쉽게 찾기는 어렵지만, 이 공간에 자작의 것으로 보이는 기척 하나와 작은 기척 여럿을 찾을 수 있었다.
“……불꽃으로 죄다 쓸어버릴까?”
사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런 깊은 공간에서 불을 피우면, 산소가 금방 사라지기에 질식으로 죽이기 딱 좋다.
하지만…….
‘그러면 아이들도 죽겠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앞에 그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망설이지 않던 다리가 그제야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멈췄다.
어차피 이 세상은 오래전에 멸망한 땅.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사들과 아이들도 결국은 홀로그램에 가까운 것들이다. 저들이 설령 감정을 느끼고 피를 흘려도.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란 말이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딱 한 걸음만 내디디면, 죽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그걸 위해 그 많은 기사들을 도륙하고, 저택도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대체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내 발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