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5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54화(15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54화
선생님(4)
“…….”
간혹 눈을 감았다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보이지도 않는데, 다른 무엇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심상 세계.”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수련에 매진하는 불자와 속세에서 초월을 염원하는 도인조차 경시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밥 먹듯이.
심지어는 무의식중에서도 행할 줄 아는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네가 나를 불렀나?”
마모되어 가는 정신.
미쳐가는 이성.
이미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나는 종종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하나씩 내쳤다.
지옥의 구렁텅이 같은 무저갱(無底坑).
빛 한 줌 없는 깊은 인간의 내면에서 나와 똑같은 얼굴의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아니로군. 그렇다면 누가 날 이곳까지 이끈 것이지?”
내 삶은 빛과 같았다.
누구보다 찬란하고 반짝였다.
모두의 숭상을 받는 우상.
그런 생애를 사는 삶의 이면에는 필시 그림자가 필요로 했다.
이곳이 바로 나의 그림자.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었고, 빛은 그림자라는 개념이 존재해야 비로소 그 광명을 증명할 수 있기에.
둘은 떨어질 수 없는 표리일체와도 같은 운명공동체이다.
다만 빛의 세기를 키우면 키울수록, 그림자는 옅어지는 법.
“…….”
“그래, 오늘은 너를 희생할 차례로군.”
그 말인즉슨.
빛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림자의 희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 가득한 것은 ‘나’.
나라는 인간을 정의한 여러 요소들이다.
이미 살아오면서 충분히 잘라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아직도 스스로를 마모시키며 살아가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멍한 표정의 ‘나’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눈물샘이 메마르고, 슬픔을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은 진작에 잘라낸 내게 순수하게 흘릴 눈물 따윈 남지 않았다. 이건 피눈물이었다.
백승우라는 인간을 이루는 요소를 억지로 잘라내는 탓에 내상을 입는 중이다.
그럼에도 나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못하니.
“……미안하구나.”
미안한가?
애석하게도 그런 감정은 진작에 내친 지 오래다.
따라서 나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의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무저갱 속에서.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며, 보이지도 않는 앞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라.”
서걱!
무언가를 자르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흥건히 젖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바닥에 흥건한 무언가는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을 것이다.
내 손에 잡힌 머리채.
목 없는 머리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 몸의 한계가 점점 명확해지고, 윤곽이 드러나고 있으니.”
나도 조만간 너희들을 따라갈 테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말거라.
감았던 눈을 뜨자 언제나와 같은 살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뿐해진 몸과 공허해진 마음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
방금 전 목을 직접 뜯은 사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자약한 자태.
특성, 「허장성세」.
무표정의 사내에게 자괴감은 진작에 잘라낸 그릇된 감정이었다.
가면을 뒤집어쓴 나는 원한다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었다.
* * *
눈을 뜨자, 끔찍하게 망가진 영토가 눈에 들어왔다.
방금 보고 온 공허한 마음만큼이나 헛된 세계.
그야말로 멸망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광경이다.
“……선생님 진담이세요?”
내 소매를 잡으며 질문하는 이지.
마법 저항력과 눈먼 화살로부터 몸을 방어해 줄 정도의 방어력을 지닌 교복이 꽤나 처참히 찢어졌다.
내가 그동안 ‘가디언’이란 역할은 희생을 감수하며, 온몸으로 동료들을 지키는 역할이라고 줄곧 말해줘서 그런가.
다른 아이들의 몰골도 처참한 편이지만.
유독 이지의 모습은 심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구나. 서둘러 지혈하렴.”
“선생님!”
“왜 그러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지금 저 밑의 사람들과 여기 있는 아이들이 안 보이시나요?!”
교복이 피로 물들었다.
특히 새하얀 와이셔츠는 지금도 피에 젖고 있는 중인지.
뚝뚝, 붉은 피가 맺혀 떨어질 정도였다.
“보인단다. 보이니까, 어서 너부터 챙기렴.”
“저는 괜찮아요! 지금 저 밑에 저보다 심한 꼴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
“심한 꼴의 ‘사람’? 글쎄…… 네 눈에는 저들이 사람으로 보이니?”
“……네?”
그렇군.
왜 이지가 위험할 정도로 피를 흘리고서는 내게 열변을 토하는지.
다른 아이들도 이지의 뒤에 서서 나를 쳐다보는지 알겠다.
관점의 차이였다.
“서, 선생님 그게 무슨 뜻이세요?”
“지야, 저들을 봐라.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니?”
“그야……. 그거야 당연하죠!”
“그래? 내 눈에는 망자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
“!!!!!”
이면 세계의 배경이 되는 이곳은 던전으로 구현된 과거의 잔향이다.
이미 멸망한 세계.
그 위에 살았던 피조물과 그들의 삶을 회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곳에서 얻는 상처는 실제란다. 우리는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처를 입으면, 고통과 흉터가 남지.”
“하, 하지만 그건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저들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들의 흉터를 어찌할 수는 없단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
이것은 절대적인 명제이자.
동시에 진리이다.
내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시도하고, 실험해 봐서 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구해도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아. 너희들이 교감을 나눈 이 땅 위의 사람들은 이미 멸망한 세계의 재생일 뿐.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그러면 진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죠? 산맥 너머의 작은 마을은요? 아이들은 또 어떻고요?!”
“그만, 진정해라.”
“!!!!”
이미 답을 뻔히 알면서 이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치로 소리 질렀다.
이에 대한 대답은.
멸망(滅亡).
이 한 단어로 충분한데 말이다.
“그, 그러면 어떡하지……? 나 저기서 아이들을 위해 달리는 부모를 봤어. 다리에 돌이 박혀도, 살이 찢어져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를 봤단 말이야.”
“이지야?! 조금만 진정해 봐. 비상식량으로 챙긴 초콜릿이라도 하나 먹을래?”
“그런 걸로 진정될 리가 업자나요! 예린! 서둘러 정신 안정 계열의 치유를!”
“아…… 응.”
단호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이지가 패닉에 빠졌다.
눈에 보이는 것과 현실의 간극에서 혼란에 빠진 모양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로 절규하는 표정의 이지에게 노유라가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줬다.
초콜릿은 열량이 높아서 비상식량으로 더할 나위 없고, 전투 중에 부족한 당을 채울 수 있는 식량이었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소년에게 썩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노유라보다 그 뒤에 나타난 성연화의 대처가 더 정확했다.
어눌한 한국어로 서예린을 불렀다.
그러자 창을 꼬나 쥔 서예린이 이지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촤르륵.
노란 신성력이 일렁이며 이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신성은 서예린이 구상하던 중급 치유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그 이상으로 완벽했다.
신성과 치유학의 만남이 서예린이 생각하던 것 이상의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빛을 뒤집어쓴 이지의 표정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이지는 바다에 빠지기라도 했는지.
대기 중의 산소를 죄다 빨아들일 기세로 거칠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주위로 다른 학생들이 둘러싸며 걱정했고.
“……아무리 영웅의 재목이라도, 경험 없는 아이들에게 너무 힘든 걸 요구하는 것일지도.”
나는 그 촌극을 유유히 구경했다.
먼 훗날의 영웅들.
그러나 시련과 역경을 겪지 않은 저들은 아카데미에 차고 넘치는 꼬맹이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전부 기절시키고 내가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게 저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면 하는 수밖에.
‘비록 깨어난 이후, 저 아이들에게 원망 받을지언정.’
지금은 이 세계에서 퇴장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만 학생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의무는 없기에.
조금 손을 쓰려던 순간.
뚜벅뚜벅.
단화가 발자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 움직임의 끝에는 황금빛 신성에 둘러싸인 채, 서로 멍하니 껴안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사벨.
그녀가 차가운 표정으로 아이들의 면면을 한 번씩 훑고 있었다.
“너희들 서둘러 도망치렴. 더 이상 이 빛은 너희들은 지켜주지 못할 테니까.”
빛을 다루는 마법사, 이사벨.
제아무리 내가 펼친 황금빛 신성의 방패일지라도.
그것을 구성하는 주된 매개가 빛이라면 그녀의 손바닥 안이다.
한눈에 마법의 구조를 파악하는 미친 짓은 못하지만.
그 마법이나 신비가 어떤 효과를 지녔고, 얼마나 유지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지이이잉.
그리고 그 말을 순식간에 증명하듯 빛의 방패는 허공에 녹아서 사라졌다. 거의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이것이 바로 빛을 추종하는 늑대들의 후예.
시리우스 가문의 장녀였다.
“가, 감사합니다 언니!”
“감사는 무슨. 인사는 너희들을 구해준 사람에게 하렴. 그래, 방금 그 황금빛 방패를 씌운 사람에게 하면 되겠네.”
후후.
차가운 얼굴의 그녀가 웃자 인형을 안고 있던 어린 소녀는 그 말을 따랐다.
평소에는 도도한 인형 같은 그녀가.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면 유독 시각적인 요소에 약한 아이들은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소녀는 나를 쳐다봤다.
그 뒤에 있는 아이들도.
차례대로 나를 쳐다보더니.
내게 고개를 숙이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 진짜야……?”
“설마 했는데. 우리한테는 그냥 가자고 한 주제에, 본인은 아이들을 구해준 거야? 이건 너무 치사하지 않나?”
세상에 이런 걸로 딴지를 걸다니.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눈치로 머리를 쓸었다.
놀랐다는 표정의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무시했으나.
건수를 잡았다는 이사벨의 표정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내가 말했다.
“이 조의 헤드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선생님의 역할이 지도자가 아니라, 감독관이시라면 말없이 따르시죠.”
조금의 타협도 없는 완강한 명령.
좋게 말하자면 단호한 리더의 자질을.
나쁘게 말하자면 타당하고 이상적이며 실속 있는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폭군의 기질을 과감하게 뽐내는 이사벨이었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
“좋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당신 정말이지?”
“우와 돼써요!!”
“대신, 사태가 급박해진다면 너희들의 팔다리 중 한 곳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이면 세계 밖으로 집어던져 주마.”
장난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진지한 어조.
진심으로 자신들의 선생님이 수틀리면 팔다리 정도는 부술 수 있다는 위인이라는 것을 상기한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냥 끄덕일 따름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너무 무른 판단이었다.
그때의 나는 깨달았어야 했다.
이 세계에서 도망치려고 했다면.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들을 밖으로 내던졌어야만 했다는 것을.
─────!!!!
바닥이 비명을 지른다.
쿠구구궁.
진동이 지하를 덮쳤다.
만일 지하 위가 뻥 뚫리지 않았다면 즉시 낙석으로 즉사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위력의 지진이었다.
‘아니, 이건 지진이 아니야. 그래 이게 있었지.’
─도련님, 이런 대규모의 지진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 이 정도 규모는 내가 나고 자란 열도에서도 흔하지 않았다고!
‘지진이 아니다. 그저 한 생물의 심장 박동일뿐이지.’
읽지 않은 소설.
희미하게 기억나는 대화의 파편.
기억이 날 듯 말 듯 애매한 간극 사이에 흐려진 퍼즐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드디어 기억이 나네.”
얼굴을 보니 떠오른다.
날카로운 뱀의 눈과 거대한 몸체는 흡사 이무기를 연상케 했다.
“3위계 마물.”
“뭐, 뭐라고요……?”
“아까 거대한 별빛이 지하에서 솟구치는 것도 그렇고, 오늘따라 신기한 구경 많이 하네.”
3위계, 경우와 조건만 맞아떨어진다면 대도시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괴물.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 전복에 준하는 피해도 입힐 수 있는 녀석이다.
검은 비늘의 몸체.
능히 자작의 모든 령(領)을 감싸고도 몸이 남는 거구의 뱀.
난 저 녀석을 알고 있었다.
“「요르문간드」.”
세계를 삼키는 뱀에서 착안한 이름.
그런데 놀랍게도 녀석은 자신에게 붙은 개체명(個體名) 동일한 습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탐식과 탈피, 수중 호흡, 맹독과 자기 포식.’
기괴한 능력은 전부 갖춘.
세계 각국의 온갖 해룡(海龍) 신화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신화 속의 바다뱀.
정체는 기껏해야 뱀에 불과하다만.
그 파괴력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다.
“미치겠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특성 「심검지로」는 강한 제약으로 묶여 있다.
설령 사용하더라도 체력과 마력을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요구하는, 최악의 연비를 자랑한다.
그런데 말이다.
방금 막 체력을 죄다 쥐어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어떤 결과는 개뿔.
망한 거지 뭐.
얘들 죄다 뒤지게 생겼네.
“이런 건 중후반부에나 나올 법한 녀석이거늘.”
죽은 자작이여.
추잡한 마인아.
도대체 너희들은 이 땅에서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