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61)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61화(161/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61화
어느 한 세계의 결말(1)
강렬한 심상이란 보통 그에 걸맞은 수준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자작은 그 조건을 충족했기에, 나는 그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심상을 엿보며 기감을 밝히고 오감을 넓혔기 때문일까.
평소라면 너무나도 미약한 의지라 눈에 보이지 않았을,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민들의 강렬한 최후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보니.
내 생각보다 정말 많이 죽었구나.
이미 죽은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전무해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래, 그저 안타까웠다.
그 이상의 감상은 품지 못했다.
* * *
강력한 북풍이 불고, 새벽이 찾아온 도심.
그곳에서 살짝 먼, 산맥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연신 두들겨 패는 소리가 퍼졌다.
이 세계에는 제대로 된 전등이 없어서 새벽의 어둠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상대에게 강력한 이점을 줄 뻔했지만.
밤하늘에 걸린 수천 개의 아름다운 별빛이 전등 못지않게 반짝거리며 지상을 밝혔다. 그 덕분에 도심에서 일어난 광기 어린 폭동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광경을 제대로 목격할 수 있었다.
“야,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한데?”
“그런데 이거 타격이 들어가긴 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비늘과 가죽은 부드럽게 무두질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거 말할 시간에 네 도끼로 두 번은 더 찍었겠다. 내가 꼬리의 움직임은 봉하고 있으니까. 서둘러 머리나 찍어.”
거대한 뱀의 몸이 산맥이 무너질 규모의 산사태에 휘말렸다.
그래도 몸이 아주 길고 단단한 덕분에 몸의 중심이 꽤나 깊게 파묻힌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아주 단단한 바위나 가공되지 않은 광물 따위가 녀석의 비늘과 가죽을 뚫고, 살에 파고들어 가 태산같이 느껴졌던 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학생들은.
“제발 좀 그만 죽어라!”
“이거 눈을 도려내면 안 되는 건가요? 각막이 제일 부드러울 것 가튼데요.”
이번에는 자신들만의 힘으로 요르문간드의 몸에 상처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노력은 어디까지나 노력에 불과했다.
놈의 단단한 가죽은 3위계라는 숫자에 걸맞게 그 어떠한 보검을 휘둘러도, 대량의 마력과 강력한 스킬로 무장해도 생채기에서 그쳤다.
그나마 유의미한 타격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검을 번개처럼 빠르게 내려치며 비늘과 가죽은 뚫었지만, 살과 근육은 베어내지 못한 성연화의 성명절기.
제 스승께 가르침 받은 창술에 신성력을 혼합하여 상성의 힘을 통해 겨우 살을 자르는 데 성공한 서예린의 창.
마지막으로 모든 색과 밝기를 잃은 검은빛으로 하여금, 요르문간드의 몸을 포박한 이사벨의 「근묵자흑」이 전부였다.
“야, 우리 이거 죽일 수는 있을까?”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무리겠지.”
“아, 혹시 조교님께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달라고 요청해 보는 건 어떨까?”
도끼를 비늘 틈에 쑤셔 박고.
그 위로 방패를 망치처럼 휘두르는 이지의 회의감 가득한 질문에 서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우리들만의 힘으로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3위계라는 격 높은 마물을 포박한 것도, 돌연 산사태라는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때마침 이 자리에 요르문간드를 포박할 수 있을 정도의 마법 실력을 갖춘 천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만으로는 화력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그 상황에서 백승우를 연모하는 노유라가 손을 들었다.
“너희들도 봤지. 사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조교님이 검을 휘두르던 모습 말이야.”
첫사랑의 달콤함에 매료된 그녀는 백승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은연중에 사람들의 마음을 훑어, 그가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들이 봤으면 스토킹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그런 그녀였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조교님은 강해. 너희들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주변에 가득한 흔적들로 유추할 수 있을 텐데?”
“……응.”
보통은 유추 못 한다.
아무리 눈 좋은 칠성 아카데미의 엘리트라고 하더라도.
흔적을 통해 상대의 정체나 실력 따위를 파악하는 것은 숙련된 레인저의 영역.
엘리트라고 만만히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여학생들은 히로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자격을 지닌 조연들. 타고는 재능과 검증된 실력은 이를 가능케 했다.
“그, 그게 가능한 거야?”
이지가 고개를 끄덕이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처럼 평범한 재능을 가진 학생은 도저히 작금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검을 휘두른 건 대충 알겠는데. 이 괴물을 죽일 정도의 실력이 있으시냐는 게 관건이잖아.”
“이써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 정도 의념을 다룬다면, 이렇게 포박된 상황에서 놈을 양단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다만─.”
─몸이 그토록 병신이 된 사실만 배제한다면 말이지.
차마 뒷말을 내뱉지 못한 이사벨은 떠올렸다.
피 칠갑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람이 없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이 가냘프게 끊기던 자신의 전 약혼자.
평소라면 분명 쌤통이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지만.
‘그런 모습의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순 없어.’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몰린 백승우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의 마음에서 싹튼 것은 만족감이나 후회와는 사뭇 다른.
공포.
그래,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를 잃는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 공포감의 발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그걸 생각했다가는 분명 아직도 자신의 가슴속에 맺힌 감정과 다시 한번 직시해야 됐다. 너무나도 아팠던 그 날.
지금까지도 생생한 그 날의 고통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그건 싫다.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아.
“……조장?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다들 네 말만 기다리고 있다고.”
“…….”
“조장! 야, 너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냐.”
“……별거 아니야. 그저 이번 일은 우리들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야.”
“이사벨, 미치셔써요?”
우리들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
이미 이면 세계를 공략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은 충족했다.
더 이상 학생들이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미치긴 왜 미쳐. 딱히 자존심 같은 그릇된 감정 때문에 내뱉은 말이 아니야.”
“그러면 왜 그런 말이 나왔어?”
“애당초 우리가 시작한 일이니까. 우리가 끝내는 것이 올바른 것이잖아.”
“아…….”
생각해 보면 그랬다.
이면 세계를 공략하기 위한 최소 조건, 진행률 50%.
이 세계의 올바른 결말을 향해, 다른 길로 잘못 들지 않고 직진을 향한 자들은 거기서 끝낼 수 있었다.
굳이 멸망까지 정해진 시나리오를 밟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반항했다.
그러면 안 됐는데.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내자고 했어. 이에 반항한 것은 우리였지.”
“하지만 플레이어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못 본 척하고 묵인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게 잘못된 일이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통솔하는 인솔자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일이 맞지.”
“!!!!”
“후우, 이걸 조장이라는 녀석이 자기가 지휘할 때에 비로소 깨닫게 되다니. 앞으로 그 녀석 앞에서 괜한 호기는 부리지 말아야겠어.”
한숨을 내쉰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놈의 움직임을 막은 이상, 자신들의 탈출은 언제든지 가능해졌다. 그저 창을 열고, [수락]을 누르기만 하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눈을 감고 평화로운 내 세상에서 눈을 뜰 수 있다.
최우수 성적도 확정받은 셈이니, 아무 걱정 말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괜한 영웅 심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이사벨 곁의 학생들 또한 재능 있는 플레이어 후보로서 평생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시민들의 구조와 평화에 일조한다는 교육이.
도리어 그들의 양심과 자책감을 옥죄었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이던 교수들과 조교들만 죽을 맛이었다.
“쟤네들은 이미 클리어할 수 있으면서 왜 저러는 거야? 안 와?!”
“딱 봐도 시민들 구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걸 누가 몰라?! 그런데 저것들은 진짜 시민도 아니고, 그냥 환상이잖아. 나 원 참, 이면 세계에 마인이 잠입했다는 소식만 전할 수 있다면 바로 돌아올 텐데.”
“이런 상황에서 감독으로 따라간 조교는 어떻게 된 걸세? 감독이라면 학생들이 반항하더라도, 강제로 귀환 조치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자네, 늙어서 그런가. 방금 못 봤나? 보디캠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기절하지 않았던가.”
“하아아…… 답답하군. 언뜻 봐도 3위계로 보이는 우위를 점한 것은 좋지만 저건 분명 일시적인 것일 게야.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내 살아생전 우리 칠성이 가진 힘이 이토록 무능하다는 것은 처음 느끼는군.”
이면 세계와 현실을 잇는 공간이 한차례 단절되며, 학생들의 교복에 내장된 안전장치에 이상이 생겨서 마음만 졸이는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답답했던 이사장은 거추장스러운 양복을 찢고, 직접 이면 세계에 행차하려고 했지만, 두 세계를 잇는 문이 그를 허용하지 않았다.
마인 두 명과 수배범 한 명이 침입한 탓에 출입 가능한 인원에 제한이 걸렸다.
평소라면 이런 제한 따위.
<마왕>의 마도로 어떻게든 해결했겠지만, 학생들과 마인이 저곳에 함께 있는 이상, 어떤 변수가 추가로 일어날지 미지수였다.
안전장치라도 있으면 모를까.
학생들의 안전과 목숨으로 도박을 걸 수는 없는 법.
결국 밖에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감독으로 따라간 사내를 믿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 사내가 망나니에 성격 파탄자로 유망한 탓에 큰 기대는 없었다.
교수들의 모든 기대는 유망주이자 시험 내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이사벨을 향했다.
한편 그사이, 대화의 주체가 된 백승우는.
“그래서 아이들은 산 제물로 삼자는 것인가?”
“예, 그 말씀대로입니다. 어차피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이 도시에서의 체류를 눈감고 계신 것 아니셨습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닐세. 돈이 많든 적든, 침대에서 자건 길바닥에서 자건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상 저들은 내 시민이니까.”
“오, 무척이나 도덕적인 분이셨던가요.”
“그런 ‘내’ 시민인 만큼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
“하하, 그러면 그렇죠.”
수백이 넘는 사람들의 끔찍한 죽음 끝에.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기현상의 흑막과 맞닿았다.
검은 로브의 성직자가 자작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붉은 머리의 마인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고 있었고.
입이 무겁고 자작의 충실한 종인 어느 한 집사는 가만히 선 채로 이 모든 음모를 듣고 있었다.
‘방금까지 억울하게 죽은 시민들의 심상을 보고 있었거늘. 이번에는 내가 저택을 무너뜨려 죽인 집사인가. 그나저나 이놈은 가해자는 아니되, 악독한 방관자로군. 죽이길 잘했어.’
결국 이 집사는 입을 닫았지만.
나만큼은 입을 가만히 놔두지 않으리라.
‘이놈이나 저놈이나 아무리 범법 행위를 행한다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금수라지만, 응당 합당한 처벌은 받아야지.’
심상의 편린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저 붉은 머리의 마인.
분명 내 반지 속 공간에 짐처럼 갇힌 년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괴물이다.
아직 마기의 흐름이나 통제라든지.
힘의 균형이 잡히진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충분히 짓밟고도 남을 실력자이다. 설령 이 세계 밖으로 빠져나가더라도, 업계를 통틀어 놈보다 강한 놈을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의 강자.
육안으로 드러나는 무력을 미루어볼 때.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두는 편이 좋겠군.’
놈들을 이 세계에서 마무리한다.
나보다 강하건.
나보다 지혜롭고, 모략에 능숙하든.
아무 상관 없다.
‘상대가 나보다 강할지언정, 죽이는 것에 국한해서 이 세상에 나를 따라올 자는 없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과 사람들을 죽여온 나다.
그들 중에는 나보다 강한 이들도 수두룩했고.
죽기 직전의 발악으로, 손을 잡고 내게 합공을 가하던 녀석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전부 죽이고.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