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6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67화(16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67화
작은 후일담(2)
내 오랜 친구 이브.
그녀를 쳐다보다가 치렁치렁한 백발이 내 시야를 가렸다.
노인의 것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은 내 것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빙의하기 전의 머리 색깔.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위화감이 남아 있었다.
‘왼팔이 멀쩡하다.’
심지어 몸도 건강하다.
전신에 새겨진 흉터의 양은 비슷하지만, 육체에서 느껴지는 활력이 이전과 감히 비교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이 초월적인 육체는 분명 검성의 것.
그렇다면─
“─이 공간이 내 본래의 육체를 구현했나. 의복도 마찬가지지만, 어째 내 성검만큼은 없군.”
“그건 내 의지로도 구현할 수 있는 기물이 아니니까?”
“그야, 그렇겠지. 그 검 한 자루에 투자한 비용만 전 세계 국방비 예산과 맞먹었다. 심지어 제작에 참여한 장인들이 전부 사망해, 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검이니까.”
“심지어 검성의 애병이라고?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개념도, 함부로 내 심상에 투영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성검은 심상에서도 구현하지 못하는 신비.
제아무리 이브라도 심상에서 마음대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너 말투가 생각보다 거슬리네.”
“내 말투? 음, 뭔가 이상한가?”
“…….”
아까부터 의문으로 끝내고 있는 문장.
이브가 나를 놀리려고 하는 게 아닌 이상,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텐데.
‘……당장은 떠오르는 게 없는데.’
말끝마다 의문형으로 끝낼 이유가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내가 대놓고 생각에 잠기자 이브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러자 생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던 내 의식이 그녀를 향했다.
‘여전히 예쁘긴 예쁘네.’
자수정처럼 반짝이는 눈.
하늘 위에서 내리는 첫눈과 같은 순백의 머리카락.
작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 이토록 아름다운 인형이 따로 없다고 감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이브는 예쁘다.
그러나 그게 그녀에게 반할 이유나, 친절하게 대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예쁜 것은 내 학생들도 충분히 예쁘다.
내가 그녀들의 미모를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예술품을 보는 것과 같은 감정. 이 마음이 사랑 같은 달콤쌉싸름한 감정으로 변할 일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내 마음은 여전히 스승님 한 분으로 꽉 차서.
남을 받아들일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얼굴을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무리 나라고 그렇게 진중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면 부끄럽다고?”
“지랄하지 마. 지금 네가 끼 부리는 거 모를…….”
……줄 알고?
그렇게 대답하려는 순간, 아주 강렬한 살기를 느꼈다.
그 살기의 주인은 이브였다.
‘어째서 이토록 대놓고 살기를…… 혹시 나한테 면박을 줄 셈인가?’
잘만 대화하다가 어째서 갑자기 면박을 주는 것일까.
지금 내가 말하려고 했던 문장 중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질문이라서 의문형으로 끝나는 것밖에 없는데.
아니, 그것 때문이 맞을지도.
“세상에 어떤 놈이 질문하지 말라고 친구한테 살기를 내뿜냐.”
“오, 금방 깨달았네?”
“눈치를 그렇게 대놓고 주면 싫어도 금세 알아차릴 수밖에 없지.”
내가 질문을 하지 못하게 살기를 내뿜고.
말을 항상 의문형으로 끝내는 것은 분명 이전에 얻었던 보상, ‘작가의 답글’이 분명했다.
“나는 분명히 텍스트로 이루어진 선문답이라도 할 줄 알았거늘.”
“왜? 나랑 직접 대면해서 불쾌해?”
“불쾌하기보다는 어이가 없다. 네 반응을 보아하니 답글은 일회성이 분명하지만, 네 쪽에서 질문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니.”
“그게 조항인 걸 어떡해. 너와의 자리를 마련하느라, 조항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걸?”
“……세상에.”
그토록 허술한 조건이 있다고?
깜짝 놀라는 그때.
이거 설마 함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건이 지나치게 허술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도출할 수 있는 빈틈은 대게 허점인 법.’
상대는 분명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녀석이리라.
그렇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측의 정보를 공공연하게 들어내는 것?
아마 시스템은 지금 이 대화를 염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어쩌면 진짜로 나와 이브가 꼼수를 부려서 편안하게 대화하는 걸…… 원했을 가능성은 없겠지.
‘뭘 원하든 잘 꼬았군.’
설령 상대에게 아무런 의도가 없었더라도.
지금 내가 이런 고민을 하도록 판을 만든 시점에서, 상대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대화에 신중을 기하게 되고.
이브와 원하는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이곳을 나오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
“너와 내가 여기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양측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어리석은 선택지 아닐까?”
“…….”
“너와 내가 중요한 대화만 쏙 빼놓고 얘기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대화만 제외한다는 것은 친목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상대에게 어떤 내용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꼴이 돼버리지.”
물론 이러한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의 가치를 낮추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정보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상대방에게 혼란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수가 상대에게 통할지 미지수인 시점에서 무가치한 선택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로군.”
“할 말 못 할 말, 하지 않아도 될 말, 중요한 말 전부 꺼내서 상대에게 혼선을 주자고?”
“나 아직 말 다 안 했다.”
“아, 미안 내가 먼저 선수 쳤구나?”
“미안은 개뿔. 내가 그걸 퍽이나 믿겠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과야 어찌 됐든 지금은 서로 대화할 것에 대해 탐색할 시간.
우선은 간단한 안부부터 물어보자.
나는 목을 풀고 슬며시 웃었다.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내 기억이 맞는다면 거진 두 달, 아니, 석 달 만이네.”
내 시간은 두 달 이상 흘렀어.
그쪽의 시간은 어때?
“글쎄, 우리가 만난 지 그렇게 오래됐던가? 왜 나는 당장 어제도 만난 것처럼 느껴지지?”
“!!!!”
당장 어제 만난 것처럼?
그 말인즉슨 그쪽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다는 뜻인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지만, 설마 이토록 차이가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두 달과 하루.
그 간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곳에서의 1년은 그쪽에서 일주일도 안 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래, 하루 즈음 지났던가.”
“응, 하루 정도일 거야. 확실치는 않겠지만? 그러면 이번에는 내 쪽에서 질문할게?”
음, 뭘 질문할까?
눈을 감으며 고민하던 그녀는 아! 하며 무언가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마법은 어때. 공부는 잘 돼가고 있어?”
“그럭저럭…… 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뭉뚱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매일 밤을 지새우며 공부한 덕에 지식은 충분히 축적했다.”
“경지는 어느 정도?”
“중급 마법은 진작에 완숙했다. 며칠 전 계기가 있어서 상급 마법의 술식에 손을 댔으니, 상급 마법사로서 완숙하는 것도 그리 먼일은 아니겠지.”
“성장 속도가 내 생각보다 빠르네. 그래 봤자 나보다는 느리지만. 여하튼 지금까지 내가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지?”
“그래, 당장 원소 마법도 [화염 마법] 한 갈래만 주야장천 파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더군. 새삼 모든 분야의 마법을 다룰 수 있던 네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순수하게 이브를 치켜세우자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이전의 나는 마법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가 살던 세계에서 마법이란 이브의 전유물.
그녀의 권능이자, 고유한 이능이었다.
마땅히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이브의 마법을 그다지 대단하다고 여긴 적은 많지 않지만, 직접 마법을 배워보니 그녀의 재능과 실력이 얼마나 드높은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심지어 나는 마도서를 매일 읽으며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반면.
이브는 마땅한 책과 반면교사조차 없었다.
혼자서 익히고,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서 연마한 끝에 그녀는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나와 함께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을 육성으로 내뱉으면 분명 나를 놀릴 게 분명하니,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궁금한 것은 많지만 차례로 풀어나가도록 하지.”
“어머, 이 자리는 네 의문들을 해소해 주는 자리가 아닌걸? 질문은 한 개만.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단순한 대화잖아.”
“……본분을 잊지 말라는 소리인가.”
“속뜻을 보통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경우가 있나?”
“우리 사이에 감출 게 뭐가 있다고.”
“그야 ‘우리’는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닌 걸 알잖아?”
그래, 혹시나 염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구태여 감추지 않기로 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가정이지만 말이다.
그러면 뭐 간단하게 회포도 풀었겠다.
이제부터 핵심적인 대화를 나눠볼까.
“난 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
“그래?”
“그렇지만 내가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개뿐. 그러니 나한테 질문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서 질문해 봐.”
나는 질문의 주도권을 이브에게 넘겼다.
아무 생각 없이 넘겨준 건 아니다.
이는 그녀가 중요시 여기는 의제를 구별하고, 과연 이브가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입장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그녀가 말꼬를 트며 보다 능동적인 대화를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나는 함부로 질문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니까.
“나한테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준다고? 너 오늘 어디 아파? 평소에는 주도권이 자신에게 없는 상황을 되게 싫어하는 주제에.”
“내 의도를 다 알면서 실실 웃는 낯으로 질문하지 마라. 짜증 난다.”
“그야 재미있잖아. 너는 안 그래?”
“재미없으니까 어서 시작하자. 이렇게 낭비할 시간 없다.”
이곳은 이브의 심상 속.
여기서 대화를 오래 한다고, 밖의 시간이 흐르는 일은 없겠지만, ‘낭비할 시간’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 결말을 보기 위해.
그녀는 나를 대신하는 총통의 대리로서.
우리는 서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아이 참, 너도 재미없는 성격이 됐단 말이지? 미성년자 시절에는 놀리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 적 얘기를 꺼내는 것이지.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있다면, 이번에도 내 쪽에서 시작한다.”
“알았어, 질문하면 되잖아.”
음…… 어떤 질문이 좋을까?
손으로 턱을 괴고 바닥에 앉은 이브.
이 순백의 세계가 그녀의 심상이라는 것을 증명이라고 하듯.
어느새 주변은 서류의 잉크 냄새와 정적이고 차분한 사무실로 변했다.
나와 이브가 종종 군국의 통치에 대한 토론과 사담을 나누던 장소.
호로록, 책상 위에 놓인 커피를 들이켠 그녀는 비로소 떠올랐다는 눈치로 나를 쳐다봤다. 이윽고 그녀의 입가가 재미있는 질문을 찾았다는 듯 올라갔다.
“너는 지금 네가 있는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진심으로 한 질문이 맞겠지, 아마.”
“응, 진심으로 물어본 건데?”
세상에나.
시작부터 대화의 소재가 핵심적이었다.
아무리 감추지 않기로 했지만, 이건 시작부터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