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7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73화(17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73화
정비(3)
거세게 타오르는 화염.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듯 하늘을 진홍빛으로 물들인 불꽃을 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불길은 적군과 아군을 동시에 화장한다.
적에게는 타오르는 공포를.
아군에게는 죽음을 달래는 따스한 불빛을 준다.
일련의 과정에서 아름답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불꽃의 주인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도 불꽃을 다루고 싶다고? 너는 이미 검을 다루고 있잖아.”
그녀를 떠올리면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
언제나 그녀를 위한 배경처럼 사방이 타오르는 광경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돌아가신 스승님을 추모하기 위해서? 취지는 좋지만, 너 내가 창안한 마법을 따라올 수는 있다고 생각해? 괜히 시간만 날릴 수도 있다.”
시간?
그래, 우리는 언제나 그게 부족했다.
힘은 충분해.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구하기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에는 언제나 굼떴다.
우리의 1분 1초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충분하기에, 어느새 너와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지.
결국 잠을 잘 필요가 없는 육체를 만들고, 정신을 갉아먹으면서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했어.
그랬음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지만.
“그러면 말이야. 차라리 내 소설에 넣어줄게.”
뭘 넣어준다는 걸까.
그녀가 취미 삼아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매일 같이 소설의 설정이나 전개에 대하여 내게 자문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소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퇴고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네 능력을 화염에 특화된 능력으로 해줄게. 화력은 어느 정도가 좋아? 어, 언니 정도의 화력은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그건 너무 밸런스 붕괴…… 그래 넣어줄게. 대신 페널티는 어쩔 수 없다?”
대가라.
뭐든 좋다.
비록 소설 속의 나일지라도.
이미 떠난 그녀와 같은 불꽃을 품을 수 있다면.
그런 식으로라도 스승님을 추모할 수 있다면 그 어떠한 대가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의 내게 화염이나 마법 따위를 다룰 시간이 없지만, 적어도 활자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내 이름을 따온 등장인물이 그녀와 같다면.
그 어떠한 대가라도 감내할 수 있었다.
달콤한 과실에는 인내가 따라오게 마련이니까.
“그래 알겠어. 그러면 네 페널티 이름은…… 태양절맥이라고 부를까? 언니가 걸렸던 병도 그거였잖아.”
태양절맥.
그것은 스승님이 앓던 병.
지금은 내가 앓는 병.
이 사실을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것은 내가 잊은 기억.
정확하게는 누군가가 내게서 가져간 기억이었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내 기억은 온전히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정신 방벽은 그다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니까.
분명 나머지 기억들도 차례로 찾을 수 있으리라.
이건 꿈.
꿈은 허망하여 일어남과 동시에 잊히게 마련이지만, 내 뇌리는 이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여인과의 공통점을 떠올리는 이 순간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강렬한 마음이 방아쇠가 되었을지 몰라도.
이 꿈의 끝을 전부 보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심해처럼 깊은 잠에서 부상했다.
* * *
아카데미는 대대적인 휴식에 들어갔다.
중간고사를 치른 1학년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간판에 달았지만, 다들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너희들 지난 5일 동안 교수님 본 적 있냐?”
“아니, 난 조교님들도 못 봤는데. 다들 쉰다고 했으니까, 부지 밖에 나간 거 아니야?”
“야, 너는 순진하게 그걸 믿냐? 당연히 다들 안에 있겠지. 분명 다들 사태 수습하려고 바쁠걸.”
머리 회전이 빠른 학생들은 대략적인 원인을 유추할 수 있었다.
마인.
시스템과의 연결을 끊고, 악마의 기운을 받아들인 천인공노한 족속들의 침입 때문이겠지.
“그래도 이번에는 마인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잖아. 습격당한 경비원도 벌써 치료했다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래, 민수 말이 맞아. 중요한 건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또 침입을 허락했다는 것이지.”
“지난번에도 그 난리가 났는데, 이번에는 학부모들이 어떤 난리를 칠지 궁금하네.”
“너희 부모님 반응은 어때?”
“응? 나 엄마 아빠 없는데.”
“……아.”
본의는 아니었지만, 남의 부모님을 욕보인 학생을 바닥에 엎드린 채 다른 친구들의 발길질을 받았다. 정작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눈치로 밟히는 친구를 바라본다.
평소와 다름이 없는 아카데미의 일상.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런 일상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다.
“어우 나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되지.”
“막 불침번 해야 될 것 가튼 기분이 드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당장에라도 도끼와 방패를 들고 사주 경계를 해야 될 것 같은 느낌 알지? 경각심 때문에 피부가 빳빳하게 당겨지는 감각 말이야.”
“아! 뭔지 알 것 가타요.”
“나도 뭔지 알 것 같아.”
“그렇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붕대로 온몸을 감은 학생들.
백승우와 함께 이면 세계에 들어갔던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입었던 교복을 벗고, 붕대 위로 사복을 입고 있었다.
격렬한 싸움에 교복이 반파된 것이 원인이었다.
자동 수복 마법이 탑재된 교복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파손된 면적이 큰 탓에 학생들은 사복을 입고 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카데미가 일주일이나 쉬는 덕분에 사복을 입어도 특별히 관심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그나저나 너 사복 예쁘다. 어디서 샀어?”
“후후, 이지도 알아보는군요. 이건 저희 가문에서 직접 만든 오시에요!”
“가문? 아, 그러고 보니 너희 집안도 중국에서 알아주는 무가였지. 옆에 쌤이 있어서 자주 까먹는단 말이지.”
“그건 어쩔 수 없죠. 아무리 저희 제천성가도 천호백가의 아성을 넘을 수는 업스니까요. 이사벨의 시리우스나 저희 고국의 주성은가라면 모르지만요.”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학생들.
이번 일주일 동안 학생들은 여타 또래 아이들처럼 스스럼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이지와 성연화가 대화를 나누면, 중간중간 아이시스가 한마디를 더한다.
그런 식으로 대화가 10분가량 지속될 즈음.
대화를 나누던 세 명의 학생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세 명이 전부가 아니다.
함께 조를 이루어 이면 세계라는 미지의 영역을 함께 헤쳐 나간 여섯 명이 전부 모였다.
“““…….”””
그러나 모이면 뭐하나.
절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데 말이다.
“그…… 얘들아?”
“…….”
“유, 유라야……?”
“왜 불러.”
아니, 왜 부르기는.
전혀 대화가 안 되니까 부르지.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본능이 말한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쉽지 않은 인생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최대한 완곡하게 물어봤다.
“아, 그 별건 아니고. 너 지금 뭐 해?”
“뉴스 보고 있어.”
“그…… 그렇구나.”
“미안한데, 지금 중요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어서 조금만 이따가 얘기하자.”
그로부터 20분이 지나도록 그녀의 눈은 핸드폰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조금은 개뿔.
하는 수 없이 이지는 그 옆의 서예린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예린아.”
“…….”
“예린아……?”
“…….”
“내, 내 말이 작은가?”
“그럴 리가 없어. 저건 그냥 무시하는 거야.”
“…….”
이쪽은 취급이 더 박했다.
반응조차 해주지 않자 침울해진 이지는 마지막 타깃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다만, 그녀는 이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반응했다.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한테도 같은 질문하려고?”
“……아직 입도 뻥긋하지 않았는데.”
“척하면 척이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함께 살아나온 전우에 대한 것도 모르면 시리우스의 차기 가주로서 자격이 부족하지.”
“어라 분명 예전에 본 뉴스에서는 네 남동생이 작위를 계승한다고 보도하지 않았던가.”
“내 의견에 토를 달지 마. 외부인이 우리 가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안다고.”
아, 그래.
이지는 신랄한 태도에 뭐라 답을 하지도 못했다.
그 모습에 문득 장난을 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그녀에게 한때 가족이 ‘될 뻔했던’ 승우 쌤에 대해 묻는다면 분명─
‘─뺨 맞겠지. 쌤은 정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쟤는 아직 애증을 느끼는 것 같으니까.’
말하지 말자.
그게 오래 사는 길이니까.
답답한 속을 식히기 위해 이지는 손아귀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쪼옥 빨아들였다.
이윽고 그녀들을 곁눈질했다.
이지는 핸드폰에 몰두하고 있는 세 명이 모두 뉴스를, 그것도 백승우가 나오는 뉴스만 읽고 듣는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다.
세 소녀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걱정을 품고 있었다.
서예린은 스승이 곧 나을 것이라는 믿음과 동시에 이에 반하는 불안함을.
노유라는 풋풋한 첫사랑이 향하는 대상이 다쳤다는 사실에 슬픔을.
이사벨은 전 약혼자의 부상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품었다.
서로 그와 엮인 방식은 다를지언정.
승우를 걱정하는 마음을 똑같았다.
“너희들 이 뉴스 봤어?”
“……아니, 링크 좀 전달해 줘.”
“응, 바로 보냈어.”
“아 맞다, 이사벨. 너 혹시 천호 대학병원 옥상 VIP실에 대해 들어봤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다만 걱정하는 마음에 차이가 있다면.
이를 측정할 방법은 없지만, 다들 자신이 더 많이 걱정한다고 자부할 것이다. 본래라면 그렇겠지만.
“……거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천호백가의 직계 혹은 그에 준하는 귀인만 입원할 수 있어. 들어갈 수 있는 의사와 간호사는 병원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뿐. 심지어 병문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1, 2촌 내의 가족만 가능해.”
“거짓말.”
애석하게도 지금 이 자리에는 타인의 표면 심리를 파악하고, 원한다면 더 깊은 심층까지 파고들 수 있는 능력자가 있었다.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야.”
“너는 들어갈 수 있잖아.”
“방금 내 말 들었어? 병문안은 형제자매와 부모밖에 못 한다니까. 천호백가의 장로들조차 못 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약혼.”
“…….”
“비록 ‘전’ 약혼자이지만…… 몸이 멀어졌다고, 마음까지 멀어지지는 아니잖아. 만일 그 점을 어필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들어갈 수 있지.”
이론상으로 가능은…… 하다.
전 약혼자에 지금은 서로 경계하는 두 가문이지만, 부모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두 가문은 다른 구천세가에서 경계할 정도로 긴밀한 친분을 맺고 있었으니까.
이사벨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병문안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얘기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사벨의 가슴속에 묻힌 응어리가 고했다.
그러지 마.
이미 헤어진 관계고, 서로 싫어하는 관계 아니겠어.
굳이 병문안까지 갈 이유가 어디 있어?
점점 복잡해지는 얘기에 이사벨과 노유라는 서로를 쳐다봤다.
한 조의 조장과 척후 및 앞길의 안전을 파악하는 레인저 간의 대립. 이에 다른 여학생들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눈빛으로 둘을 쳐다봤다.
오직 이지만이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최근 들어 머리를 자주 잡는 기분이다.
이러다가 머리카락이 빠질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하, 쌤. 왜 나만 남겨두고 떠난 거야.”
여자들 사이에 낀 이지는 고통을 호소했다.
그 잘난 얼굴로 얘들을 꼬시는 건 둘째치고, 꼬셨으면 뒷감당은 본인이 해야지.
왜 하필이면 내가 사이에 껴서 고생해야 되는 걸까.
분명 옆구리에 서로 격돌하는 친구들을 중재하느라 손자국이 남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시리다.
“……아하.”
아이시스가 애들을 말리다가 특유의 차가운 손으로 내 몸을 밀쳤구나.
왜 시린지 알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린 감각은 하루가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