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7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74화(17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74화
정비(4)
빛이 비치지 않는 지하.
무언가 계략을 꾸미기에 최적의 장소에는 두 명의 사내가 정비를 하고 있었다.
붉은 머리에 검은 뿔이 달린 마인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갑주와 옷을 살피며 스스로를 정비했고.
검은 머리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우중충한 분위기의 사내는 작은 가방에 이것저것을 쑤셔 넣었다.
음식, 옷, 돈, 수백 종류의 신분증 그리고 썩지 않도록 마력으로 처리한 인간의 시체 등등. 잡다한 물건들을 전부 가방에 보관했다.
가방에 허용된 용적을 아득히 뛰어넘는 양.
본래라면 가방에 들어가지 않거나, 가방이 터져야 정상이지만.
공간 마법이 부여된 가방은 무엇이든 집어삼켰다.
“이 녀석아, 시체 냄새가 진동을 한다.”
흡족한 눈치로 자신의 갑옷을 두들기던 마인이 말했다.
검은 로브의 성직자, 시몬이 시체들을 가방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냄새가 그쪽에 풍긴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복장을 단정히 하고는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방부 처리는 했지만, 냄새는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러면 냄새를 밖으로 빼라.”
“하하, 죄송하지만 시체 썩는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가면 저와 당신 둘 다 죽을걸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군.”
“하하.”
“이상하게 웃지 마라.”
“……후후?”
“이 빌어먹을 가축 새끼가. 지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것이냐.”
살벌한 눈빛과 살기.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겁하다 못해 입에 거품을 물고, A급 이상의 플레이어일지라도 경계심을 품을 기세였으나 이를 태연하게 넘긴 시몬은 도리어 그의 얼굴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하하, 화내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렇게 기운을 발산하면 그들이 우리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답니다? 그러니 화를 내는 것보다는 이런 거라도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핸드폰.
요람에 매장되기 전에는 전자기기하고 부를 만한 것이 없던 시대였고, 붉은 머리의 마인은 그 시대의 산증인이었다.
그래서 이 작은 상자를 이용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적힌 글을 읽는 정도야.
[다들 영상 봤냐. ㄹㅇ개멋있더라] [화질 안 좋아서 눈 크게 뜨고 봤는데, 복근 머꼴이었음.]└[과연 화질 때문에 눈을 크게 떴을까?]
└[내가 보기에는 화면에 얼굴도 가져다 댔을 듯.]
└[누가 내 방에 CCTV 설치했어?]
└[척 보면 척이지. 그런데 님 여자였음? 다른 게시물에 싸지른 댓글 보면 남정네가 따로 없던데.]
└[ㅇ? 건실한 20대 중반 남자인데?]
└[……?]
└[차단했다, TLQKF놈아.]
……어렵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배열에 마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은 시몬이 말했다.
“이것 보세요. 여론의 반응이 뜨겁지 않나요?”
“하, 가축의 여론 따위 내 알 바인가. 그보다도 서둘러 그대가 말했던 거처로 간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더 이상 핸드폰을 보기 싫었던 사내와 시몬은 그날 밤 먼 곳을 향해 떠났다. 그 끝에는 수많은 마인들과 사방에 진동하는 마기로 가득했다.
그들이 바로 판데모니움.
세간을 어지럽게 하는 마인들의 집단이었으니.
그들의 위로는 4명의 간부들이 있었다.
괴력난신(怪力亂神).
괴이와 용력, 패란과 귀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현 판데모니움의 전신이었다. 소설로 분류하자면 1부와 2부로 완결되는 장편 소설 가운데 1부의 최종 보스 집단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여느 소설의 파워 인플레가 그러하듯.
마인들의 귀족 사회에 있어서 이들의 취급은 준남작이다.
철저한 힘의 논리로 귀족 간의 서열을 정하는 마인들.
<실낙원의 귀족들>의 이름은 세습되는 반면, 준남작의 작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다. 실상 허울뿐인 작위.
그렇기에 그런 준남작들 사이에.
콰득──!!
남작이 누군가의 머리를 터뜨리고 그 자리에 앉는다면 어떻게 될까.
붉은 머리의 마인은 그 질문에 몸소 대답했다.
“갈채하라. 나는 가치 없는 자, 사타나. 우매한 시민들이여, 허울뿐인 사내를 대신해서 내가 너희들의 「용력(勇力)」. 절대적인 힘의 기준이 돼 줄 터이니.”
아홉 가문을 제외하고는 신분제가 의미를 잃은 21세기.
바야흐로 새로운 군주의 탄생이었다.
* * *
깊은 잠에서 의식이 부상했다.
흐릿한 시야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새하얀 병실.
온몸의 감각이 심해의 압도적인 압력에 짓눌린 것처럼 무거웠으나, 죽은 듯이 시체처럼 가만히 있으니 점점 온몸의 감각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느껴진 감각은.
이놈의 빌어먹을 꼬리였다.
뭐야 왜 두 개가 늘어났지?
내 의식이 없는 사이에 격을 두 단계가 뛰어넘을 정도의 변태(變態)가 일어났다니.
내 의식이 또렷해도 힘들었을 텐데.
“……타마모, 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말투가 원래대로 돌아왔네.
“……뭐라고?”
말투가 갑자기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닐 텐데.
지금 내가 그녀를 부른 것은 타마모를 제외하고는 잠든 사이, 내게 이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채근하려고 했다.
─꼬리 얘기하기 전에 네 말투랑 표정의 차이를 봐봐. 내가 보기에는 그게 더 심각해 보이는데. 꼬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우선 네 표정을 먼저 살피는 게 어때?
“……좋다.”
이 화두를 나중에 꺼낸다고 꼬리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우선은 타마모의 말대로 해주기로 했다.
그녀의 말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스윽 스윽.
나는 얼굴을 더듬었다.
핸드폰 카메라를 활용하거나, 거울을 볼 생각은 못 했다.
깊은 잠에 빠진 적은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정신이 몽롱하다 못해 어지러웠다. 그렇게 얼굴을 만지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라……?”
─너 지금 표정 되게 무서운 거 알아?
안다.
보지는 않았지만 잔뜩 경직된 얼굴 근육은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표정과 함께 은은하게 방출되는 살기는 덤이었다.
“표정이 왜 이러지?”
─난들 알겠어?
냉소적으로 말하는 그녀의 태도.
평소라면 거슬렸을 법했으나, 정신이 혼미한 지금은 그녀의 말투보다 얼굴 근육이 더 중요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와 달리 잔뜩 긴장한 얼굴.
만지면 만질수록 어째서 이렇게까지 안면 근육이 긴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설정이 충돌했구나.’
이중인격, 보호 기제, 정신병 등등.
지금 내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여럿이 있으나, 나는 그것들 가운데 설정이라는 표현을 택했다.
나는 마모되고 망가진 정신을 감추고, 보다 효율적으로 의무에 임하고자 나약한 인간의 정신을 포기하고 철인의 가면을 택했다.
모두가 결점 없는 철인을 좋아했고.
철인은 보다 다양한 상황에 능률적으로 임하고자, 무수히 많은 가면들을 만들었다. 친절한 선생님, 냉철한 군주, 엄격한 검사를 비롯해 다양한 설정들은 이윽고 나를 구성하는 가장 큰 축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설정들이 충돌했다.
원인은.
“많아서 하나로 줄일 수는 없겠군.”
분명 내가 이 세계에서 쓴 가면은 미숙한 청년이었다.
그러다가 임시 교사라는 직업을 맡게 되며, 친절하고 재능 있는 선생님이라는 설정을 덧붙였다.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에 그만한 설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때까지는 괜찮았어.’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면 세계에 들어간 이후부터 지나치게 신경이 날카로워졌어.’
학생들의 안전뿐만 아니라, 훗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과민해졌다.
아마 여기서 멈췄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잔뜩 경직되어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과 상냥한 말투의 부조화가 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었다.
‘뿔 달린 년의 정신 공격. 하필이면 그 꿈같지도 않은 생생한 세계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견딘 것이 화근이었다.’
거기서부터 내 인격은 서서히 충돌하기 시작했다.
친절한 선생님은 어디에도 없고, 오직 사냥감을 도륙하기 위해서라면 제 몸을 혹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미치광이 검객이 나타났다.
당시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면.
분명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내 정신 건강에는 썩 옳지 못한 선택지였다.
‘그 후로는 생각할 것도 없군.’
원인이 뭔지 알았다.
그렇다면 이를 바탕으로 원인을 해결하면 그만이다.
실패할 걱정은 없었다.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기에.
“냉철함…….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손익을 따지고, 손익을 따질 상황을 만들기 이전에 손해를 보지 않을 성격. 모든 걸 오시하고 위에 올라설 오만함이 필요하다.”
아직도 멍한 정신을 붙잡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속으로 읊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움직였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수면에 취해서 그런가, 혼잣말과 속마음의 구분이 어려웠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남들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면 안 되겠다.
“……뭐 예나 지금이나 마땅한 친구가 없는 몸이라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지.”
내게 병문안을 와줄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주변 흔적을 살펴보니 의사나 간호사가 들어온 흔적도 없었다. 그나마 발자국이라고 한다면 여성의 것이 하나 있는데.
그마저도 하루 전에 끊겼다.
그래, 이게 내 인생이지.
이게 백승우지.
똑같이 생긴 외형. 설령 이 몸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가 있더라도 ‘내’ 삶은 언제나 외톨이처럼 고독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지금까지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이토록 사무치는 고독함을 느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토록 고독하고 괴로울수록 내 본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저히 병상에서 일어날 힘이 없던 나는 주술로 거울을 만들었다.
거울은 지금의 앙상한 내 몰골을 적나라하게 비추었고, 이윽고 창문 밖의 풍경을 내게 반사하여 보여줬다.
야경은 아름답다.
다만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을 미루어보아 지금은 적막한 새벽이었다.
‘거울에 비치는 싸늘한 풍경과 볼품없는 내 모습이 퍽이나 잘 어울리는군. 생사의 고비에 가까운 고통을 겪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감성적이네.’
나에게는 ‘나’라는 주체가 없었다.
잊어버린 것인지, 망가진 것인지 모른다.
나는 그저 매일매일 가면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거죽을 뒤집어쓴 채로 목표만을 향해 달려갈 따름이다.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
같은 유치한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라면 모르지만.
정처 없는 자아 찾기 여행은 내게 썩 유익한 짓이 아니다.
‘내가 자아를 찾으면 다른 의미로 미쳐 버리겠지.’
지금도 상당히 미친 편이지만, 이 이상 미치는 것은 방지해야 된다.
적어도 미칠 것이라면 유능한 쪽으로 미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다시금 새로운 나를 연기한다.
주술로 거울을 만든 나는 손가락으로 입가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내 얼굴이지만.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적인 얼굴이다.
후후, 거기에 눈웃음을 섞자 인간을 홀리는 요망한 여우가 보였다.
“좋네. 아주 좋아.”
─나는 부족했어. 그랬으니 왼팔을 잃었지. 앞으로 나는 암살, 학살, 유혹 등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말.
그때 내뱉은 말은 절대로 빈말이나 비유 따위가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수단과 이점을 활용해, 내 목에 얽힌 계율을, 나라는 존재의 근간이 되는 율법을, 이윽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목숨 구원할 터이니.
끝을 각오한 내게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