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7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78화(178/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78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픈 손가락 없다(3)
백승우가 아카데미를 나와 전에 탑승했던 여동생의 운전기사에게 연락을 하는 사이. 교무실에는 온갖 종이 뭉치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서류이기도 하고.
수많은 신비를 담은 마법서이기도 하다.
교수들은 지난 일주일간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을 연구나 개인적인 업무로 활용하는 이는 없었다.
“교수 대부분이 수련 및 대응 방안의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들 내심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머지 소수는 무엇을 하고 있지?”
교수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정보를 통제하던 이사장은 비서와 대화를 나눴다.
그녀가 건네준 서류에는 교수들이 행하고 있는 것들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일주일간 심음을 전폐하며 지독한 수련을 감행하는 교수.
거금을 들여 A급 스킬을 구입하는 교수.
싸움과 수련에 재능이 없어서 학부모들에게 연락을 돌려 그들을 진정시키고, 대책을 마련하는 교수.
각자의 방식대로.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그녀…… 아니, 그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됐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장본인이 온 것 같으니, 직접 물어보면 되는 일 아닌가? 문 앞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오지그래.”
“그러면 실례할게요, 이사장.”
후후, 웃는 표정이 매력적인 여인, 남화연.
그러나 그런 매력과 달리 죽은 듯 초점 없는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 수 없는 아득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아득함 따위 아무래도 좋은 이사장은 그녀에게 말했다.
“너 도대체 연구실 문도 잠그고, 일주일 동안 뭘 하고 지냈지?”
“내가 아카데미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당연히 연구뿐이지. 내가 연구 때문에 구태여 이 집단에 속했다는 건 잘 알고 있잖아요?”
반말과 존댓말을 자유자재로 섞는 이상한 말투.
오직 칠성 아카데미의 유수의 권력자이자, 모든 마법사들의 우상인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투였다.
“내가 그걸 물어본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도대체 일주일 동안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든 것인지 속 시원하게 말해보게.”
“딱히 대단한 건 아니랍니다. 그저 제자를 위한 의수를 설계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의수……?”
“예, 시중에서 판매하는 의수는 아무리 고가의 것이라도 반응 속도나 관절 가동에 명확한 한계가 있으니까요.”
남화연의 말에 이사장은 귀를 후볐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제자의 의수에 어울리는 설계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지?”
“그 말대로.”
“너…… 소식이 꽤 느리구나. 제자한테 연락 한 번 안 했어?”
“…….”
“백문이 불여일견. CCTV 영상을 한번 봐라.”
스윽.
이사장이 책상 위의 모니터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칠성 곳곳에 설치된 CCTV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영상들 가운데, 구석에 있던 영상이 크게 확대되며 정문이 보였다. 시간대는 불과 1시간 전.
지금쯤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사내의 등장에 고요했던 아카데미에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어머?”
“보이지. 왼팔이 제대로 붙어 있는 모습이.”
“완전히 살라 먹은 왼팔이 재생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으니, 분명 의수를 썼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평소 승우는 맨살의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손에 장갑을 착용하고, 양말도 발목을 완전히 가리는 것만 착용한다.
그나마 드러내는 살결은 얼굴이 분명해서, 저것이 의수인지 아니면 그 외의 것인지 알 방법이 마땅치는 않았지만.
“……스승이 선물을 준비했으면, 감사히 받을 준비나 할 것이지.”
“…….”
뭐든 간에 왼팔에 붙은 것을 뽑고, 자신의 설계한 의수를 꼭 붙이겠다는 삐뚤어진 열망이 눈에 선명했다.
이사장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눈을 감고 그를 위한 명복을 빌었다.
내심 마음 한편으로는 백승우가 서둘러 그녀의 의수를 착용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괜히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번지는 것은 싫었다.
* * *
스승이 그러는 한편, 제자는 아카데미를 나와 여동생의 운전기사가 모는 차량에 몸을 담았다.
운전기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이름이 아니면 모를까.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사내였다.
여담이지만 가문에 도착한 이후, 가문에서 먼저 나를 배려해 주는 일은 없었다.
하긴 팔 병신을 누가 대우해 주겠는가.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아주 긴 잠은 내게 ‘백승우’의 꿈을 보여줬다.
그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꿈의 밀도는. 그 속의 응어리진 감정은 무척이나 컸다.
이 몸의 원주인은 당장에라도 아홉 장로들을 죽이고 싶어했다.
그 배경에는 단순히 자신을 무시하고 끌어내리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꿈을 통해서도 알지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저들이 내 적이고.
마침 ‘백승우’의 소망을 이루기에 애로사항이 없었다.
‘적은 반드시 죽인다.’
나를 겁박한 어리석은 암살자는 독에 피부가 녹는 고통만 느끼게 해준 뒤, 자비를 베풀었지만 이를 똑같이 장로들에게도 베풀 정도로 내 아량이 넓지 못했다.
“비켜라.”
“그, 예……?”
“비키라고 했다. 너 따위가 감이 나와 함부로 발걸음을 같이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나? 동생의 운전기사에 불과한 녀석, 주제를 알아라.”
차량에서 내리고, 운전기사는 내 앞길을 가로막으며 천천히 걸었다.
말로는 에스코트를 한다는 것 같지만.
내 발목을 묶고, 권위 없는 가주가 가문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집안 널리 알리려는 속내를 모를 내가 아니었다.
순간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살기를 방출했고, 갑작스러운 감각에 몸이 굳은 그를 뒤로한 채 여유로이 저택을 거닐었다.
아름다운 화원과 조경.
웅장한 저택은 내 눈을 기쁘게 했지만, 정작 내 기분은 온종일 불쾌했다. 원인은 내 몸에 있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후유증과 통증에는 금세 적응했다.
다만 검은 붕대로 감싼 왼팔이 계속 내 신경을 건드렸다.
독서를 할 때도, 휴식을 취할 때도, 재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
시도 때도 가리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뜯어버리고 싶거늘.”
도저히 짜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성, 「허장성세」는 본인이 표출하기를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을 감춰준다. 그러나 짜증은 별개였다.
고통과 신음을 참는 것은 당연했지만, 짜증은 부정적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다.
오히려 오만함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에 가까운 성향.
그렇다고 이토록 짜증이 많은 사람이 되길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뭐 어쩌겠어. 그 빌어먹을 장로들만 생각하면 뇌리가 싸늘히 식는 것을.’
수개월 만에 취한 깊은 수면.
남들이 취한 수면의 총량과 비교하면 한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게 그 어떠한 순간보다도 큰 영향을 끼쳤다.
몸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나라는 인간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될지 고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케케묵은 기억과 원한을 떠올리고, 내가 이어받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꽃들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강렬했던 당시가 생생히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그건 그 순간을 결코 잊지 않으려는 것 같은 되새김질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 빌어먹을 왼팔이 무엇 때문에 돋아났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짐승의 핏줄.’
그것은 ‘백승우’를 새롭게 정의하는 말이기도 했다.
검은 왼팔을 통해 알게 된 정보였으나, 정보치고는 썩 유용하진 않았다. 오히려 고민만 깊어졌다.
‘어쩌면 백승우라는 인물의 근간을 흔들지도 모를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위험 분자인가.
혹은 회수되지 않은 맥거핀인가.
‘「짐승의 핏줄」. 이런 말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이브에게 머리를 만져졌다는 확언을 받은 시점부터 내 기억은 썩 믿을 만한 것이 아니게 됐다.
그러나 내 기억을 완전히 주무르는 것은 천하의 대마법사, 이브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격에 걸맞은 정신 방벽을 보유하게 마련이다.
흔히 말하는 정신력이나 끈기를 뜻한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 위치에 어울리는 수준을 유지해야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정신 방벽이 높다.
‘내가 이면 세계에서 만난 놈의 환상에 홀리지 않은 것도, 전부 내 영혼이 본래 갖춘, 갖춰야 할 격 덕분이었지.’
그런 내게 타인의 정신적인 개입은 통하지 않는다.
만일 상대가 엄청난 수준의 정신 계열 능력을 갖췄더라도.
내가 타인의 개입을 허락하더라도.
드높은 검성의 경지는 제 육신에 행해진 이상을 천천히 되돌리게 마련이니. 내가 떠올리는 모든 기억이 거짓되거나 조작됐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잊히거나 조작된 기억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내 기억을 온전하게 신뢰하기 어렵다.”
아직은 올바른 기억을 떠올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내 기억을 불신하며 살 순 없기에 이곳을 찾았다.
나를 배척하는 자들로 가득한 땅.
그리고 이브가 내게 준 선물이 안배된 곳.
과연 그 선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건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네.”
“저, 저요?!”
사람일 수도 있겠지.
“그래, 자네 말일세. 이리 와보게나”
저택 이곳저곳을 걷던 와중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순백의 머리카락과 여우의 귀와 꼬리.
고작 꼬리가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동족의 기운. 그렇다고 내 형제는 아닐 터.
전대 가주 부부는 삼 남매.
누이 둘과 백승우 한 명만을 낳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눈앞의 사내는 천호백가의 방계.
장로들 중 한 명의 아들이나 손자, 어쩌면유독피가짙은친척일가능성이높았다.
“거, 검은 꼬리?! 가, 가주님을 뵙습니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로군.”
“……예?”
사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그가 장로의 친척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상당한 권력을 자랑하는 그놈들의 손주라면 분명 사람들을 주렁주렁 대동하면서, 권력을 과시하고 다닐 것 같았다.
그리고 합리적인 추론 이상으로 그런 것 같다는 직감이 번뜩였다.
한편 자신의 얼굴을 안다는 말에 사내의 표정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마치 최후를 직감하는 병사와 같았다.
그 모습에 내 기억은 보다 선명해졌다.
“아, 가주님 그, 저는……!”
“27후방 부대. 물자의 보급과 9위계 이하의 저급 마물을 사냥하는 부대의 일병이 아닌가?”
기억에 있는 얼굴.
다만, 이 세계가 아닌 밖의 세계를 의미한다.
눈앞의 놈과 똑같은 얼굴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비록 녀석의 머리카락은 진한 갈색에 꼬리나 귀도 없었지만.
‘분명…… 은호라는 이름이었지.’
얼굴만큼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군주로서 나를 위해 죽어가는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그들의 묘를 만들어줘야만 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서 모든 군인들의 얼굴을 외운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어쩌면 그 끔찍한 전쟁에서 후방 부대일지라도 살아남은 군인이라서 더더욱 기억에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 어찌……. 존귀하신 분께서 저에 관한 것을…….”
“……?”
어라, 진짜였어?
모티브도 아니고, 설마 원본 그 자체라고?
그 순간 깨달았다.
녀석이 바로 이브의 선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