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8화(18/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8화
마법사 사냥꾼(3)
격한 움직임에 근육이 찢어졌다.
그 외에도 뼈가 상하고, 피부가 찢겨 나가는 등 피골이 상접했다.
하지만 그 빈틈을 마력이 메꿨다.
부족한 혈액을 보충하고, 찢겨 나간 근섬유를 대신에 근육을 붙들었다.
망가진 오른손의 뼈를 강제로 조립해, 창을 쥐게 했다.
하나 한계는 명확했다.
내가 익힌 창술이 아무리 고강하더라도, 학생보다 못한 신체 능력으로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유렌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다.
하여 마력과 술식으로 육체를 강화시키는 [신체 강화] 계열의 마법으로 부족한 근력을 보충했다.
상당한 후유증을 각오하고 [신체 강화]를 사용했지만, 그걸로도 부족했다. 꼬리가 늘어나며, 순간적으로 확장된 인지 능력은 부족한 부분을 즉시 판단.
반병신이 되는 것을 각오하고, 전성기 시절에나 사용하던 육체를 극한까지 강화하는 비술을 사용하고 나서야 드디어 유렌의 속도에 반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와 냄새가 풍겼다.
근원지는 내 오른손.
자염의 창 때문이었다.
보통의 화염은 「파이로키네시스」로 화력마저 조절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불꽃을 사용할 때는 최대한 화력을 낮췄다.
그런데 「여우불」은 도저히 통제가 안 된다.
고삐 풀린 야생마 같달까.
지금의 내 실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도리어 야생마의 안장마저 풀어줬다.
[‘여우불’이 장렬하게 타오릅니다.] [화마(火魔)가 사방을 뒤덮습니다!]저주를 잔뜩 머금은 불길이 타올랐다.
자염이 사방에 만연한 모습은 마치 지옥을 연상케 했다.
아니, 이곳은 이미 지옥 그 자체였다.
──히, 히에에에에엑!
──크으아아아아아!
──주, 죽여줘어어어어어!
불길 너머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 중에는 일루전 몽키나 사람의 말을 하는 것들도 있었다.
이것들은 전부 귀곡성(鬼哭聲).
하나같이 내가 죽인 마물들의 우는소리였다.
그들의 영혼은 죽어서도 ‘여우불’의 장작으로서 타오르고 있었다. 어찌 울지 않겠는가.
“하하, 이거 완전 사이코패스로군.”
저주의 근원을 깨달은 유렌이 말했다.
그도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죽은 영혼을 장작으로 피우는 불꽃이라니.
스산하거나 음침한 것을 넘어서 미친 짓이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생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저 유렌 또한 하나의 생물로서,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낄 뿐이다.
뭐, 저딴 스킬이 다 있을까.
“과연 구미호의 핏줄이라는 걸까…….”
예전에 용병 활동을 하면서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벽화를 몇 개를 본 적이 있다. 꼬리 여럿 달린 여우의 벽화.
언제나 벽화 맨 구석에는 검은 얼룩으로 더럽혀진 여우가 한 마리 그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시대의 흐름으로 생긴 얼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지금 그 얼룩이 떠오르는 걸까.
유렌은 떠오르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대처법을 강구했다.
일단 거리부터 벌리고 봐야겠다.
유렌의 시선이 승우의 육체를 향했다.
한계까지 혹사당하는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방대한 마력으로 어떻게든 움직이는 모양인데.
거리를 벌려, 최대한 시간을 끈다면 분명 기회가 올 것이다.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유렌. 그의 손아귀에는 저주 인형 다섯 개가 들려 있었다.
퍼버벙, 인형이 폭발하며, 유렌이 여섯 명으로 분열했다.
분신 같은 고위의 능력은 아니었다. 저주 인형의 힘이었다.
각각 사방으로 도망치는 유렌들. 매서운 불길이 그 뒤를 쫓지만, 분열된 숫자만큼 불길이 갈라졌다.
아홉 갈래가 전부 한 명을 추격하면 모를까.
두세 갈래씩 나누어져서는 턱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희번덕 떴다.
루비 같은 눈동자가 푸르게 일렁이며 자수정처럼 반짝였다.
[‘요마안(妖魔眼)’이 활짝 열립니다.] [귀기 어린 시선이 ‘마력의 흐름’과 ‘틈새’를 관찰합니다.] [사물의 ‘허실’을 구분합니다.]여섯 인형(人形)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섯은 허상. 그렇다면 본체는 나머지 하나일 텐데.
“……저주 인형이 여섯 개였나.”
손에 들렸던 인형의 숫자는 속임수였다.
그렇다면 본체는 어디에 숨은 거지.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뒤덮인 사방. 희미한 틈새가 보였다.
저주 인형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의 흔적.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함께 불기둥이 바닥으로부터 서서히 올라오며, 거대한 벽을 이뤘다.
쿠구궁, 기존의 방벽과는 마력의 질과 구조부터가 다른 방벽이 타오르며 유렌을 노렸다.
그가 서둘러 벽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이중나선」
또다시 바닥에서 올라오는 벽.
두 개의 벽은 서로 공명하며, 하나의 장벽을 이루었다.
“이제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을 거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우리는 이 장벽 안에 갇힌 셈이다.
이제 녀석은 구석에 몰린 쥐새끼…… 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원체 까다로운 녀석이다 보니, 승리를 함부로 장담할 수 없었다.
미래를 엿보는 눈, 다양한 아티팩트를 품은 보고, 용병 생활로 다져진 노련한 경험 등등.
고작 오른팔을 자르고, 총 한 자루 떨궜다고 그의 힘이 약해지진 않는다. 오히려 더더욱 조심해야 된다.
그와 같은 노련한 용병은 궁지에 물릴수록 강해지는 법이니까.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깨무는 법이다.
하물며 유렌은 어떻겠는가.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최대한 빨리, 속전속결로 끝낸다.’
허리를 숙이고 자세를 잡았다.
5년 만에 취하는 자세라서, 조금 어설프지만 이 상태에서 왼발을 내디뎠다. 땅바닥을 나지막이 고르는 진각.
땅바닥이 부서지며, 발자국만 남기는 위용은 없었다.
단순히 발을 앞으로 내디딜 뿐.
다만 그 행동만으로 유렌은 위압감을 느꼈다.
“……뭐지?”
순간 몸을 누른 위압감.
한순간이었지만, 그건 분명 마물의 피어(Fear)를 마주할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구미호의 핏줄은 저런 것도 가능한 건가.
의문은 많았지만, 고민할 틈이 없었다.
다시금 진각을 밟은 내가 총알처럼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의 움직임으로 왼쪽 무릎 연골이 나갔다.
마력으로 연골을 대체했지만, 이것도 찰나에 불과하다. 최대한 빨리 승부를 내야 한다.
타다닥, 고속으로 움직이며 보법을 밟은 나는 몸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손에 들린 창이 불꽃을 내뿜으며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반월을 그리며 밑에서 위로. 사타구니와 하복부를 노렸다.
유렌은 다리에 마력을 두르고 뒤로 피했다.
후우우웅, 창이 허공을 갈랐다. 창에 맞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한 가지 특이점이 있으니. 이 창은 냉병기가 아니라, 스킬과 마법으로 구현한 것이란 점이다.
화르르────!
창의 손잡이 부분이 늘어났다.
채찍처럼 길게 늘어지고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유렌의 발목을 묶었다.
좋아 이걸로 움직임은 봉쇄──!
──촤아악!!
자주색 불길을 가르는 붉은 기운. 유렌의 검기였다.
족쇄처럼 그의 발목을 묶은 잔불이 힘없이 허공에 흩날렸다.
그의 칼은 불길을 가르고는, 나를 향했다.
중단세(中段勢), 칼끝이 내 머리를 노렸다.
나는 창을 크게 휘둘러 검격을 막았다.
파즈즉, 검과 창이 맞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이 불꽃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마찰력만으로 피어난 불꽃이다.
“푸하하, 몸이 참 나약하구나.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지 그러냐!”
계속해서 맞부딪치는 검과 창.
내 비루한 신체 능력은 계속된 합격을 버티기 힘들었다.
한 번씩 무기를 부딪칠 때마다 몸 구석구석 망가지기 시작했다.
갈비뼈가 부러졌다. 혈액에 산소가 부족해서 손끝의 감각이 이상해진다. 손바닥은 ‘여우불’에 계속해서 타들어가고, 몸 곳곳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거의 죽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나는 손아귀에서 창을 놓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안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억누르며 때를 기다렸다.
내가 많고 많은 수단 중, 구태여 창을 잡고 직접 휘두르는 것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창을 길고 휘두르기 용이하다.
냉병기 중에서는 리치(Reach)가 제일 길다.
검을 막아내고, 튕겨내는 데에는 제격이란 소리다.
나는 방어적인 창술을 고집하며, 때를 노렸다.
계속된 합격에 지친 녀석이 큰 기술을 사용하는 순간.
그 순간에야말로, 내 노림수가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기술은 훌륭하지만 몸이 쓰레기군!”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유렌.
지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내 피부색은 불꽃의 색처럼 창백해졌다.
가뜩이나 「태양절맥」 때문에 산소도 부족한데, 거친 움직임과 산소를 먹어치우는 화염 때문에 점점 몸에 힘이 빠지고 있다.
그 사실을 놓칠 리 없는 유렌의 검.
순간 호흡이 턱, 끊기자 강력한 참격이 나를 노렸다.
검이 바람을 가르며 다가온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일 것 같은 공격.
나는 곧바로 다리를 움직였다.
푸욱, 살점을 파고 들어간 검.
차마 내뱉지 못한 신음이 입안을 맴돌았다. 힘겹게 눈을 뜨니, 놀란 표정의 유렌이 보였다.
하하, 하긴 이런 미친놈은 처음 보겠지.
복부 부근을 파고 들어간 검. 그가 노린 궤도에 있던 부위가 전혀 아니었다.
유렌이 노린 것은 내 목과 얼굴 부근.
그런데 내가 직접 복부를 가져다 대서 궤도를 비틀었다.
피가 흘러넘치고, 내장이 스치는 감각.
죽음이 가까워졌다.
나는 그 상태로 창을 휘둘렀다.
아니, 창은 너무 길었다. 하여 짧은 소검으로 형태를 바꿨다.
「파에로키네시스」
화르르, 형태 있는 불꽃이 짧은 소검으로 변했다.
상황을 파악한 유렌이 검으로 내 내장을 헤집으려 했지만.
콰드드득───!!!
왼쪽 어깨뼈를 통째로 찢고 도려내는 탓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육참골단(肉斬骨斷).
복부를 대가로 바친 쾌거였다.
아, 이젠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속수무책이네.
양손을 전부 잘려 버렸으니까 말이야.
양팔이 잘린 유렌과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나.
이 정도면 거의 용호상박이다.
그래서 마무리 지을 일격을 준비하는데─
──털썩.
유렌이 그대로 쓰러졌다.
난 그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분명 팔을 잘랐지, 다리를 자르지는 않았을 텐데.
툭툭, 발로 몇 번 건드려 보니 꼼짝도 못 한다.
전쟁터에서 시체를 많이 만져봐서 안다.
회광반조(回光返照)고 나발이고, 확실히 죽기 직전이다. 왼팔을 자르며, 환부에 저주를 쑤셔 박은 게 치명타였나 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왜 쓰러졌는지 깨달았다.
저주가 온몸 곳곳에 퍼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유렌은 경우가 달랐다.
「요마안」을 활짝 여니, 더욱 선명히 보였다.
아무래도 그에게 옮겨붙은 자염(紫焰)이 유렌에게 깃든 원념을 장작 삼아, 더 강력한 저주를 건 모양이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죽여왔으면, 체력이 낮은 나보다도 먼저 뻗을까.
“……아, 내 패배인가.”
흐릿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유렌.
떠오르는 여명이 그를 비추는 것 따위의 이벤트는 없었다.
여전히 밤은 어두웠고 깊었다. 사방에 타오르는 불길만이 그의 시야를 밝힐 뿐이었다.
“마, 마인이 돼서 따, 딸아이의…… 병을……!”
갑자기 멋대로 유언을 내뱉기 시작하는 유렌.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사연 있는 악역이라. 쓸데없는 부분에서 소설 속 세계답네.
“구음저, 절…… 치료해야 하는.”
“미안하지만, 거기까지 해라.”
나는 소검을 다시 창으로 바꿨다.
불길이 저주스럽게 타올랐다. 딸의 유언을 하는데 미안하지만, 난 들어줄 생각이 없거든.
심장을 노린 창.
푸욱, 창은 아무런 저항 없이 쉽게 박혔다.
“아아아…….”
“한 대 더 찌른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창을 한 번 더 조준했다.
갑자기 뇌만 가지고 부활한다는 소설적 클리셰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머리도 노렸다.
이번에도 저항 없이 박힌 창. 날 끝에 묻은 노란 뇌수는 금방 익어, 수증기가 되었다.
죄책감, 죄악감은 없었다.
단지 확인사살을 했을 뿐이다.
경비원들을 죽이고, 학생들을 노린 범죄자에게 유언할 기회를 주는 자비 따윈 내게 없다.
도리어 잠 좀 편히 잘 수 있겠다는, 상쾌함으로 가득했다.
아, 물론 이 꼬락서니로는 당분간 병원에서 입원해 있어야겠네.
“우윽……. 토할 것 같아…….”
나는 배에 난 상처를 불로 지졌다.
응급처치였다. 이거면 소독도 되고, 출혈 걱정도 없겠지.
나머지는 병원에서 의사한테 맡긴다.
응급처치를 마치자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내 의지와는 무관했다.
이런 데서 자면 감기 걸리는데.
인근의 보건실이나 대피소까지 가고 싶지만, 몸이 슬슬 한계다.
싸울 때야 어떻게든 버텼지만, 더 이상은 힘이 풀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한숨 자야겠다.
나는 몸을 움직였다.
땅바닥에 자는 것보다는 잔디 위에서 자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푸르른 잔디밭은 어디에도 없다.
전부 내가 새까맣다.
아, 맞다. 내가 전부 태워 먹었지.
하는 수 없이, 땅에서 누울 자리를 찾는 와중, 유렌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멍하니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별안간 시신에 잔재한 마력이 안구로 이동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요마안」을 활짝 열었다.
무채색의 세상. 푸른 마력이 눈에 모이며, 모종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한테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작업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부산물인가……?”
녹색으로 물든 유렌의 안구.
그곳에 생기는 없지만, 빛은 있었다.
익숙한 색채의 빛이었다.
그야 녀석이 「십리안」을 사용할 때 드러나던 색이었으니까.
순간 호기심이 들어, 유렌의 안구를 뽑았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나 망설임은 없었다.
나 죽이려던 놈에게 예의는 개뿔.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만져보니 좀 딱딱하다.
마물의 뿔이나 뼈처럼 가공해서 무기나 아이템으로 만들면 되는 건가.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려고 힘을 세게 줬다.
그러자 팍, 터지며 흩어진 유렌의 안구.
약해도 너무 약하다.
도대체 뭔가 싶었는데.
흩어진 안구의 파편들은 마력의 전하를 내뿜으며 저항하다가, 이내 고요히 몸 안으로 고스란히 흡수되었다.
[‘에너지 드레인’ 계열의 스킬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대상에게서 ‘십리안’을 흡수합니다.] [특성 ‘십리안’이, 스킬 ‘요마안’에 통합됩니다.]연속으로 떠오른 상태창.
나는 허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이렇게 쉽게 강해지는 건가.”
상대의 능력을 빼앗았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너무 간단해서 허무할 정도였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빼앗은 거지?
문득 상태창에 적힌 ‘에너지 드레인’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무슨 말인지 해석하려 했으나, 순간 시야가 암전됐다.
아, 졸려.
그게 생각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곧장 바닥에 쓰러졌다.
더 이상 육체가 버틸 수 없었다.
약간의 휴식이 필요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눈을 붙이고 싶었다.
아직 사태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주인공과 학생들을 노렸던 고위계 마물은 죽었고, 습격의 주동자를 잡았지만. 여전히 마물들은 아카데미를 활보하며 학생들을 위협하고 있다.
“……히, 히히.”
그럼에도 내 입에서 멍청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살았다. 살아남았다.
그 사실이 너무나 기쁘다.
그때, 저 멀리에서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일었다.
따스한 미풍이 함께 불었다. 포근함에 절로 눈이 감긴다.
아, 누군가가 싸우고 있나 보다.
그래, 뒤처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겠지.
그렇게 시야에 이어서, 의식까지 차례로 암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