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8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82화(18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82화
성악설(2)
대장간에서 돌아오니 어느새 밤이 됐다.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으니, 평소처럼 굶을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음식을 목구멍 너머로 흘려보냈다.
뭘 먹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음식의 맛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영양소와 소화할 수 있는 분량에 맞춰서 섭취했다.
“……배에 뭐가 찼다는 느낌은 언제나 익숙해지질 않아.”
식사로 인한 포만감.
그로 인해 굼떠진 듯 움직이기 힘들어진 몸.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후로는 이런 포만감과 노곤한 식곤증 때문에 밥을 섭취하기를 꺼렸다.
물론 그 외에도 살이 찌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식사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안 먹기도 했지만.
‘오래간만에 섭취하는 식사의 흔적과 그로 하여금 몸에 일어나는 작용들은 어색하기 그지없구나.’
사람이라면 응당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이들이 식사야말로 삶의 가장 큰 행복이자 삶의 낙이라고도 부른다.
“새삼 내가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지 느껴지네…….”
사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었다.
먹고 자고.
누구나가 이렇게 살아간다.
세상에 오직 나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몸이 크게 망가져, 마력을 순환시키는 것만으로 필요한 영양소나 에너지를 합성하지 못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다워졌다니.
‘……나치고는 감성적인 생각이네.’
민간인 이하의 신체 능력까지 격하 당한 시한부의 몸이라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새벽 감성이 이런 분야에 메마른 나를 채운 것인지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은 여기서 끝.
지금부터는 일을 해야 될 시간이었다.
“……정리할 것은 서둘러 정리하자.”
지금 내게 주어진 업무 시간은 평소보다 짧다.
몸을 크게 다쳐서 그런지.
침대에 누우면 금방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코까지 골지 않을까?
‘물론 품위 없게 코를 골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자도 피로를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지친 건 사실이지.’
눈꺼풀이 무겁다.
평소처럼 마력을 회전시켜, 대주천을 통해 피로감을 줄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금방 침대에 누워서 자야겠다.
“……집중력이 떨어졌나?”
그러나 초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침대에 금방 올라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피로에 물든 눈 아랫부분의 거무스름한 부분을 매만졌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 부근은 분명 진한 검은색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내 체모의 색깔처럼.
‘더 이상 어두워지지 않도록, 필수로 해야 되는 것들만 처리하고 자야겠어.’
처리해야 될 산더미 같은 서류들.
평소에도 골치가 아플 정도였지만.
이번 이면 세계 이후로 더더욱 증가했다.
이것들이 차라리 회사나 가문에 관련된 서류라면 좋았을 터.
지금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와 백은호가 내게 전달해 준 공책 한 권 분량의 정보들을 대조하고 분석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분석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인지도 파악해야 됐다. 타인의 기억에 의존해 작성한 공책을 무작정 믿을 수는 없는 노릇.
내 나름대로 검토 과정을 거치자 3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를 중요도와 우선해야 될 순서로 분류하자 정신이 슬슬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느껴본 적 없는 극도의 피로감과 수면 욕구.
침대와 베개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 오늘 정리할 부분만 따로 골라내서 처리해야지.’
가볍게 정보들을 분류했다.
우선적으로 처리할 정보는 산더미처럼 쌓인 양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충분히 많았다.
이를 축소하고 더 세세하게 분류한 끝에, 나는 드디어 이것까지만 하고 잘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선 첫 번째는 나.’
일단 나와 관련된 문제들을 차근차근 정리한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나’는 이 몸의 주인과 내 정신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망가진 육체와 피폐한 정신.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나인만큼 이 부분은 섬세하게 접근해야 됐다.
“생각보다 정리할 게 없구나.”
그런데 막상 이를 서류에 옮겨 적다 보니, 특별하게 중요한 것은 몇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해봐야 검은 붕대로 꽁꽁 감싼 왼팔 정도?
이는 뒤에서 따로 정리할 예정이기 때문에 구태여 길게 서술하지 않았다.
육체적인 고통에는 익숙했다.
정신적인 고통은 매일 겪어서 익숙해지지는 않더라도, 이 고통이 일상이라고 느껴질 만큼 살아왔다.
‘어쩌면 정리할 게 별로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몸에 지나치게 적응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다른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이에 대해 세세히 기록하고도 모자랄 판국.
그러나 나는 이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런 고통들은 아무래도 좋다.
내게는 뒤에 나올 화두들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나마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 몸 어딘가에서 관망하고 있을 녀석인데.”
이면 세계에서 정신이 몽롱해졌을 때.
나는 완전히 잠에 들진 않았다.
희미한 의식은 깨어 있었다.
이건 전쟁터에서 익힌 습관이라서 아무리 피곤하다고 쉽사리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희미한 의식의 틈으로.
내 눈에는 자연재해가 보였다.
그것은 내 통제하에 놓인 육체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본래의 ‘나’.
이렇게 표현하니까 이상하네.
여하튼 나는 놈이 어디에 혼백(魂魄)을 숨기고 있는지 모른다.
놈을 찾을 수 있는 마땅한 방법도 없기에.
이와 관련된 정보는 기재하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첫 번째는 서류 일곱 장으로 정리가 끝났다. 다음으로 두 번째 화두는 학업. 아카데미와 학생들 그리고 주인공에 관한 것.’
이것 또한 고민하고 정리해야 될 것이 산더미 같았다.
백은호가 내게 준 정보들.
그것들을 전부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취합하고 분석해야 될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은 두 명의 주인공 가운데, 진짜는 누구냐는 것이다.’
내 머릿속의 주인공은 카일 아이리스.
번개와 바람을 다루는 검사이자, 그리스를 다스리는 구천세가의 일원.
그릇이 큰 「대기만성」의 카일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사고를 통해 무지막지하게 성장할 것이다. 그의 큰 그릇에 내용물이 전부 채워지는 순간.
이 세계는 예정대로 구원을 받는 대신,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을 대가로 받겠지.
“……나로서는 차라리 후자가 진정한 주인공이었으면 좋겠어.”
백은호가 말해준 소설의 주인공.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여학생, 그것도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소녀였다.
‘레온하르트.’
사자의 수인.
야생과 사냥, 무력과 파괴의 화신과도 같은 그들은 독일의 패권을 쥐고 있으며 시리우스 가문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앙숙 그 자체이다.
“그녀가 주인공이라도 어느 정도의 희생은 어쩔 수 없지만, 피해 규모의 자릿수가 달라진다.”
이게 핵심이다.
소녀가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작품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둡지 않은 탓인지, 백은호의 설명에 따르면 추정 사망자는 약 수천만 명.
억 단위의 피해와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앞으로 칠성에서 움직일 때는 주인공이 둘 중 누구인지, 특정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밀어줘야 된다면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 유념해 둬야겠어.’
주인공에 관한 내용은 일단 이 정도로 충분하다.
아직 세계관의 중반부로 진입하지도 못한 시점.
관찰하고 정보를 차근차근 축적한 기회는 차고 넘쳤다.
나는 다음 화두를 살폈다.
‘어디 보자. 세 번째는… 동시에 처리하면 편하겠어.’
세 번째는.
본래 생각해 둔 네 번째와 함께 정리할 셈이다.
마침 정보의 정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인이 두 개의 화두 모두 동일 인물이었다.
“타마모.”
그녀를 불렀다.
병실에서 깨어난 이후, 왼팔을 확인한 순간 이후로부터 타마모에게 말을 건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이봐, 타마모 혹시 삐졌다면 얘기해다오.”
─……후후, 내가 삐진 것처럼 보이니?
“그러면 다행이네. 삐지지 않았다면 굳이 풀어줄 응어리도 없다는 뜻이니까.”
─하아, 그냥 삐졌다고 얘기할 걸 그랬나.
“이미 늦었다.”
처음으로 존재해서는 안 될 왼팔을 본 직후.
나는 평정을 잃었다.
그야 차마 사람의 손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검은, 칠흑을 품고 있던 왼팔에서 마기가 흐르고 있었다.
평정을 잃은 나는 내 곁에서 모든 걸 지켜봤을 타마모에게 팔이 이렇게 된 이유를 물었다.
열변을 토하듯.
사실상 화내다시피 물어봤다.
삐졌냐는 질문은 이것에 대한 언급이었다.
내 열변에 그녀가 답했으나.
당시에 내놓은 대답만으로는 내 의문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이것들을 필히 정리해야 될 화두로 놓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화두는 각각.
“네가 내게 아무런 상의 없이 돌발적인 짓을 행한 이유와 내 왼팔의 정체.”
그녀를 위한 것들이었다.
있는 힘껏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줬다.
바야흐로 꽤나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징조였다.
* * *
우선 세 번째.
내게 아무 말도 없이 이런 짓을 벌인 이유를 추궁했다.
내 격의 상승.
그것은 그녀가 함부로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자칫 타인이 잘못 개입하면 심마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 깨달음이고, 격의 상승이다.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그게 전부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정말로 그게 전부라니까. 당시의 너는 깨달음을 비롯한 정신적인 성장이 봇물 터지기 직전의 둑과 같았어. 어쩌면 그대로 깨달음을 놓칠지도 몰라. 그래서…… 네 성장에 개입했단다.
“그래서, 속내는?”
─어머,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 너라면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전부 진실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자기가 하는 말이 전부 진실이라.
그건 나도 인정한다.
그녀의 말투, 성대의 떨림과 눈빛.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그녀는 이런 시답지 않은 것으로 거짓을 입에 담을 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야 알맹이 없는 말만 하니까 그렇지.”
그녀의 말에는 가장 중요한 점이 빠졌다.
“너. 내가 이면 세계에서 변고를 당하면 어쩌려고 그랬지.”
─흐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내게 제대로 물어봐 줄래?
“……각 없었잖아.”
너무나도 작은 말에 묻힌 소리.
그러나 독순술을 통해 내가 한 말을 알아차린 그녀는 깜짝 놀란 눈치였다.
─뭐라고……?
말끝을 희미하게 흐리는 타마모.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내가 죽어도 아무런 상관없잖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네가 죽으면 반지에 묶인 영혼에 불과한 나는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을 견뎌야 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을 리가 없지.
“거짓말.”
이번에는 거짓말의 낌새가 느껴졌다.
말투, 표정, 호흡, 냄새, 움직임 따위로 느껴진다.
타마모의 속내는 한없이 평정에 가깝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읽기 쉬웠다. 고요한 강가 위에 일어나는 파문은 작은 돌멩이 때문이든 큰 돌멩이 때문이든 티가 나는 법.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작디작은 파문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