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8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83화(18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83화
성악설(3)
나는 타마모와 목숨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나와 삶을 공유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나를 비롯한 다른 사물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내가 죽으면 사물과 최소한의 상호작용도 못한다는 뜻이다.
“반지에 묶인 너는 내가 죽으면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너와 이런 식으로 대화가 가능한 나 같은 존재는 네 입장에서는 다시 만나기 힘들 텐데.”
1,000년 이상의 세월을 반지 속에서 보낸 타마모.
보통이라면 다시 반지 속에서 그런 허송세월을 보내기 싫을 터.
라고 그리 단정 짓고 있었다.
이건 내가 시간 낭비를 싫어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점을 살짝 바꿔봤다.
“내가 죽어도 너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내 시체를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도 아니면 1,000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또다시 견디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당장 떠오른 견해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내 시체를 활용한 방안이었다.
내 꼬리는 타마모의 혼령과 영적으로 엮여서, 꼬리의 성장은 그녀의 성장과 같았다. 실제로 오미호에 도달한 결과 타마모는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사물을 움켜쥘 수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주술의 양도 늘어난 눈치였다.
오미호가 이 정도 수준인데, 행여나 내가 구미호가 된다면.
그녀가 이 반지에서 완전히 해방될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내 성장을 촉구하는 것이지.
다른 가능성으로는 타마모가 시간의 흐름에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10년, 100년, 1,00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세월을 반지 속에서 새로운 계약자를 기다리는 데 사용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상대를 인간의 관점으로만 분석하려면 안 된다.
타마모는 구미호.
그와 동시에 열도 제일의 요괴 중 한 마리였다.
그녀는 죽기 전부터 이미 인간의 생명을 아득히 초월하는 길고 긴 삶을 살아왔다. 그녀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그저 정처 없이 흐르는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내 목숨에 굳이 연연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전부 가설에 불과하지만.’
가설.
이는 전부 틀릴 수 있고, 전부 맞을 수도 있다.
그렇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자.
후후,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함께 타마모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기특하다는 눈치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윽스윽.
손길을 따라서 내 머리카락이 같이 움직인다.
분명한 물리력을 가진 손.
더 이상 이게 어딜 봐서 귀신이란 말인가.
생령이 따로 없다.
─용케 알아차렸네.
“지금 기특하다고 쓰다듬어 주는 건가.”
─싫어? 그러면 안아줄까?
“마저 쓰다듬어라.”
사실 그녀가 내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의 관계는 무척이나 계산적이다.
내가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쥐여주면 된다. 단지 그뿐이다.
차라리 신뢰하는 척 배신하려는 놈들보다는 그녀가 훨씬 낫다.
“솔직히 나는 네가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나를 방해한다면 그건 못 참는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발버둥 치는 네가 보고 싶은 것이지,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 후후……. 그도 그럴 게 너처럼 정신 나가고 미친놈을 보기 드물잖아.
“요망하긴. 그래, 이 이야기는 이쯤 하도록 하지.”
네 행동이 내게 위협이 될지언정, 내게 그 위협을 타파할 근거가 충분하다면. 그리고 그 위협이 내게 큰 이득이 되어서 돌아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위험을 대가로 빠르게 강해진다.
그건, 애당초 나도 바라던 것이었다.
─그럼 다음 화두로 넘어가자. 어디 보자 그 왼팔에 관한 얘기 맞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닌데, 내가 알기로는 옛 주술의 잔재일걸.
“옛 주술? 네가 가르치는 것도 충분히 오래된 것인데.”
─내 주술은 시원의 주술. 최초로 만들어진 주술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체계로 정립된 것을 기준으로 최초란 뜻이지.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 애니미즘과 같은 원시 종교의 행사를 말하는 건가.”
그거라면 나도 짐작 가는 게 하나 있다.
검은 왼팔의 정체.
왼팔을 감싼 마기…… 를 닮은 기운의 정체에 관해서 말이다.
너무나도 닮아서 착각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죽여온 마물과 마인의 숫자가 몇이던가.
너무 많아서 셀 수조차 없었다.
그런 나이기에 확신할 수 있다.
이건 마기 따위가 아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팔에 흐르는 이것은 감히 마(魔)의 편린이라고 볼 수 없는 악의 상징.
죄종(罪宗)을 증명하는 낙인이다.
“아무래도 이 몸의 전생은 나라를 팔아먹은 모양이야.”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였다.
비루한 왼팔에 자라난 흔적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상의 죄악을 저지른 자에게 새길 만한 것이었다.
* * *
저택에서 백승우에 관한 서적들을 모으고 읽던 무렵.
가문에서 옛 동화가 하나를 발견했었다.
어찌나 낡은 동화인지, 읽는 내내 오래된 서책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화의 내용은 책을 이루는 재질만큼이나 오래됐다.
배경부터가 아주 오래된 고대였다.
사람이 번성하기 이전.
수많은 짐승들과 인종, 종족들이 아인(亞人)이라는 희소한 개체로 전락하기 전의 얘기였다.
최소 수천 년 전의 이야기.
그 배경의 중심에는 어느 한 부락이 있었다.
여우들이 다 같이 모여 사는 마을.
흰색, 회색, 갈색. 털의 구분 없이 모여 사는 여우들은 깨달음을 깨우치고 신통력을 익혔다.
태생적으로 신통력을 익혀서 신선에 가까워지기 힘든.
요(妖)와 마(魔)에 가까웠던 그들은 어떻게든 열 개의 꼬리를 지닌 하늘 여우에 도달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열 개의 꼬리를 이룬 여우가 탄생했다.
천호, 하늘 여우가 된 그는 하늘 그 너머로 승천했고.
그와 같은 경지를 일구고 싶던 여우들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체모 색깔을 따라 흰색 여우들만 따로 부락을 세웠다.
그가 사용하던 신통력을 대대로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천호를 추종하던 이들은 이내 거대한 가문을 이루었다.
천호백가의 탄생이었다.
가문이라는 이름의 긴밀한 집단으로 엮인 여우들은 천호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신선과도 같은 고고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악성을 버리고, 선성만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수련을 통해서 악성을 어떻게든 떨칠 수 있었지만.
태생적으로 탐욕을 비롯한 악성을 타고난 여우들이 선성만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천호가 탄생한 전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고 표현하는 것이지.
실상은 불가능했다.
그러던 그때, 한 여우가 진리에 도달했다.
악성을 떨칠 수 없다면, 타인에게 전가하면 되는 게 아니겠냐고.
때마침 천호의 순백과는 거리가 먼 검은 털의 여우가 태어난 참이었다. 목표는 정해졌다.
여우들은 발상을 현실로 옮겼다.
그렇게 검은 여우는 태어난 순간부터 악이 되었다.
박해받는 검은 여우의 이야기로 동화는 끝났다.
동화에서 주고 싶은 교훈은 오직 하나뿐.
순백 우월주의.
세상에 무슨 인종 차별도 아니고, 체모의 색깔로 무슨 우열을 가리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화의 내용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오죽하면 이 동화의 배경으로부터 수천 년이 지났을 무렵에도, 배 아파 낳은 친부모조차 자식을 망설임 없이 버렸다.
다만 그들은 모르겠지.
그들이 자신들의 악성을 전가한 아이는.
욕망과 악으로 가득한 짐승이 되었다는 사실을.
‘백승우’라는 사내의 존재는.
성악(性惡)이라는 개념 그 자체였다.
* * *
“타마모, 너 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
─후후, 네 팔의 변화를 가장 먼저 본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그렇지.”
성악설이 따로 없다.
자신들과는 무관한 아이에게 악성을 넘기고, 선성을 바탕으로 구도를 쌓아 신선이 된다. 신산, 여우들에게 있어서는 천호(天狐)의 영역은 평생토록 바라 마지않던 이상.
그러나 정작 그들의 수장이어야 할 가주의 좌는 천호와는 무관한 검은 여우의 손아귀에 있다.
장로들이 왜 나를 싫어하는지 알겠다.
백승우가 여태까지 벌인 패악질보다.
가문의 전통이라는 것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치들은 몰랐겠지. 설마 자신들이 박해하던 아이가 말 그대로 짐승이 됐을 줄이야. 언젠가 자신들이 버리고자 했던 악성에 당하는 꼴이 기대되네.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격에 상승에 따라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를 뚫고 자라난 검은 팔.
인간의 신체라고 볼 수 없는 불길한 색채의 팔은 짐승의 것이다.
여우들의 악성을 먹고 자란.
진짜배기 짐승의 흔적.
“몇 번을 봐도 불쾌하군.”
불쾌하기 따로 없다.
타인의 악성이 이 몸에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감히 나라는 존재를 악으로 규정했다는 뜻이니까.
‘왼팔에 자라난 것은 내가 악이라는 증거.’
자르려고 해도 쉽게 잘리지 않는다.
설령 잘라도 금세 돋아난다.
아무리 상처를 새겨도 치유된다.
흉터 위에 상흔을 새기고, 그 위에 상처를 냈다. 그 과정을 몇 차례나 반복한 끝에 치유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왼팔에 각인된 죄악은 그 죄를 영원토록 자각하라는 것마냥 끝이 없었다.
그게 보기 싫어서 검은 붕대, 성해포(聖骸布)를 붕대처럼 왼팔 전체에 둘둘 감았지만.
‘결국 성스러운 천마저 검게 물들었지.’
이 모습을 순자가 봤으면 좋아했을 것이다.
그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증거가 바로 이 몸이지 않는가.
아마 오늘 온 문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이상 성장하는 것을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격이 성장하면서 텅 빈 왼팔에 이런 게 자라났다.
마기를 결벽적으로 싫어하는 내게 있어서, 마기 이상의 악취를 풍기는 왼팔의 존재는 고통 그 자체였다. 구미호가 되는 날에는 무슨 꼴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나를 구한 것이 바로 스승.
남화연의 문자였다.
문자에는 내일 자신의 기숙사로 오라는 말과 함께 수십 페이지 분량의 이미지가 동봉됐다.
보아하니 의수 설계도 같은데.
“!!!”
설계도를 본 순간 직감했다.
이건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작업이 아니다.
“아주 작정을 하셨네.”
더 큰 문제는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남화연 둘이서 할 수 없는 공정 과정도 많았다.
이 설계도에 적힌 술식과 세세한 사항들을 전부 의수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수준의 의수를 만들 수 있는 장인과 의수를 장착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세포와 시신경에 관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치유술사가 필요했다.
최소한 우리를 포함해서 4명.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이 필요할 수도 있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상지의지, 은의 팔]남화연이 쓴 설계도의 이름이었다.
상지의지(上肢義肢)는 의수를.
은의 팔은 신의 물건을 의미하니.
“본래라면 신화의 영역에 존재할 물건을 이론상으로 구현해서 나에게 맞게 재현한다. 자칫 잘못하면 타 죽을지도모르는데. 이놈의 스승도 상당히 미쳤어.”
어느 한 외팔이 신의 격을 격하시킨다.
어느 꼬리 달린 여인이 내게 했던 것과 다르게, 격을 인간이 착용 가능한 수준까지 떨어뜨린다.
‘사실 평범한 인간은 아니지.’
다섯 꼬리로 하여금 오행을 이룰 준비를 끝마친 여우.
오미호라는 격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물며 그것이 동족들로부터 박해되며, 원치 않는 죄악을 짊어진 짐승의 핏줄이라면.
그 순수한 격은 S급 이상.
마물과 비교하면 4위계에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재차 설명하지만, 4위계는 도시 하나를 가볍게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도시 단위의 병기가 신의 물건을 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