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9)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9화(19/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9화
마법사 사냥꾼(4)
오래된 기억이다.
아니, 그다지 오래된 기억도 아니려나.
불과 5년 전이니까.
20대 중반에게 5년이라면 정말 긴 시간 같지만, 막상 돌이켜 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다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라, 가끔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지만 말이다.
“중위, 여기 있었나?”
길 끝에서 들려온 노쇠한 목소리.
평소에는 곧잘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제대로 대답할 자신이.
“이봐 중위. 귀라도 다쳤나? 그렇다면 곧장 성모에게라도 가 보지 그러나.”
“……언제부터 제 계급이 중위였습니까?”
가시 돋은 말투.
가슴속에 맺힌 것이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노인은 늙은 몸을 이끌며 다가왔다.
“오늘부터라네. 정확하게는 40분 전에 진급했지.”
“그런 중요한 걸 당사자 없이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않나. 진급을 말해줄 사람이나 진행할 장소도 없는 것을.”
“……하.”
태연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그 사실에 마력이 사방에 퍼졌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마력이 노인을 에워쌌다.
날카로운 마력은 사물과 닿는 족족, 깔끔하게 잘라 버렸다.
폭격에 휘말려 반쯤 무너진 막사나 검게 그을린 나무를 두부 썰듯이 난도질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닿지 않았다.
끄드득, 이빨이 부서지도록 갈았다.
저 노쇠한 노인의 심장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간 지 오래임에도, 갈고 닦은 감각과 기술만큼은 이전과 여실했다.
저 능력만 있었다면, 전장에서 그들이 허무하게 죽었을 일은 없었을 텐데. 나는 노인의 뻔뻔한 태도가 불쾌했다.
“백 중위, 기세를 죽이게나. 나야 괜찮지만, 이 근처에 부상자들이 있으니 말이야. 대부분의 병사들은 자네의 기세를 감당할 수 없다네.”
“……뻔뻔하기 짝이 없군.”
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자신의 기세가 부상자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기세를 없앴다.
절대로 노인의 말에 따른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소신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당신이 언제부터 부하들의 안위를 신경 썼지? 언제나 자신의 장기 말로 취급하지 않았던가.”
“중위, 말이 험하군. 화가 났다는 것은 알겠지만, 상관에게는 경어를 사용하도록.”
노인의 가슴팍의 배지가 반짝였다.
배지에는 한 개의 별이 박혀 있었다.
군의 준장(准將)을 상징하는 심벌이었다.
중위과 준장 간의 계급 차는 까마득하다.
보통의 중위라면 함부로 눈도 못 마주친다만.
“……상관?”
내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계급 따위 알 바냐.
하루아침에 소위가 중위로 진급하는 세상이다.
제대로 된 임명식을 할 시간도 장소도, 하물며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그 장본인조차 진급에 대해서 방금 들었다. 이런 세상에서 계급 따위에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이봐 영감, 내가 하극상을 벌이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알아?”
“…….”
“그건 말이야. 아직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손가락을 들어 올려 노인을 가리켰다.
상도덕 없는 삿대질에 화가 날 법도 하다만, 노인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르르,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이 아니었다.
머리에 물바가지를 쏟은 것처럼,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당신보다 강해. 당신보다 실적도 많고. 그런 내가 당신 밑에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방금 전의 기세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 끈적하고 깊은 살기였다.
전장에서 단련된 노인의 본능이 소리쳤다.
당장 도망치라고. 살기 위해서 달리라고.
거대한 괴물과 마주치고, 마물의 군단과 조우했을 때도 이런 감각을 느낀 적은 없었다.
“첫째는 당신의 인맥 때문이었지.”
전쟁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백년전쟁보다는 짧지만,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연합했다.
마물을 상대하는 전선은 전 세계에 넓게 퍼져 있고. 그에 따라 물자 보급은 언제나 부족하다.
때문에 노인의 인맥에 기댔다.
준장의 인맥이라면 물자 보급이 지연될 일은 없으니까.
실제로도 그의 인맥 덕을 많이 보았다.
“두 번째는 당신의 경험과 지휘 능력을 믿었지.”
전쟁이 길어지고, 피해가 커질수록 인류는 국가의 구분과 국경의 필요성을 상실했다. 국가끼리 편 가르기 할 여유조차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군국이라는 이름 하에, 군 체계를 하나로 통합했다.
그편이 간편하고 확실했으니까.
그러한 거대한 군대에서 준장까지 올라간 노인.
그의 경험과 지휘 실력은 검증된 지 오래였다.
비록 세월이 그의 판단력을 흐리더라도, 지옥 같은 전장에서 단련된 경험은 철옹성처럼 굳셀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배신당했다.
“이제 당신에게 무엇이 남았지?”
준장의 인맥?
낡고 늙은 노인의 인맥은 대부분 그의 또래 지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천명(天命)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이들로 구성된, 그의 인맥은 낡은 동아줄과 다름없었다.
노인의 경험과 지휘 능력?
경험은 풍부할지 몰라도, 지휘 능력은 무능했다.
그의 전술은 과거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이, 전우들이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장렬히 전사한 것도 아니다.
개죽음이었다.
“그, 그건 내 잘못이…….”
“아니. 그건 당신의 잘못이야.”
마물이 골짜기 지형으로 이동한다는 첩보.
아끼는 측근이 전달했다는 이유로,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은 노인. 수천의 군인들을 골짜기 위로 이동시켰고, 그것이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찰나였다.
군인들이 대열을 정리하는 사이 갑작스레 골짜기가 무너졌다.
수많은 군인들이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거나, 암석에 휘말려 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무너진 골짜기 틈새에서 나타난 마물들.
알고 보니 노인의 측근은 인류를 배신한 마인이었다.
거짓 정보에 놀아난 것이다.
수천 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래도 기회는 있었다. 아직 무너진 골짜기 위에는 역전의 용사들이 수백 명이나 남아 있었으니까.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별동대를 이끌고 외곽 임무를 수행하던 나는 그들이 부디 시간을 충분히 끌기를 믿으며, 검 한 자루를 대동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오직 오래된 전법을 고수하느라, 남은 군인들마저 개죽음으로 몰고 가는 노인만 있었다. 그를 제외한 모든 군인들이 죽었다.
심지어 몇몇은 준장인 그를 살리겠다고 스스로 죽음을 불사했다.
“당신에게는 자격이 없어.”
스르릉,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새하얀 순백의 검이 노인의 미간을 노렸다.
마음 같아서는 낡은 전술로 가득 찬 이 머리를 꿰뚫고 싶었다.
하극상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이미 군인들의 신뢰는 노인이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 전적과 업적을 내세우면, 군국 상부조차 내 하극상을 묵인할 수밖에 없다.
멸망한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허울뿐인 지위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적이니까.
그의 실적과 업적은 빛바랜 지 오래.
지금은 나의 시대다.
스윽, 검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그러자 노인의 가슴팍의 배지나 훈장 따위가 잘렸다.
나는 검을 납도(納刀)하며 나지막이 고했다.
“우리 백검대는 지금부터 14지역의 전장을 벗어난다.”
“……어디로 가겠다는 거지?”
백검대(白劍隊).
그건 내가 이끄는 별동대의 명칭이었다.
백검대가 14지역을 벗어난다는 말은, 별동대의 행동반경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이는 앞으로 노인과 마주칠 일이 없다는 소리와 일맥상통한다. 보통의 부대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글쎄.”
나한테는 하등 상관없다.
고작해야 별동대라고 하나, 그 전적은 일개 대대를 아득히 상회한다.
군 당국조차 백검대의 움직임에는 불만을 표하지 못한다.
이 멸망해 가는 세상에서, 사사로운 불만은 무가치하니까.
다만 솔직히 14지역 말고 갈 만한 전장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14지역의 전장은 땅이 넓다. 다른 전장으로 이동하려면 못해도 2주는 잡아야 한다.
분명 고된 행군이 될 것이고.
마땅히 정한 곳도 없지만, 어디를 향할 것인지는 명확했다.
“죽으러 가야지.”
이 멸망한 세상에서, 최전선에 선다는 것은 죽겠다는 뜻이다.
뭐, 최전선에 서지 않더라도 죽긴 하지만. 내 휘하 부대만큼은 개죽음을 당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들의 죽음이 가치 있는 죽음이 되기를.
나는 통보를 마치고, 짐을 꾸려 백검대를 움직였다.
길은 험하고, 사방에서 덤비는 마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다른 부대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노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인은 전사(戰死).
예상했다시피, 마물의 군대에게 둘러싸여 시신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마물의 먹이가 됐겠지.
그다음 날, 나는 대위로 진급했다.
중위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의 초고속 진급.
원인은 장교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진급 통보는 임명식 없이 갑작스레 들었다.
참으로 개같은 세상이었다.
* * *
눈을 뜨자, 날이 밝은 것이 들어왔다.
오랜만의 수면. 그러나 개운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나는 엉덩이와 등에 묻은 흙먼지와 잿가루를 탈탈 털었다.
별생각 없이 툭툭 털었는데.
으윽,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진짜 뒤질 것 같네.”
뼈, 피부, 혈관, 관절 등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전신이 다짐육이 된 기분이다. 기절하기 직전까지는 그럭저럭 버틸만했는데, 교통사고 당한 다음 날에 아픈 것과 같은 원리인가.
그나저나 낮은 밝았는데, 여전히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밤새 소동이 일어났으면, 지금쯤 시끄러울 법도 한데.
시간이 얼마 안 지났나?
주머니를 뒤적였다.
시계를 확인해 보려는 의도였는데, 주머니에 넣어둔 물건이 죄다 망가졌다. 하긴 그런 난전을 벌였는데, 멀쩡한 게 있을 리 없지.
“내 몸부터가 멀쩡하지 않은데 말이야.”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는 과정도 시원치 않았다.
다리 관절이나 발목이 부러진 모양이다. 나는 그나마 움직이는 왼팔로 벽을 더듬더듬 짚으며 움직였다.
부들부들.
갓 태어난 새끼 사슴이 빙의라도 한 것 같은 걸음걸이.
신생아가 처음 걸음마를 뗄 때도, 이렇게까지 다리를 떨진 않을 거다.
움직이는 과정에서 상처가 계속 벌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휴대 전화는 없고, 지나가는 행인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119나 외부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했다.
“도대체 어떻게 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어젯밤 습격 사태가 일어났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고요한 것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람의 비명이나 마물의 울음소리, 구급차나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침을 밝히는 새소리마저.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내, 기분 탓이라고 넘기며 발걸음 속도를 높였다. 그만큼 전신이 뒤틀리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지금 고통이 대수가 아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보건실을 찾았다.
안에 사람은 없었다. 대신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들을 밖으로 가져간 흔적은 있었다.
‘전부 대피소에 들고 튀었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대피소까지 발걸음 옮겼다.
내가 지나온 길은 피로 얼룩졌지만, 그걸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이 큰길을 걸으며 사람 한 명 발견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대피소 외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눈을 부라렸다.
붉은 눈이 자수정처럼 물들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육안에 들어오는 인위적인 마력들의 움직임.
사람이었다.
“전부 대피소에 있었던 건가…….”
휴우, 다행이다.
나는 안도하며 대피소의 문을 두들겼다. 비상시, 대피소의 문은 외부에서 열 수 없다.
오직 내부에서만 열어줄 수 있다.
─누구세요?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긴장과 경계심으로 가득한 목소리.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고통 어린 신음을 억누르며, 최대한 사람 좋은 목소리를 냈다.
“남화연 교수님 휘하, 백승우 조교입니다. 문 좀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백승우 조교님이요? 잠시만요, 다른 조교분들께 확인받고 오겠습니다.
상대가 말을 마치자마자, 다급히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벽에 몸을 기댄 사이,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과 함께 대피소의 문이 열렸다.
“죄, 죄송해요. 제가 문을 너무 늦게 열진 않았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학생이셨군요.”
꽤나 어른스러운 목소리였기에, 다른 조교나 경비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상대방은 여학생이었다. 헤진 교복과 명찰의 색깔을 보아하니, 3학년인 모양이다.
내가 너무 교복과 명찰을 뚫어지게 쳐다봤나.
여학생은 내 시선을 느끼고는, 얼굴을 붉혔다.
“저, 그 시선이 너무…….”
“아, 죄송합니다. 설마 이 상황에서 3학년을 만날 줄은 몰라서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 것에 별다른 마음은 없었다.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칠성 아카데미의 최고 학년인 3학년.
그들은 교수들을 제외한, 아카데미 제일가는 강자들이다.
물론 유망주들이나 그렇지만.
3학년이면 어디 가서 무력으로 꿀릴 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녀라면 습격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지금 처음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내 시선을 느꼈는지, 여학생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가진바 힘이 약해서요. 어젯밤에도 다른 친구들의 서류를 대신 정리하고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척은 희미하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1학년도 이길 수 있을 법하다.
3학년이라고 무조건 강한 것도 아니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이상 아는 것도 실례일 것이기에,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혹시 1학년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실은 몇 시간 전에 학생 10명에게 대피소로 가라고 했거든요.”
“1학년은 저기 오른쪽에 교복 입고 있는 얘들 보이시죠. 뒤늦게 대피했다면, 앞쪽에 있을 거예요.”
나는 여학생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카일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여기까지 오니 카일의 상태가 궁금했다.
더 이상 그가 각성할 일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쯤 보고 가고 싶었다. 마지막에 했던 말도 사과하고 싶기도 하고.
‘너무 급해서 험한 말을 한 건 아닌가 싶단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2,0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몰려 있어 카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대신 저 멀리에서 서에린은 발견했다.
다리에 부목을 감싸고, 쥐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부상자들이 줄지어 쓰러져 있었다.
카일도 부상을 입었으니, 저기에 있으리라.
“어, 백승우 조교님?”
“……아, 그때 그 녀석이구나.”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길래 고개를 돌렸다. 찢어진 교복을 입고 있는 그는, 카일과 함께 구한 남학생이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혹시 벌써 작업이 끝났나요?!”
“……작업?”
무슨 뜻이지.
이 자리에 없는 경비원들이나 조교들이 남은 마물이라도 잡으러 간 걸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학생이 말했다.
“음? 모르셨어요? 두 시간 전에 조교님들이 대피소에 없는 얘들을 데리러 갔어요.”
“인근 길드에서 원조는 없었니?”
“아, 근처에 있는 A급, B급 길드는 이틀 전에 던전에 들어가서 자리를 비웠다고 하더라고요. 하필 왜 이런 타이밍에…….”
인근 길드가 하필이면, 이틀 전에 던전에 들어가다니.
역시 소설 속이라서 그런가. 잘 짜인 각본처럼 절묘한 타이밍의 연속이다.
……그런데 잠깐만.
대피소에 없는 얘들이라고?
덥석, 나는 남학생의 어깨를 붙잡고는 물었다.
“대피소에 없는 학생들이 있다고?”
남학생은 내 행동에 당황하고는, 입을 열었다.
“가, 갑자기 아카데미 외곽에서 핸드폰으로 구조 요청이 와서요. 위독한 부상자도 있다길래, 학생도 차출해서 찾으러 나섰어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얘가 도대체 뭐라고 한 거지.
‘갑자기’ 아카데미 ‘외곽’에서 구조 요청이 왔다고?
위독한 부상자가 있어서 ‘학생’도 차출했다고?
‘……잠깐만, 학생도 차출했다고?’
너무나도 작위적인 대본 같은 상황에 의문을 품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부정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름! 차출됐다는 학생의 이름이 뭐야?!”
“아, 그 조교님도 아실 거예요. 제 친구 중에 카일이라고 원래는 엄청 약한데, 갑자기 기세가 돌변해서는…….”
“이런, 제기랄!”
순식간에 대피소를 박차고 나왔다.
남학생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리에 느껴지는 통증이 고통스럽지만, 이까짓 고통에 발목이 묶일 순 없다. 내 발목을 잡는 것은 낮은 신체 능력으로 충분하다.
이 정도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자.
나는 곧바로 외곽 지역을 향해 달렸다.
아카데미 부지는 넓고, 그중 바깥에 가까운 외곽이 면적 상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도대체 이 넓은 외곽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찾지?
조교나 경비원들도 이 때문에 카일을 데리고 간 것이겠지.
“……전부 끝난 거 아니었나?”
모든 변수를 제거했다고 판단했다.
주인공의 친구들을 노리는 고위계 마물,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전부 내 손으로 죽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가뜩이나 혹사당한 몸을 더 혹사시키자, 순간 졸도할 뻔했다.
그럴 때마다 온몸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를 알람 삼아 깨어났다.
얼마나 달렸을까.
내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무슨 냄새가 났다.
“……!”
코를 스치는 철 비린내.
의심할 여지 없는 핏물과 시체의 냄새였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디 살아 있기를 바랐다. 나처럼 피를 잔뜩 흘려도 살아만 있기를.
그런 마음가짐으로 도착한 곳은 외딴 숲이었다.
저주받은 숲이라 불리며,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 지역. 조교인 나조차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바로 그곳에서, 후우우, 하고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지금 출입 금지 구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저주받은 숲으로 들어갔고.
“……이게 무슨?”
그대로 저주받았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숲에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그중 유독 큰 거목이 있었다.
구상나무나 전나무처럼 아름다운 상록 침엽수다. 연말에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하기 딱 좋은 나무처럼 생겼다.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가 지난 3월임에도 장식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었다.
누구의 창자일지 모를 것이 리본처럼 대롱대롱.
형형색색의 마력이 전구처럼 빛났다. 가슴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잔재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겨울의 눈을 대체하여, 내가 불태운 식물들의 잿가루가 소복이 쌓였다. 온갖 장기들이 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3월 말.
이른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너무 이른 크리스마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