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9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194화(19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194화
노예시장(4)
나는 정말 많은 생물들을 죽였다.
먹기 위해 수많은 야생 동물을 죽였고, 배신자를 처벌하기 위해 동족을 죽였으며, 마물이 눈에 보이는 족족 몰살했다.
시체로 산을 쌓았다.
그 비유는 절대로 허풍이 아니다.
정말로 산을 몇 번이나 쌓을 수 있을 만큼 죽여왔다.
그리고 그건 내가 대량 학살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력과 신비가 내재된 세상에서 검의 재능이란.
곧 높은 경지의 무인이 되는 것과 같은 뜻이니.
‘이기어검술이나 심검으로 많이들 죽였지.’
보통 도검을 떠올리면 1:1을 생각하기 십상인데.
경지를 밥 먹듯이 오른 자들에게 검은 만능의 수족이다.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그게 대량 학살을 위한 무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은 나와 달리 검이 필요하지 않았지.’
눈앞의 아이와 같은 눈을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의 색채는 물 빠진 무채색이 가까웠다.
그만큼 그녀의 감정은 결여되었다.
그러나 독이 비워졌다면 다른 게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녀는 재능을 타고났다.
살인, 그것도 나와 비견될 정도의 대량 학살에 가까운 재능을 말이다.
작은 동물을 죽여도, 동족인 사람을 죽여도, 이형의 괴물을 죽여도 놀라지 않는다.
뭐든 침착하게 목을 지그시 눌러서 죽인다.
‘잘만 다룬다면 영웅이, 삐끗하면 악당이 될 능력이었지.’
그녀는 위험했다.
하지만 당시 세상은 얼마나 위험한 소녀라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전쟁에 투입해야 할 정도로 급박했다.
당시 내 나이가 17살이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미친 세계긴 했다.
여하튼 그 소녀는 내가 거두었고.
내 인생 첫 제자이자 유일한 제자가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걸 전수했다.
마력을 다루는 요령.
지금까지 연구한 검술.
나이 든 1세대 선배들에게 억지로 배운 무술과 지식들까지.
‘처음으로 들인 제자라는 생각에 내가 알려줄 수 있는 모든 걸 알려줬지.’
배움이 늦어도 괜찮았다.
내가 제자로 들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녀석을 품어야 하는 의무를 짊어졌기에.
‘하지만 기특하게도 녀석은 내 가르침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꿋꿋하게 소화시켰지.’
과연 나처럼 대량 학살의 재능을 타고난 소녀였다.
다만, 그녀는 재능을 완전히 펼치지 못했다.
내 가르침이 부족했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좀 더 오랫동안 품에 품었어야 했다.
그녀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났어도, 내 제자인 이상 내가 언제까지 품었어야만 했다. 내 품을 떠나지 못하게 안아줘야 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게 헛되고 무의미하다.
“……아주 닮았어.”
그리고 지금.
그녀와 똑같은 눈빛을.
피에 물든 아이를 발견했다.
보면 볼수록 죽은 제자가 떠올라서 이성이 점점 멍해지지만.
나는 도저히 아이로부터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죽은 그 녀석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주님.”
“……그래, 알았다.”
기쁨.
그 이후에 느낀 것은 서늘한 감각이었다.
심호흡을 하자 기쁨과 그리움으로 도배된 이상이 냉철하게 식었다.
이건 냉철하게 접근해야 될 문제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너를 가두고 있는 그 빌어먹을 우리를 찢어주마.
스윽.
나는 왼팔을 들어 올렸다.
천과 옷으로 가려서 겉으로는 절대 의수로 보이지 않는 왼팔.
이 왼팔을 시험하기에 이만큼 최적인 장소가 지금 여기 있다.
“백율, 시체에 대한 내성은 충분한가?”
“……가주님. 비록 말단에 최후방에 속한 놈이었지만, 저도 그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몇 안 되는 행운아입니다.”
가진 힘도 강하지 않고.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느린 백은호였으나, 담이 작은 사내는 아니었다. 마물과의 오랜 전쟁터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동료들의 수많은 시체를 봐왔기에.
이건 실례가 되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괜한 말을 했군. 실언이었다. 머릿속에서 잊도록.”
“그것이 위대하신 분의 명령이시라면, 기꺼이.”
그렇다면.
“백율, 괘종을 띄워라.”
“네, 가주님.”
백은호가 짊어진 시계를 부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사람들이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시계.
로마 숫자로 각인된 시계 속 분침이 조금씩 돌아갔다.
“설마 저런 걸 2,000만 원에 구할 줄이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곳은 곱씹을수록 보물창고가 맞아.”
“어차피 판매하는 사람도 가치를 모르던 물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2,000만 원은 너무 비쌌다고 생각합니다.”
허공에 떠오른 시계의 정체는 바로.
장터에서 구한 괘종시계.
낡은 주제에 2,000만 원이 넘던 거대한 괘종시계는 스킬을 품고 있는 물건이었다. 모두가 스킬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백은호가 말하기를 조건이 여럿 필요하다고 했다.
첫 번째는 ‘시간’이라는 희소한 적성의 유무.
내가 화염을 비롯한 열과 관련된 마법에 특화된 것처럼, 나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반은 따라올 수 있는 적성이 필요하다.
다음은 마력을 품은 회중시계.
무조건 B급 이상의 내력을 품은 물건이되, 로마 숫자로 각인된 시계여야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나는 모르는 정보였지만.
백은호가 말하기를 괘종시계에 담긴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시계가 너무 낡은 탓에 온전히 다룰 수가 없어서, 회중시계로 그 내용물을 옮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마 그 뒤에 추가되는 말만 없었다면 회중시계는 내가 가졌겠지.’
낡은 괘종시계 속 능력을 회중시계로 옮기기 위한 매개가 바로 ‘시간’에 대한 희소한 적성이며, 백은호가 그 희소한 적성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적성의 수준은 낮지만,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는 됐다.
좋은 능력은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 이로운 법. 백은호 이상으로 다룰 자신이 없던 나는 편하게 포기했다.
“저 시계는 뭐지? 이벤트인가?”
“이런 불법 시장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경비!”
“누구냐! 누구인지 몰라도 연행하겠다.”
그 능력은 시간의 상대성을 극대화하는 능력이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는 것 같되, 각자에게 상대적으로 적용된다. 그런가 하면 같은 공간 내에서 시간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척이나 모호한 개념.
시간이란 인류가 설정한 개념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복잡한 관념이다. 그리고 「시간의 상반」은 이를 적극 활용한다.
[권능, 「시간의 상반(S)」이 일대의 시간에 상대성을 부여합니다.] [결코 나을 수 없는 상반(傷瘢)이 시간의 축을 뒤틉니다!] [가속의 적용 대상은 ‘백승우’와 ‘백은호’ 저속의 적용 대상은 ‘그 외 전부’입니다.]뚜드득─!
분침이 순식간에 뒤로 향한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시침도 눈에 띄게 움직였다.
그렇게 12시가 되자 우리를 제외하고 시장의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체감상 2배는 되려나?
그리고 이번에는 분침과 시침이 앞을 향한다.
한 바퀴 돈 시계가 12시를 가리키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방금 전의 2배. 합쳐서 4배는 느려졌다.
“느려진 게 아니지.”
“저들이 두 배 느려지고, 저희가 두 배 빨라진 거죠.”
시간의 상대성을 극대화하는 「시간의 상반」.
그것은 상반(相反)된 속도를 두 부류에게 부여한 권능의 일종이었다.
시간의 축을 고정하고 뒤틀도록 상반(傷瘢)을 남기는 것은 스킬로는 구현하기 쉽지 않은 능력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거의 정체된 수준에 도달하자.
나는 왼손을 뻗었다.
손바닥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시장 사람들을 향했고.
옷 속에 감춰진 의수.
그 겉에 새겨진 문장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의수에 마력을 불어넣음에 따라서 오감 문자가 반응하는 것이다.
오감 문자.
이 왼팔에 새겨진 것은 마법 문자의 일종으로.
수백 년 동안 그 원리와 의미를 전부 해독하지 못한 ‘태초의 룬’과 동급이라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대적인 배경을 토대로 동급이라고 취급하는 것이지.
그 위력과 효율은 태초의 룬에 비하면 한 등급 낮다고 볼 수 있었다.
하는 수 없다.
‘「오감 문자」는 내가 유일하게 온전히 다룰 수 있는 마법 문자.’
그렇다면 이 문자라도 최선을 다해서 익히는 수밖에.
오감 문자의 사용 방식은 크게 두 가지.
각각의 문자가 지닌 힘을 개별적으로 활용하거나, 조합하고 배열해서 보다 상위의 마법을 구현하는 방식.
나머지 하나는 알파벳을 토대로 번역하여, 문장이 품은 내용을 문자로 구현하는 방식. 이렇게 존재한다.
나는 오늘 둘 다 사용해 볼 생각이다.
‘차근차근 사용해 보자.’
아직 실전에서 사용한 적이 없어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하지만 괜찮다.
시간은 내 편이니까.
[의수, 「아케트라브」를 기동합니다!] [스킬, 「오감 문자」가 의수에 새겨진 문장들과 호응합니다.]왼팔이 조금씩 가열한다.
겉에 새긴 문장들이 푸르게 빛나는 것이 옷 밖으로 보일 정도로 반짝였다.
‘오감의 각 문자 별로 상응하는 의미와 수목, 알파벳이 존재한다.’
만일 이 문자들을 별개로 사용할 경우에는 이렇게 된다.
스르륵.
허공에 내 마력이 녹아들었다.
[우흐(Úath)]엿을 닮은 문자였다.
그것은 우흐, 산사나무라는 뜻이며 무서움을 의미한다.
사실 아니어도 상관없다.
마법이란 곧 의지.
오감 문자와 같은 마법 문자는 허공에 새기는 것으로 그 의지를 발현하기에 조금 틀렸더라도 내 의지대로 실행된다.
[「우흐」를 실행합니다.] [대상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공포심을 심어줍니다.]끼이이이익───!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
그 길고 시끄러운 소리에 기절하는 사람을 물론, 덜덜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미지를 향한 공포였다.
“잘 작동하네. 보아하니 A급 플레이어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고.”
“성공이군요.”
“아직 한 단계 남았다.”
문자를 해봤으니 단어도 써봐야지.
[페른(Fern)]뜻은 오리나무.
상응하는 알파벳. 즉 로마자는 ‘F’.
[리스(Luis)]허브와 마가목.
로마자 L로 번역할 수 있다.
이후로도 세 개의 문자를 허공에 그었다.
오감 문자는 나무를 바탕으로 자모 글자와 이런저런 체계를 합쳐서 탄생한 문자. 난생처음 접하는 언어 체계에 마법이라는 신비까지 녹아들었으니 한 문자 한 문자를 허공에 새기는데 고생을 했다.
하지만 이내 문자가 모여 단어를 이루었으니.
[ᚃ ᚂ ᚐ ᚋ ᚓ]번역하면 「플레임(Flame)」.
화염 마법 중에서 가장 기초를 다루는 마법과 같다.
비록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문자 하나만으로도 효능을 발휘했던 오감 문자가 단어를 이루었다.
설령 그것이 의미하는 게 기초 마법일지라도.
그 위력이 과연 기초와 같을까?
심히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화르르르륵!!!
그리고 기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거칠게 타오르는 화염은 단숨에 산불에 비교될 수준으로 타올랐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그들은 인지할 새도 없었다.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 그들은 천천히 흐르는 자신들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타올랐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재빨랐고,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길었다.
그날 시장은 불타올랐다.
죄인들은 화형당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은 가면 쓴 사내의 손을 잡은 채 사라졌다.
그 모든 것을 작은 수정구 속에서 작동하는 CCTV로 확인한 협회.
협회는 가면의 사내를 빌런으로 규정.
그 행적과 특징에 따라 특정하기 쉬운 이명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죄인들을 태워서 죽였으니 마녀사냥과 관련된 이명을 붙여주자는 의견과 그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도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기에 피리 부는 사나이나 하멜른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는 둥.
초범임에도 그 충격적인 행적 탓에 의견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기적적으로 심한 화상을 입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가 여우의 가면을 쓴 괴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붙은 이명은.
매구.
천년 묵은 여우이자 죄악의 요물.
그 이름을 받은 빌런은 성별과 체구도 구분할 수 없는 채로, 여우 가면이라는 유일한 특징과 함께 시작부터 A급 빌런이라는 파격적인 케이스로 수배되었다.
시작부터 A급인 빌런들은 대부분 하이랭커들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거물들이 되기 때문에.
세상은 매구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했다.
노예 시장에 대한 얘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협회가 관련된 이들을 모두 몰살한 다음, 여론을 은폐했다는 사실은 오직 그들만 아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