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0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03화(20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03화
마스커레이드(3)
나는 가면을 착용하고 집을 떠났다.
오는 길에 맛있는 걸 사가지고 오겠다며 에르제베트와 약속했다.
진짜로 딸이 생긴 기분이었다.
에르제베트는 내게 손수 가면을 씌워줬다.
그녀를 구출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가면을.
─가면은 그대로 써도 되겠어? 너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괜한 걱정이다.
나를 알아볼 사람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괜찮다. 아무도 날 못 알아볼 거야.”
─꽤나 자신만만하네.
“자신이 있으니까.”
A급 빌런, 매구.
놈은 업계에 돌연 혜성처럼 등장한 빌런이었다.
마인들에게는 작위, 플레이어들에게는 랭커와 하이랭커라는 상위의 경지가 있는 것과 다르게.
빌런의 강함과 위험도를 나타내는 등급이 S급이 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어떤 의미로는 플레이어들보다 어렵다.
실상 빌런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순수한 실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연 가면 쓴 이상한 놈이 A급 빌런이 됐다?
보통의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A급이 흔한 것도 아니고.
사건 하나로 A급이 된다니.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어렵다.
심지어 매구가 A급 빌런으로 지정된 이후, 이름 있는 기업에서 분식 회계가 일어난 탓에 매구에 대한 것은 뒷전이 되었다.
‘그것까지 고려하고 일을 벌인 것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할 정도로 안 알려지긴 했지.’
분식 회계는 원작에도 존재했던 내용.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기억한 덕분에 이슈를 이슈로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분식 회계에 대한 파장이 큰 탓에 매구의 이름과 얼굴이 지나치게 안 알려졌다.
이건 조금 예상외였다.
“……이제 다녀오는 거야?”
“그래, 너 혼자서 집 볼 수 있니?”
“……응.”
에르제베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게 씌워준 가면을 조물조물 만졌다.
내심 불안한 눈치였다.
15살이 혼자서 집을 못 보는 것도 이상하지만, 에르제베트가 자라온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못 볼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그녀의 친부모가 아니다.
스스로 양부를 자처하고는 있지만.
백은호의 말마따나 장로들의 눈치가 보여서, 아직 서류를 올리지는 않았다.
“너 잘 때까지 기다려 주고 나갈까?”
“……아니, 대신 꼭 돌아와 줘.”
“너…….”
“……약속, 해줄 수 있지?”
전쟁하러 나가는 것도 아니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그녀를 달래고는, 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으며 약속했다. 손가락 약속.
확실히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이 있었다.
나는 에르제베트를 뒤로하고 택시를 탔다.
꼬리는 마법으로 숨기거나 정장 속에 집어넣었다.
일부로 내 체구보다 큰 정장을 입은 덕분에 꼬리를 넣은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체구가 커져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커진 몸으로 초대장에 적힌 곳까지 왔다.
남해의 끝, 절벽.
그곳에 내리자 택시 기사는 내가 자살하려는 사람인 줄 알고 처음에는 기겁했으나, 나를 맞이하러 온 경비원들에 의해 멍한 표정으로 돌려보내졌다.
“과연, 이런 식으로 관리하고 있었군.”
경비원들은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외부인으로부터 남해의 광물과 자원으로 수호하는 듯한 모양새.
정작 하는 일은 정반대지만 말이다.
그들은 최가를 수호하는 사병.
아무래도 이곳은 내 생각보다 훨씬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경비원들의 에스코트를 받은 나는 거대한 저택과 맞닥뜨렸다.
입구에서 초대장을 검사받고 있는 여러 사람들.
그들은 전부 드레스나 정장을 입은 채로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쟤네들이 왜 여기에?’
─어머나 저 아이들도 여기에 왔네? 이거 일이 재미있어지는걸.
‘……이거 돌아버리겠군.’
참고로 입구에서부터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내 인맥이 좁지만, 백은호나 교수님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생각보다 좀 많네.’
내가 가르친 학생들부터 다른 반의 학생들.
그들 중에는 유망주도 여럿 있었다.
아마 졸업반인 3학년을 제외하고 1, 2학년의 유망주들은 대부분 오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해 보면 유망한 아이들에게는 좋은 기회일지도.’
높으신 분들이 으레 말씀하시는 사교의 장이라는 것들이 전부 그렇지만, 여기는 특히 뭔가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재력, 권력, 무력. 그리고 유망주들의 재능도 일종의 힘이었다.
‘그런 힘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 놓칠 수 있는 학생들이 몇이나 있을까.’
서예린이나 이사벨과 같은 높은 집 자제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곳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1학년들은 그 비중이 덜했지만.
2학년 유망주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끈을 만들려고 발에 부리나케 달리는 이들이 많았다.
여기서 만들어두는 인연은 향후 3학년이 됐을 때.
졸업반이라는 명목으로 외부 활동이 점점 많아질 때부터, 졸업 이후 거처를 정할 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겠지.
가면을 쓴 어른들 입장에서도 세계 5대 아카데미의 유망한 학생과 연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긍정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가차 없이 버려지겠지만, 원래 사회라는 게 그런 법 아니겠는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한다.
‘다행히 내 학생들은 대부분이 성공이 보장된 아이들이지만, 다들 여기에 왔네.’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
화려한 가면과 드레스로 몸을 가렸지만, 특유의 분위기마저 감추지는 못했다. 애당초 다섯 명이 붙어서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조라는 사실을 천하에 알리고 있는 꼴.
티가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다섯 명만 있지?’
그러나 딱 한 명.
유일한 남학생인 이지.
그 아이만 저 자리에 없었다.
* * *
승우가 입구에서 헤매는 사이.
저택은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가면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로의 신분과 정체를 숨긴 채, 오롯이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곳은 친분을 쌓기에는 최고의 장이었다.
하지만 아직 분위기는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다.
지금 시각 오후 9시.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지는 가면무도회의 일정을 생각하면 아직 몸을 푸는 단계에 불과하다. 요리로 따지면 아직 전채 요리인 셈이다.
적당하게 식욕을 돋우는 활력적인 맛.
지금의 활기찬 가면무도회를 나타내기에 적절한 표현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본격적이네.”
“저 이런 거 처음이에요! 방석훈 조교님께 감사해야겠어요!”
“그 사람한테 감사할 것 없어. 원래 전도유망한 학생들은 이런 사교 기회가 많거든. 우리가 학생의 신분으로 이면 세계를 공략하는 데 일조했으니 당연한 일이야.”
“맞는 말이야. 주위를 봐봐. 가면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익숙한 실루엣이 여럿 있잖아? 다들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일걸.”
이사벨을 비롯한 학생들은 무도회의 분위기를 살폈다.
생각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대체로 만족하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바로 입장 심사였다.
아무래도 사교 모임의 테마가 가면무도회인만큼 그들의 신분과 정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가면과 초대장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한 미친놈이 초대장을 위조해서 몰래 들어오려고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심사가 생각보다 까다로워졌다.
참고로 그녀들은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초대장의 여부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이 자리를 추천해 준 인물의 존재, 그리고 가면으로도 숨길 수 없는 분위기가 한몫 단단히 했다.
그런 그녀들을 방석훈 조교는 쉽게 찾아냈다.
“아! 너희들 왔구나. 가면을 쓰고 있어서 특유의 분위기는 도저히 가려지질 않네.”
“어머, 조교님.”
“안녕하세요.”
“너희들도 여기 오지 않을래?”
방석훈은 작은 유리잔에 담긴 술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인이 있었는데.
술이나 분위기를 음미하기는커녕, 그릇에 음식을 한가득 담은 채로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깨는 금발의 소녀에게 방석훈이 말했다.
“잘 먹네, 레오나. 연회 음식은 입맛에 맞던가?”
“!!!!”
레오나 레온하르트.
그녀는 사자의 심장을 가진 용맹한 황금 사자의 딸.
태양의 가호가 함께하는 그녀의 무력은 1학년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힌다.
다만, 쟁쟁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서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지만.
엄연한 황금 세대의 유망주였다.
동시에.
“네, 잘 맞더군요. 확실히 시리우스 그 천치 같은 가문에서 내오던 음식과는 질부터 다르더군요. 하긴 생각해 보면 그 악명 높은 영국 음식과 비교하는 것부터 실례일지도 모르겠군요.”
“너…… 방금 그 말 나한테 들으라고 했던 거지?”
“어머나 저는 딱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답니다. 다만, 저는 그저 영국 음식을 비판했을 뿐인데, 왜 당신이 그렇게 설레발을 치는지 모르겠네요.”
“아카데미 밖이라고 보는 눈이 없다 이거지……?”
시리우스의 영원한 숙적.
장녀인 이사벨과 마찬가지로 같은 장녀라서, 어린 시절부터 사사건건 부딪쳐 온 라이벌 관계였다.
백승우와는 다른 의미로 안 좋은 사이인 셈이다.
“후후, 그렇게 들릴 수도 있죠.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말이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게 누군데.”
둘은 서로 딱히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었다.
다만, 대를 거듭한 가문 간의 대립이 만나 보기도 전에 둘의 사이를 갈랐다.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두 소녀.
그것이 바로 시리우스와 레온하르트의 현주소였다.
‘차라리 오지 말걸 그랬나?’
이미 방석훈에게 들어서 레오나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이사벨이었으나. 새삼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자 참을 수 없는 적대감이 들었다.
이것은 시리우스 가문이 오랫동안 그녀에게 심은 감정.
케케묵은 가문의 원한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지를 꼭 데려올걸.’
지금 이사벨의 곁에는 4명의 친구가 있었다.
백승우가 가르치는 학생들 가운데 이지를 제외한 모두가 모였다.
처음에는 전원 다 같이 오려고 했으나, 이지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 빠졌다. 정말 아쉽게 됐다.
녀석이 있었다면 말다툼이라도 해서 레오나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백승우도 좋다.
놈은 싫지만 얼굴을 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아, 가면무도회라서 같이 와도 얼굴은 못 보는구나.
새삼 이지라는 분위기 메이커의 부재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사벨은 이지가 방석훈의 초대를 거절하던 그 날을 떠올렸다.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아, 미안. 나는 그날에도 아르바이트가 있거든.”
“다음 주 주말에도? 너 전에 경매장에도 그렇게 빠졌잖아.”
“하하, 미안해. 돈을 벌어야 해서 말이야.”
돈을 벌어야 된다.
장비를 맞추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콘서트에 참가하려는 것 따위로 보이진 않았다.
웃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구슬픈 그의 표정은 꽤나 애처로웠다.
더 이상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게 되자.
학생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만 긁적거렸다.
지뢰를 밟은 느낌.
다들 어려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게 어영부영 헤어진 학생들은 이윽고 무도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손님, 여기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샴페인입니다. 혹시 모를 분들을 배려해서 무알콜로 준비해 드렸습니다. 혹시 원하신다면 일반적인 샴페인으로 드릴까요?”
“너…… 이지? 이지 맞지?”
“죄송하지만 손님, 저는 너구리 가면입니다. 행여나 알코올이 들어 있는 샴페인을 원하신다면 종업원 복장을 입은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만.”
같은 팀의 조원이나 동급생, 친구가 아니라.
너구리 가면을 쓴 직원과 우아한 늑대의 탈을 쓴 고아한 아가씨.
어째서 이 자리에 없어야만 하는 사람이 직원으로 온 거지?
‘무언가가 이 저택에서 벌어지고 있어.’
이사벨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지난번 거대한 뱀과 마주하면서 느꼈던 감각과 엇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