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0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05화(20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05화
마스커레이드(5)
시간이 서서히 흘렀다.
어느새 시계는 11시를 가리켰다.
‘주최자는 아직도 보이질 않는군.’
11시가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실수로 술을 마신 학생은 처음 겪는 취기에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시종들의 손에 의해 어딘가로 이동했다. 보아하니 급하게 마련해 둔 소파에 잠시 눕힌 모양이다.
그와 비슷하지만 반대되는 예시로 술을 마시고 사자의 심장을 얻은 사내가 있었다. 아주 용감하고 무식했다.
가면을 쓴 여인들을 향해 구애하는 모습.
하나 남성에게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모습.
그 모습들은 처음에는 웃겼으나 이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쾌하게 느껴졌다.
결국 그 사내는 쫓겨났다.
경비원들의 손에 양어깨를 붙잡히고 끌려나가는 꼴은 퍽이나 웃겼다.
“설마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였나? 그런 낌새는 느끼지 못했는데.”
가면을 착용한 노인은 여럿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12시가 되도록, 하루종일 얼굴을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은 셈이다.
그것은 무도회를 연 주최자로서 개념과 품위가 없는 짓이었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무도회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거늘. 이 사람들을 무시한다고? 이렇게 방치하는 연회는 또 처음이로군.’
가면무도회의 아이덴티티는 가면에서 온다.
이 가면은 타인으로부터 나를 감추고,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황을 연출한다. 설령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가면을 착용하면 전혀 모르는 얼굴이기 때문에 이 무도회에서만큼은 처음 보는 인연이 되는 셈이다.
다만, 이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전부 모를 경우에만 성립한다.
“단체 손님이 여럿 있었지.”
최가는 그 부분에서 소홀했다.
단순히 가면을 쓰고 모두의 얼굴과 신분을 가리면 가면무도회가 된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그래, 일반적인 사교회라면 아무런 상관없지.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가면무도회를 연출하고 싶었다면.
그 부분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이 가면무도회는 실패했다고.
─다들 자기 일행하고만 대화를 나누거나, 방금 전까지 교류하던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고 있네.
‘그야 생판 남하고 대화하는 게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니까. 상대가 나보다 높으신 분일 수도 있는데, 괜한 결례가 생길 수도 있지. 그렇다 보니 이 자리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과 놀 수밖에.’
가면무도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가면을 착용한다고 모두의 신분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만약에 상대에게 무례를 저질렀다가, 상대방이 나보다 높으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설령 이 무도회에서는 모두가 평등할지언정.
이 시간이 끝난 이후에까지 평등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기왕 가면무도회를 열 것이라면, 모두가 서로를 모르는 상황을 조성했어야지. 사후 처리에도 힘을 쏟고.’
그래야지만 진정한 의미의 가면무도회가 성립된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끼익─!
중앙의 거대한 문이 활짝 열리면서 늙은 노호(老虎)와 젊고 강인한 맹호의 가면이 무도회장으로 들어왔다.
1시간 전부터 신규 손님은 입장하질 않았으니.
둘의 정체는 안 봐도 뻔했다.
드디어 주최자가 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잠시 일이 있었습니다.”
짧은 사과, 그 이후로 할 말이 없다는 눈치로 늙은 호랑이가 근처의 술잔을 들어 올렸다.
젊은 맹호가 이에 응했다.
같이 술잔을 위로 올렸다.
그 모습에 이 무도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각자의 잔을 들었다.
흥이 난 늙은 호랑이가 말했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마스커레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전채는 충분히 즐겼다.
이제는 제대로 된 정찬을 즐길 차례.
늙은 호랑이의 말에 젊은 호랑이가 시종들을 지휘했다.
무도회 중심에 있던 음식들과 테이블이 뒤로 빠지면서 거대한 중앙 광장이 드러났다.
자리가 자리이기에 바닥에 음식을 흘린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드러난 광장은 춤을 추기 위한 곳.
가면을 써서 서로를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신사와 숙녀들은 짝을 지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현란하게 규칙적인 춤사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채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봤다.
* * *
무도회의 춤이 2곡 정도 바뀔 즈음 누군가 내게 손길을 내밀었다.
유럽 특유의 우아한 곡선과 꽁지깃으로 장식한 가면의 여인.
등과 가슴이 파인 검은 드레스를 입고, 몸의 아름다운 곡선 역시 당당하게 드러낸 그녀가 말했다.
“신사님, 혹시 저와 춤을 추시겠어요?”
자신을 에스코트해 달라는 말이었다.
이곳이 내가 살던 지구였다면 체면을 위해서라도 한 번은 춤을 췄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나는 이상한 가면을 쓰고, 이상한 분위기를 내뿜는 놈이었다.
거절해도 상관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이런 무도회와는 영 연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최대한 공손하게 거절했다.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그녀 역시 내게 공손했기에 나도 공손하게 대했을 뿐이다.
쪽, 소리를 내며 그녀의 왼손에 입을 맞추는 시늉을 했다.
내 가면은 눈을 제외한 얼굴을 통째로 가리는 가면이었기 때문에 진짜로 입술을 닿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늉으로 대체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는지 여인은 쑥스러워하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가면을 착용한 다른 여인들이 있었는데, 꽤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내 알 바는 아니었기에 다시 신경을 무도회장으로 옮겼다.
춤을 추는 사람들, 그들을 지켜보는 손님들과 두 마리의 호랑이 가면.
이들을 차례로 지켜보자 어느새 호랑이가 셋으로 늘어났다.
‘새끼 호랑이? 아, 그러면 저 아이겠구나.’
어린 호랑이의 가면.
그 정체가 누군지는 명확했다.
“……최진철.”
최현덕의 아들, 최주석의 손자.
이 집안의 왕자님.
칠성 아카데미의 유망주들 중 한 명이자, 어린 호랑이의 가면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은유적으로 드러낸 최진철이 말했다.
“오늘처럼 좋을 날! 여러분들께 기념으로 제 컬렉션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하하하!”
“……제멋대로군.”
기존에 상의한 게 없었는지 시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늙은 호랑이와 젊은 호랑이의 가면을 쓴 둘도 언짢은 것이 가면 너머로 느껴졌다.
최진철 때문에 춤이 끊긴 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진철은 신난 말투로 말했다.
“어서 가져오도록! 사람들이 기다리잖아!”
시종들에게 화를 내고 겁박하는 모습.
그의 성향을 대략적으로 알 것 같았다.
안하무인(眼下無人)에 후안무치(厚顔無恥).
그는 방자하고 교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기고,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는 소년이었다. 저 소년의 세계에는 분명 자신만이 우뚝 서 있을 터.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드르륵─!
바퀴가 거칠게 돌아가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내 모두가 그 소리를 들을 즈음, 최진철이 즐겁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의 손아귀에는 시종들에 바닥의 바퀴로 밀고 온 거대한 유리 케이스가 있었다.
내용물은 천으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천 너머로 분명히 느껴졌다.
마력의 파동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을 갖춘 손님들의 눈이 최진철을 향했다.
“그러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진철은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 좋았는지, 한껏 크고 밝아진 목소리로 천을 거두었다. 사람들의 기대를 이용한 연설은 없었다.
저 유리 케이스 속 내용물을 공개하는데 아무런 정치적인 이득 없이.
오로지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감정만 역력하게 전달되었다.
어떤 의미로는 제 나이에 맞는 행동이었다.
어린아이같이 제멋대로인 행동.
정말 철부지 같았다.
“……미친.”
물론 거둔 천 너머로 드러나는 내용물은 그다지 철부지 같지는 않았다. 과연 재력으로 유명한 최가의 왕자님다운 물건이었다.
“저건 모피인가?”
“아니, 저건 늑대의 가죽이로군.”
“그런데 왜 검은색이지. 아, 피가 굳어서 검게 변한 건가?”
“자네 식견이 부족하군. 피는 가죽 밑에 새빨갛게 굳었다네. 가죽의 털이 검은 것은 순수하게 놈이 본래부터 검은 털의 늑대였다는 소리지.”
허물처럼 보이는 가죽.
언뜻 보이기에는 옷처럼 보이고, 관점에 따라서는 가죽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비나 옷에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금방 눈치챘다.
저 검은 허물은 가죽. 그것도 늑대의 가죽이라는 것을.
자세히 보니 털과 발톱의 흔적이 보였다.
“듣자 하니 늑대의 가죽은 맞는 것 같네.”
“얼마나 오래된 물건인지 모르겠군.”
“그러게 털이 괜히 까매졌겠어?”
“원래부터 검은색이었던 것 같다만.”
오래된 검은 늑대의 가죽.
외관상 허물로 보이는 가죽에 쓸모는 보이지 않았다.
가죽이 풍기는 마력은 대단하지만, 그 외의 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아니다.
만일 내게 「요마안」이 없었다면 나도 남들과 같았겠지.
‘유럽에 있을 물건이 설마 여기에 있을 줄이야. 지금 시점에는 여기에 있던 모양이군.’
─뭔지 알아?
‘자세히는 몰라. 내가 아는 것이라고 해봐야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해.’
아마 이 자리에 백은호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저 가죽에 대한 정보는 백은호에게 들은 정보에서 기인했다.
“용케 이걸 알아보는 분이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이건 늑대의 가죽입니다. 정확하게는, 이리왕의 허물입니다.”
이리왕, 그 짧은 단어 한마디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시선마저 허물을 향했다. 정말로 저 낡은 가죽이 이리왕의 것이라고?
“그, 그게 정말로 이리왕의 가죽이라고?”
“예, 이미 감정을 마친 진품이죠.”
“허, 내가 살다 살다 괴수의 가죽을 볼 줄이야. 그것도 설마 로보의 것이라니.”
이리왕 로보.
아주 오래전 던전 브레이크로 도심에 모습을 드러낸 마물의 이름이었다. 놈은 3위계라는 높은 등급을 부여받았고, 이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내 하이랭커들에게 아내와 함께 토벌당했다.
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었다.
저 가죽의 진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나와 백은호뿐이었다.
─그래서 저 가죽의 가치가 뭔데?
‘저건 마물의 가죽이 아니라, 늑대 인간의 허물이다.’
이제 타마모까지 더해서 세 명이다.
나는 그녀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로보는 와전된 전설에 불과해. 저 가죽은 늑대 인간들의 군주, 로보의 허물이다.’
1,000년도 전에 아직 인간이 패권을 잡기 전의 시절.
구미호와 여우들이 초원을 달리고, 수인들이 자유롭게 무리를 이끌고 다니던 때 구미호와 뱀파이어를 비롯한 종족들과 같이 달을 추종하던 일족.
엄청난 힘과 각력으로 유명했던 종족이 바로 늑대 인간.
이사벨의 가문인 시리우스의 조상이다.
비록 그들의 피는 옅어져서, 천호백가처럼 꼬리와 귀라는 종족적인 특성이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사벨, 너 왜 그래?”
“나…… 저거 알아.”
“눈이 이상해요, 이사벨. 눈가에 눈물이 엄청 고였어요!”
“어, 그러네? 이상하게 저걸 본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이사벨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머나먼 조상의 유품.
그것도 일족의 최고위인 군주의 허물이었다.
그 허물을 마주한 이사벨의 머릿속에는 파노라마처럼 조상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뱀파이어의 식사나 타 종족의 장난감이나 노예에 불과했던 인간들에게 친절을 베풀다가 배신을 당한 검은 늑대.
늑대 군주는 하얀 털이 아름다운 아내를 잃었고.
이윽고 종족을 잃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인들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이었으니.
늑대 군주, 로보는 자신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전무했다.
그렇게 이사벨은 선조와의 본능적인 교감을 마쳤다.
그 후 그녀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하염없는 슬픔이었다. 늑대 군주의 기억은 바람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졌다.
가죽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그 속에 깃든 원한과 기억마저 풍화된 것이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던 이사벨은 화장실로 향했다.
눈물 자국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가지고 싶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읊조렸다.
저만한 귀물을 또 언제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저런 물건은 돈으로는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때마침.
달그락─!
내 손끝에 잡히는 가면의 감촉은 빌런의 것이었다.
도둑질은 악당의 소양.
필수적인 덕목이었다.
저 허물은 이제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