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1)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1화(21/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1화
결정(1)
가문에서 온 편지는 골치를 아프게 했다.
“뭐? 엘릭서를 멋대로 사용하고는 그 값을 받겠다고?”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원.
백설희는 백승우의 여동생으로, 계산적이고 치밀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그녀의 성격상, 이런 말을 편지에 전할 정도면 이미 판을 어느 정도 깔아뒀다는 뜻이다. 뭔지는 몰라도, 나한테 해가 되는 일이겠지.
“애초에 엘리서 값을 왜 나한테 청구해.”
엘릭서는 만능의 물약이다.
죽은 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살릴 수 있는 물약.
대량생산을 하면 떼부자가 될 수 있겠지만 열화판의 양산은커녕,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위급 상황을 대비해, 천호백가에서 몇 개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뭐, 그 값을 청구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엘릭서는 엄연히 천호백가의 재산.
그리고 천호백가의 가주는 나다.
내 재산을 내가 사용하는데, 그 값을 청구한다니.
이건 단순히 월권을 넘어선 반역에 가까운 행동이다. 만일 백설희 진짜로 내게 엘릭서 값을 요구한다면, 나도 들고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조만간 본가를 찾아가야겠군.”
이전까지는 본가에 갈 생각이 없었다.
주인공의 각성을 지켜보고, 그로 하여금 일어날 사건들을 방관할 생각이었으니까. 구태여 본가에 찾아가 귀찮게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설령 찾아가더라도, 최대한 늦게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빼앗긴 이권들을 전부 되찾아야겠어.’
백승우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내가 직접 되찾을 셈이다.
그리하면 천호백가라는 거대한 세력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겠지.
막대한 재산과 명예, 대가문의 연줄과 그 바탕이 되는 무력까지.
천호백가만 완전히 정복할 수 있으면 어지간한 에피소드들은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몇몇 에피소드들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좋다.
근데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주인공도 아닌데 말이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인공의 각성을 막으면서까지, 학생들을 구하려 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었지?
죽을 필요가 없었던 학생 9명이 대신 죽었다.
주인공은 내 언행에 반감을 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에피소드를 뒤엎는다는 만행을 저지르다가 죽을 뻔했다.
이득 하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내 역할은 엑스트라 악역.
주인공을 위해 처참하게 꺾여야 하는 것이 내 존재의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웅 심리와 허영심에 취해 있었나.
왜 그 단순한 사실을 망각했단 말인가.
“……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후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가슴이 저리고 아플 때까지 뱉었다.
폐부에 남은 숨이 없을 때까지 뱉자, 머리가 띵하며 어지러웠다.
산소, 맑은 산소가 필요했다. 이 공허한 가슴을 채울 숨이 절실했다.
나는 손에 마력을 담아 구속구를 뜯었다.
아직 마력을 운반하는 혈관과 이를 담는 육체가 다 아물지 않았지만, 여러 수액들을 꽂은 의료용 폴대를 지팡이 삼아 밖으로 나섰다.
터벅터벅, 무거운 한숨만큼이나 내 걸음도 느렸다.
* * *
어느덧, 4월이 다가왔다.
본격적인 봄의 계절이다.
신입생들은 아카데미에서 어느 정도 적응하고, 여러 친구들을 사귈 시기. 그리고 여러 커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시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염장질하는 학생들이 참 꼴 보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네.”
사방에 꽃망울이 피어났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나로서는 코가 가렵지만, 대신 눈은 즐거웠다.
아, 여기에는 나처럼 운치를 즐기지 못하는 아저씨보다, 젊은 애들이 더 잘 어울릴 텐데.
정신 연령은 20대 중반에, 육체는 21살밖에 안 된 주제에 상당한 비관적이지만.
형형색색의 꽃이 핀 공원에 나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은 상당히 서글펐다. 지금이 강의 시간이거나, 다들 외부로 나간 것도 아니다.
교수들은 서둘러 아카데미로 돌아와 뒤처리를 하고 있다.
2, 3학년은 각각 무인도 중간고사와 길드 연수가 끝나지 않아 여기엔 없다. 그리고 마지막 1학년들이 문제다.
“1학년 죄다 PTSD라, 그야말로 세계 5대 아카데미의 실추란 말이지.”
수백 명의 학생들은 칠성 아카데미 내부의 입원실에서 입원 중에 있다. 교수 중에는 치료에 능한 플레이어나 오랜 경력의 보건 교사도 있으니 걱정은 없다.
부상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문제는 정신적인 상처다.
현재 부상자를 제외한 1,000명가량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부상자들 중에서도 누가 정신적인 문제를 보일지 모르니, 더더욱 골치가 아프다.
“이러다 아카데미에 있는 얘들 죄다 우울증 약 먹겠네.”
정신병원은 장사 잘되겠다.
2,0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진료와 약을 필요로 할 테니까.
나도 이참에 정신병원이나 열어야 하나.
그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떠올렸다가, 문득 숫자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2,000명이 아니라 1,991명이었지.’
아카데미 역사상 이례적인 숫자이다.
칠성 아카데미의 학년별 최대 인원수는 2,000명.
이는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절대적인 숫자였다.
그도 그럴게, 수십 년 동안 전학이나 자퇴를 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홉 명의 학생이 자리를 비웠다.
이 공백이 채워질지, 아니면 그대로 방치될지는 모른다.
소설에서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았으니까.
주연도 아니고, 이미 죽어버린 엑스트라에게 할당할 분량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그 사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어휴, 밖에 나오면 조금은 좋아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더 답답한 기분이다.
나는 길을 걷던 와중, 마침 벤치가 보이길래 앉았다.
“생각해 보면 할 일이 없네. 교수님도 병결 처리해 주겠다고 했으니, 출근할 수도 없고…….”
“그러게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출근해도 잡무는 볼 수 있을 것 같거늘.”
나지막한 혼잣말에 대답하는 소리.
들어는 봤지만,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니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깨달았다.
“……당신이 왜 여기 있죠?”
“나는 공원에 오면 안 되나.”
“지금 아카데미 뒤집혀서 여러모로 바쁠 텐데요.”
“그래, 나도 지금 29시간 만에 10분 쉬는 거다.”
이 세계에 빙의하자마자, 내게 심부름을 시켰던 사내.
이후에는 내게 알 수 없는 적개심을 불태우고는, 최대한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양반이다.
설마 저쪽에서 나를 찾아올 줄이야.
“방석훈 조교…….”
“선배님, 방석훈 선배님이라고 불러라. 어딜 신입 주제에.”
“그 짓거리 하다가 교수님한테 면박당하지 않았던가요. 꼰대 짓 할 거면 저 말고 다른 애한테나 가시죠.”
딱히 방석훈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면식은 있지만, 사적인 장소에서 대화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저 히스테리 덩어리를 어떻게 감당하냐.
난 못한다.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 선배한테 그렇게 말하는 후배는 너밖에 없을 거다.”
“존중받길 원한다면 언행부터 바꾸시던가요. 그래서 저한테 무슨 볼일이시죠?”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폐는 괜찮나.”
세상에나.
첫날부터 별의별 지랄을 했던 방석훈이 내게 안부를 물을 줄이야.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놀라운 것은 그의 안부 내용이었다.
몸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폐의 안부를 묻다니. 역시 방석훈, 여러모로 비범하다.
“……왜 그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는 거지?”
“아뇨, 세상에 그딴 안부를 묻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싸가지 없는 새끼……. 도저히 정이 붙질 않네.”
그건 나도 동감이다.
지난 한 달간, 타인과 정을 붙일 만한 행동을 취하진 않았지만, 그중 악연이라 할 법한 사람이 둘 있다.
바로 방석훈과 카일.
카일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고, 나를 따돌리는 조교들에게는 별다른 감정은 없다. 다만 방석훈만큼은 예외다.
“저도 그쪽하고 가까워지고 싶단 생각은 없으니, 그냥 갈 길 가시죠?”
“……잠깐 옆에 앉는다.”
“아니, 왜 많고 많은 벤치를 놔두고 내 옆을…… 아, 이미 앉았네.”
방석훈은 내 옆에 앉았다.
벤치가 넓어서 딱 달라붙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꽤 불쾌한 기분이다. 마음 같아서는 의료용 폴대를 휘두르며 저리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폴대만 부러지겠지.
조교라고는 하지만, 방석훈 또한 남화연 밑에서 수학(修學)하는 마법사이다. 유렌과 싸우던 때의 나라면 모를까.
반병신이 된 지금은 상대도 되지 않을 거다.
“그나저나 꼬리가 늘어났네. 천호백가의 종특이라고는 들었지만, 신기한걸. 원리가 뭐지?”
“……그게 용건인가요.”
“반쯤은.”
하긴 신기할 법도 하다.
나도 늘어난 꼬리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니까.
꼬리가 늘어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묘한 감각이다.
팔다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과는 다르다. 무언가 허리 부근에 이질적인 것이 달린다. 그런데 그게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감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문의 종특이라기 보다는, 수련의 결과입니다.”
“……수련?”
“예, 수련이요. 불자가 깨달음을 얻어 열반의 경지를 디디는 것과 비슷한 행위죠. 자, 이제 설명해 드렸으니 어서 근무하러 꺼지시죠.”
대충 설명했지만, 잘 설명했는지는 모르겠다.
수련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여우가 꼬리를 늘리는 것은 단순히 학식을 익히는 것과는 다르다.
무력을 키우는 것도, 백 년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도저히 그 방법을 유추할 수 없다.
뭐, 그렇기에 수련(修鍊)이겠지만.
“그것참 신기하군.”
“이제 알았으니, 슬슬 일하러 가시죠.”
“담배 한 대는 피우고 가지.”
“이런 씨……!”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는 방석훈.
칙칙,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지?
“비흡연자 앞에서 뭐 하세요? 심지어 저 환자예요, 미쳤어요?”
“라임 잘 맞추는군.”
“와, 미친 양반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미쳤을 줄이야.”
아까부터 자꾸 동문서답이다.
첫날부터 대충 알긴 했는데, 설마 이 정도로 미쳤을 줄은 몰랐다.
방석훈은 그런 내게 담배 한 대를 내밀었다.
“……저보고 담배에 불붙이라는 겁니까?”
“한 대 피워라.”
“저 비흡연자라니까요.”
“…….”
비흡연자한테 담배를 권하다니. 심지어 나 환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설마 담배 때문에 폐 건강의 안부를 물어본 모양이다.
와, 세상에 이런 선배가 어디 있을까.
진짜 최악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피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찍어서.”
“…….”
내가 뭘 저 양반한테 뭘 물어보겠냐.
진짜 대화하다 보면 머리가 멍해진다.
나는 방석훈이 건넨 담배를 멍하니 쳐다봤다.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전장에서 스트레스 때문에 피우긴 했는데, 사치품 보급이 부족해서 강제로 끊었다. 담배를 안 피울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저 양반이 주는 담배를 피우고 싶지는 않았다.
저 봐라.
브랜드도 적혀 있지 않은 담배.
저런 걸 어떻게 믿고 피운단 말인가.
난 못 한다. 못 해.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방석훈.
그의 눈동자에 이전과 같은 적의는 없었다. 오히려 안쓰러움, 아니 동질감 같은 감정이 떠올랐다.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손가락을 튕겨, 남은 담배를 없애 버리는 방석훈이 있었다.
담배꽁초에서는 새하얀 가루가 흐르더니, 이내 공기 중으로 기화했다.
그 모습이 마치 천사가 허공에 흩뿌린 금가루처럼 반짝였다.
퍽이나 신기한 담배였다.
그는 옷깃을 단정히 하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너는 이런 거 하지 마라.”
“예?”
“그럼 나는 이만 간다. 너도 빨리 나아서 와라.”
미친놈인가?
물어보기도 전에 방석훈은 자리를 떠났다.
방석훈이 원래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그 길을 따라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들은 알고 있는 사이였는지, 서로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얼굴이 보여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