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4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42화(24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42화
레온하르트(2)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
누군가의 모티브가 아니라, 우리 둘 다 백승우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너는 어느 시점부터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었지?”
“내가 긍정하지도 않았는데, 우선 내 정체가 너와 같다고 벌써부터 확신하는 거야?”
“그러면, 아니야?”
내 말에 ‘백승우’가 어쩔 수 없다는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단 맞기는 하지만 중간에 보충할 얘기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떻게 너와 분리됐는지. 너와 나는 정말로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지. 뭐, 자아정체성이나 윤리적인 문제 같은 것들 있잖아.”
“굳이 필요한가? 어차피 나는 나, 너는 너라고 정의하면 그만인데.”
“……하긴, 그 말이 맞지.”
얘기가 잠시 다른 길로 샜지만, 완만하게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러면 다시 묻도록 하지. 너는 어느 시점부터 이곳에서 백승우로 살고 있었지?”
“경험할 건 전부 경험하고 난 다음에.”
“그 말은……?”
“전쟁이 끝난 직후, 전에 만들던 성역에 죽은 자들의 시신을 매장하던 시절. 정신적으로 죽어가던 나는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났어. 이번에도 백승우라는 이름과 함께 말이야.”
더 이상 감출 것도 없겠다.
순순히 털어놓는 ‘백승우’.
이제 그가 온 시점은 알아냈다.
그러면 그를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주체가 누군지 확인할 차례다. 물론 물어보지 않아도 누가 보냈는지 알 것 같다.
짚이는 사람이 워낙 의심스러워야 말이지.
“그래서 너를 이곳에 보낸 건…….”
“이브.”
“……그래, 그년 말고 누가 널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게 만들 수 있겠어.”
내가 살던 세계의 유일한 마법사.
굳이 진리를 찾아서 헤맬 필요가 없는 위대한 대마법사.
마도성, 마도의 성인이라는 광오한 칭호를 가장 먼저 자칭한 천재 중의 천재.
그와 동시에.
‘세상에 둘도 없는 말괄량이지.’
이브는 천재적인 군사(軍師)다.
그녀의 지략은 아군은 피해 적은 승리로 이끌고, 적들을 피해 많은 패배로 몰아붙였다. 문제는 그 천재적인 머리를 장난치는 일에 종종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대국적으로 봤을 때는 암울하고 칙칙한 군대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영양소와 같은 작용을 했지만, 줄곧 옆에서 이브의 장난을 지켜본 내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팠다.
진짜 쟤는 왜 저러고 살까?
미성년자의 나이였지만, 이브만 보면 왠지 모르게 부모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장난기도 아군의 대략 학살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녀의 천성 자체가 변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지 벌써 20년도 넘었지만, 그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단 말이지. 예쁘게 태어났으면 좀 가꾸고 살 것이지. 뭘 그렇게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다녀가지고는.”
“19살 때를 말하는 건가? 그래, 화공에 대비한다고 얼굴에 진흙을 잔뜩 바르던 이브를 따라서 모두가 얼굴에 진흙을 발랐지.”
“그렇지만 결국 화염은 우리에게 오지 않았어.”
“불길이 다가오는 족족 내가 검으로 풍압을 일으켜서 진화했지.”
“그때 병사들이 하던 말도 귓가에 생생해. 기껏 얼굴과 옷에 진흙까지 발라가면서 대비를 했는데, 대장님이 초를 치셔서 다들 기운이 빠졌다고 원성을 토했지. 심지어 이브도 같은 표정이었지. 너와 다르게 나는 이 땅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지만, 그날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단 말이야.”
나는 노인처럼 오랜 과거를 더듬는듯한 눈빛을 하던 ‘백승우’에게 말했다. 조금 씁쓸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약간의 웃음기를 더했다.
“그거 주마등이야.”
장난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겠지. 다른 사람들의 주마등과는 살짝 다르겠지만, 사라지기 전에 이렇게 과거를 생생하게 회생하는 것도 주마등이겠지.”
“…….”
“슬픈 표정 짓지 마. 그 얼굴하고는 진짜 안 어울리니까. 우리는 무덤덤한 표정이 제일 잘 어울려.”
“……이제 3분 정도 남은 녀석이 잘난 듯이 말하기는.”
이 새하얀 공간이 점점 검게 물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우리들이 대화하고 있는 공간까지 침범하진 못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이 정신세계가 완전히 검게 물들 때까지 남은 시간은 약 3분으로 추정된다.
지금 녀석은 혼백의 상태.
정신세계의 소멸은 놈의 죽음과 같다.
다시 말해, ‘백승우’가 이곳에서 살아있을 수 있는 불과 3분이라는 것이다. 진짜 얼마 안 남았다.
“그런데 우리 이렇게 대화하고 있을 여유가 있나?”
“당연히 없지. 그러니 대화는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내가 지금까지 얻은 정보와 살아온 궤적을 설명해 주지.”
그러니 잠시 입 좀 다물고 있어 봐.
슬며시 입가를 들며 미소를 지으려다가도, 입을 열자 표정이 무뚝뚝하게 굳는 ‘백승우’. 설령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더라도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눈치였다.
아마 나도 저럴 것이다.
죽음이 닥쳐온다고 한들, 내 소임을 다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었고, 우리의 삶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정처 없이 살아가던 나는 죽어간 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무덤을 만들기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덤을 다 만들고, 그곳에 성역이라고 불릴 즈음 이브가 내게 찾아왔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백승우’는 필사적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군데군데 뻥 뚫린 기억이 있었고, 그 기억을 회상하기 위해 머리를 붙잡으면 어느새 정신세계를 침범하는 검은색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 고뇌하고 회상할 시간조차 없다.
“그때 그녀는 내게 행복해지고 싶냐고 물어봤지. 사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충 그런 뉘앙스였어.”
당시의 내게는 삶의 의지가 없었다.
인류의 적인 마물들을 몰살했으니 검을 들지 않아도 됐다.
동료들은 거의 몰살했으며, 사랑하던 첫사랑과 존경하던 선생님도 죽었다. 전쟁은 끝나고, 죽은 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거대 공동묘지도 만들었으니.
이제 정말로 할 게 없었다.
살아갈 목표와 이유가 단숨에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그 빈틈을 메울 무언가를 찾지 못했던 나는 당시 극심한 PTSD를 호소하고 있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살리기 위해 죽은 자들을 위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죽지 못해서 살았다.
바로 그 순간, 이브가 제의한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지. 딱히 그녀의 말을 기대하고 신뢰한 것은 아니야. 그저 내게 유일하게 남은 친구만큼은 나처럼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지.”
이브의 장난에 어울려 줄 생각으로 수락했지만.
수락의 대가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수락하자마자 내 시야가 어두워졌어. 이후 눈을 떴을 때 나는 한 여인의 품에 안겨 있었지. 내가 아기로 다시 태어났고, 이브가 종종 입에 담던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얼마나 걸렸는데?”
“대략적으로 일주일.”
아기 때라서 확실하지 않지만.
일주일 만에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모두 파악했다.
이후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21살? 22살 즈음이라서 이브의 소설에 대한 고민 상담과 자문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지. 이를 매일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살아갔다.”
다섯 손가락을 전부 펼쳤다.
그러고는 하나씩 얘기하면서 손가락을 접었다.
“검사로서 단련한 세월을 되새기며 몸을 키웠고, 겸사겸사 전에는 자질과 지식이 없어서 배우지 못한 마법을 배웠다. 간단하게 선점할 수 있는 기연은 미리미리 챙겼지. 그런 자질을 인정받은 덕분인지 나이에 맞지 않은 귀여운 약혼녀와 맺어졌고, 가문과 세간에서는 천재로 칭송받았지. 그때가 그립네.”
“귀여운 약혼녀…….”
“그때는 우리 둘 다 아이였다.”
“나는 별다른 말 안 했다만? 그저 머릿속으로 정신 연령 때문에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야.”
“그게 그거지!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맹세를 저버린 적이 없다. 평생토록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기로 했다. 약혼녀가 생기고 오랜 시간이 흐른다고 마음이 말랑해질 정도로 내 맹세는 가볍지 않아!”
그건 나도 알아.
그 맹세 나도 했으니까.
그런데 조금 위험하지 않나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을 뿐이다.
응, 아주 잠깐 말이다.
“눈빛이 이상한데…… 뭐 좋아. 시간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 주겠어.”
“그래그래.”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면서 마음이 치유되어 가던 와중, 부모님이 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다. 그분들의 유언을 통해 그 원인이 바로 내가 타고난 악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맨 처음 들었던 말이다.
부모님의 유언. 자식을 주저하던 그 말 덕분에 그는 스스로가 지닌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악성?”
“말 그대로 악한 성질이라는 뜻이다. 천호백가라는 가문의 유래가 무슨 뜻인지는 알지?”
“천호. 열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의 후손이라는 뜻이지.”
“잘 알고 있네. 우리는 열 개의 꼬리를 가진 천호의 후손이다. 그런데 과연 천호의 배우자는 누구였을까?”
“뭐라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천호의 배우자?
그게 갑자기 왜 나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요소에 나는 당황했다.
“설마 그 배우자가 너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시대 차이가 1,000년이 넘는걸.”
그렇지만 말이다.
“아예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야. 부모님의 사후, 온전히 내 소유물이 된 가문의 온갖 비밀 서고들을 통해서 겨우 알아냈지.”
“너는 유독 천호가 아니라, 그 배우자의 자질이나 체질을 짙게 타고났다는 뜻인가?”
“아니, 그냥 내가 그 배우자의 몸을 타고났을 뿐이더라고.”
“……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천호의 배우자. 그 배우자의 몸을 타고났다니.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내자, ‘백승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좀 이상하지? 나도 처음에 그랬어. 그렇지만 덕분에 이브의 의도와 그녀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지.”
“너. 지금 내가 거의 이해 못 하고 있는 거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지. 그렇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는걸.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말했던 내용과 어조를 통째로 외우는 걸 추천할게.”
스으으윽.
검은색이 점점 다가온다.
“흰색으로 가득한 가문에서 검은색은 불길한 색상이다. 그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아주 오래전 이 땅에는 검은 털의 구미호가 있었어. 그는 털 색상으로 인한 많은 차별 받았지. 이후 열 개의 꼬리를 가진 하얀 여우와 결합하여 자식을 가졌지만,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어. 오히려 더 심해졌지.”
“그거 설마…….”
“가만히 듣고만 있어. 아직 얘기 다 안 끝났으니까.”
새하얀 정신세계를 물들이는 칠흑.
그 틈에서 두 개의 무언가가 보인다.
흡사 눈동자처럼 생긴 그것은 막 굳은 피처럼 음울하고 음산한 붉은빛이 돌고 있었다.
“검은 구미호는 세상을 저주했어. 그러나 이내 자신에게 한 가지 재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바로 마법과 주술을 비롯한 신비에 대한 무지막지한 적성이었어.”
붉은빛이 다가온다.
이내 우리들의 발밑에 도달했다.
주변은 이제 온통 새까맣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암흑 공간. 그 속에서 오직 밑에 있는 붉은빛만이 점멸한다. 분위기가 점점 스산해지고, 섬뜩한 기척이 내 목덜미를 스쳐 갔다.
무언인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사방이 어두운 탓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훗날 그는 후손들을 죽이며 반란을 일으켰고, 천호가 그를 봉인했으나, 신비에 능통했던 그는 훗날을 기약했어. 그리고 때가 다가왔지. 검은 구미호는 아기로 다시 태어났어. 여우의 피가 옅어진 탓에 생김새는 인간에 가까웠지만, 그에게는 타고는 재능이 있었지. 그런데 그 몸을 탈취당한 거야.”
검은 무언가가 ‘백승우’의 몸을 감싼다.
이쯤 들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게 마련이다.
정신세계를 물들이는 검은색이 무엇인지를.
“너와 내가 가진 마법의 재능. 그건 본래 녀석의 것이었어. 그러나 이브가 놈의 몸에 내 자아를 싹 틔우고 난 이후로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지만, 글쎄.”
지금은 그 재능을 뺏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바로 그 순간, 섬뜩함은 극한에 달했다.
두 눈동자가, 칠흑처럼 검은 구미호가 분명히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