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4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43화(24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43화
레온하르트(3)
이 작은 공간에 온갖 것들이 뒤섞였다.
분기점이 나뉘어서 둘이 서로 다른 개체가 되어버린 나와 백승우.
그리고 본래의 색상을 잃고 검게 물들어가는 정신세계. 그 속에서 우리들을 지긋이 노려보는 붉은 안광의 구미호까지.
이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이러다가 터지겠네.”
본래 정신세계란 개인만의 고유한 공간이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
그런데 그 정신세계에 비록 같은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걸어가는 방향이 갈린 내가 두 명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세계는 상당한 부하를 받는다.
그나마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겨우 가능했다.
그런 설마 이 공간에 한 명이 더 있을 줄이야.
……아니지.
“한 명이 아니라 한 마리였지, 참.”
“그렇게 놈을 자극하지 마. 험한 꼴 당할라.”
“걱정 마라. 저런 금수에게 당할 정도로 실력이 녹슬진 않았다. 심지어 저놈은 우리를 노려보고만 있지. 간섭하지는 못하고 있잖아.”
쿠오오오오──!
칠흑 같은 공간에서는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구미호의 꼬리도, 얼굴의 윤곽도, 날카로운 이빨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오직 붉은 피처럼 발광하는 눈동자의 안광뿐.
그 안광이 스산하게 빛나면서 자신의 존재감과 위압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쿵─!
무릎이 바닥에 꽂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무형의 힘이 강제로 내 무릎을 굽힌 것이다. 그 힘은 무릎을 꿇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란 눈치로 힘에 점점 박차를 가했다.
우지끈!
다리 부근의 뼈가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아주 먼 옛날에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이거 오랜만이네.
다리의 탄성이 사라졌다.
뼈가 부서짐에 따라 근육과 살도 망가졌다.
“제법이네.”
단번에 내 이동 수단을 막고, 움직임을 봉쇄했다.
훌륭한 판단과 선택이다.
설마 이 상황에서 정확하게 내 다리만 부수다니.
정말로 제법이다. 지금까지 밖에서 싸워온 마인들보다도 훌륭하다.
놈들은 아무리 침착한 성격이라도, 마인의 종족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오만함이 깔려 있었다.
그 오만함은 녀석들의 선택에 오판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를 생포하거나 죽이고 싶다면 이 괴물처럼 다리부터 부숴야지.
뭘 정직하게 싸우고 있어.
그런 의미에서 이 구미호는 정말이지.
찬사를 아낄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정말 훌륭해. 구태여 머리가 아니라, 다리를 부숴먹으려고 생각하고 곧장 시도한 것은. 정말이지 밖에 있는 놈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꾸욱!
지긋이. 아주 지긋이 발끝을 놀렸다.
쿠웅─!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를 짓누르던 무형의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애초에 무형이라서 흔적이 없기도 했지만.
그 기운을 방출하던 주인이 저 꼴이어서야, 뭘 할 수 있을까.
쿠오오오오오───!!!
비명에 가까운 울부짖음.
5위계 이상의 마물이 익힐 수 있는 권능. 상대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피어보다 상위의 권능이 내 정신을 흔들었다.
그렇지만 그 흔들림은 아기를 재우는 요람보다도 고요하게 흔들렸다.
“자기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건 잘 알고 있는 모양이네.”
정신세계에서 싸움을 벌인다면.
뭐, 애당초 정신세계에서 싸우는 일 따위 평생토록 일어나지 않는 게 정상이지만. 이 경우 자신의 정신력에 따라서 펼칠 수 있는 힘이나 무위가 달라진다.
정신은 육체의 영향을 받는다.
족히 100년은 살았을 늙은이들이 환골탈태를 경험하면 어린 애새끼들처럼 칭얼거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극한까지 단련한 정신력은 육체의 영향에서 자유롭다.
아무리 시한부 인생이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요즘 얘들이 흔히들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그런 불굴의 정신력 앞에서 여우의 울음소리 따위야, 뒷방 늙은이들의 칭얼거림보다 귀엽지.’
차라리 그 늙은이들은 수틀리면 주먹이라도 휘두르지.
이 정신세계에서 놈은 내게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적어도 나는 신비에 능통하다는 검은 털의 구미호보다 늙은이들이 훨씬 무서웠다.
……물론, 그 양반들의 무덤도 내가 만들어줬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 그런가.
쿠구우우웅─!!
흔들흔들, 정신세계가 금방이라도 무너지려는 기와집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아무리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흔들면 부러질라.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아까 녀석이 날뛸 때보다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잖아!”
“아, 미안.”
생각을 멈추자 정신세계가 다시 잠잠해졌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다.
녀석은 조금 있다가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우선 그를 배웅하기로 했다. 순서상 이게 먼저였다.
‘백승우’의 몸은 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아니, 진짜로 부서질지도 모른다.
“그놈을 벌써 제압하다니. 역시 원본은 다르네.”
“방금 그 말. 자신을 가짜라고 생각하는 말투인데?”
“그야 당연하지. 내게 검사로 살아온 기억은 있지만, 이곳에 살면서 그게 진짜 내 삶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둘의 뿌리는 같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이브가 복제한 너의 기억을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 결코 네가 아니야. 아니, 내가 진짜 너였든 뭐든 상관없어.”
자아정체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목젖까지 다가온 죽음 앞에서 ‘백승우’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죽음을 각오한 초연함이 엿보였다.
“과거, 이 정신세계 속에 있는 저 구미호 때문에 내 몸에서는 자연스럽게 저주가 방출되었어.”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었나?”
“응. 동생과 누나에게는 망나니로 보이기 위해 시종들을 괴롭혔어. 돈으로 보상하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겠지. 이사벨과의 파혼은…… 그쪽의 가주에게서 먼저 얘기를 하더군.”
“그 할머니가?”
“그래,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약해진 가주의 권한에 흥미가 떨어진 눈치였어. 엄청난 보상을 줄 테니, 손녀와 파혼해 달라고 하더라.”
자신의 뒷이야기를 푸는 ‘백승우’.
이 사실들이 당사자들의 귀에 들어갈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새삼 그 사실에 쓸쓸함마저 느낀다.
그의 유언은 오직 나만 듣고 있다.
이곳은 사람 없는 장례식. 비록 ‘백승우’는 자신으로부터 소중한 사람들이 저주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한 처사였지만, 그는 너무나도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저주는 ‘백승우’가 의도하지 않은,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가 보상을 했더라도 타인을 괴롭히고 전국적으로 망나니라고 불리게 된 것은 오로지 그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그 결과에 의거해서.
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오롯이 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곳이 정신세계가 아니라면 몇 명 정도 왔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의 여동생.
그의 누나가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쪽에서 먼저 단절한 인연이었다.
“…….”
“더 할 얘기는 없어?”
“……사실 조금 있는데, 더 얘기할 시간과 힘이 없어.”
그의 몸이 점점 투명해진다.
이제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비눗방처럼 희미한 윤곽만 보인다.
“후회는 없나?”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있지.”
있는 정도가 아니다.
넘쳐 날 정도로 많다.
“동생과 누나와의 사이를 다시 개선하고 싶다. 부모님의 묘에 인사를 드리러 가고 싶다. 빌어먹을 장로들의 수염에 불을 붙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사벨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 내가 괴롭힌 사람들에게 돈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고 싶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꼽아도 이 정도인걸.”
“미련이 철철 넘치는군.”
“곧 죽을 놈의 미련치고는 생각보다 많지?”
전혀 그렇지 않다.
“네 미련들을 하나로 종합한다면, 결국은 후회로 귀결되니까.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오히려 깔끔한 편이지.”
“그건 고맙군. 참고로 시간 관계상 너에게 마저 해주지 못한 말은 따로 남겨뒀어. 내 일기장과 같은 형태니까. 이 정신세계에 있으니까 나중에 찾아봐.”
“그래, 알겠다.”
그의 후회는 많았다.
나는 그 후회들을 풀어주겠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너를 대신해서 행복하게 살거나, 너의 소중한 사람들을 웃게 만들겠다는 말도 함부로 내뱉지 않았다.
내게는 그런 여력이 없을뿐더러.
그럴 자격도 없었다.
그저 고요히 사라져 가는 ‘백승우’의 영혼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렇게 예상치도 못한 만남은 하늘에 흩날리는 비눗방울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슬프다는 감상은 없다.
타인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기에는 내 눈물샘이 메말랐으며, 그와의 관계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나 밀도 있는 만남과 이별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나는 누군가와 이별할 때가 되었다.
크르르르르──!!
밑바닥에서 자신의 차례를 직감하듯.
구미호가 낮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 * *
정신세계에 공백이 생겼다.
천호백가의 진정한 가주. 순백의 여우들을 이끄는 수장이 사라졌다.
그만큼 정신세계에는 틈이 생겼다.
그 틈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거대한 마천루.
하늘을 찌를 것처럼 드높은 마천루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건물들이 솟아났다. 거대한 한옥과 높은 시계탑, 좁은 막사와 폐허처럼 생긴 아파트 등등 정말 많은 건축물들이 생겼다.
방금 전의 새하얀 공간이나 어두운 공간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건물이 높았다.
그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백승우의 추억. 하늘을 찌를 것처럼 창대하고 장엄하게 솟아오른 마천루는 그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그 마천루는.
우두둑.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고, 간혹 큰 돌덩이도 떨어졌다.
마천루 전체에서 가루와 돌덩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터무니없이 작지만,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저 마천루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
계속 무너져 내릴 뿐.
보강할 일은 없다. 이미 백승우의 정신은 진작에 망가졌다.
그걸 억지로 붙들고 있지만, 결국 무너져 내릴 건물은 무너져 내린다.
떨어진 돌덩이에 의해 한옥이 무너졌다.
그의 추억이 짓밟힌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추억들은 많았다.
마천루는 건재했다.
적어도 그가 죽을 때까지는.
그와 함께할 것이다.
죽을 때 같이 무너지고, 무너질 때 같이 죽는다.
이것이 바로 백승우가 스스로 자신의 최후에 걸맞은 묏자리를 찾아 다니는 이유다.
자신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이 지옥 같은 삶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그 일념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때문일까.
“부럽다…….”
혼백이 빛이 되어 사라지는 그를 보며 백승우는 부럽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의 최후는 장엄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기승전결을 맺었다.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 또한 저런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타인의 죽음에 부러움을 느꼈지만, 특별히 그가 죽음에 무감각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수많은 시신들의 무덤을 맨손으로 지어준 백승우였다.
백승우는 부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떠난 이를 위해 추모했다.
비록 자신은 평생을 죽고 싶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와 똑같은 얼굴과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던 ‘백승우’는 여전히 삶에 미련을 가지고 있던 모양새였다.
그러니 그를 위해 기도하리라.
“……누군가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는 짐승의 머리만 한 것이 또 없지.”
돼지머리를 상에 올려둔 것과 같은 논리다.
하지만 이곳에 돼지는 없으니.
대신 여우로 만족해라.
이 세상에서는 희귀한 검은 털의 여우에다가,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니 나름 호화로울 거다.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멱을 따주마.”
가기 전에 구미호 육개장은 먹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