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4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47화(24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47화
도플갱어(2)
밖에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겠지만, 일기장을 읽는 내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곳은 정신세계.
이제는 없어진 ‘그’의 새하얀 세계와 소름 끼치는 붉은 눈동자로 우리를 노려봤던 구미호의 검은 세계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짙은 회색의 도시.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없고, 하늘도 우중충한 탓에 괜히 불쾌한 느낌이 절로 드는 세상이었다.
멸망한 세계가 있다면 이러한 느낌일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도시의 중심에는 거대한 마천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유난히 높은 마천루.
그 높은 건물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천루의 파편에 건물들을 반파되어 간다.
왠지 모를 불쾌감을 조성하는 풍경. 나는 그 풍경을 배경 삼아서 일기장을 읽었다. 속독으로 벌써 10시간은 읽은 것 같은데, 내용이 계속 이어진다.
어떻게 된 모양인지, 일기장에 끝이 보이질 않는다. 물론 이건 사람이 직접 수기로 작성하는 평범한 일기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이 기록된 역사서와 같은 물건이니 내용이 방대하다면 방대한 것이 당연한 논리였지만 이건 좀 심했다.
“세상에나 분량이 이게 뭐야.”
일기장에 적힌 내용은 지나치게 방대했다. 그 방대함은 도저히 20대가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20년 남짓한 인생의 밀도가 얼마나 높으면 이렇게 내용이 많을까. 심지어 중요하지 않은 내용도 없었다.
시답지 않은 일생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재빨리 넘겼지만, 뒷장에서 그것이 사실은 복선이었다는 것을 느낀 이후에는 잡다한 일생 얘기까지 꼼꼼히 읽게 되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바닥에 마천루의 잔해 떨어지는 소리와 그 충격으로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를 음악 삼은 끝에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대체 이놈은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슨 짓을 한 거지?”
드디어 일기장을 전부 읽은 나는 후우, 한숨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뒤로 꺾었다. 하도 오랫동안 읽어서 목이 다 아프다. 짧게 목 스트레칭을 한 나는 방금 전에 읽었던 일기장의 내용을 떠올렸다.
‘한 사람의 인생치고는 정말 많은 내용들이 적혀 있었어. 그것도 아주 중요한 알짜배기 위주로.’
무엇 하나 버릴 내용이 없던 일기장.
지식, 지혜, 사건, 인간관계 등등 그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망라한다면 분명 내 목표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지, 한 걸음이 뭐야. 두, 세 걸음. 어쩌면 열 걸음은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장이 아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용은 바로 정신세계 속에 있던 검은 털의 구미호였다. 일기장에는 놈의 과거와 정체, 소유한 능력과 특성까지 꼼꼼하게 저술되어 있었다.
놈의 생리까지 적혀 있어서 순간적으로 동물 사전을 읽고 있다는 착각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꼼꼼히 적혔던 내용을 되새기고 정리하면서 읊조렸다.
“일단 놈은 개념적인 생물이다.”
검은 구미호가 출몰했다는 기록은 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놈이 죽었다는 기록도 천 년 전에 존재했다.
놈의 사후, 검은 여우는 태어나는 족족 불길한 징조라면서 살해당하거나 박해를 받아서 구미호까지 성장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후로 검은 털의 구미호가 등장한 적은 없다.
다시 말해서 정신세계에 있던 검은 구미호는 천 년 전에 활개친 녀석과 동일 인물이다. 놈이 어째서 ‘백승우’의 정신세계에 있는지는 판명이 되었다.
육신이 죽어서 원념과 혼백만 남은 검은 구미호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검은 구미호의 환생으로 추정되는 검은 여우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어느 한 가주 부부가 검은 여우를 자식으로 들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검은 구미호는 정신세계를 장악한 후, ‘백승우’의 육체까지 장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간단하게 무산되었다. ‘백승우’의 정신력이 생각보다 견고하고 단단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력은 검은 구미호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에 그쳤다.
차마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천 년이나 후손에게 기생하면서 살아가려고 발악했던 구미호의 정신력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팽팽한 평행선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내가 이곳에 나타난 이후로는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극한까지 팽팽해진 고무줄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된다면 작은 자극에도 끊어질 수가 있다. 그런 와중에 작은 자극도 아니고 큰 자극을 가하면 어떻게 될까.
깊이 고민할 것 없다. 당연히 끊어지겠지. 이 자리에서 ‘백승우’는 유언을 남긴 채 사라졌고, 둘 사이의 평행선은 결국 검은 구미호 측으로 기울어졌다.
놈은 이제 몸을 장악할 일만 남아서 실실 웃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별 시답지 않은 놈이 내뱉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구미호는 거대했지만, 속이 텅 빈 강정이었다. 내실이 부실했다.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정신력이 마모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정신력이 그 모양이었는지는 몰라도 내 정신력보다 미약한 정신력을 가진 구미호는 활개를 칠 수 없었다.
오히려 날아다니는 모기를 때려잡듯, 가볍게 놈을 짓뭉갰다. 그렇게 오랜 신경전은 제삼자에 의해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일기장을 전부 읽은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 안도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일기장에 적힌 전성기의 구미호. 놈의 정신력은 전성기라고 할지라도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문제는 놈의 능력이었다.
모든 신비를 분석하고 모방한다는 대목에서는 뭐, 나도 「마도성」이라는 사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국가 단위의 토지를 단숨에 병들게 만드는 저주를 아무렇게나 흩뿌렸다는 대목에서는 눈을 의심했다.
국가 전역의 토지를 병들게 하는 저주?
애당초 그런 저주가 있었나?
있다면 대마법도 넘어서는 경지가 아닌가?
그 외에도 범국가적인 기후 조작이나 기상 조작이 가능하다는 부분에서는 아예 일기장을 덮을 정도였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이상한 괴물이 다 있어. 심지어 이게 기본기에 준하는 능력이라고 하더라.
아니, 도대체 1,000년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런 괴물이 살았던 거지. 심지어 놈은 제대로 활개를 치기도 전에 열 개의 꼬리를 가진 천호(天狐)에게 맞아서 죽었다.
또한 그 시기라면 타마모도 살아 있을 시절이니.
아마 지상은 괴물들의 천국이었을 것이다. 검은 구미호, 놈은 그런 미친 세상의 산증인. 내가 놈을 벌레처럼 가볍게 뭉개서 죽였다는 사실에 기쁨과 감사마저 표해야 될 지경이었다.
“특히 마법이나 신비를 이해하고 모방하는 그 능력을 사용하기 전에 없애서 다행이지.”
검은 구미호의 권능. 그가 하얀 여우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게 된 결정적인 힘이 바로 타인의 마법이나 능력을 샅샅이 분석하고 이해하고 따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도성」의 원본일지도 모르는 능력.
그걸 사용하기 전에 죽여서 정말 다행이다. 일기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안도감을 느꼈다. 녀석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구미호 얘기를 되새길 때마다 속이 안 좋다. 일기장의 다른 내용을 떠올린 나는 과거의 인간관계를 파고들었다.
그의 인간관계 중에는 예상했던 사람들도 많았고, 전혀 예상 밖의 인연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레오나 레온하르트. 설마 이 여자도 나와 이렇게까지 밀접한 연관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레온(Leon)은 사자를 의미한다.
그런 사자의 이름을 두 번이나 넣은 여자가 바로 레오나 레온하르트였다. 그녀는 그 이름만큼이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백은호가 읽은 소설이나, 내가 떠올리는 회상에서 언제나 빠른 속도와 믿기지 않는 괴력으로 등장하는 여학생이자.
내가 기억하기로는 주연. 백은호가 읽기로는 주인공이었던 강자.
어째서 아카데미에 입학했는지 모를 정도로 강했던 게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이미 1학년 때부터 완성된 존재였다. 물론 성장할 여지는 아직 남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다른 학생들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진작에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길을 정했다.
여러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공부한 끝에 자신이 검사가 될지 마법사가 될지 고민하는 또래의 사춘기들과는 다르다. 그녀가 어째서 칠성 아카데미에 입학했는지는 몰라도, 레오나는 이미 충분히 현역에서 뛰어도 문제가 없는 현역이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걸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때 읽었던 것을 정신세계를 나선 이후에도 떠올렸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 앞에 있었거든.
“너 뭐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왜 나를 따라 해?”
“야! 네가 나를 따라 했겠지!”
“무슨 소리! 네가 나를 따라 한 거거든!”
그것도 두 명이나.
* * *
외딴 골목. 나는 「베파르」와 「비네」를 유인했다.
이곳은 반쯤 밀폐된 공간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둘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쿵─!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바람이 먼지와 함께 사방을 휩쓸었다. 순간적으로 눈을 가려서 보호했다.
순식간에 손을 떼고 뭐가 떨어졌나 살펴봤는데, 이게 웬걸.
“너……!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나? 나는 언제나 이 나라의 지하에 있었어.”
“지하? 아니, 이 구역을 담당하는 삼촌들은 도대체 뭐 하고 있던 거야?! 저거 나랑 똑같잖아! 닮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똑같잖아!”
떨어진 것은 사람. 그것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친분은 없어도, 복도를 지나가면서 종종 마주쳤다.
아니, 레오나가 여기 있는 건 고향이니까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두 명인 것은 이상했다.
똑같은 사람 두 명. 그것도 외형과 향기와 성격, 기질이 완벽히 동일한 두 명이 있다니.
둘이 쌍둥이였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레오나는 외동이다.
그녀의 형제자매는 전부 그녀보다 동생들. 레오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조금 어려 보이는 여동생이 있을 순 있어도, 그녀와 똑 닮은 사람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갑작스러운 둘의 등장에 「베파르」와 「비네」의 시선도 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비네」의 시선이 살짝 이상했다. 마치 경악한 것 같은 눈초리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그때.
아, 뭔지 알겠다. 왜 같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는지 깨달았다.
“왜 저게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잘 됐군.”
이거 일석이조다. 마인 두 명을 사살 및 생포할 수 있을뿐더러 내가 독일에 온 목표까지 이룰 수 있을 줄이야.
도대체 상황에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는 몰라도, 좋다.
내게 아주 좋았다.
“어떻게 찾아야 될지 고민이었는데, 설마 제 발로 와줄 줄은 몰랐어. 그도 아니면 누가 놈을 풀어놓은 것인가? 이거 나만 고맙게 됐네.”
“아, 저기! 조교님!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이거 나란 똑같이 움직여서 도저히 죽일 수가 없단 말이야!!”
“조금만 기다려라. 우선 여기 있는 두 명부터 잡은 다음에 도와주마. 그런데 방금 전에 ‘조교님’이라고 말했나?”
“아, 하하! 그, 그런 말을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한 것 같은데, 아무튼 가면 오빠! 빨리 좀 도와줘! 알았지? 빨리 도와줘야 된다!!!”
시끄럽기는. 그래도 학생이 다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순 없으니 빠르게 개입하기는 해야 된다.
그리고 뭐, 그녀의 상대는 내가 꼭 회수해야 되는 존재였으니. 굳이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 온 목적.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정부가 눈앞에 있었다.
세상에 아이들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면, 내가 ‘두 배’로 일하면 되는 노릇이다. 그런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나와 함께 육아 지옥에 빠질 「도플갱어」.
그가 레오나와 대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