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53화(25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53화
어중간한 복제품(3)
새벽녘.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 찾아왔다.
나는 빈 잔의 홍차를 홀짝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미 홍차를 다 마셔서 잔이 비었음에도 계속해서 홀짝였다. 생각을 너무 깊게 한 나머지, 차를 전부 마셨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고심하던 것은 그녀.
백현아가 말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이 섞였을 가능성은 충분해.”
그녀의 말에는 진실로 느껴지는 부분이 여럿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신뢰하기에는 나라는 사람의 인생 자체가 썩 순탄하지 못했다.
나는 누구의 말이라도 의심한다.
설령 그것이 어린아이나 친구의 말이라도.
혹여 정보가 의도치 않게 잘못 전달되었을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의심하고 본다.
물론, 이를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누구 사회생활 망칠 일이라도 있나.
일단 무슨 말이든 믿는다는 표정은 짓는다.
하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는 표정이 알게 뭔가.
“일단 염두에 두는 게 좋겠지.”
나는 표정을 이래저래 바꾸며 생각했다.
다른 정보들도 신경 쓰이지만, 특히 백현아가 말했던 마지막 얘기.
내 기억이 1분가량 타인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부분이 신경 쓰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흘러간 기억은 20살 무렵. 그러니까 내가 아직 전장에서 검을 들고 활약할 당시였다고 한다.
그녀는 내가 숨기고 싶은 과거와 치부를 전부 알고 있었다.
특정 기억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잘 알고 있던 눈치였다. 그야 그녀는 해당 기억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관찰한 것이기 때문에.
간혹 기억을 되새기다가 PTSD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나와 달리 사소한 기억까지 태연히 살펴볼 수 있었다.
‘20살 무렵. 막사 내부. 안에는 검은 천과 푸른 천이 걸려 있었다. 옆에는 이브가 있었고, 그녀는 노란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백현아가 흘러 들어갔다고 말한 기억의 상세한 설명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만 기억하고 있을 뿐.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상세하게 떠올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하는데.
결국 내가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그녀가 말해준 단편적인 정보들을 짜맞추기 시작했다.
우선 시기.
20살 무렵이면 내가 여섯 번째로 활동한 전장이다.
그다음으로 장소. 즉 ‘어디서’.
검은 천과 푸른 천이 있던 막사라면, 기억에 딱 하나 있다.
전장을 지휘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 및 보관할 용도로 세워둔 나와 이브의 공동 막사.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검은 천 밑에, 확인된 정보는 푸른 천 밑에 쌓아뒀다.
‘시간과 장소는 얼추 맞혔지만, 자세한 시간대를 어떻게 알 수 있지?’
대략적인 시간대는 내가 20살 무렵이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20살 무렵이라는 말은 곧 떠올려야 할 정보가 1년 내외로 걸쳐져 있다는 뜻이었다. 떠올릴 기억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이 범위를 조금 줄여야 되는데, 내가 검은 천과 푸른 천으로 정보를 구분하던 게 언제부터 언제였지?
‘아마 여름 막바지에 시작해서 겨울까지 사용했던 것 같은데.’
넉넉하게 잡으면 8월부터 12월까지로 좁힐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시간대가 넓었다. 백현아가 말한 단서를 조금 더 분석하던 와중, 그녀가 말한 노트의 색깔이 생각났다.
이브의 노란 노트.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의 16번째 혹은 17번째 노트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15번째 노트는 1월부터 4월까지, 16번째 노트는 5월부터 8월, 17번째 노트는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주기로 노트를 교체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시간대는 9월부터 12월이다.’
9월에서 12월.
탐색 범위가 1/3으로 줄어들었다.
이후에는 옷차림으로도 시간대를 좁히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항상 나는 하얀 정복과 갑주를 입었고 이브는 로브를 입었다. 복장으로는 추리 못 한다.
그렇게 벌써 5년도 더 된 세월을 곱씹으며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백현아는 이미 아이들과 함께 침대에 누운 지 오래였다.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은 보모로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라서 백현아의 수면을 말릴 방법이 없었다.
“……후, 일단 대략적인 시기는 알았지만 같이 했으면 더 빨리 떠올렸을 것을. 저 도플갱어 녀석. 괘씸한데 침대에서 밀어버릴까?”
─아서라. 그러다가 나중에 배신당할라.
“그것도 그렇군. 하는 수 없이 넘어가야겠네.”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타마모가 내게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침대에 누워서 편안한 숨소리를 내쉬는 백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이름이 백현아지? 혹시 나중에 딸한테 지어주려고 마음속 깊이 모셔둔 이름 같은 건가?
“끔찍한 소리를 하기는. 특별한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나는 도플갱어를 처음 여자로 조형한 순간, 자신들을 돌봐줄 엄마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에르제베트의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그냥 놈을 도플갱어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보모.
아니,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역임하기 위해서는 놈에게도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내 성씨인 ‘흰 백’을, 검은 꼬리에서 착안한 ‘검을 현’, 마지막으로 1인칭 대명사인 ‘나 아’.
이렇게 세 글자를 합쳐서 백현아(白玄我)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뭔가 열심히 지은 것 같으면서도, 대충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드네.
“……나는 정말 잘 작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만.”
─아니, 이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과 애정이잖아. 의미도 중요하지만, 의미만 중요해서야 되겠어?
“……백현아, 현아. 의미뿐만 아니라 이름도 예쁘게 잘 지었다고 생각하는데.”
왜 타마모가 돌연 백현아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정황상 이름 때문에 저러는 모양인 것 같은데, 나는 나름대로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현아, 이름도 예쁘고 나름대로의 의미도 제대로 들어 있다. 이름 후보에 있었던 흑승우나 천승우, 만승우 같은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았으니 나름대로 센스 있는 이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타마모에게 말해주자.
─그래, 현아. 차라리 그게 낫네.
“그렇지?”
─응. 만일 다른 이름으로 지어줬다면 큰 소동이 일어났을 거야.
“그 정도인가? 나머지 이름도 나름대로의 특색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 앞으로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지을 때, 꼭 나랑 상의한 다음에 붙여주렴. 그래야 문제가 안 생길 것 같아. 알겠지?
뭔가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름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이름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미 아침 해는 상당히 떠올랐다.
대부분의 가정집은 아침을 맞이할 시간.
우리 아이들이나 늦게 잠든 백현아는 아직 꿈나라에 있지만, 슬슬 저택 내부에서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집주인이 일어나면서 저택이 활기를 찾은 것이다.
곧 아침 식사를 할 시간. 현재 이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내 입장에서 문안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뭐, 말이 문안 인사지.
레온하르트 가문과 천호백가의 사회적인 지위는 동등한 수준이기 때문에, 그냥 같은 위치에 있는 동업자들끼리 인사 한 번 하고 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변변찮은 가주에다가 두 가문 사이에 최악이라지만.
인사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래서 이제 옷을 입도 나가려는데.
달칵. 달칵.
손잡이가 열리지 않는다.
“뭐지. 밖에서 잠갔나?”
우리가 묵고 있는 방은 화장실과 침대, 냉장고를 비롯해서 필요한 물건은 전부 존재하는 특별한 방이었다. 그야말로 손님을 위한 완벽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그렇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이 방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니,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무언의 의사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방을 밖에서 잠그지는 않는다. 세상에 어떤 미친 집이 손님방을 잠근단 말인가.
아마 천호백가를 싫어하는 시종이나 집사의 독단적인 행동이거나, 가문 단위의 압박 중 하나일 것이다.
‘문을 두들기면서 열어달라고 했다가는 아이들이 깰 수도 있으니, 그냥 열쇠 구멍을 열어야지.’
밖에서 잠갔으면, 안에서 열어야지.
뭘 어쩌겠나. 서양의 넓고 오래된 저택이라서 그런가.
아직까지 열쇠를 사용했다.
열쇠 구멍에 맞춰서 찰흙 형태의 마법을 열쇠 구멍으로 흘려보낸 다음 굳혀서 문을 열 생각이었다. 다행히 열쇠 구멍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덜컥─!
이번에는 손잡이가 제대로 돌아갔고.
문이 열리면서 바깥 풍경이 보였다.
마치 현관문처럼 두꺼운 문이었지만,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길고 긴 복도와 아침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종들이었다.
참으로 독특한 광경.
방, 침대, 화장실, 주방, 냉장고 모든 게 있는 방 밖의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이 야외가 아니라 복도라니. 새삼 이 저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음과 동시에 무언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묘한 기시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각.
마치 이런 광경을,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받았던 것 같았다.
분명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었지만 어디선가 경험한 것 같은 감각의 원인을 타고 올라가자, 나는 시작이 열쇠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긴 문.
그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만들어서 돌렸다.
그러자 펼쳐진 것은 야외 공간이 아니라 저택의 기다란 복도였다. 그야 이곳은 궁전에 버금가는 저택이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묵고 있는 방은 이미 하나의 숙소나 집이라고 여겨질 만큼 거주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바깥바람이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눈에 들어온 것은 정복을 입은 집사와 시종들을 분주한 발걸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열쇠를 중점에 두고 생각했다.
열쇠로 문을 열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열쇠. 그게 핵심이었다.
내가 이 머나먼 땅으로 온 이유는 보모와 열쇠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구하게도 백현아가 말했던 1분의 기억. 그 기간과 맞물리는 시간대가 11월에 존재했다.
‘……누가 도플갱어를 자신의 스킬로 만들지 않았는지. 어째서 이곳으로 보내서, 구태여 내 스킬로 만들었는지 알겠군.’
우발적인 마인들의 습격.
그리고 나타난 도플갱어.
어쩌면 모든 것은 도플갱어를 통해 내가 가진 지식을 손에 넣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확실하다.
놈들이 원하는 게 뭔지 깨달았다.
“열쇠.”
정원을 여는 열쇠,
이브는 말했다. 이건 맥거핀과 같은 개념이라고.
비중은 없지만, 중요한 물건이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열쇠라는 얘기만 언급된 직후 망가질 것이라고.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지금 여기에 발이 묶여 있을 때가 아니다.’
열쇠는 후반부에 쓰이는 물건이다.
내 기억을 엿본 놈들이 먼저 손을 쓰기 전에.
서둘러 열쇠를 찾아야만 했다.
문안 인사 따위가 대수냐.
그렇게 나는 저택을 박차고 달렸다. 내가 방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에 곧장 자신을 찾아올 줄 알았던 레온하르트 가문의 가주는 가주실에서 백승우를 기다리고 있다가 자연스레 소박을 맞았다.
그의 자녀들은 2시간이 지나도록 밥을 먹으러 내려오지 않는 아버지를 이상하게 여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