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56화(25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56화
잃을 것 없는 자(1)
“자네, 지금 누구 마당에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그야 위대하신 발키리의 궁전이 아니겠습니까.”
“그걸 아는 놈이 감히 나한테 도전장을 내민다고?”
발키리와 백승우의 신경전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그녀가 홀짝이던 차는 다 마시지도 못한 상태로 진작에 식어버렸다.
“도전장이라뇨.”
서로가 서로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상황.
이번에 말꼬리를 붙잡은 것은 백승우였다.
“저는 그저 계약의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걸 돈으로 준다니까.”
“자꾸 푼돈으로 후려치시려고 하는데, 그게 정당한가요?”
“……내가 4년에 걸쳐서 8억 달러를 지급한다고 하지 않았나.”
계속되는 담화에 판돈은 점점 늘어갔다.
4년에 걸쳐서 8억 달러.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녀의 사비와 세탁해 둔 자금으로 몰래 내 비밀 계좌에 입금하는 것은 물론 보석과 황금 같은 현물도 주기로 했다. 남은 금액은 발키리가 보유한 회사를 통해서, 백승우 개인이 운영하는 집단이나 단체에 후원하기로 약속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글쎄요. 금액은 크지만, 제가 말하는 푼돈은 그런 게 아닙니다. 액수를 떠나서 돈 자체가 저한테 큰 의미가 없다니까요.”
하지만 백승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번 달 제 계좌로 들어올 금액이 방금 그거의 절반 정도 됩니다.”
“……4억 달러가?”
“아, 말이 잘못됐군요. 실명 계좌와 차명 계좌를 비롯해서 약 10개 이상의 계좌에 들어오는 금액을 합산했을 경우입니다.”
고작해야 2달 치 월급. 발키리의 제안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물론 이번 달에 벌어들이는 돈 중 일부는 세탁을 위한 용도로, 또 일부는 보다 강력한 맹독을 품은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사용되겠지만 그럼에도 매달 2억 달러 이상은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음지에서 백은호가 활약해 준 덕분이었다.
녀석,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확실히 전투 능력은 떨어지지만 수완이 수준급이다.
‘녀석이 벌어다 주는 돈도 크지만, 장로들이 수익을 독점하고 있는 사업들을 되찾기만 한다면 내 손에 들어올 이익은 수백 배가 된다.’
천호백가는 세계 제일의 부호 가문이다.
그런 가문의 돈줄을 죄다 내가 독점해버릴 예정이니.
발키리가 협상 테이블에 내놓는 돈의 액수는 크든 작든 푼돈에 불과했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돈을 노리고 이 자리를 찾은 것이 아니다.
“……너. 그러면 내가 뭘 해주길 바라지?”
“별것 아닙니다. 그저 길드의 원조를 ‘한 번만’ 부탁드리려고 할 따름인걸요.”
“내가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돈을 꺼냈거늘.”
“하하. 아무리 그래도 돈으로 후려칠 생각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저희 계약이 어떤 계약인데요.”
나와 발키리 사이에 맺은 계약.
그것 거의 1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이야기였다.
“그만. 그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약속했던 것 같은데?”
“맹세가 아니라 약속이지 않습니까. 원래 약속을 깨라고 있는 것입니다. 발키리께서도 저와의 약속을 깨려고 푼돈으로 후려칠 계획을 세우신 주제에.”
말끝마다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섞었다.
노인에게 하는 말투치고는 거칠었지만, 상대는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기억해 뒀다가 되갚아주는 대인배 중의 대인배다.
“……고얀 놈. 언젠가 하늘에서 창을 맞고 떨어져 죽는다면 내가 한 짓이라고 알거라.”
“그러는 발키리께서도 어느 날 불에 타 죽고 계신다면 제 소행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연로한 노인에게 말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하다니.”
“연로하다니, 도대체 누가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혼자서 S급 열 명 정도는 가볍게 구겨서 죽여 버리시는 분이 농담도 참.”
하이랭커 <발키리>.
가지각색의 이유로 선출되는 100명의 하이랭커 중에서 단 한 번도 10위권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는 강자. 70세가 넘었을 무렵에도 방탕하고 악독한 S급 마인 열 명을 앉은 자리에서 악력만으로 구겨서 죽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그녀의 장기는 룬 마법과 창술에 있으니.
이 집안에서 연로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차라리 내가 더 연로하겠다.
“뭐라고? 이제 90이 넘은 늙은이가 연로하지. 그러면 대체 누가 연로하겠느냐.”
“……예? 90세가 넘으셨다고요?”
진짜로?
나보다 굵고 근육이 꽉 찬 근육이 선명한데?
“그러면 설마 지금까지 몰랐느냐. 내 이름을 한 번만 검색해 봤어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저보다 건강한 몸을 보고 어떻게 90세를 떠올리겠습니까.”
당연히 70~80세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저 몸으로 아흔일 수가 있지.
‘잠깐만 그러면 반대로 나는 90세보다 연로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제아무리 초인의 육체가 나이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하더라도, 설마 이 정도로 수준 차이가 심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표정이 썩었군.”
“새삼 제 몸이 둔하다는 걸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하! 마법사에게 신체 능력은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 나도 어릴 적 마법을 사용하는데 숨이 차기 시작해서 몸을 단련시킨 것에 불과하지. 그렇지만 너는 아니잖느냐.”
발키리의 눈이 백승우의 심장 부근을 향한다.
그곳에 똬리를 튼 마력의 심오함과 깊이를 엿보고 있는 눈치.
“그게 보입니까?”
“마안 같은 게 없어도 내 나이 정도 되면 그냥 보인다.”
아흔이 되더라도 그냥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방금 발키리의 말은 그냥 겉치레에 불과했다. 도저히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 외모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심오한 경지를 통해 나이로 인한 노화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게 가능했다.
사실 어쩌면 아예 나이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마법 학회에 등록된 여러 학파들 중에서도 고대의 지식을 쫓는다는 룬 학파의 수장. 가장 전통성 있는 학파일뿐더러, 룬의 특성상 문자로 이루어진 덕분에 사물에 적용해서 마법 물건을 양산하는 것도 가능했다.
더군다나 발키리는 한 학파의 수장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마법 체계를 창조하면서 어엿한 시조로 올라섰다.
‘그녀가 자신의 깨달음을 전부 소화한다면 20대로 회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그냥 손주들에게 할머니로 남기 위해 늙은 몸을 유지하고 있겠지.’
손주를 위해서 회춘하지 않는다.
회춘을 하면 보다 건강해질 수 있으니, 마법사라면 응당 회춘을 선택하겠지만 발키리는 아니었다. 그녀의 손주 사랑은 여러 노인들 사이에서도 지독하리만큼 유명한 것이었다.
오죽하면.
‘장손녀의 약혼을 없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손녀랑 같은 나이의 어린 소년에게 맹약을 맺자고 찾아왔을까.’
천호백가와 시리우스의 연합.
둘의 화합의 시발점은 자식을 가진 두 남자의 우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천호백가의 가주와 시리우스의 소가주는 친구였다.
나중에 아들과 딸을 낳으면 태중약혼을 시키면 좋겠다고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들 정도였다. 당시에도 시리우스 가문의 가주였던 발키리는 아들의 친구라는 작자를 경계했지만 그는 무척이나 선한 사내였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계산이 얽힌 끝에 발키리는 두 가문의 약혼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약혼자와 약혼녀가 된 두 아이의 만남과 교류는 퍽이나 귀여운 것이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거기에 남자아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한 면이 있었지만, 자신의 손녀딸과 함께 있으면 그 나이대의 아기가 따로 없었다.
늙은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렇지만 천호백가의 미래에 암운이 들이닥쳤다.
가주 부부의 사망. 그 결과 어린 소년은 가주가 되었고, 장로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죽은 부부의 두 딸은 슬픔에 잠긴 채, 정신을 놓았고 그런 상황을 발키리는 좌시하지 않았다.
─내 손녀딸과 파혼해다오. 물론 네 쪽에서.
그녀는 가문의 안전을 택했다. 비록 사랑스러운 아이라고는 하지만, 가문의 미래를 걸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았다.
발키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요. 둘째는 가문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 미리 말하지만 설령 네가 장로들을 휘어잡고 강력한 권력을 가진 가주가 된다고 하더라도 재결합은 안 된다. 이미 파혼한 두 사람이 재차 이어진다니. 그것 내 손녀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가문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설레발 좀 치지 마세요.
─서, 설레발?!
─단호하게 헤어지고, 그 아이에게 흠이 되지 않도록 제가 파혼을 진행할 테니 맹세하세요. 언젠가 제 부탁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부탁.
평소라면 절대로 수락하지 않을 조건이었지만, 발키리는 강제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워서 맹세했다.
딱 한 번은 무슨 일이든 도와주겠다고.
그런데 설마 알았겠나.
그 아이가 훗날 망나니나 폭군으로 불리고는, 인터넷에서 새로운 천재라고 칭송받고, 돌연 이 저택에 아무런 기침 없이 당당하게 찾아와서는 막무가내로 맹세를 요구할 줄은.
정말이지. 그 당시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시절도 있었지.”
“추억…… 은 아니죠. 사실상 저한테는 썩 좋은 시절은 아니니까요.”
“그래, 그렇겠지. 네가 그 시절의 얘기를 꺼낸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 맹세를 지키도록 할 모양이지.”
하는 수 없겠구나.
한숨을 내쉰 발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든지 도와주마. 단, 가문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요구여야만 한다.”
“무슨 일이라도 들어준다고 말씀하신 것치고는 제한이 달렸네요. 모순되지 않습니까?”
“너도 내가 이렇게 나올 걸 알고 있으니 그렇게 단호하게 나온 거 아니냐. 대신 내가 맺은 맹세이니, 설령 내 명성이 추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도와주마.”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무조건적인 약속은 받지 못했지만, 발키리가 자신의 명예를 포기하고서라도 도와준다는 것은 사실상 가문이 망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는 의미와 같았다.
백승우는 그녀의 생각이 변하기 전에 서둘러 용건을 입에 담았다.
“유럽 전역의 모든 정원을 이틀 내로 조사해 주세요. 크든 작든 상관없습니다. 공공기관 내부와 개인이 가꾸는 정원도 포함해서 위치와 개수, 정원의 사진을 제게 알려주십시오.”
“……그게 전부니?”
“아, 그리고 일주일 동안 유럽 전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 이동 수단과 경비도 있으면 좋겠군요. 아! 이걸 까먹을 뻔했네요.”
스윽,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 백승우.
이를 발키리에게 전달했다.
고이 접은 종이를 펼친 발키리의 눈이 일그러졌다.
이건 대체……?
“이게…… 뭐니?”
“유럽 전역의 명물과 명소를 기록해 둔 종이입니다. 해당 시설을 이용할 때, 별도의 예약을 하지 않고 1순위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 혹은 티켓을 세 장, 아니, 네 장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로 그게 전부가 맞니?”
“네, 그렇습니다. 세밀한 요청을 추가하자면, 정원에 대한 조사는 가급적 빨리 착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발키리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눈치로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한 종이를 전달받고는 눈까지 의심했다.
유럽 전역의 유명한 음식이나 건물 따위를 기록해 준 종이.
그곳에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누가 봐도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아서, 부모로 하여금 자식을 막 양육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실은 에르제베트와 아기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었지만.
발키리의 입장에서는 백승우가 그린 것으로 보였다.
조숙한 아이에서 삭막하고 잔인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들어주겠다는 부탁을 고작 이런 간단한 일에 써먹다니. 종이에 적힌 그림을 몇 번이고 쳐다본 발키리의 입장에서는 문득 창피함이 들었다.
이 자리가 각 가문의 가주끼리 나누는 설전(舌戰)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라고 발키리는 혼자서 생각했다.
“……가는 길에 가문의 보물 몇 점 챙겨주마. 그리고 이전에 했던 맹세처럼 아무거나 들어주지는 못하겠지만, 나 혼자서 어떻게든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은 최대 5번까지 들어주마.”
“예? 가, 감사합니다.”
“……아니다. 10번까지 들어주도록 하마. 그 정도는 되어야 내 손녀딸과 파혼한 건에 대한 수지 타산이 맞겠어.”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사님.”
갑자기 돌변한 발키리의 태도에 백승우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고민하다가 순수하게 인사를 하는 걸 택했다.
그 모습마저 발키리에게는 애잔하게 보였다.
정작 백승우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이 괜히 발키리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불쌍한 아이 같으니라고.
─후후, 완전 개판이네. 설마 각 가문의 대표들의 날 선 담화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될 줄 감히 누가 알았겠어.
물론, 그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제삼자의 시점에서 지켜본 타마모의 입장에서는 희극이 따로 없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재미있는 장면을 봤다면서 깔깔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