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58화(258/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58화
잃을 것 없는 자(3)
오늘도 나만 잠들지 못하는 새벽.
차량에서 내린 나는 구석진 폐허를 향해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수상쩍어 보일 광경이었지만, 애당초 길가에 사람이 나 혼자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었다.
이 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야근을 하는 사람일 테니, 피곤한 표정으로 정신을 붙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상황 속에서 폐허에 도착했다.
“폐허. 말이 폐허지 그냥 문 닫은 식물원이네.”
화원 혹은 정원.
이 조건에 충족하는 장소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까지 충족하는 장소는 더러 있었다.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생각보다 훨씬 초라한 곳에 있었네. 세상에 누가 맥거핀을 이렇게 취급해. 아니면 뭐. 이것도 의도됐다는 뜻인가?’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중요한 생각은 아니었다.
상념을 끊은 나는 폐허로 들어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정도야 어렵지 않게 열 수 있었다.
펑!
작은 폭발과 함께 절묘하게 문짝만 날아갔다.
폐허 내부의 식물원에 발을 들이자 깨진 유리 조각이 발밑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식물을 위해 설치해 둔 장치와 유리 창문은 산산조각이 났다.
형광등에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서 불빛 한 점 없는 식물원에서 시각은 무의미했다.
“굳이 불을 피울 이유는 없겠지.”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는 이유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야 확보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시각이라는 요소도 어떻게든 훈련하면 다른 오감들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않으면 이 세상에서 맹인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터벅터벅.
식물원은 생각보다 넓고 장애물이 많았다.
덕분에 걷는 것이 어려웠지만, 더할 나위 없이 고요했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 고요한 밤의 거리보다도 적막하고 침울한 분위기가 식물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딱 좋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나약한 인간은 미쳐가지만.
이미 미친 사람에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도리어 기회가 된다.
소리란 곧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만을 듣고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찌개가 끓는 소리와 밥의 뜸을 들이는 소리를 통해 저녁을 유추하는 등.
소리만으로 온갖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소리가 없다면 아무런 상호 작용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타인과 상호 작용할 요소가 없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브가 그때 뭐라고 했더라.’
몰라.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서 떠오르질 않는다.
이미 마모된 기억이었다.
혹시 누군가의 수작으로 그 기억을 망각한 것은 아닐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런 의심이 들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결국은 잊은 기억이다.
잊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모래사장에서 퍼 온 한 줌의 모래.
그 모래를 다시 모래사장에 놓는다고 둘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방금 놓은 모래를 다시 줍는다고 조금 전의 모래와 지금의 모래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추억은 모래와 같고, 기억은 모래가 되기 전의 돌과 같지.’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 용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나처럼 기억력이 특출나게 좋은 녀석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떠올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기억은 마모된다.
그것은 마치 돌과 같아서, 제아무리 단단하고 견고한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돌이 그러하듯 바람과 세월에 마모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모 끝에 모래가 남듯.
기억이 마모된 끝에는 추억이 남는다.
나는 그 추억을 회상했다.
그렇지만 추억을 아무리 회상해도 떠오르는 기억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정보는 없었다.
기억을 되짚어도 아무런 수확이 없지만, 그 시절의 감정은 마음이 되새기고 있었다.
나는 그 추억을 되짚으며 식물원을 마저 걸었다.
홀린 것처럼 어딘가를 향해서 직진하지는 않았다.
그냥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관객처럼 식물원 추천 노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때도 이런 식물원이었지.’
추억 속에 남은 흐릿한 기억.
분명 그 기억 속 배경은 식물원인 것 같았다.
뭐, 아닐 수도 있지. 기억이란 게 원래 그런 법이니까.
순간순간 미혹이 들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식물원을 한 바퀴 다 돌자 뻥 뚫린 곳에 도착했다.
공터는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식물원 내부에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벽이 통째로 무너졌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바닥에 흙이 넓게 깔린 걸 보아하니 큰 나무 같은 걸 심어둔 곳이었나 보네.”
빛이 없으니 정답을 알 순 없지만.
내 생각을 긍정하는 것처럼 바닥에는 무너진 나무들이 즐비했다.
곳곳에 뿌리째로 안전하게 뽑힌 나무가 있는 반면, 빛과 물도 없는 이곳에서 말라죽은 나무도 있었다.
‘비싸고 가치가 있는 나무들은 팔고, 그렇지 않은 나무는 방치했나?’
썩은 나무의 향과 감촉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특별히 벌레나 개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 썩은 나무는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안식처였지만, 나무와 마찬가지로 빛과 물이 없는 이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설령 살아가려고 했더라도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바닥이 조금 이상하네.’
이런저런 철학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본래 형이상학적인 것보다는 형이하적인 것들. 형체를 가진 것들이 더 인상적인 법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철학 따위, 바닥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의해 금세 묻히고 말았다.
“……이건가?”
바닥으로부터 느껴진 감각은 금속, 돌 같은 자연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식물원 복도와 같은 재질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단단하고 타원형에 뾰족하고 짧았다.
이런저런 감각들이 신발 너머로 느껴지는데 도저히 뭔지 모르겠다.
발로 누르고 굴려봐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매번 다른 감촉과 감각이 뇌리를 스친다.
무척이나 기묘한 느낌에 확신이 들었다.
‘이거 맞네.’
뭔지는 몰라도 그걸 손으로 잡았다.
찰랑!
특유의 소리를 내며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열쇠였다.
손으로 쉽게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열쇠.
자칫 잘못했다가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평범했다.
그 감촉도 평범한 열쇠와 다를 바가 없어서, 새삼 내가 발끝으로 느꼈던 감촉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상념에 잠기지는 않았다.
아직 생각에 잠길 때는 아니었다.
열쇠를 찾은 것으로 이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 열쇠를 품에 안고, 안전하게 보호해야지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한발 늦었군. 나보다 빨리 움직였을 놈들이 이제야 도착하다니.”
쿵! 쿵!
폐허의 천장을 뚫고 들어온 마인들의 존재는 실로 불편했다.
위험하다는 느낌보다는 불편하고 귀찮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천장에서 들어오는 놈들이 생각보다 많다?
족히 100마리 가까이 되는 놈들.
벌레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도대체 얼마나 떼를 지어서 온 거야?
* * *
마인들이 나를 발견하고 몸을 날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범위가 넓은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지금 이곳은 식물원. 밀폐된 공간이라서 죽음을 각오하고 일대를 무너뜨릴 각오로 공격하면 치명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타격을 입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게 그런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모두가 육탄전. 오직 주먹과 마기로 승부를 보기 시작했다.
다만 그마저도.
짤랑!
“!!!!”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열쇠가 가슴 주머니에서 흔들리면 주먹을 날리기를 주저했다.
무언가 함부로 대했다가는 망가질까 봐 조심하는 모양새였다.
‘이놈들 설마.’
뻔한 움직임에 의도가 숨겨진 것은 아닌가 의심했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가 열쇠가 망가지면 대계가 흐트러질지도 몰라서 조심하고 있나 봐?”
“!!!!”
“그런데 말이지. 너희들이 아무리 강해도 손속에 자비를 둔 이상.”
자비가 없는 나를 이길 수는 없어.
화르르─!
어디서 피어오른지 모를 화염이 어느 한 마인의 머리에 직격했다.
갑작스러운 광원에 놈들의 시야는 일시적으로 마비되었고, 그 틈을 타서 날아간 화염이 마인의 머리에 직격함과 동시에 터지면서 불똥과 뇌수를 사방에 퍼뜨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마인들.
사라지는 불꽃에 놈들의 얼굴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 불길을 통해 보인 마인들의 얼굴은 최고로 멍청해 보였다. 설마 저런 걸로 죽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
진짜 사람도 어지간히 무시해야지.
“설마 너희 지금 귀족이라고 뻗대는 거냐?”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기는, 손맛 덕분이지. 귀족이라는 놈들은 허리가 뻣뻣해서 그런가, 허리를 부술 때 손맛이 일품이거든.”
푸하하하!
크게 웃은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 수많은 마인들이 전부 귀족일 가능성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100명 미만이며, 후작과 공작이 깨어나기에는 시기가 지나칠 정도로 이르다. 그렇지만 여기에 남은 작위에 속하는 남작, 자작, 백작이 상당한 비율로 섞여 있다면.
‘방금처럼 쉽게 죽이기는 어렵겠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불꽃을 일으켜서 눈을 질끈 감게 만들 틈을 노려서 머리를 꿰뚫은 그 방법. 그건 더 이상 안 먹힐 게 뻔하다.
그러면 뭐.
‘지킬 게 있는 내가 손해 좀 감수해야지.’
나는 잃을 것이 있었다.
바로 열쇠였다.
열쇠는 맥거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소설의 끝을 금방 당겨주는 일종의 무대 장치였다.
이 세상의 결말이 희극으로 끝나든 비극으로 끝나든 이 열쇠를 사용하는 순간, 문이 열리고 손잡이를 연 자는 곧 최종보스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보스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질 않지만.
아무튼 그런 장치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브의 설명과 그녀가 저술한 소설에는 모두 열쇠가 끝끝내 사용된 적이 없었다.
적이 줍든, 주인공이 줍든.
열쇠는 격한 싸움으로 망가진다.
‘최종보스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하지만.’
결국 열쇠는 열쇠.
초인들의 싸움에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망가지기 마련이다.
열쇠가 망가질까 공격에 수위 조절을 해야 되는 것은 놈들만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가 열쇠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펼쳤다.
“이 정도는 열로는 열쇠가 변형되지 않겠지?”
“!!!!”
내게는 잃을 물건이 있다.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잃을 물건을 보관할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게는 무언가를 보관할 공간이나 틈 따위가 없다.
억지로 비집어서 공간을 만들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잃어야 될 터.
“원래 인생은 한 방이지.”
[심장에 사그라든 「태양절맥」의 불씨가 다시 한번 찬란하게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경고! 과도한 열기는 몸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다시 되찾았던 건강.
그거 포기하고, 한번 끝까지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