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9)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59화(259/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59화
잃을 것 없는 자(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놈은 잃을 것이 없는 녀석이다.
그 말은 사회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지만, 검을 맞대고 목숨을 걸고 싸움을 펼치는 우리 같은 놈들은 매번 체감하는 말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녀석일수록.
텅 빈 놈이야말로 가장 무섭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무능한 아군이 악의 없이 겨누는 총구나 무능한 상관의 지휘로 죽어가는 병사들 따위가 있겠지만.
그런 건 어지간한 경지에 이르면 무시할 수 있다.
총?
그냥 막거나 피하면 그만이다.
무능한 상관?
무시하면 그만이다.
무시한다고 길길이 날뛰면, 그때는 도망치든 두들겨 패든 알아서 할 일이다. 여하튼 이런 말들은 어떻게든 무시할 여력이 존재했다.
하지만 잃을 것 없는 놈을 적으로 돌리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모한 짓이지.’
쾅─!
무언가 터지는 소리.
불꽃이 비산하는 소리였을까.
그도 아니면 머리가 터지는 소리였을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던 백승우는 점점 몸을 달구는 심장의 고온을 느끼며 더 매서운 화염을 마구잡이로 날렸다.
화르르르─!
작은 반딧불 정도의 불꽃이 하늘을 유영했다.
낙하하는 물체가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달리,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도저히 불꽃이 움직일 방향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면 화상을 각오하고 그냥 돌진하면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불꽃의 얘기였다.
“내 다리 내 파, 팔이……!”
“야, 이 새끼 쇼크 와서 기절했어! 어서 밖으로 던져!”
“지금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너희들은 어서 피해라!”
“불의 크기가 작고 많다고 무시하지 마라! 불덩이 하나하나가 상급 마법과 동등한 수준의 화력을 내포하고 있……!”
“아 씨! 뭔 국소 마취처럼 몸을 부분적으로 노리는 작은 불씨만으로 이 꼴이 되냐고!”
선봉으로 앞에서 마인들이 불꽃과 접촉했다.
바람에 날려 보낸 민들레 홀씨처럼 팔다리에 내려앉은 불꽃은 이내 불씨가 되어 그들의 피부로 파고들었다.
이윽고.
─펑!
파고든 살점과 함께 불꽃이 폭약처럼 터졌다.
밀폐된 식물원에서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많은 마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에 휘말렸다. 폭발과 함께 섬광이 마인들의 시각을 봉쇄하고, 사방에서 들리는 폭발음에 청각이 일시적으로 멀었다.
폭발의 매캐한 연기와 살점 따위가 익고 타는 냄새가 코를 뚫을 것처럼 강렬하게 진동하고, 설마 그 불꽃이 자신들의 손과 다리 혹은 머리에 내려앉을까 봐 함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렇게 촉각도 봉쇄된 상황.
그나마 오감 가운데 미각이 남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미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오감이 완전히 멀어버리지는 않았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오감을 뒤흔드는 강렬한 자극에 정신을 차라지 못했겠지만, 여기 있는 마인들은 소수 정예의 강자들이었다. 심지어 작위를 받은 귀족도 여러 명 있었다.
일시적으로 마비된 오감이었으나.
서서히 오감이 회복된다.
마인 특유의 빠른 회복 속도에 반격을 다짐하는 그들이었으나.
후두둑!
무언가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과연 마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의 빠른 회복 속도가 도리어 공포심과 긴장감은 증폭시켰다는 사실을.
“방금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그렇지? 설마 이때를 틈타서 하수도로 도망친 건 아니겠지?”
“하수도는 아니야. 분명 물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곳의 하수도는 진작에 말랐어.”
“그러면 뭔데?”
“아둔한 놈들. 그러니까 너희들이 작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두 마인의 대화에 오만한 말투가 끼어들었다.
둘이서 동시에 뒤를 돌아보자 고압적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남작, 「오세」였다.
오세는 마인과 인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인처럼 보통의 인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독특하게도 몸이 다른 게 아니라 얼굴이 달랐다. 날카로운 이빨과 아름다운 흑색의 털.
녹색 동공이 아름다운 표범의 얼굴이 마인들을 향했다.
“오, 오세님……!”
“내 이름을 부를 시간에 적을 노려봐라.”
“네, 넵!”
“네놈들. 방금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 거 같으냐?”
어떤 소리냐고?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던 소리.
희미하지만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촉촉한 소리도 함께 들렸다. 무척이나 특이한 음성이었지만, 어떤 소리였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두 마인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둘의 모습에 「오세」는 헛웃음을 흘렸다.
“시체가 떨어지는 소리도 못 알아듣다니. 우리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이후의 세상은 참으로 평안했던 모양이군. 나 때는 하루에 열 번도 듣던 소리였는데 말이야.”
시체가 떨어지는 소리?
농담인가 싶었지만, 회복되는 후각으로 돌연 짙은 피의 냄새가 풍기자 마인들은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신선한 시체의 냄새.
우리들이 오감을 잃은 직후, 그 짧은 시간 동안 식물원에 피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많은 시체가 생겼다.
연기가 가라앉고 앞을 확인할 여유가 생긴 마인들은 눈앞의 풍경을 직시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여온 이들이었으나,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끔찍하다는 생각과 함께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이, 이게 뭐야……?”
“……하나, 둘, 셋…… 마흔하나, 마흔둘. 거의 절반이 죽었어.”
“큰 손실이로군. 「푸르손」. 소생시킬 수 있겠나?”
“전혀. 설령 죽지 않아서 회복시켜야 한다고 하더라도 무리야. 상처를 낸 방식도 그렇고, 저주와 독기가 하도 지독해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돼.”
“하긴, 그 정도로 끔찍하긴 하군.”
식물원의 한 공간이 피로 얼룩졌다.
이 자리에서 마인들이 마흔둘씩이나 죽었다. 사방이 피로 얼룩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초반에는 대부분의 마인들이 불에 타서 죽었다.
살점과 함께 피는 증발하고, 몸은 잿더미가 되며 폐허를 검게 물들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피가 튀길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마인들의 살점과 몸이 불에 타오르면서 연기가 사방을 뒤덮은 그 짧은 순간.
벽에 피를 덕지덕지 칠할 여유가 생겼다.
“이봐 「푸르손」.”
“왜 불러?”
“정말로 마흔둘이 죽은 게 맞나?”
“……응?”
마인의 눈이 바닥을 향했다.
수많은 시체들. 그들 가운데 몸이 불에 타지 않은 시체가 대부분이었다. 불에 탄 것들은 팔이나 다리만 겨우 남긴 채, 재가 되어 식물원 내부에 먼지와 함께 떠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말이야.”
“숫자가 이상해? 그렇지만 바닥에 남은 시체는 틀리지 않았어. 죽은 시체들로부터 검출되는 유전 정보는 총 42종류. 신원이 불분명한 놈은 찾기 버거웠지만,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어.”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러면 뭔데?”
“바닥을 다시 한번 제대로 살펴봐라.”
“바닥을?”
손가락으로 바닥을 삿대질했다.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향해 「푸르손」이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는 몸이 잿더미가 되어서 오른팔만 겨우 형체를 남긴 시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는 이미 「푸르손」이 사망자로 집계한 목록에 존재했다.
“저건 이미 기록했어.”
“아니, 타다만 팔 말고. 그 옆에 있는 잿더미를 보란 말이다.”
“잿더미를?”
팔 바로 옆에 사람의 형상처럼 남은 잿더미의 흔적.
“양이 좀 많지 않아 보이나?”
“……그런가? 보통 마인의 질량이 이 정도 하지 않아?”
“아니, 자세히 봐라. 이게 사람 한 명을 태워서 나올 수 있는 양의 잿더미인지를 말이다.”
상대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푸르손」은 두 눈을 똑바로 떴다.
그의 작위는 백작. 본래라면 이렇게 명령을 들을 처지가 아니었지만, 상대도 「푸르손」과 같은 백작이었다.
백작, 「로노베」.
물론 「로노베」의 위계는 「푸르손」보다 낮지만, 착실한 면이 있어서 이렇게 반말과 명령의 섞은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화 한 번 낸 적이 없다. 이걸 봐라. 지금도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았느냐.
“……어라? 양이 좀 많네.”
“그렇지?”
“거의 곱절이야. 그렇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결론을 낼 수가 없어.”
잿더미의 양이 죽은 사람의 숫자에 비해 많았다.
기묘한 정보였지만, 결론을 도출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양의 정보였다.
이에 「로노베」가 벽을 가리켰다.
피로 물든 벽과 천장.
“어때 이상하지 않나?”
“뭐가? 주변에 난도질된 시체를 봐. 하나같이 장기가 바깥을 나돌고 있어. 머리뿐만 아니라 전신을 참수당한 놈들도 여럿이고. 마인의 혈류를 고려했을 때, 참수와 동시에 뿜어져 나올 피는 천장에 닿아도 이상하지 않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에도 양을 보란 말이다. 하여간 이렇게까지 자세히 말해줘야 되나.”
“이번에도 양을?”
피의 양?
그러고 보니 천장과 벽을 칠한 피의 양이 좀 많다.
단순히 물감을 붓에 묻히고 휘둘러서 생긴 얼룩 정도의 양이 아니다.
“……아하. 대야에 피를 잔뜩 담고 벽에 던진 느낌이야.”
“많다는 얘기를 참신하게도 하는군.”
“그렇지만 자세히 관찰하니 그런 흔적이 보이는걸.”
최소 30명은 참살해야 겨우 나오는 피.
현재 집계한 사상자는 42명. 불에 탄 시체의 양이 30구를 넘어버리니, 논리적으로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증거는 모였어. 그렇지만 아직 결정적인 게 없어.”
“결정적인 증거? 당연히 있지.”
“뭔데?”
“주변을 둘러봐.“
주변을 둘러보라.
「로노베」의 말에 따라 주변을 훑었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주변을 보라고 말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치로 그를 쳐다보자 「로노베」가 말을 이었다.
“살아 있는 마인들의 숫자를 세봐라.”
“살아 있는 마인? 그야 예순…… 아니네. 열여덟이야.”
“그래, 이 자리에 숨을 쉬고 있는 녀석은 18명이야. 그렇다면 나머지 인원은 어디에 있을까? 다른 곳을 수색하러 갔을까? 그렇게나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서?”
거듭되는 물음에 「푸르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을 포함한 18명의 마인들을 제외하고, 이 자리에 없는 놈들 중에는 귀족도 여럿 있었다. 특히 백작이 두 명이었다.
그런데.
연기가 자욱했던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백작 두 명이 당했다고?
차라리 연기가 자욱한 그때, 마인들이 식물원의 다른 방을 찾으러 갔다는 것이 훨씬 현실성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이 고하고 있었다.
거의 다 죽었다.
마인의 살점이 불에 타면서 발생한 연기가 그들의 시야를 가린 그 찰나에, 정말로 다 죽었다.
“마, 말도 안 돼. 정말로 다 죽었다고?”
“그러면 다음.”
“……다음? 다음이 또 있어?”
“주변에 서 있는 얘들을 봐.”
주변에 선 얘들?
자신들을 제외한 16명의 마인.
그들을 쳐다보는 「푸르손」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당혹감이 의문으로, 의문에서 공포로 변하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
의문을 내뱉은 순간, 그것이 그의 유언이자 단말마가 되었다.
푹!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푸르손」의 목과 뇌를 관통했다.
숨이 막히고 사고가 막히는 그사이, 「푸르손」의 눈을 간신히 상대를 쫓고 있었다. 그곳에는 꼬리 달린 괴물이 자색 화염을 몸에 두른 채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한 가지 머릿속에 남던 것이 있었으니.
‘꼬리가. 그의 꼬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하나 많아.’
꼬리는 대다수의 생물에게 있어서 쉽게 드러나는 신체 부위였다.
그런 꼬리의 개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꼬리에 대한 정보도 이런데, 다른 정보라고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런 실정이니 놈이 나를 기만하는 것도 모른 채,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겠지.
‘우리는……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을 내걸었어. 열쇠는 빼앗지 못하겠지.’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갖추지 못했다.
그 사실을 원통하게 여긴 「푸르손」은 눈앞이 흐려짐과 동시에 몸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몸이 심해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 끝에는 거대한 아가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