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6화(2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6화
에프넬의 화원(1)
한 달 만에 아카데미 밖으로 나왔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것이 신기했다.
“월차가 이렇게 빠르게 수리(受理)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아카데미 상부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입사한 지 1달도 채 안 된 신입 조교일 거다. 지금같이 혼란한 시국에는 구설수를 막기 위해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남화연에게 직접 부탁한 것이 도움이 됐나?
어쩌면 천호백가라는 내 출신 성분이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아니면 습격에 대처한 내 공을 치하하기 위할 수도 있지.
‘뭐가 됐든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싸웠는데, 그 보상이 고작 월차라면 양심 없는 짓이다.
내 치료비는 응급처치를 제외하고, 전부 천호백가에서 지급됐다. 다시 말해 사비를 쓴 셈이다.
그런 와중에 보상을 이따위로 대체한다면, 이사장이란 놈은 진짜 찢어 죽일 놈이다.
“이사장에게서 얻어야 하는 권한이 있단 말이지.”
금서고의 열람 권한.
내가 이사장에게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러나 잘 될지는 모르겠다.
금서고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아카데미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든다. 괜히 금서고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젊었을 적 이사장은 던전을 적극적으로 활보하는 플레이어였다는데, 부디 그 소문처럼 씀씀이가 넓었으면 좋겠다. 물론 소문만으로 그를 판단할 수는 없다.
소설의 특성상 이야기는 주인공과 주연들 위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이사장은 원작에서 비중 있게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서 함부로 추측하기 어렵다.
“하아, 그나저나 차량은 언제 도착하는 거야?”
한숨을 내뱉으며 신경을 주위로 돌리자,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였다. 지금 나는 어느 한 차량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가문에서 오기로 한 차량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원래 계획은 월차를 나가서, 던전만 클리어하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본가에서 연락이 왔다. 월차를 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차량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기왕 아카데미 밖으로 나온 김에 가문 내부의 일도 건드리려 했다.
그런데 차량이 하도 안 오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지체시켜서, 내 월차를 망치려는 건가?’
근거 없는 비약이지만, 신빙성은 있었다.
당장 엘릭서 값을 뱉으라고 편지를 보내는 여동생이 있는 가문이다.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다.
“한 시간 안에 안 오면 던전에나 가야지.”
가뜩이나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은데, 이런 곳에서 낭비할 시간은 없다.
월차는 오늘 하루뿐이다.
던전을 클리어하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다.
‘에프넬의 화원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니까.’
‘에프넬의 화원’.
난이도 D급의 던전으로 어려운 던전은 아니다. 산송장이 된 나조차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난이도가 아니다.
에프넬의 화원은 어떠한 특수성 때문에, 대한민국 3대 미공략 던전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히든 피스가 숨어 있다.
나는 반드시 그 히든 피스를 얻어야만 한다.
주인공을 강제로 시나리오에서 퇴출시키기 위함도 있지만, 그 히든 피스는 나와 어울리는 구석이 있다.
병약하고 허약한 내가 차지하면 분명 도움이 되리라.
“반드시 오늘 안에 얻어야 돼.”
시간이 흐르고, 시련을 겪을수록 유용해지는 히든 피스의 특성상, 다음 에피소드가 오기 전까지 얻어 최대한 단련해놔야 한다.
머릿속으로 내가 세운 계획을 복기하는 사이. 검은 차량 한 대가 내 근처로 다가왔다.
크고 튼튼해 보이는 외관의 검은 차량.
운전석에서 검은 양복의 사내가 나오더니, 내게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내 시선이 검은 양복의 머리와 등허리를 향했다.
그곳에 여우 귀와 여우 꼬리는 없었다.
천호백가의 사용인이되, 핏줄은 아닌 모양이다.
상대와의 계급 차를 파악한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최대한 격식을 갖추며, 굵고 낮은 저음으로.
“그래,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길이 조금 막혀서…….”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줘야 되나?”
사과하는 사내의 말을 끊자 그의 표정이 뒤틀렸다.
그 모습이 퍽 기꺼웠다.
여기서는 운전기사마저 나를 무시하는구나.
“표정을 펴라. 그러다 한 대 치게 생겼군.”
“……죄송합니다.”
“알면 가만히 있지. 뭘 그리 썩은 표정을 짓나.”
화가 나다 못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야, 도대체 가문에서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이럴까.
확실히 가문은 휘어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오만한 말투는 오랜만이라 조금 어색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얕보이면 안 된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차 안에 탔다.
“앞으로는 째깍째깍 다니고, 뒷문도 열어주도록.”
“아, 알겠습니다.”
차 안에 타자, 사내가 크게 한숨을 쉬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표정이 어두운 것이 차 사고라도 낼 기색이다.
얼굴 참 험악하게 생겼네.
“…….”
그대로 차를 모는 사내는 본가로 향했다.
나는 그의 뒤통수를 힐끔 쳐다보며, 어깨를 두들겼던 오른손을 만지작거렸다.
‘운전기사치고는 강해. 제법 단련이 돼 있어.’
녀석, 편의상 검은 양복이라 부를 녀석은 꽤나 강하다.
검은 양복의 어깨를 두들긴 순간, 마력을 얇고 은밀하게 펼쳐서 탐색했다. 신체 능력은 현역에 뒤처지지 않고, 마력량도 준수하다.
이 정도면 운전기사가 아니라 경비원으로 써도 될 만한 재목이다.
그런 녀석이 운전기사로 나를 데리러 왔다라.
‘재미있네.’
벌써부터 견제인가.
도대체 본가에 들어서면 무슨 일이 나를 반길지 기대됐다.
나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책 한 권을 펼쳤다.
운전은 책 한 권을 통째로 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운전 하나는 편안하게 잘하네.
과연 고명한 가문의 운전기사다운 드라이빙이다.
인성은 나빠도, 실력은 있다는 건가.
* * *
“……저택이 넓네.”
책 한 권을 다 읽을 즈음, 차량은 한 저택으로 들어섰다.
첫인상은 뭐랄까. 넓다, 그것도 아주 더럽게 넓다.
대한민국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넓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속독(速讀)으로 읽는 편이라, 그리 오랜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마도서의 경우에는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오래 걸릴 뿐.
손에 들린 책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가주님.”
“그래, 수고했다.”
운전기사가 뒷문을 열어주며 차에서 내리자. 저택의 웅장함이 더 극적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돈을 많이 투자한다고,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이 탄생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이 벅찬 감동은 무엇일까.
내 심미안을 만족했기에 차오르는 느낌이 아니다. 이건 뭔가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다.
‘마치 강제로 감동을 느끼게 하는 듯한 무언가가…….’
「요마안」
붉은 동공이 열리며, 자수정처럼 반짝이는 마안이 활짝 열렸다.
마력의 유동과 사물의 허실을 꿰뚫는 마안이 저택을 살피자.
파스스.
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푸르른 마력의 전류는 시야를 방해해, 강제적으로 「요마안」을 종료시켰다.
“허어…….”
나는 눈가를 꾸욱 누르며 감탄을 내뱉었다.
견고한 술식이다. 방어, 아니, 방공에 가까운 수준의 마법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환상과 환영 따위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내부에는 약소하지만, 미로까지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무슨 던전인가.
“가주님? 무언가 이상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워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차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나를 에스코트하던 중, 돌연 내가 멈춰 서자 그가 의문을 표했다.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거짓이지만, 틀린 말은 아닐 테니까.
이 몸에 빙의한 시점은 한 달 전. 그동안 아카데미 밖으로 나간 적은 없으니, 집에도 한 달 넘게 돌아가지 않은 셈이다.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자,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거짓말.”
“……설마, 집에 돌아오는 것을 싫어할 리가 있나.”
“그것도 거짓말.”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기사 옆에 서 있는 소녀.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싸가지없던 운전기사는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가 높은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였다.
하, 설마 저택도 아니고 정문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나는 소설 속 묘사와 흡사한 소녀에게 오른손을 건네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나 설희야.”
“오라버니, 역겨우니까 그런 말투는 그만두시죠. 제 속을 메스껍게 하기 위함이었다면, 충분히 성공하셨답니다.”
“딱히 노린 건 아닌데.”
“간혹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듯이, 오라버니도 그런 모양이네요. 행여나 엘릭서 값을 요구한 편지 때문이라면, 취소할 테니 그만해 주세요.”
소녀를 본 순간 직감했다.
저 첫눈처럼 새하얀 여아가 내 여동생이라는 것을.
여우의 것처럼 쫑긋 선 순백의 여우 귀.
등 뒤에는 새하얀 여우 꼬리 세 개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고아하게 차려입은 한복은 그야말로 양갓집 규수라는 오래된 표현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나저나 세 개의 꼬리라….’
삼미호(三尾狐), 나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수련의 경지였다.
그만큼 저 아이의 신통력은 뛰어나겠지. 푸르른 수정처럼 일렁이는 눈동자가 그 상징이렸다.
내게 자수정처럼 빛나는 마안이 있다면, 그녀에게는 눈 녹은 듯한 푸른 벽안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눈은 ‘요마안’과는 동일하되 결이 다르다.
‘용안(龍眼)인가. 아니, 그렇다기에는 기세가 약해. 미래시(未來視) 계열 같지도 않고.’
백설희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벽안은 내게서 무엇을 엿보고 있을까.
문득 호기심이 든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마침 가족회의를 할 시간인데 잘 됐네요.”
가족회의?
백승우와 백설희에게 가족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누이인 백설하 정도려나.
그렇게 말한 백설희는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걸음에 정문이 자연스레 열리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드넓은 정원을 지나, 저택의 중간에 다다랐다.
겉에서 볼 때는 거대한 저택 한 채만 보였는데, 여기서 보니 또 다르다. 여러 채의 작은 저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고용인들의 잠자리나 장로들이 지내는 장소일까.
궁금함에 입이 간지러웠지만, 묵묵한 백설하의 분위기 때문에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거대한 저택, 본관.
그곳의 문을 연 순간.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그리고 가주님.”””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복장은 집사와 하녀를 연상케 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귀족 가문의 가주라는 사실이.
21세기에 뭔 놈의 명예 귀족이 존재하나 싶었지만.
이렇게 몸으로 체감해 보니, 느껴지는 격이라는 것이 있다.
‘과연 구천세가는 다르다는 건가.’
─구천세가(九天勢家)는 내가 설정했지만, 너무 사기적인 집단 같아.
무력, 금력, 권력 가질 수 있는 모든 힘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설정상, 대지를 중심으로 하늘을 구 등분 하는 권세 있는 가문들이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 귀족이라고 불릴만하지 않겠어?
이곳에 속한 가문은 총 아홉으로.
내가 속한 천호백가, 독일의 라인하르트 가문, 그리스의 아이리스 가문 등등. 아인의 핏줄을 잇는 자들이 속해있다.
다른 말로는, 직관적이게 ‘이종족의 가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직 수천 년의 전통과 조상으로부터 강력한 형질을 내려받은 가문만이 귀족을 자칭할 수 있다.
이러한 구천세가는 각 나라에 한 가문 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그들 간의 알력 다툼이 상당한 편이다.
천호백가가 몰락하고 있는 와중임을 고려하면, 구천세가의 위용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자, 다른 가족들은 전부 회의실에 들어가 있을 테니. 저는 이만.”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백설희가 들어간 방에는 큼지막하게 회의실이라고 적혀있다. 회의실 내부의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다만 내부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보통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최소 유렌……. 아니, 전원 그 이상인가.’
전장에서 단련된 경험과 S급의 감각이 경고를 고했다.
지금 내가 발을 들이려는 것은 진정한 괴물의 소굴이라고.
아카데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다.
“원로회인가.”
이 집구석에서 이만한 기세를 내뿜을 수 있는 존재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몇 없다.
아홉, 아니 열 명이려나.
마침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도, 백설희를 제외하면 딱 열 명이다.
강렬한 기세에 몸이 무거워진다.
그 마법사 사냥꾼에게조차 느낀 적 없는 감각.
이토록 위축되는 감각은 오랜만이다.
덜컥!
커다란 문을 양손으로 힘차고 열었고, 회의실 내부에는 넓은 원탁이 있었다. 원탁을 둘러싼 열한 개의 의자.
그리고 그보다 한 칸 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왕좌(王座).
나는 홀린 듯이 왕좌를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회의실 내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오직 저것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터벅터벅, 원탁을 가로질렀다.
원탁에 앉은 자들은 나를 고깝게 쳐다봤지만, 차마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야, 저 자리는 본디 내 자리.
가주가 앉는 가주석이기 때문이다.
“……하, 이런 느낌이었나.”
붉은 호안(狐眼)이 왕좌에서 원탁을 내려다봤다.
원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나와 다르게, 하얀 머리와 여우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와 정반대되는 색상인 것과 더불어, 꼬리의 숫자도 훨씬 많다.
“이건 정신적으로 부담될 법도 하겠네.”
모든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
백승우의 체모는 검은색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얀색이다.
백승우의 눈동자는 붉게 타오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잔잔한 호수를 품고 있다.
혼자서만 동떨어진 느낌이다.
좋은 기분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생활과 무리 생활을 하는 족속.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도리어 차별감을 조성할 따름이다.
덥석, [파이로키네시스]의 바탕이 되는 염력으로 원탁 위의 서류를 잡았다. 글씨가 작고, 많지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가문에 대한 안건이다.
“육아 휴직인가. 확실히 이런 안건에는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크흠…….”
“이보게 가주, 여긴 어찌하여 온 것이요. 당신이 있을 자리는 이곳이 아닐 텐데?”
갑작스러운 내 개입에 당황스러워하는 기색들이 더러 있었다.
대부분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서열 관계가 엉망인가.’
군을 전역했던 입장으로서는 우스울 따름이다.
그럼 어디, 기강을 한번 잡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