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6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67화(26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67화
개학과 서막(2)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꽃이 만연하던 입학식과 다르게, 개학식은 따스한 햇살 아래 열심히 광합성을 한 우거지고 푸르른 산천초목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건 조금.
“과한 것 같은데?”
─일대를 아예 밀림으로 만들어버렸어.
심할 정도로 울창한 풀과 나무.
도대체 방학 동안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걱정될 정도였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겠지?”
─아, 저기는 예쁜 양귀비가 피어 있어서 좋아하던 화단이었는데, 아쉬워라.
“……아카데미에 양귀비가 있었다고?”
─몰랐어? 비록 다른 잡다한 꽃과 교접하고 유전자를 조작했는지, 모양과 향이 일반적인 것과는 달랐지만 양귀비 특유의 느낌이 있었어.
“……박학다식한 네 지식도 대단하지만, 아카데미 내부에서 양귀비를 키우려던 미친놈은 더 대단한 것 같군.”
아무래도 방학 동안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상했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아카데미 화단에 양귀비를 키웠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미친놈? 놈이 아니라 년이야.
“여자였나.”
─네 스승이야. 남화연, 그 음침한 여자.
“…….”
─아, 참 그리고 양귀비라고 말했지만 특유의 중독적인 특성을 거세한 품종인 것 같더라고. 그런 건 화단에 키워도 상관없잖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게 여길 자신이 있었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저 화단에 무슨 꽃이 피었었는지는 몰라도 아쉽네. 한 번쯤 구경할 걸 그랬는걸.”
─뒷수습하려고 노력하지 마. 어차피 이 대화는 그 누구도 염탐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대화인데, 뭘 수습하려고 하는 거야.
“그냥 무안해서 그렇다.”
설마 그 양귀비라는 것이 남화연의 작품이었을 줄이야.
전혀 상상도 못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의 성격상 꽃과는 거리가 멀어서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배제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이미 힌트가 주어져 있었어.’
양귀비가 있었다는 화단.
그곳에 양귀비 대신 심어진, 정체 모를 잡초.
그 잡초로부터 은은한 마력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상쾌한 향 속에 숨겨진 미세한 마력의 배열.
자세한 구조까지 파고든 적은 없지만, 눈에 익숙한 배열이었다.
‘이거 주술이네.’
─보통의 주술은 아니야. 이제는 알아보겠지?
‘그래, 네가 가르쳐 준 주술과 내가 배운 주술과 닮았어.’
시조의 주술.
타마모가 내게 가르쳐 준 주술로, 현대에 사장된 주술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고대의 학문.
이걸 제대로 익히고 있는 사람은 현재 나뿐이었다.
그리고 기초라도 익힌 사람은 남화연 그 양반이 유일했다.
‘저 잡초와 뒤의 나무도 스승의 작품이었군.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작품이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네. 내 기억상 이렇게까지 크고 화려한 광경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면 네 머릿속 스승은 어떤 사람이야?
‘귀찮은 짓은 결코 사서 하지 않는 사람.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귀찮은 일과 연관되지 않기 위함이지.’
남화연은 죽은 것처럼 초점이 없는 눈과 성격이 닮았다.
무미건조한 성격.
기본적으로 자신이 흥미 없는 관심사에는 시선을 주지 않으며, 화려한 보석보다는 강직하고 무궁무진한 원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를 절대로 티 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미건조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잡담은 이쯤하고 슬슬 들어가자. 학생들 온다.’
─아직 7시도 안 됐는데 벌써 등교를 하네. 2학년들인가?
‘아마 그렇겠지.’
1학년에 오전 6시 즈음에 등교하는 건 쉽지 않고, 3학년은 사실상 졸업반에 가까워서 출석을 아예 안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수사망은 2학년으로 좁혀지지만.
가까이서 명찰을 확인한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얘 2학년 아니었어? 명찰 색상이 1학년인데.’
─뭐, 1학년이 일찍 등교할 수도 있지. 부지런한 사람은 시대와 나이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네가 왜 헷갈렸는지는 알겠군. 17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마력과 기세야.
‘딱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당연히 2학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세가 정돈됐어.’
머리를 빡빡 민 남학생.
명찰의 색상을 보아하니 1학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특별히 기억에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소위 상위권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학생들.
1위~100위권의 학생들은 전부 기억하고 있지만, 저 학생은 그런 것도 아닌 주제에 몸이 제대로 잡혀 있다.
주연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열심히 노력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개학식이 일어날 대강당에서 다른 교수들과 조교들 사이에 시간을 보냈다. 이후 오전 7시 30분.
개학식이 시작할 시간이 되어서 조교들과 함께 학년별로 나뉜 좌석을 살펴봤는데. 뭐야 저거.
1학년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왼쪽에서부터 1, 2, 3학년 아니었나. 아무래도 반대로 착석한 것 같아.
‘……명찰을 봐. 1학년 녹색, 2학년 청색, 3학년 적색이잖아. 다들 나이에 맞게 제대로 앉았어.’
─액면가가 정반대인데?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길드 취업 때문에 좌석 중간중간에 공백이 보이는 3학년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였고, 2학년이야 언제나 중간이었지만.
1학년들 분위기가 유독 무거웠다.
‘……그러게. 분명 방학 전까지만 하더라도 파릇파릇한 새싹이었는데, 어느새 밟아도 금방 자랄 잡초처럼 되어버렸네.’
학생 특유의 풋풋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3학년이 더 풋풋해 보일 지경이다.
‘저기 바오밥나무도 하나 있네.’
─바오밥나무가 뭐야?
‘저 녀석 허리처럼 굵은 나무 하나 있어.’
─말도 안 되게 큰 나무인 모양이구나.
일부 1학년 중에는 여름 방학 사이에 무슨 운동을 했는지, 허리가 어지간한 나무의 둘레를 넘어선 학생도 있었다.
저 정도면 거인의 후손 아닌가?
타고난 신체가 동양인과 서양인의 것과는 개념 자체가 달랐다.
아예 우리와는 종이 다른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저 팔뚝에 한 번 잡히면 종잇장이 되겠네. 방학 사이에 근력 수치만 무지막지하게 늘린 모양이야.’
─저 두께라면 오우거와 팔씨름을 해도 좋은 승부가 나겠는걸.
‘그러게 왜 다들 근력이 A+를 넘어선 것 같지?’
─그거 1학년이 도달할 수 있는 수치였어?
‘당연히 불가능하지. 3학년 중에서도 4명 밖에 없을걸.’
─1학년 얘들 사이에는 8명 정도 있는 것 같은데도?
나와 타마모는 눈을 의심했다.
그건 우리 둘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위치한 조교들 사이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웅성웅성 떠들었고, 교수들의 눈이 아주 반짝거리고 있었다.
특히 마법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눈빛이 그랬는데.
마치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정확하게 반반이었다.
조교와 교수처럼 놀라거나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대표적으로 3학년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취업 전선의 절벽까지 내몰린 3학년들은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 2학년들은 크게 경악했다.
자신들은 분명 1학년과 3학년 사이에 앉았는데, 도대체 누가 선배인지를 모르겠다.
물론 명찰의 색깔을 보면 금방 구분할 수 있지만.
얼굴의 액면가와 정돈된 마력의 기세와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는 오히려 1학년들이 더 선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2학년들은 사진과 1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 후배들의 성장이 훨씬 체감되는 눈치였다.
‘진짜 얘네들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게임마냥 1학년 한정 경험치 2배 이벤트라도 열렸니?
아니지.
한 달 만에 이 정도 성장 속도라면 3, 4배 이벤트는 받아야 된다.
─저기 네가 가르친 아이들도 보이네. 확실히 명확한 목표점을 짚어주고, 향후 오랫동안 사용할 수련법을 가르쳐 준 만큼 1학년 사이에서도 성장 속도가 유독 도드라지네.
‘……그러니까 황금 세대인 거지.’
─2년의 간격을 세대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리만큼 짧은 것 같지만,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가. 저 아이들은 명백하게 격이 다른 세대야.
다른 나이대의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장 속도.
어째서 그들이 황금세대라고 불리는지 알 수밖에 깨달을 수밖에 없다.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빠르네.”
“너만 하겠어. 교수들도 네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 눈치인 거 보여?”
“……교수님.”
“편하게 스승이라고 불러. 아, 여기는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서 힘들지도 모르겠네.”
하하, 미안 미안.
성의 없는 사과를 내뱉은 남화연이 내 뒤에서 나타났다.
개학식에서 조교와 교수의 자리는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교수가 위. 조교가 아래.
그렇기 때문에 나를 찾아서 아래로 남화연은 남들의 눈에 띈다.
사람들 대부분의 시선이 1학년을 향하고 있는 참이지만.
정작 1학년들은 나와 남화연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뭐 어때. 대마법사끼리 대화 좀 나누겠다는데 말이야.”
“알고 계시잖아요. 차라리 교무실 같은 곳이면 모를까.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식의 접촉은 괜한 화두로 불거지기 십상이라고요.”
“왜? 가문의 눈치가 보여?”
그 경지에 도달하고도, 아직까지 늙은이들의 눈치를 보는 거야?
말을 하지 않아도, 남화연의 눈을 본 순간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전음입밀.
전음을 통해 내 머릿속에 남화연이 하고 싶은 말이 전해졌다.
돌연 육성이 아니라 전음으로 물어보자, 그녀의 의도를 깨달았다.
‘정 눈치가 보이면 이걸로 대화하자고요?’
‘어머, 생각보다 금방 배웠네.’
‘그야 당연하죠. 이거 구성 원리를 보아하니 제가 가르쳐 드린 기초 주술을 조립해서 만든 마법이잖아요.’
대화가 눈치 보인다면 말없이 대화를 나누자.
남화연의 의도는 그러했다.
그 점을 캐치한 나는 곧장 남화연의 목젖과 성대의 움직임을 분석. 이를 토대로 그녀와 파장을 맞췄다.
어지간한 마법사는 이 파장의 영역대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가 말없이 생각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재미있는 마법이네요. 방식은 기초적이지만, 보안이 잘 설정된 마법이에요. 예를 들어서 특정 영역을 보안처럼 걸어서 잠근다면 절대로 기록이 노출되지 않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잖아요.’
‘맞아. 문제는 사용 조건이 최소 상급 마법사의 극에 도달해야 되는 것이겠지만 말이지.’
‘오히려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편이 매력적이지 않나요?’
‘음,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네. 희소성이 주는 만족감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너와 나. 이렇게 둘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죠? 그래서 이런 마법까지 펼쳐가면서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응?’
가문과 정치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아니면 고차원적인 토론을 하고 싶어서 이런 방식을 채택했나?
어쩌면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기밀 때문에 전음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남화연의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올까.
두근두근, 기대하면서 머리를 바짝 세우고 들은 첫마디는.
‘나, 그냥 자랑할 생각으로 보여줬는데?’
‘…….’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보여줘도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거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그래 왔기도 했고 말이지.’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나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순수한 자랑.
남화연은 자신이 새로 만든 마법을 내게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를 이해한 순간.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서 신비로운 느낌으로 남아있던 남화연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