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7화(2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7화
에프넬의 화원(2)
서로 간의 신분과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가주. 저들은 장로다.
서열상으로 봤을 때, 장로들은 내게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상도덕은 팔아먹었는지.
대놓고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모습에 실소가 나온다.
“아, 잠깐 놀러 온 것뿐이니까 걱정 마. 게다가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거든.”
“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다는…….”
하하, 나는 실실 조소를 지으며 꼬리 근육을 움직였다.
평소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내지 않던 꼬리.
그 꼬리가 바람에 천천히 흩날리듯, 위로 꼿꼿이 서더니 이내 살랑살랑 흔들렸다. 뭇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묘한 매력을 가진 움직임에 장로들의 면면이 딱딱하게 굳었다.
“허어…… 저게 무슨.”
“허, 헛것.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칠장로 닥치시게나. 저게 헛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장님인 셈이니까.”
놀란 장로들.
그들이 놀란 것은 꼬리의 움직임이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뭐, 얼굴을 붉힌 8장로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꼬리에 깃든 영력(靈力).
마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영혼의 힘. 구미호를 넘어 천호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영력이 보통의 이미호와는 그 단위부터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덧붙이자면, 20년간 일미호의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유배를 보내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호가 된 것도 있겠지. 다들 어떠한 이유로 놀랐는지 몰라도.
놀란 표정이 가관이었다.
이거 재미있네. 조금만 더 자극해 볼까.
나는 왕좌의 손잡이 부분에 팔꿈치 올려, 턱을 괴었다.
명백히 아래 것들을 깔보는 듯한 시선과 자세.
그 뒤로 두 개의 여우 꼬리가 일렁이듯 살랑살랑 움직였다.
“어때, 잘 어울리려나……. 아니지. 이런 말투가 아니었어.”
나는 한껏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비열한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많은 장로들이 내게 악감정을 품도록 말이다.
거기에 싹수없는 말투는 덤이다.
“어떤가. 최근에 계기가 있어서 꼬리가 늘어났단 말이지.”
“가주, 부디 자리에 맞는 체통을 지키시…….”
“이봐, 팔장로.”
명백히 아랫것들에게나 하는 말투.
그 하대에 화가 난, 나이 지긋한 팔장로가 입을 열었지만.
내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아하하, 내게 노인공경이라도 바라는 건가?”
“가주!”
“입조심해라. 가주가 아니라, ‘가주님’이다. 팔장로, 위계질서는 똑바로 지키도록.”
쿠우우우우웅.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일대에 내려앉은 마력.
위압감과 살기로 무장한 마력은, 원탁에 앉은 아홉 장로들과 두 명의 형제자매를 짓눌렀다. 이 정도 마력으로 억눌릴 그들이 아니었으나.
“어딜 벗어나려고.”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상태에서 손을 조금씩 내리자, 일대를 짓누른 마력이 점점 무거워졌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는 빠져나갈 방법이 있었다.
바로 술자인 나를 쓰러뜨리는 것.
이곳에 있는 모두는 최소 유렌 수준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
산송장인 내가 감당할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위계를 들먹였다.
반역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누구도 내게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벗어나서는 안 된다.
“다들 화가 많이들 났을 거야. 그치?”
붉은 눈길이 좌중을 훑는다.
누군가는 호기심을, 또 누군가는 당혹감을.
혹자는 살심을 품었다. 마지막 녀석은 진짜로 위험하네.
‘일단 계획대로 됐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최선이다.
권위로 깔아뭉개는 것.
저들이 장로라는 신분과 원로회라는 집단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내 장단에 따라야 한다.
물론, 따르기 싫은 놈들도 있을 거다.
마지막에 살심을 보인 녀석이 그런 부류겠지.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간을 봐야지.’
내가 원하는 것은 온전한 형태의 천호백가다.
원로회와 권력을 양분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내 손아귀에 들어올 가문. 이것만 내 손아귀에 들어오면 대부분의 에피소드와 시나리오는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다.
그러면 모든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겠지.
‘천호백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조금씩 뜯어먹을 수밖에 없어.’
내가 확인해 본바, 천호백가의 권력은 여러 갈래로 쪼개졌다.
9명의 장로와 내 두 명의 누이들.
거기에 나를 포함하면, 12갈래로 쪼개져 있다.
이중 가장 적은 권력을 가진 것이 바로 나.
다른 열한 세력을 복속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
그러니 천천히, 아주 조금씩 녀석들의 권력을 갉아먹고 내 것으로 물들일 생각이다.
내가 장로들의 성질을 건드리는 것은 그 전초 작업이다.
그들의 성정을 긁어서, 내게 틈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나는 웃는 얼굴을 뒤집어쓰며 말했다.
“난 오늘 하루 던전에 갈 생각이야. 월차를 오늘 하루밖에 안 냈거든.”
그러니까.
“따라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따라와. 불만 사항 정도는 들어줄 테니까.”
나를 죽이고 싶으면 따라와.
그 말을 끝으로, 왕좌에서 내려온 나는 곧바로 문을 열었다.
덜컥, 문을 열자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들이 당황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서 비키라고 종용했다.
회의실 밖. 텅 빈 복도를 홀로 유유히 걸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나름 선방했다.
‘일단 첫 단추는 꿰맸네.’
낚싯줄은 던져졌다.
심해에 기거하고 있을 녀석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떡밥도 뿌렸다.
바늘에 꿰일 것이 월척인지, 작은 치어일지는 모르지만. 이 이후에는 무언가가 낚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때까지 던전에 있어야겠다.
* * *
백설희에게는 야망이 있었다.
가주가 되어, 가문은 물론 휘하의 길드와 기업까지 휘어잡는 것.
그것만이 백설희의 야망이었다.
그리고 그 야망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방해되는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제 오라비인 백승우다.
“갑자기 오라버니가 왜 그런 말을 했지…….”
회의는 끝난 지 오래다.
가주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장로들은 회의 중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때문에 금일의 회의는, 예전보다 빠르게 닫혔다.
전부 백승우 때문이다.
이러려고 운전기사를 보낸 것이 아닌데.
완전히 실수했다.
‘얼굴 험악한 녀석으로 기선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백승우에게 운전기사를 보내겠다고 연락한 것은 백설희였다.
그녀는 자신의 수하 중 유독 얼굴이 험악한 사내에게 운전기사를 하라고 요구했다. 가끔 밤에 복도를 걷다 보면 깜짝 놀라는, 그 얼굴이라면 충분히 제 오라비를 압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아아, 하지만 전혀 아니었지…….”
도리어 자신과 언니는 물론, 다른 장로들을 압박했다.
특히 1장로와 5장로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가문의 중추인 1장로는 손자가 잘 컸다는 눈치였으며, 가문의 무력을 도맡는 5장로는 은밀한 살기를 눈에 띄었다.
은밀했지만, 「신통안(神通眼)」을 가진 그녀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백설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문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오라비가 회의에서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득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혹시 꼬리가 늘어나서 기고만장해진 건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천호백가의 핏줄에게 있어 꼬리란, 일종의 힘이자 권력의 상징이다.
수련을 통해 열 개의 꼬리를 얻어, 천호가 되는 것이 가문이 세워진 목표이다. 세월이 흐르며 그 목표는 방향성을 잃었지만, 많은 꼬리를 가진 자가 더 높은 권위를 가진다는 전통은 여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백승우의 꼬리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그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평생 꼬리 하나로 살 줄 알았건만, 설마 이제 와서 꼬리가 늘어날 줄이야.”
꼬리가 하나 늘어났다고,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꼬리 두 개는 대단한 경지도 아니니까.
당장 백설희만 봐도 세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으며, 나이가 많은 1장로와 가문의 무력을 도맡는 5장로는 각각 8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과 비교해, 가주의 꼬리가 두 개라는 사실은 도리어 창피하기만 할 뿐이다. 그 때문에 중립을 지키는 장로들도, 마음속으로는 백승우를 가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이대로 상승세를 보인다면 어쩌지?”
수련은 쉽지 않은 길이다.
종교처럼 신앙심에 따라 행동하거나, 무력을 기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수련이란 마음을 바탕으로 격을 쌓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야 꼬리가 늘어난 오라비는 자신들을 따라올 수 없다.
뒤늦게 수련을 시작해서 열심히 따라온다고 한들, 시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아니야, 괜찮아. 다음 가주는 내가 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백설희는 자신의 침대에 몸을 묻으며, 가주가 된 자신을 상상했다.
구태여 머리 아픈 미래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행복한 미래를 꿈꿀 때도 됐으니까.
한편, 회의실의 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자리가 상당수 비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설마 가주께서 이미호가 되실 줄이야.”
“돌아가신 전대 가주와 가모께서 기뻐하시겠죠.”
“하하, 저희도 가주의 수련이 2년만 빨랐어도 기뻐했겠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죠.”
장로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무능한 가주인, 백승우의 변화였다.
며칠 전 칠성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제 한 몸을 불살라 뉴스나 신문에 영웅으로 기재되지 않나. 갑자기 꼬리가 두 개로 늘어나며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방금 전의 당당한 기색은 늙은 그들로 하여금, 옛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카데미에 조교로 취업하시기 전만 해도, 무척이나 까칠하셨던 분인데.”
“늦은 사회생활이 도움이 됐을 수도 있죠.”
“음, 그렇지만 이해는 안 가는군요. 그 멍했던 가주가 돌연 철이 들다니. 외부 선전에 망나니라고 포장할 때도, 별반 관심이 없었잖습니까.”
“어찌 됐든 대의에는 방해가 되겠지.”
돌연 찾아온 침묵.
확실히 가주의 변화는 그들에게 이득보다는 손해가 많았다.
당장 5장로의 주도하에 계획되던 대리청정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중립을 지키던 장로들도 올곧은 소나무처럼 중립을 고수(固守)할 것이다.
“계획을 변경해야 됩니다.”
“쿠데타는 1장로가 있으니,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역시.”
장로들이 입을 모았다.
수십 년 동안 가문을 지키며, 함께 살아온 그들은 이제 서로의 생각을 대략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협박.”
“혹은 암살과 입막음.”
“그게 제일 효과적이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지.”
인질극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가주는 타인에게 정을 주는 성격이 아니다.
고립시킬 수도 없다.
이미 아카데미에 조교라는 미천한 신분으로 유배를 보냈다.
칠성 아카데미는 천호백가의 영향력이 끼치지 않는, 치외법권에 가깝다.
자금줄을 끊기도 애매하다.
제아무리 실권 없는 가주라도, 돈이 들어올 구석은 있다.
배 따스하게 지낼 정도는 충분히 가지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암살자를 보내도록 하지.”
“목숨을 판돈으로, 협박할 수밖에 없겠네요.”
“확실히 그 방법이 제일 확실하겠어. 물론 1장로에게 걸리면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겠지만.”
“그러나 그 불길한 것을 떼놓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겠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누구나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건 가주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장로들은 암살자 세 명을 보내, 백승우의 뒤를 추적해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라고 했다. 가문과 길드에서 키운 인재들이니, 실패하거나 가주에게 책 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한편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장로가 한 명 있었으니.
그는 회의에서 자리를 떠나며 생각했다.
“……그건 분명 이미호의 기세가 아니었다.”
5장로는 백승우를 가주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가문은 호가호위나 다름없는 꼴이다.
그래서 백승우를 아카데미로 유배 보냈던 것이거늘.
“이번에는 확실하게 짓밟거나.”
더 커지기 전에, 죽여 버려야겠어.
뒷말을 삼킨 5장로는 갑옷으로 갈아입으며, 자신의 업무를 보러 갔다.
그의 지위는 천호백가의 장로임과 동시에, 한 길드의 수장.
사람 하나 묻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할지언정.
하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저 지금까지 하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