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7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70화(27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70화
개학과 서막(5)
업무 첫날.
승우는 에밀리아에게 시간이 있냐는 말은 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교수.
강의를 제외하고는 전부 휘하의 조교들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잡무였다.
“우선 잡무부터 하죠.”
“……잡무? 나를 데리고.”
“일단 연구실에 있는 모든 기구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돈을 받기 위한 연구 계획서를 제출해야겠죠.”
“자, 잠깐만. 연구실 정리랑 계획서 제출을 오늘 하루 만에?! 분명 오늘 연구실에 입주했다고 들었는데……!”
“오늘 연구실에 왔으니까 연구를 안 하고 연구실 정리랑 보고서를 만들죠. 그까짓 게 뭐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
그까짓 거?
칠성 아카데미에서 연구비로 제공하는 금액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이건 아카데미 상층부가 교수들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전부 현역으로 뛰어도 손색이 없는 인재들이었다.
그런 인재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거액의 돈으로 발목을 붙드는 것이 최선이었고, 진리였다.
하지만 좋은 혜택과 반대로.
상층부의 연구 허가를 따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사장과 이사회가 멍청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들은 가망이 없는 연구에 후원할 정도로 돈을 흥청망청 쓸 정도로 눈과 머리가 나쁜 집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수들이 연구 계획서를 제출하기 전에 수십 번을 검토하고 다시 작성한다.
경우에 100번 넘게 계획서를 고치는 교수도 있었다.
그만큼 계획서를 통과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계획서를 만드는 데 6개월을 목표로 잡는다.
에밀리아가 괜히 망설이면서도 흔쾌히 노예 계약서. 아니, 조수 계약서에 서명한 것이 아니었다.
승우 밑에서 1년 동안 조수로 활동하라는 계약일지라도.
연구 계획서가 6개월 동안 통과되지 못하다면.
이는 곧 그의 휘하에서 6개월만 고생하면 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대마법사의 심기를 건든 것치고는 얇은 처벌 수위.
이런저런 계산 끝에 계약에 임했는데.
지금 그 계산이 지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작성하는 게 어떨까요? 하루 만에 만든 계획서는 전문성이 떨어져서 상층부에 올린다고 통과될 가능성이 없……!”
“이미 초안은 다 됐는데?”
“……어?”
방금 뭐라고?
에밀리아의 시선이 승우를 향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의 손이 향하고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쳐다봤다.
연구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그것은 승우가 다른 짐과 함께 연구실에 가져온 물건들 중 하나였다.
그 노트북은 활짝 열린 채,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켠 것인지도 모르는 사이.
승우는 에밀리아와 대화하다 말고 노트북을 켜고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푸하! 지금 그렇게 열심히 작성한다고, 심사가 빨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다른 교수님들처럼 퇴고와 수정을 반복하시는 편이 좋을걸요.”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초안 다 썼다니까. 아, 수정할 시간도 아까운데 그냥 초안만 보내야지.”
“자, 잠시만……! 진짜로 무슨……!”
툭.
승우가 손가락으로 타자를 눌렀다.
그와 동시에 전송되는 메일.
아카데미 고유 회신으로 계획서 초안이 전성됐다.
그것도 대화하는 도중에 작성한 조잡할 것이 분명한 초안이!
“저, 저는 몰라요!”
“그야 상담 안 하고 보냈으니까 무슨 내용인지 당연히 모르겠죠.”
“상층부에서 한 소리 들어도 모르는 척할 거라고요!”
조잡한 계획서는 상층부의 화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바로 그때 에밀리아는 생각했다.
‘설마 계획서에 조수랍시고 내 이름도 올라간 건 아니겠지?’
설마 싶지만, 원래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심지어 상대는 젊은 나이에 대마법사가 된 사내였다.
결코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사람.
에밀리아는 같이 봉변당하지 않기 위해 일주일간 잠적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띠링!
연구비를 허락한다는 답장이 왔다.
심지어 원하는 연구비 액수를 적는 칸에 적었던 것보다 더 큰 금액을 지원해 준다는 호탕한 답장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에밀리아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잠적 계획을 세우다 말고, 다음 날 연구실에 출근했다.
“아, 아니, 도대체 왜! 무슨 계획서를 보냈길래 하루 만에 허락을 받을 수가 있죠? 설마 당신! 가문의 힘을 이용한 건 아니겠죠?!”
“가문에서 지원하는 것보다 더 큰 액수를 받았는데, 가문의 힘을 이용하기는 개뿔. 그냥 내 계획에서 가능성을 본 것이겠죠.”
참고로 승우가 요구한 연구비의 액수는.
현재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연구비를 사용하는 남화연의 것과 동일했다. 그런데 그 액수에서 추가로 더 지원받은 것이다.
“도대체 무슨 주제로 보냈길래…….”
“특별하거나 독특한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흔한 생명과학이죠.”
다만 왼팔의 경험을 조금 살렸을 뿐이다.
“인공 육체를 의수처럼 사용하는 걸 보냈는데, 아무래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뭐, 상층부의 대부분이 노인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네요.”
6, 70대 노인들에게 낡은 몸의 일부를 20대처럼 튼튼한 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비전을 제공했다.
마법사나 무인으로써 경지를 올려서 환골탈태로 몸이 젊어지는 게 아니라, 마법으로 원하는 신체 부위를 의수처럼 맞춤 제작하는 방식을 구체적인 공식들과 함께 기재했다.
상층부가 환장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당신. 진짜로 이 연구로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
펄럭.
연구실 구석에 놓인 서류를 읽은 에밀리아.
그녀의 손에 들린 서류는 이사회의 도장이 찍힌 계획서였다.
“처음에는 뇌물이라도 먹인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이제야 실감이 드네. 확실히 대마법사는 대마법사야. 사용하는 공식과 계획서에 쓰인 문장 몇 줄만 읽어도, 당신이 내 시야보다도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는 건 알겠어.”
에밀리아는 타인을 쉽게 인정하는 성격이 아니다.
자신만의 주관과 세계관이 확고했다.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로는 가장 마법사다운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할 말은 해야겠어.”
“……누가 들으면 지금까지는 말을 가려서 한 줄 알겠네요.”
“아무튼! 이 계획서를 통해서 모두가 납득할 결과를 얻을 수 있겠냐고?!”
승우는 에밀리아를 가만히 쳐다봤다.
저 다혈질 시끄러워 죽겠다.
그냥 조수는 없었던 일로 하고, 돈으로 갚으라고 할까나.
‘교수님이 성사시킨 계약이라서 함부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인가.’
생각해 보니 조수를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상하관계를 공고히 다지는 수밖에 없었다.
“에밀리아 교수님. 아니, 에밀리아 조교.”
아까부터 에밀리아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담고 있는 두 눈에 조금씩 힘이 들어간다.
「요마안」
동공이 자색으로 물들고.
시야에 맺히는 마력만으로 일대를 짓누르는 위압감을 조성했다.
───!!!
마력이 일대의 모든 것을 짓눌렀다.
공기, 연구 장비, 사람.
모든 것을 공평하게 눌렀다.
그렇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마력에 무게를 부여한 것도 아니니, 연구 장비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이기에 마력에 대한 감응도가 높았던 에밀리아만큼은 예외였다.
“이, 이게…… 왜?”
털썩!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굽혔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릎에 가해지는 엄청난 부하에 다리 힘이 풀리고 말았다.
‘방금 다리가 엄청 무거웠는데, 지금은 또 너무 가벼워서 움직이질 않아. 뭐야 이거. 혹시 다리 주변의 공기를 굳혀서 무게를 부여했나? 다리에 상처나 이상이 없는 걸 보면 무게를 이용한 것 같지는 않은데?’
흔들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는 에밀리아.
그녀는 마법사답게 힘이 풀린 자신의 다리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그러고는 그 원인을 탐구하고 분석했다.
이런저런 가설들이 머릿속으로 오고 갔지만, 흔들리는 눈빛은 아직까지 정답을 알아차리지 못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게가 아니라면 그냥 마력의 질로 밀어붙인 건가?’
에밀리아는 나름대로 현명한 여성이었다.
자신만의 주관이 확고한 탓에 고집이 세고, 절대로 굽히지 않는 성격은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괜히 아카데미의 교수로 초빙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말도 안 돼.”
그렇기에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현명하고 경지도 나름대로 높고, 마력의 양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탐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에밀리아의 마법 지식과 실력, 그리고 마력의 질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 되었다.
“내가 마력 싸움에서 반응도 못 하고 졌다고?”
에밀리아의 머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건 바로, 방금 다리가 풀린 이유가 승우의 마력이 지나칠 정도로 압도적이라서 본능적으로 전신의 모든 힘이 풀렸다는 것인데.
“지금 그거 뭘 어떻게 한 건가요?”
“뭘요?”
“말 돌리지 말고요! 방금 제 다리가 풀린 거 마법으로 한 거 아니죠? 설마 진짜로 마력만으로 한 건가요? 진짜로?!”
“……이미 눈치챘으면서 왜 굳이 물어보는지 모르겠네요.”
확인용으로 당사자에게 되묻자 말로만 긍정하지 않았을 뿐.
부정하지도 않았다.
이는 곧 에밀리아의 추측이 옳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아, 별건 아니고요. 계속 옆에서 보니까 성격이 드센 편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초반에 상하관계를 명확하게 잡고 가고 싶어서요.”
“……허.”
왜 굳이 자신의 무릎을 굽혔는지 이유를 물었다.
순순히 대답하는 승우.
대답을 전부 들은 에밀리아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설마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줄이야.
‘대마법사들은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네.’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된 대마법사는 7명뿐이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남화연이었다.
그녀의 성격도 특이한 편이었지만, 상하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위압감을 조성한다는 백승우도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에밀리아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의미로는 대마법사에 적합한 자질을 가진 그녀.
에밀리아는 곧장 자신의 상사가 어떤 성격인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입 좀 조심해야겠다.’
교수가 된 이후로는 무서울 것이 없어져서 막살았지만.
지금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녀가 부리는 조교들과 똑같은 몰골로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그런 삶.
험난한 1년이 눈앞에서 아른아른하고 있었다.
“……뭐부터 할까요. 연구실 청소? 기재 정리? 아니면 계획서에 작성한 공식들을 가볍게 풀이한 다음, 사람 신체에 맞는 형태로 공식을 좀 바꿔볼까요?”
“공식은 이미 만들었으니 연구실 청소를 부탁드립니다.”
“……응?”
뭔 소리야.
공식은 이미 다 만들었다고?
어제오늘 도대체 몇 번이나 귀를 의심하는지 모르겠다.
“그…… 실례지만, 계획서에 적힌 공식들은 아무리 봐도 마물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적용시키는 수식이 대부분이라서, 사람의 의수에 대입하려면 해석이 좀 오래 필요할 것 같은데요?”
에밀리아가 공손한 태도로 여쭈었다.
그녀의 계산으로 이 공식을 사람에게 맞게 치환하는 데에만 꼬박 2주가 걸릴 것으로 나왔다.
물론 공식을 그대로 사람에게 대입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작은 문제는 분명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목줄을 잡은 승우의 심기가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공손한 단어를 골라가며 입을 열었다.
“넉넉하게 잡아도 2주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서…… 아! 이게 무시하려는 말이 아니라, 인체에 적용하는 안정성을 철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어서…….”
“그러니까 그거 다했다고요. 이거 안 보여요?”
승우가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계획서의 마지막 페이지. 아주 긴 공식이 쓰여진 종이였는데, 마지막에 못 보던 수식이 하나 적혀있었다.
그게 뭔지 유심히 쳐다보려는 찰나.
이게 바로 승우가 말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공식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어. 전부 치환하지 않고, 끝에 한 줄 더 붙이는 걸로도 안정성을 검증할 수 있구나.’
에밀리아가 생각했던 방법은 기존에 계획해 둔 공식을 전부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치환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게 제일 확실하고 깔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괜한 꼼수를 부리는 것보다 빨리 끝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기존의 공식에 수식 몇 개를 더 붙이는 것만으로, 공식의 안정성이 확보되었다. 이제 이 공식대로 의수를 만들거나 재생시키면 인체에 아무런 화학적인 이상은 없을 것이다.
“이게 무슨, 별. 미친.”
입에서 여러 단어가 나왔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문장으로 완성되질 못했다. 눈으로 공식을 몇 번이나 점검해도 결함이 없다.
이게 대마법사라는 건가.
에밀리아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달았다.
스승이나 제자나.
대마법사의 경지에 다다른 녀석들은 머리가 어딘가 이상하고, 그 이상함이 비현실적인 발상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나는 그냥 상급 마법사에 만족하고 살아야겠다.’
그날, 에밀리아는 주제를 파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