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8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80화(28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80화
미끼를 물었다(5)
“일단 우리 관계부터 정립하고 넘어갈까?”
“그거 좋죠. 저도 가는 길에 관계부터 확실하게 정립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승우의 앞으로 사내가 걸었다.
그가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는지는 몰라도.
군말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생각해 보니 남들이 보면 진짜 기묘한 조합으로 보이겠네.’
50대의 중년과 20대의 청년.
여기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 정도 나이 차이라면 부자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둘의 허리 부근에 여우 꼬리가 길게 뻗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꼬리가 한 개가 아니다.
중년은 8개, 청년은 6개의 꼬리를 달고 있었다.
머리 위의 여우 귀는 덤이다.
─솔직히 뒤에서 둘을 관찰하는 내 기분이 조금 불쾌하긴 해.
‘남정네 둘이 여우 꼬리와 여우 귀를 달고 다니는 모습이?’
─응, 좀 많이 거북해.
‘그러는 너도 머리 위랑 허리 부근에 달고 있잖아.’
─……아.
형형색색의 여우 털.
비록 한 명은 귀신이라지만, 아마도 이 자리에 여우에게서 나올 수 있는 털색이 전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장로는 하얀색, 승우는 검은색, 타마모는 갈색.
심지어 꼬리 개수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차례대로 여덟, 여섯, 아홉. 진짜 엄청 다채롭네.
─자, 잠시 까먹고 있었어. 그러고 보면 나 구미호였지, 참.
‘어떻게 까먹어도 자기 정체성을 까먹냐.’
─정체성은 무슨. 그렇게 따지면 여기 나와 같은 계보를 잇는 여우들만 셋이잖아. 셋이 똑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게 내 정체성이야.
‘그러면 네 정체성은 뭔데?’
─지식.
톡톡.
타마모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들겼다.
저 작은 머리에 들어있는 지식은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을 읽은 승우마저 헤아리기 힘든 지식의 보고였다.
물론 이전에 남화연이 책을 한 번 읽을 때, 수십 권을 한 번에 다독하는 꼴을 보면서 진짜배기 지식의 보고는 그녀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남화연을 논하기 이전에, 승우의 지식은 아직까지 타마모와 견주어볼 때 미숙한 게 분명했다.
확실히 지식은 그녀의 정체성이 맞다.
─표정이 왜 그래?
‘그냥. 잘났다 싶어서.’
─어머, 지금 질투하는 거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니까.
타마모가 승우의 귀에 자신의 말을 속삭였다.
─늙었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온 세월이 길다는 뜻이고, 그만큼 읽거나 경험해 본 지식이 많다는 뜻이야. 일부 노인들은 젊은이보다 지식이 부족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
활자로 된 지식은 부족할지언정.
인생사에 대한 지식은 감히 노인들을 따라올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현명할까?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었고, 당장 답이 눈앞에 있는 판국이었다.
‘당연히 아니지.
─왜 그렇게 확신해?
‘네 눈에는 저 늙은이가 현명해 보이나?’
─……전혀.
‘그러면 답이 나왔네. 늙었다고, 지식이 많다고 현명하진 않아.’
5장로 백석호.
이제서야 기억한 중년의 직책과 이름이었다.
그는 장로라는 직책과 달리 현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신의 비대한 근육이 뇌를 침범해 버린 경우였다.
문제가 일어났다면 힘을 이용해라.
머리? 그런 건 힘이 부족한 사람이나 사용하는 나약한 기관이다.
진정으로 강한 힘이라면 그 어떤 문제도 주먹으로 넘길 수 있다.
백석호는 그런 사고관을 확립한 사람이었다.
─그건 또 어디서 알아냈어?
‘일기장. 심상 속에 별의별 지식들이 다 적혀 있더라고.’
나인테일 길드를 지금의 위치까지 일군 장본인이라고 하길래, 승우는 수준 높은 정치 싸움을 기대했다.
지금까지 승우가 봐온 백석호는 성격은 나쁠지언정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설마 근육 뇌에 속하는 사람일 줄은 몰랐지.’
사고가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을 일컫는 일명, 근육 뇌.
쉽게 말해서 돌대가리와 같은 뜻이지만 백석호는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머리는 좋지만, 단지 자신의 머리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탓에 생각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근육으로 뇌가 이루어졌다는 말 아니야.
‘……그래도 저 양반 머리는 좋아. 생각을 안 해서 그렇지.’
이번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길드장인 백석호가 미연에 손을 썼다면 판도의 흐름 변화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렇지만 그는 방치했다.
일부러 그랬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아예 대처 자체를 하지 않은 느낌이 물씬 풍겼거든.
─머리가 좋아도 사용하질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게 아닐까. 어때 한번 논리적으로 반박해 볼래?
‘……사실 멍청하긴 해.’
거듭 말하지만 백석호는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튼튼한 육체와 강력한 힘이 있었다.
이러한 힘은 곧 그에게 깊게 고민할 시간에 주먹 한 방이라도 더 날리면 사건이 해결된다는 확신을 심어주게 되었다.
백석호는 어떤 의미로는 후천적인 멍청이라고 볼 수 있다.
‘네가 말했지. 지식이 많다고, 나이가 많다고 현명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어.
‘그 말대로야 백석호는 나이가 많아. 40대인지 50대인지 헷갈리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지. 장로와 길드장을 겸임하면서 쌓은 지식도 적지는 않을 거야.’
그럼에도 백석호는 현명하지 않다.
강조했다시피 그는 아둔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은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현명하다고 장담할 순 없다. 백석호도 그러하다.
일순 백석호의 외형이 승우의 눈에 띄었다.
상당한 나이를 가졌음에도 젊은 청년처럼 보이는 백석호의 외모는 그가 나이를 먹었음에도 연륜을 가지지 못한 어정쩡한 사람임을 더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적어도 승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걷는 거야?’
타마모와 잡담을 나누면서 계속 걸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라서 하염없이 발을 내디뎠다.
슬슬 지루한데.
“그래서 말입니다. 방금 전에 얘기했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면 좋을까요? 가주와 장로. 길드장과 팀장. 음, 두 관계는 상하관계가 완전히 정반대라서 선뜻 고르기 어렵군요. 저로서는 선택하기 힘드니,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간혹 백석호에게서 이렇게 질문이 날아왔지만,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질문들이 대부분이라서 스스로 귀를 닫았다.
타마모와 소통하느라 질문에 집중하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백석호는 미간에 주름이 늘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런 푸대접. 어린 시절에도 받은 적이 없는 천대였다.
백석호는 이러한 대접에 앙심을 품었다.
‘이번 기회에 네놈을 확실하게 밟아주마.’
흔히 사용하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밟아줄 생각이다.
신발로 잘난 머리를 짓눌러주마.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이러한 생각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곳이었다.
“도착했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군. 그런데 말투가 변했네.”
“여기는 누군가 대화를 들을 사람도 없고,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일도 없으니까.”
“아, 그러니까 비방용 대화 같은 걸 나누자는 거지?”
욕설 같은 거 말이야.
확실히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합한 장소다.
거대한 원형의 돔.
내부의 공간은 무척이나 넓지만, 결국은 사방이 막힌 곳이다.
CCTV 같은 것도 없고, 벽도 소리를 차단하는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거 아예 작정하고 만들었어.’
대충 뭐 하는 장소인지 알겠다.
여기는.
“사람 처분하는 장소구나.”
“……그게 보이나?”
“굳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잖아. 지독한 락스 냄새 속에 숨겨진 피비린내. 죽어가는 사람들의 절망과 원념이.”
“……불쾌한 말을 내뱉기는.”
집단에 반항하는 반동분자를 처분하는 곳이다.
특별히 신기한 곳은 아니었다. 이런 곳은 으레 S급 길드라면 하나씩 가지고 있는 장소라고 들었으니까.
그렇지만 보통은 던전에서 처분하는 것이 상식이다.
사회의 시선 속에서 시체를 처분하는 과정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
그런데 여기는 완전히 대놓고 투기장처럼 만들어뒀네.
“머리가 아주 영특해. 너는 어릴 때부터 그랬지. 그래서 네가 싫었어.”
백석호가 눈을 부릅떴다.
그와 동시에 일대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치솟는 살기.
강렬한 투기.
무엇 하나 나이 든 양반이 젊은 청년에게 함부로 발산할 만한 기세는 아니었다.
“노인 공경도 좋지만 그쪽은 아직 팔팔해 보이니 날개 좀 꺾고 양로원에 넣어주면 되겠지?”
“입만 살았구나.”
“정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
승우의 말에 백석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 또한 기세를 느끼고 있었다.
백승우로부터 발산되는 기세는 살기와 투기는 아니었다.
그보다도 순수한, 깨달음에 가까운 기운이었다.
촤아아악─!
바로 그때 승우의 허리 부근에서 검은 무언가가 치솟았다.
암영(暗影)을 둘렀지만, 그림자는 아니었다.
단지 칠흑보다 어두운 빛깔의 꼬리였다.
일곱 개의 꼬리.
칠미호.
가문 역사를 통틀어서 100명도 채, 도달하지 못한 경지.
지금 승우는 실시간으로 그 경지에 닿았다.
‘사실 실시간은 아니지.’
온전한 경지에 오르기까지 승우의 육체는 오랜 소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로써 검은 구미호를 삼키면서 얻은 영양소의 1차적인 소화가 끝났다.
심상에서 조우한 꼬리 아홉 달린 괴물은 거대하고 강력했다.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이 많았다.
오죽하면 놈을 삼키면서 얻은 힘을 1차, 2차로 분류해서 흡수해야 될 정도였다.
‘1차적인 소화에서 필요한 것은 시간.’
심상에서 나타났던 구미호는 거대한 영기(靈氣) 덩어리.
이를 흡수하고, 본인에게 맞는 형태로 가공하는 데 족히 한 달이 걸렸다. 경지를 상승하는 데 걸린 시간치고는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내 마음에 드는 속도는 아니었어.’
차라리 현대에서 시간을 돈으로 사듯.
지식과 재능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면 모를까.
단순 무식하게 시간이 흘러야지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승우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재화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승우의 시간의 밀도는 남들과 달랐다.
실제로 그는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대마법사가 되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약을 개발하였다.
이렇듯 승우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능률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빌어먹을 소화 과정은 오직 시간만을 요구했다.
그것 때문에 경지의 상승이 잠시 주춤했지만.
“이제는 괜찮아.”
두 번째 소화 과정.
그 끝에 얻을 수 있는 산물, 여덟 번째 꼬리.
그걸 얻기 위한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일곱 번째 꼬리를 얻었을 때처럼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조건만 충족한다면 하루. 아니, 한 시간 만에 끝낼 수도 있었다.
“얼른 덤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기색이 없구나.”
“당신이라면 지성으로 문제를 헤쳐나가는 것보다 나를 흠씬 두들겨 패서 일을 처리할 거라고 확신했거든.”
실제로 그 생각이 들어맞았다.
“잔말은 이제 그만. 너의 그 여덟 개의 꼬리로, 부디 내게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길 바라. 그래야 내가 배울 게 있지.”
“감히 나를 우롱하기는……!”
“나는 진지하게 배우고 싶을 뿐이다만.”
“네놈의 그런 태도를 두고 상대를 우롱한다고 말하는 거다.”
“그래?”
그러면 말이야.
“내가 우롱하지 않을 만한 가치를 보여봐.”
뭘 좀 보여줘 봐.
그래야 내가 네놈을 번뜩이는 영감을 통해, 서둘러 여덟 번째 꼬리를 틔울 거 아니야.
설마 그 정도도 못 하겠어?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