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8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85화(28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85화
늙은 여우(5)
백석호.
향년 55세.
아니, 56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나이와 생일은 아무래도 좋아서 망각한 지 오래였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알 나이가 되었다는 오십 대에 접어든 백석호에게 자신의 생일은 아첨을 듣고 선물을 빙자한 뇌물을 받는 날이었다.
어느새 생일은 기념일보다는 특별한 업무를 치르는 날이 되었다.
그렇다고 어릴 적에는 생일이 기념일이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건 또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사는 게 고달파서.
기념하고 싶어도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식탁이 부러질 만한 음식도, 휘황찬란한 선물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백석호는 음식 대신 허기짐을 음미했고, 선물 대신 빈곤을 얻었다. 그는 미움받는 방계의 아이.
그것도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아비의 자식이었다.
모멸과 핍박에 익숙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 백석호에게 어마 무시한 재능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꼬질꼬질한 그의 손을 가문의 정통한 후계자가 잡았을 때.
백석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배불리 먹고, 선물을 받는 게 당연한 삶이 되었다.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도리어 고개를 숙인다.
처음에는 계급 낮은 시종들만 고개를 숙였지만, 백석호의 힘이 강해지고 재능이 만개할수록 머리가 빳빳하던 양반들도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피지배자에서 지배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그 사람만은 결코 그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숙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백석호보다 아득히 위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실력도, 재능도, 지위도.
모든 것을 움켜쥔 채 군림하던 사내였기에 그는. 가주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차차 흐르면서 백석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늘어갔다.
두 사람째.
가문의 존경받는 1장로.
상도덕과 정치를 배운 백석호가 1장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인맥이 넓은 자였기에 좋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세 사람째.
가주가 아내를 들였다.
강력한 신통력을 타고난 먼 방계의 친척이었다.
재능도 우수하거늘. 혈통과 족보도 탄탄하다.
네 사람째.
가주가 첫아이를 보았다.
장녀. 여자의 몸으로 가주가 될 순 없기에 훗날에는 시집을 가거나, 혼사를 포기하고 장로가 되겠지만.
적어도 5살까지는 백석호의 수염을 잡아당기면서 놀았다.
다섯 사람째.
불길한 아이였다.
장남. 가문의 유일한 적자(嫡子)이자, 태어나자마자 차기 후계자로 낙점된 백석호의 다음 주인이었으나.
그는 가문에서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검은 체모를 타고났다.
이에 수많은 장로들과 직계, 방계들이 우려를 표했다. 그렇지만 마법에 있어서 말도 안 되는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곧 소가주(小家主)가 되었다.
여섯 사람째.
차녀. 여린 마음의 소녀였다.
자신의 수염을 당기며 자란 장녀와 달리 숫기가 없어서 제 오빠의 등 뒤로 종종 숨곤 했다. 그렇지만 그런 성격과 달리, 제 어미를 닮아서 신통력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다.
머지않아 소녀는 가문의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이 되었다.
제사장은 가주나 장로처럼 권력이 있는 직급은 아니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영광스러운 위치에 있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 불과 7살이었다.
그녀 이후로는 백석호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더는 없었다.
오히려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창을 수련하고, 신통력을 키우며 점점 강해지던 백석호.
어느덧 그가 나인테일 길드의 8대 길드장이 되고, 하이랭커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즈음. 가주 부부가 병으로 사망했다.
백석호의 머리 위에 있던 6명이 단숨에 4명으로 줄어든 순간이었다.
어째선지.
슬픔보다는 개운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마음속에 놓인 큰 돌덩이 두 개가 사라진 감각이었다.
‘이상하다. 어째서 나는 울지 않는 거지?’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백석호의 현 위치는 가주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이 없었더라면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에게 가주는 은인이자 하늘이었다.
머리 위에 드리운 하늘이 사라지자, 백석호는 깨달았다.
‘기회가 왔다.’
스스로 하늘이 될 기회가 왔음을.
‘모두 제치면 더 이상 내 머리 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아.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다.’
비천한 출생의 마지막을 영광된 삶으로 마무리 지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장로는 방계의 수장.
직계와 방계를 아우르는 가주가 되기란 요원한 일이지만, 되면 그만이잖아. 가주의 자식 3명을 제치고 나야말로 가주의 재목이라는 것을 증명한 된다.
‘돈. 금력을 장악한다.’
가주의 직인으로 묶인 사업과 돈줄을 야금야금 뺏어 먹었다.
그 과정에서 어린 가주. 백승우와 종종 눈을 마주친 백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조여오는 가슴 통증에 왠지 모르게 죄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찰나였다.
‘집단을 키우고, 목소리를 높인다.’
S급 길드, <나인테일>을 극한까지 키웠다.
본래도 S급 길드였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알음알음으로 세계 1등이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성장했다.
인재도 극한까지 키웠다. 가문의 비전을 몰래 유출시켜서 휘하의 간부들을 전부 S급 플레이어로 성장시켰다.
재능이 있는 간부는 랭커가 되기도 했다.
‘직계들을 치운다.’
직계의 대명사. 전대 가주의 자식들.
장녀와 차녀는 시집을 빌미로 멀리 치울 수 있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세상이 바뀐 탓일까.
장녀와 차녀는 결혼에 흥미가 없었다.
장로들이 혈통을 계승해야 된다는 말을 꺼내자, 오히려 그들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그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백석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말실수를 하였고, 이를 놓치지 않은 장녀가 백석호의 위치를 추락시켰다.
그러나 금력과 집단을 키운 백석호는 금세 반등했다만, 장녀와 차녀는 그새 장로들과 비견되는 집단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하여 직계를 치운다는 계획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릴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적이었다. 아니,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공적인 줄 알았다.
‘가주의 자리를. 왕좌를 공석으로 만든다.’
전대 가주.
백석호의 은인이었던 그가 사망한 직후.
가주의 자리는 가훈과 규칙을 따라서 후계자인 백승우가 계승했다.
모두들 미성년자가 가주가 된다는 사실을 우려했지만, 실상 속내는 달랐다. 그는 천재지만 너무 어렸다.
이권 다툼으로 실권을 야금야금 뺏어서 그를 실각 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해서 가주가 된다!
방계 출신의 장로들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한 자리.
그게 바로 가주의 자리였건만. 아주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가주가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단련했던 창을 내려놓고 펜을 들었다.
이권 다툼에 참여해서 가장 큰 이득을 보기 위해 신통력 대신 정치를 배웠다. 백석호는 창수가 아니게 되었다.
과거의 그는 자신이 무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다.
창존(槍尊).
당대의 신창과 한때나마 창을 겨루며 호각을 이뤘다는 전설적인 창수.
그랬던 그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히 백석호의 실력은 점점 떨어졌고, 떨어진 실력을 채우기 위해 신병이기를 찾아 나섰다. 젊을 적 자신이 그랬듯.
날쌘 움직임과 신속한 창술을 펼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기를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서 구야자를 알게 되었다.
구야쟈.
누군가가 그를 두고 말했다.
수많은 보검들을 탄생시킨 전설적인 대장장이의 환생이라고.
보검, 전설, 환생.
그런 표현들은 사실 그를 띄우기 위한 홍보성 문구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 문구에 수많은 무인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가장 큰 관심을 보내던 것이 바로 백석호였다.
그는 구야자에게 창을 의뢰했다.
자신의 무력을 옛날처럼 되돌려 줄 수 있는 창.
이를 위해 그가 요구한 내용은 A4 용지 2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방대했다. 사실 그 내용 중 절반은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요구한 것들이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구야자는 백석호의 요구사항을 전부 이행했다.
창은 완벽했다.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백석호는 문득 겁이 들었다.
만일 구야자의 무기가 자신의 정적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백석호는 어느새 자신이 만든 상상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상상 속의 백석호는 자신의 정적들. 장로들이나 백승우의 손에 잘린 목의 형태, 수급(首級)으로 덜렁덜렁 들려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히려 백석호의 손에 수급이 들려있었다.
구야자의 아내와 자식들의 머리. 백석호는 당하기 전에 먼저 친다는 마음가짐으로 구야자의 가족들을 몰살했다.
그런데.
‘구야자는 어디 있지? 내가 죽였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다.
백석호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반파된 대장간과 무너진 가정집. 목이 잘린 일가족의 풍경이었다.
뭐…… 아마 죽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걸로 나는 가주의 자리에 한 발 더 다가섰어.
이후 백석호는 해당 일을 완전히 까먹었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굳이 기억할 정도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적어도 백석호에게는 말이다.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구야자가 복수를 위한 칼을 갈고 있으며, 이에 대한 증표를 백승우에게 주었음을.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
어느 날 창을 휘두르던 백석호는 더 좋은 창을 원했다.
나이가 들고 창보다 펜이 익숙해지면서 더 좋은 창이 필요해진 탓이다.
하나 시중에서 구야자의 창보다 좋은 물건을 찾을 방법은 없었고, 결국 백석호는 암흑가까지 발을 옮겼다.
그곳에서 백석호는 마인을 만났다.
신기한 기색의 마인. 그는 백석호에게 벼락으로 이루어진 창과 검은 구체를 주었다.
둘 다 심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벼락으로 이루어진 창은 일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으며, 검은 구체는 마치 피에 젖을 살점을 만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백석호와 마인은 모종의 거래를 진행했고.
그는 이후 창을 버렸다.
구야자의 창도.
벼락으로 이루어진 창도.
지금까지 갈고닦은 모든 것을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백석호의 마지막이 되었다.
거듭 말한다.
백석호.
향년(享年) 50대.
스스로 한 평생 살아 누린 나이가 정확하게 몇 살인지도 모르는 사내는 죽었다. 창수로서, 장로로서, 인간으로서.
창수로서의 그는 10년도 전에 죽었다.
그가 창을 내려놓고, 펜을 들며 15년도 넘게 업계를 뒤흔들었던 창존의 전설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장로로서 가주를 보필하는 의미도 진작에 망각했다.
인간성도 상실했다.
늙은 여우는 탐욕을 주체할 수 없었고.
“검게 물든 당신의 모습은 추악하네. 적어도 창을 휘두르던 순간에는 눈이 살아 있었어.”
그 탐욕은 이윽고 여우 본인도 삼킬 정도로 비대해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뿔 달린 금수야.”
이제 여우는 없다.
그 추악한 탐욕만이 덩그러니 남아서 그들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더 이상 백석호라고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