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89)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89화(289/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89화
무극(4)
메라크(Merak).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식.
상대가 가까이 다가올 때 결정타를 날리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 기술이 정확하게 백석호의 가슴을 갈랐다.
살점 너머 혈관과 장기, 뼈를 가르고 나아가는 선명한 감각.
보통의 마인이라면 즉사했을 공격이었다.
아마 내 몸 상태가 예전과 같았더라면, 보통의 마인이든 손에 꼽히는 귀족이든 이 기술로 단칼에 죽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약해진 몸으로 펼치는 검술의 위력은 정말 아쉽게도.
내 기대에 못 미쳤다.
쿵─!
백석호의 손에 나를 향했다.
그는 나를 둘러싼 방어막을 가격했다.
짧고 굵은 타격.
보호막으로 몸을 보호한 나는 둔탁한 감각과 함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어찌나 타격이 강력했는지 생각보다 멀리 날아갔다.
─너 괜찮아?! 지금 너 건물 건너편까지 날아갔어!
“……방어해서 크게 안 다쳤다.”
─그러면 어서 눈부터 가려. 지금 눈에서 피가……!
“굳이 우회해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안다. 내가 보면 안 될 장면이 앞에서 펼쳐지고 있나 보지?”
예를 들어서.
“녀석, 변태(變態)라도 하는 모양이군.”
─……엄청 잘 아네.
“저런 족속들을 예전부터 여럿 상대해 봤거든.”
밀리기 시작하면 변신하는.
그런 족속들 말이다.
내 미약한 공격을 허용한 백석호는 이제 인간의 형상을 버렸다.
사실 마인이랍시고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는 것이 웃긴 것이었다.
마인은 인간을 포기한 족속들.
재주가 없는 자들은 인간을 포기했음에도 생김새와 행동이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심장과 혈관에 마력 대신 마기로 가득하다는 게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아, 눈알이 흰자위의 구분도 없이 완벽하게 검게 물들었다는 특징도 있구나.
아무튼 그거 제외하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껏 고위의 마인들을 많이 봐왔다.
남작이고 자작이고. 시답지 않은 작위 놀이를 하는 족속들이 아니라 진짜로 개체 하나하나가 인류의 생존과 안보에 위협을 주는.
진짜배기 마인들을 말이다.
“또 변했군. 이제는 방금 전 검은 여우가 선녀로 보일 정도잖아?”
보호막을 풀어서 시야를 확보했다.
그와 동시에 추악한 꼴로 변한 백석호가 눈에 들어왔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순백의 체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백석호를 마구 놀렸다.
“이제 네 조상은 꼴뚜기처럼 보이는데. 허리 부근에 달린 여우 꼬리는 좀 떼는 게 어때? 여덟 개나 달려 있으니 문어처럼 보이잖아.”
마구 비웃고 놀렸다.
그런데 정작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세간에서는 너 같은 놈들을 후작이라고 부르지.”
고위 마인일수록 인간과 동떨어진 모습을 존재들이 많다.
저 정도면 후작.
아, 어쩌면 공작일지도 모르겠다.
“강한 마인, 지위가 높은 마인일수록 변화가 큰 법이지.”
대부분의 마인들은 그 변화가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 경우 비정상적인 재생 능력을 얻고, 능력이 진화한다.
백석호의 경우에는.
“신체의 부분적인 변화.”
번개는 더욱 강력해졌지만.
그건 번개를 이루는 마력이 마기로 대체되어 더 큰 파괴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지.
능력이 진화한 것은 아니다.
백석호는 몸이 변했다.
인간 시절의 육체에서 완전히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베이스는 인간으로 두되, 필요한 신체를 변형시키는 형태로 변화했다. 놈이 딱 그 케이스였다.
당장 놈의 몰골을 봐라.
“손가락이 엿가락처럼 잔뜩 늘어났군. 아니지. 세상에 건물 옥상에서 손가락을 늘어뜨리면 바닥까지 닿는 손가락은 없으니.”
엿가락보다는.
“손가락이 아니라 촉수라고 부르는 편이 옳겠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제는 백석호의 손에 달린 손가락은 촉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양손에 다섯 개씩, 도합 10개의 촉수를 휘두르는 백석호.
진짜 더럽게 징그럽네.
역겨운 마음에 서둘러 손가락을 자르려고 검을 휘두르면.
챙─!
오히려 검이 튕겨져 나왔다.
손가락인지 촉수인지 모를 것은 멀쩡했고, 오히려 검으로 베려는 순간 불똥이 튈 정도로 단단했다.
빌어먹을, 마법으로 제련한 합금도 이 정도로 단단하지 않거늘.
하는 수 없지.
스윽, 나는 검을 들어서 그 위로 마력을 잔뜩 덧씌웠다.
‘벤다.’
검을 쥔 자라면 품는 아주 간단한 생각.
이 생각과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마력을 가공한다.
흔히들 말하는 의지 혹은 의념.
그런 의념으로 가공한 마력은 검기가 되었다.
이윽고 기운이 별빛이 담겼다.
북두칠성의 아지랑이. 기운은 이윽고 강(罡)을 담았다.
순식간에 검강이 만들어졌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기의 운용에 백석호는 순간 깜짝 놀라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자연스럽게 진행되던 호흡이 꼬일 정도로 놀랐다.
“강기를 그렇게 빠르게 단순하게 만든다고?”
“하도 자주 사용하다 보니 터득한 편법이지.”
“지랄도 풍년이다!”
촉수처럼 변화한 손가락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기였다.
날카롭고, 단단하고,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길이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촉수. 거기에 벼락처럼 빠른 속도와 실제로 벼락을 촉수에 휘감은 결과 미친 몽둥이가 탄생했다.
땅을 두드리면 땅이 으깨진다.
나무와 건물을 타격하면 가루가 된다.
그 정도로 위협적이고 강력했지만, 어째 순백의 별빛을 담은 검과 부딪히면 맥을 추리지 못하고 밀려났다.
“무슨 강기를 이렇게 자유자재로……!”
수많은 무인들 가운데, 저 하늘에 보이는 별들보다 적은 숫자만이 자신의 검에 별빛을 밝힐 수 있다.
그게 바로 강기다.
백석호 또한 지금의 몰골이 되기 전에는 창으로 강기를 만들어내는 경지에 도달한 자였다. 게다가 단순히 강기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완숙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강기에 대해서는 백석호도 잘 아는 편이었다.
마인으로 타락한 지금도 마기로 이루어진 벼락에 강기의 묘리를 섞어서 촉수를 휘두르고 있으니까.
당연히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같은 강기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이지?!”
뒤틀린 신체를 마기로 강화하고 벼락을 둘러, 강기와 함께 휘둘렀다.
심지어 열 개를 동시에 휘둘러서 연계 공격을 펼쳤음에도 상대는 강기를 검 한 자루에 집중시켜 열 개의 촉수를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초반, 자신을 농락하던 불꽃도 두르지 않았다.
오직 순백의 강기 하나로 모든 촉수와 대적했다.
그때 백석호는 작금의 팽팽한 형국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팽팽하게 싸우려고 마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압살하기 위해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가주가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도달했다.
백석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 촉수를 더 빠르고, 정교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발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촉수를 휘두르면서 생기는 틈에 벼락같은 발차기를 날리는 것이다.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피하던 나는 슬슬 체력이 한계에 붙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 슬슬 이판사판인 것 같은데.
하는 수 없지.
‘타마모. 잠시 뒤로 물러서.’
─뭘 어쩌려고 그래.
‘누군가 곁에 있으면 심상을 구축하는 게 힘들어서 그래.’
주술로 나를 보조하며, 매서운 발차기와 섬뜩한 벼락을 지켜주던 그녀가 잠시 내 곁을 물러갔다.
상당히 거리가 멀어졌다.
아무도 곁에 있지 않아서 혼자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내 모든 신경이 검에 집중되었다.
손에 들린 검에만 국한되어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다.
뭐든 검이라면 좋다. 그렇게 머릿속과 심상이 검으로 가득 찼고, 어느덧 손에서 순백의 검을 놓쳤다.
이제 손에는 검이 없으니.
촉수를 튕겨낼 물리적인 수단이 없었다.
그렇다면 마음을 검으로 빚어낸다.
명검이 무슨 대수일까.
나 자체가 검이 되면 그만이거늘.
깊은 생각에 잠긴 그때.
───!
촉수가 날아왔다.
정확히 내 심장을 노리는 촉수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촉수는 더더욱 가속했다.
심장이 촉수의 지척에 다다른 순간.
서걱!
오징어 다리를 써는 소리가 들렸고.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베어지지 않던 촉수는 깔끔하게 베여서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에 들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법의 전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촉수가 잘렸다.
“심검.”
검술의 끝에 있다고 확언해도 모자람이 없는 능력.
아니, 이건 검술이나 경지, 능력 같은 단어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검이란 일종의 권능이다.
모든 무인이 도달하여 움켜쥘 수 있는 권능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무인들 중 열 손가락에 꼽힌다는 백석호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말도 안 돼! 무술의 끝은 무형검이 아니었나?!”
“……그럴 리가.”
“무형지기 너머의 개념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다고!”
무형지기(無形之氣).
마력과 달리 의념으로 가공한 정순함을 넘어선 무형의 기운은 모든 것을 도려내고 분쇄한다.
그런 무형지기로 만드는 무기는 대부분 소유자의 애병의 형태에 맞춰서 조형되는데.
이 세상에 검사가 많은 만큼 무형검(無形劍)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적인 호칭이었다.
그런 무형검이야말로 무인이 도달할 수 있는 지고의 영역이다.
라고 당대의 무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백석호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가 무형지기를 다루게 된 것도 벌써 10년 전의 일이지만, 그는 결코 다음 경지가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잡기로는 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
뭔가.
뭔가가 불안하다.
심장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백석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내 얼굴, 뒤에 난 여우 꼬리, 텅 빈 오른손을 차례로 보더니 이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대단하네. 심검을 휘두르기 전의 전조를 감지할 줄이야.”
나는 순순히 칭찬했다.
그렇지만 백석호는 어느새 도망치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판단 하의 도주가 아니라, 본능이 이성을 억누르고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판단은 빠르지만, 그런다고 피할 순 없다.”
마음에 형태는 없다.
막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거리를 벌려도 마찬가지다.
나는 백석호의 꼬랑지를 보며 읊조렸다.
“심검은 거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너는 사람의 마음이 거리의 제약을 받는 걸 본 적이 있나?”
이것이 심검이 강력한 이유이다.
마음에는 형상도 구체적인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마음을 검으로 달궈 날카롭게 세운 심검은.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공간에 가로막히지 않는다.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다.
“결코 막을 수 없는 검.”
그게 바로 심검이다.
“세상에 무슨 그따위 비합리적인 무술이……!”
“비합리적이라니. 심검지로의 경지를 걷는 자들을 모욕하지 마라.”
심검지로(心劍之路)
심검으로 향하는 길.
굳이 마음의 형상을 검으로 조형하지 않아도 좋다.
심창, 심권, 심조.
뭐든지 가능하다.
무도를 걷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연마하든 도달하는 끝이다.
“그들은 너보다 약할지언정, 너 같은 놈보다 훨씬 굳센 마음으로 이 길을 횡단하는 자들이니까.”
가는 길이 험악해 보일지라도.
걷는 길이 구불구불할지라도.
이 길의 끝까지 도달한 사람은 약하나 강하나 극에 도달한다.
극에 도달한 이후 혹여 강해지고 싶다면 되돌아가면 된다.
갈 때 길은 하나였지만, 뒤를 돌아보면 수만 개의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그렇기에 만류귀종이고.
심검이 무의 극에 위치한 무극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그 개념이 이 세계에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른다면 몸소 체감시켜 줘야지.’
온몸에 느껴지는 불안감에 결국 백석호는 벼락과 함께 도주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맞서 싸우진 않았다.
꽈드득!
손가락을 대체하는 열 개의 촉수가 하늘에 틈을 만들어 비집기 시작했다. 공간을 뛰어넘는 힘이었다.
이런 걸 숨기고 있었나?
나는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촉수로 공간에 틈을 만들어 그 속으로 도망친 백석호의 몸은 점점 반투명하게 변했다. 지금 놈은 나와 존재하는 공간이 달랐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백석호였지만, 그의 본체는 이미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작은 주머니 공간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확실히 이런 상태라면 물리적인 공격은 안 통하지.
……내가 손에 쥔 것이 심검만 아니었다면 말이야.
“누누이 말했잖아. 이 검은 피할 수 없다고.”
설령 공간을 넘더라도.
상대가 접촉조차 불가능한 영역에 있더라도.
사람의 마음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닿기를 원한다면 닿는다.
서걱─!
검을 휘두르자 공간째로 도려내는 검.
주머니 공간을 베어낸 검은 곧장 백석호의 다리도 함께 베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괜히 심검이 무극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니까.”
그렇게 공간을 넘어서 도망치려던 백석호는 도망칠 기회와 함께 재빠른 다리를 잃어버렸다.
고위 마인에게 다리 정도는 눈 깜빡한 사이에 재생시킬 수 있는 부위였지만, 놈의 재생 속도와 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일치했다.
마음에 속도라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기에.
베고 싶다면 그 즉시 베어낼 뿐이었다.
서걱─!
이번에도 들리는 선명하게 깔끔한 소리.
그와 동시에 백석호는 다리를 또 잃었다.
방금 잘라낸 부위와 똑같은 부위.
회복하자마자 잘라낸 탓에 백석호는 자신의 다리가 재생했다는 사실을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악!!!!”
오직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만이.
그가 잘린 다리를 재생하고, 다시 잘렸다는 사실을 실감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