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9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294화(29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294화
수장(4)
백석호는 그렇게 증발했다.
거인을 떠오르게 만드는 거대한 팔이 터지며 사방팔방으로 튀긴 피의 흔적만이 그가 죽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참, 죽이는 보람이 없네.”
기껏 힘들게 죽였는데 손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마물은 죽이면 마석과 부산물을 잔뜩 얻을 수 있지만, 백석호는 잡기만 더럽게 어려웠다.
“그리고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을 거면 좀 깔끔하게 죽던가. 주변에 남긴 흔적 다 어떻게 할 거야.”
거대한 팔이 터지며 튀긴 피는 빌딩의 벽과 공원을 가리지 않고 넓게 퍼졌다. 저걸 다 청소하려면 돈이 무지막지하게 깨질 것이다.
당연히 사건을 일으킨 주체는 백석호이니.
배상은 나인테일 길드에서 할 것이다.
게다가 사람도 잔뜩 죽이고, 일대를 아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 또한 나인테일 길드가 배상할 것이다.
‘가문은 모르쇠로 발뺌하며 일관하겠지.’
아무리 백석호가 가문의 장로 중 한 명이더라도, 그는 한낱 장로일 뿐.
그가 벌인 일은 천호백가와 관계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면 책임을 회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백석호가 마인이 되리라고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어.’
아무도 그가 마인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동과 날조라는 조미료만 첨가하면 아주 맛난 음식이 될 터.
‘일단 쉬러 가자.’
당장은 휴식이 필요했다.
* * *
전투가 끝나고.
나는 집이 아니라 본가로 향했다.
본가 또한 엄연히 내 집이었지만.
글쎄, 여기만큼 불편한 곳이 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의 사람들도 내가 불편한 것처럼 보인다.
“야, 저기 가주님 지나가신다.”
“가서 인사해야 되는 거 아니야?”
“원칙상으로는 그렇지만, 지금 집안의 실세가 장로님들이시잖아. 괜히 인사했다가 장로님들의 눈 밖에 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가문의 권력 다툼으로 분위기를 살피기에 급급한 시종들.
“너희들 뉴스 못 봤어? 지금 장로님들 발등에 불 떨어졌을걸.”
“왜?”
“나중에 일 끝나고 찾아봐. 보아하니 장로님을 단체로 큰일 나신 것 같은데, 앞으로 우리 같은 시종들은 가주님한테 절대 충성해야 될지도 몰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기에 불안한 시종들.
나는 그들을 뒤로하며 방으로 향했다.
저택의 가장 높은 곳.
오직 당대 가주만이 들어올 수 있는 가주실에 들어온 나는 곧장 의자에 앉아 TV를 켰다. 뉴스를 켜자마자 오늘 오전부터 오후까지 일어났던 일이 나오고 있던 참이다.
뉴스 하단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의 숫자가 적혀 있다.
점차 늘어나는 숫자를 지켜보며 의자 옆 찬장에서 술과 컵을 꺼냈다.
“판 진짜 예쁘게 깔리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이를 기회로 발판 삼아 장로 대부분을 숙청하고 그들의 돈줄을 내게로 환원하고 권력을 빼앗으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약 4만8천 명.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죽음은 나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내 약함으로 발생한 희생자들.
적어도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가문 내의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고인의 명복을. 부디…… 내세에서는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홀짝.
찬장에서 술을 들이켜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비싼 양주라서 그런가. 몸이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취기는 올라오지 않는다.
내 몸은 독에 대한 완벽한 면역을 갖추고 있다.
취기 또한 주독. 독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 몸의 면역 체계는 결코 내가 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로지 양주의 향과 가슴에 올라오는 은은한 화기(火氣)를 즐기며 술을 즐겼다.
“이럴 때 정도는 취했으면 좋겠는데.”
이전에는 취기 따위에 굴하지 않는 완벽한 육체를 가졌기에.
지금은 독에 완벽한 면역을 자랑하는 육신을 갖추었기에 취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취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잘 안다.
군대 특성상 규율이 엄격할 수밖에 없지만.
전쟁터는 또 얘기가 다르다.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를 풀어주지 않으면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최전선의 부대는 취기만큼은 조심하지만, 그래도 술을 마시며 흠뻑 취하는 것을 낙으로 여겼다.
취하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으니까.
죽어가는 사람의 몸, 뻥 터지는 복부, 동료의 빈자리, 시시각각 목을 조여오는 죽음의 감각 등등.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모든 것을 망각한 채 마냥 모든 것을 웃어넘길 수 있었다.
물론, 때때로 울며 하소연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끝은 언제나 웃음이었다.
술은 사람을 용맹한 사자로 만들지만 그 끝은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개새끼로 만든다. 이는 술의 큰 단점이지만, 그 광경을 보는 군인들은 그 모습 또한 하나의 여흥으로 여기며 술을 즐겼다.
“나도 취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들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미성년자라서 술을 마시지 못했고, 스무 살이 된 이후에도 몸의 해독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나서 술이 들어옴과 동시에 해독되기 시작했다.
내게 술은 일종의 차에 불과했다.
향이 좋고 목 넘김이 독특한 차.
지금도 사실상 나무 향이 나는 차를 마시며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희생자들의 추모에 술을 곁들이는 것은 그저 술로 고통을 잊으려는 사람들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것밖에 없기에.
술로 그들을 보내는 것이다.
아, 물론 유가족들에게 조의금도 드리고 있다.
나름 큰 액수를 넣어드렸다.
그렇지만 조의금은 남겨진 그들의 가족을 위한 것이고, 실질적으로 그들을 위한 것은 아니니만큼.
으레 어르신들이 이런 자리에서 그렇듯.
양주를 퍼마셨다.
꿀꺽꿀꺽.
양주를 병째로 마셨다.
도수가 꽤 높은 양주였는지 속에서 불이 났다.
식도가 뜨겁게 타올랐지만, 이 정도는 간지러운 수준의 자극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벼락을 몸으로 견뎠다.
덕분에 뜨거움에 대한 역치가 크게 상승했다.
술고래조차 뜨거워서 괴롭다고 여길 정도의 감각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양주를 꺼내 병째로 병나발을 불었다.
“향은 좋네.”
취하지는 않지만 향이 좋아서 꿀꺽꿀꺽 잘도 넘어간다.
비싼 술이니 당연했다.
본가에 보관된 술 가운데 고급이 아닌 것은 전무하다.
그렇게 남들은 평생 한 번 마시기 힘든 양주를 정확히 6병을 마시고, 7번째 병을 뜯으려는 순간.
덥석!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주님. 그러다가 간 상하십니다.”
본가의 숨긴 내 그림자.
백은호였다.
“간이 상할 독소가 있어야 상하지. 간에 도달할 즈음이면 이미 해독되고도 남는다.”
“그 정도입니까?”
“내 해독 능력과 면역 체계는 이쯤 얘기하지. 애당초 어지간한 걸로는 내 몸을 더럽힐 수 없으니 더 얘기할 것도 없고 말이야.”
“……그러면 본론으로 돌입하겠습니다.”
품에서 펄럭거리는 종이를 꺼낸 백은호.
몇 장의 종이를 내 앞으로 건넸다.
나는 오른손으로는 양주의 병을 잡고, 왼손으로는 종이를 들어 올렸다.
종이에는 작은 글씨로 최대한 많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림 같은 보기 편한 시각 자료 하나 없이 앞뒤 작은 글씨로 빼곡한 종이.
글씨를 키우고 보조 시각 자료를 첨부하면 괜히 페이지가 늘어나서 보관하기 귀찮으니, 정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선택한 수단이었다.
“관련 기사가 뜨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들 생각보다 정보가 잘 들어맞는군.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일이건만.”
“확실한 정보는 3번째 종이에, 물증은 없지만 심증밖에 없는 정보는 4번째 종이에, 심증밖에 없는 정보는 5번째 종이에 적어두었습니다.”
“5번째 종이는 치우도록. 심증조차 없는 추론은 괜히 내 주관과 직관만 가릴 뿐이다.”
“예, 알겠습니다.”
벌컥벌컥, 속을 데우기 위해 술을 들이켜며 정보를 훑자 대략적인 상황 판단이 끝났다.
“두 집단이 움직였군. 정부와 협회.”
“정부는 사건 발생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나기 전 공식적인 발표를, 협회는 나인테일 길드를 비난했습니다.”
“하기야 고작해야 일개 신문사와 방송사가 이 정도로 자세한 정보를 불과 하루 만에 얻는 건 말도 안 돼.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뒤따른다면 이 정도로 정확한 정보도 이해가 가지.”
종이에는 정부의 발표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전부 적혀 있다.
육하원칙, 인과 관계, 사건의 정확한 경위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알아낸 모든 것을 발표했다.
그 목적은 뻔했다.
“정부는 길드를 회생시킬 생각이다.”
“……아무래도 그런 눈치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미리 공개해서 이목을 정부에 집중시키고, 향후 자신들이 공개하는 정보에 따라 여론의 불씨가 어디로 향할지 바람 넣을 준비를 하고 있어.”
이번 사건은 대대적으로 널리 퍼졌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추모했고, 망가진 도시를 보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 분노의 끝에는 당연히 천호백가와 나인테일 길드가 위치하고 있다.
가문과 길드를 비난하고 욕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 사건의 경위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부에서 진실성 높은 정보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 같은 세세한 정보에 신문사와 방송사는 해당 정보를 덥석 물었고, 경위와 맥락을 이해하게 된 사람들의 분노는 보다 명확한 대상을 찾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씨는 생각보다 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불씨가 크게 타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정부는 머리를 좀 썼다.
천호백가와 나인테일 길드.
두 집단 모두 대한민국의 대표 집단이자, 밥줄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한 해 두 집단이 벌어들이는 돈은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그런 두 집단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덮어야지.
때마침 사람들의 주목이 정부를 향하고 있는 참이다.
사람들은 정부에게 더 많은 정보를 원했고,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정보의 객관성을 줄인 채 주관성을 높일 수 있다.
“이것 참 욕심이 과하시네.”
내가 짠 판에 누군가가 흙 묻은 발로 들어왔다.
불쾌감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이걸 엎어? 말아?
고민하는 그때.
“……하, 참 이건 또 어디서 찍은 거야.”
마지막 종이의 뒷장을 살피자 처음으로 사진이 붙어있었다.
대량의 피 위에 둥둥 떠 있는 백석호.
적나라한 그의 시체가 그곳에 있었다.
사진의 출처는 어느 한 신문 기사였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내가 한 집단의 수장을 수장시켜서 죽였다는 말장난으로 구성됐다.
‘……어. 이 사진만 보면 피에 빠뜨려서 익사로 죽인 것 같기도 한데.’
나 원, 진짜 골 때리는 놈이 다 있네.
수장(首長)을 수장(水葬)이라.
이건 또 어떤 미친놈이 적은 거야.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데?”
이 뉴스 제목. 오히려 약간 미친놈 같아서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