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0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02화(30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02화
마석(2)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
패배자가 설령 덕망 높은 사람일지라도 승자는 이를 마음대로 날조할 수 있다. 솔로몬의 72악마. 이곳에 속한 악마들 대부분은 그러한 날조를 통해 탄생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바알」이지.’
그의 시작은 분명 선신이었을지언정.
신, 「바알」을 숭배하는 신앙을 결국 다른 신앙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 결과 「바알」은 악마로 전락했다.
─뭘, 내가 다스리고 유랑했던 나라들에서도 그런 일은 흔했는걸.
‘소수민족의 토착 신앙을 이교도로 명명하고, 개종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침탈하는 경우는 역사서에 더러 있지.’
종교란 믿음이요.
신앙이란 삶이다.
이를 억지로 뒤트는 것은 평생토록 지켜온 믿음을 져버리고, 삶을 망가뜨리는 짓이다. 그렇기는 한데.
이제 와서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바알」의 파편이 백석호에게서 나왔고, 가장 큰 덩어리는 마인이 가져갔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마인들에 대해서라면 치를 떠니까. 좋은 수단이네.
‘이 마석은 존재만으로도 내게 장로들과 휘하의 세력들을 합법적으로 처리할 명분을 가져다 주겠지.’
그런데 말이다.
마석을 오랫동안 주머니 속에 보관하다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에는 맨살에 닿은 것도 아님에도 그러네.’
이 기분, 전에도 경험해 본 적 있다.
며칠 전, 백석호의 몸에서 마석이 떨어져 나왔을 때.
그 작은 파편을 집은 나는 왠지 모를 전능함과 권태감을 느꼈다.
동시에 무지막지한 식탐을 느꼈다.
‘그건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처럼 느껴짐으로부터 비롯되는 전능함.
모든 것이 내 것이기에 스멀스멀 몸을 잠식하는 권태감.
충분한 식사를 섭취했음에도 그 끝을 모르는 허기.
이 모든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마석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기보다는, 마석에 깊게 각인된 존재의 성향이 내게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 같았다.
백석호의 성향 때문은 아니다.
백석호의 탐욕과 욕망은 그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권태감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 양반이 전능한 것도 아니다.
마인이 된 백석호는 분명히 강했지만, 전능이라고 부르기에는 내게 치명적인 유효타 한 번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다른 마석과 달리 이건 좀 유달리 특별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깊이 고민할 것은 아니었다.
마석에 대한 관심을 끊은 나는 곧바로 회의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 그래서 가주님. 다른 장로들은 어떻게……?”
이름 모르는 청년이 말했다.
본디 발언권 없는 방계의 가주였지만, 장로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급하게 선출한 인원이었다.
그래도 자격은 충분했다. 적당히 선성이 느껴지고, 본래 비어 있던 5장로의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다는 사람이었다.
“……미안하군.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말이지.”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변질된 회의의 주제를 떠올렸다.
주머니 속 마석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기어코 모든 장로들을 회의장 밖으로 퇴출시킨 직후.
장로들을 새로이 선출했다.
문제는.
“가주님. 저를 3장로의 자리에 앉혀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나머지 여덟 자리는 어떻게 채우실 작정이신가요?”
“…….”
“현재 공석인 5장로를 제외하고 나머지 여덟 명의 장로들을 모두 밖으로 내쫓으시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뒤따라 회의장을 빠져나간 상황입니다.”
“……확실히 자리가 많이 비었군.”
“수십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나갔으니까요.”
천호백가는 이름 그대로 흰 털의 천호의 피를 잇는 여우들의 가문이다. 그렇지만 여우의 대명사는 구미호.
옛 선조들은 그 점에서 착안하여 방계의 가주를 81명으로 잘게 쪼개놨다. 장로는 방계의 대표라고는 하지만, 형평성을 근거로 방계의 가주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까 회의장에는 사람들이 잔뜩 있어야 하는데.
“정말 많이 빠져나갔구나.”
일일이 세어보기라도 하듯.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쳐다보며 답했다.
그러자 내 손에 의해 새로운 3장로로 선택받은 청년이 말했다.
“아, 아무래도 그렇죠? 제가 다들 불러오겠습니다!”
청년은 장로라는 위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벌벌 떨고 있었다.
‘겁이 많은 성격인가.’
아니면 장로라는 자리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나는 이런저런 추론을 했지만.
정작 진실은 간단했다. 장로들을 압박하기 위해 좁은 영역에 펼쳤던 압박감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역 내로 들어온 신입 청년 장로는 태어나서 겪어본 적 없는 압박감에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직접 선출한 장로의 추태에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보다도 능력과 충성심이었다.
말투 따위 아무래도 좋았던 나는 그의 말을 받아쳤다.
“됐다.”
“예? 그 말씀은?”
“나머지 여덟 장로들은 이 자리의 마흔다섯 명 중에서 선출하겠다.”
“!!!!”
81명 중에서 45명만 회의장에 남았다.
서른 명 이상이 장로들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지만, 숫자의 비율로 따졌을 때 남은 인원 중에서 여덟 자리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이다.
“장로들을 따라서 밖으로 나간 사람들. 대부분 차기 장로로 유력한 후보들인데요?”
본래 오늘.
황금 같은 주말에서 방계의 가주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공석이 된 5장로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5장로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내 앞의 새로운 청년 장로 외에도 여럿이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청년을 제외하고 그들 모두가 장로들을 따라갔다.
“……그래.”
“가문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은 자들이라서. 저들을 장로와 함께 배척한다면 아주 큰일이……!”
“아주 괘씸한 놈들이지.”
“예?”
괘씸한 놈들?
뭔 소리래?
지금 밖에 나간 방계의 가주들이 없으면 가문이 두 개로 분열해도 이상하지 않은 판국인데?
신입 장로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렇지만 이토록 많은 이들이 남아서 다행이야. 이 정도 숫자라면 장로들을 충분히 뽑고도 남겠어. 그렇지 않나?”
“……아.”
그렇지만 잘못된 것은 자신의 귀가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망했네.’
신입 장로는 직감했다.
어째서 어리고 뒷배 없는 자신에게 장로라는 달콤한 감투가 내려졌는지를.
‘앞으로 지옥 같은 근무가 펼쳐지겠지.’
미래가 훤히 보인다.
* * *
가문의 아홉 장로 가운데 여섯 자리를 채웠다.
3장로, 4장로, 6장로, 7장로, 8장로, 9장로.
나머지는 아직까지 공석이었다.
그야 나머지 세 자리를 조금 더 신중하게 뽑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장로는 장로들의 대표라고도 볼 수 있는 자리이며, 2장로는 그런 1장로는 보조하는 자리.
5장로는 대대로 가문의 무력을 담당하는 위치이므로 확실한 무력을 갖춘 이가 뽑혀야만 했다.
“백은호를 2장로나 5장로의 자리에 앉혀두고, 장로 중 한 명은 기존 장로 측에 붙었던 놈들에게 제안하면 좋겠군.”
나는 홀로 회의실에 남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온갖 아이디어를 말로 되뇌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내가 기존 장로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장로들을 선출해도, 그들의 위상이 단번에 떨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이간질과 내부 갈등을 일으키는 게 최선인데.”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하는 게 이로울까.
내가 가진 패. 확실하지만 효과가 약한 것과 불확실하지만 효과가 강한 패들을 비교하며, 최선의 수를 점검했다.
“인원수가 살짝 모자라네.”
최선의 1안.
차선의 2안과 그럭저럭 쓸 만한 3안까지 염두에 두자, 문득 내 편에 서줄 사람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은 충분하고, 상대 측 세력을 이간질하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면 세력도 문제없다. 명분도 확실하고 금력도 충분히 쌓아둔 것이 있지만, 최후의 관건은 권력이었다.
‘바지사장에 가까운 가주와 실권을 전부 장악했던 장로들.’
두 집단 사이에서.
가문의 시종들과 사업체를 운영하는 작자들이 실리에 따라 누구를 선택할지는 사뭇 자명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권력이다.
물론 가주의 권력으로 새로운 장로들을 우대했지만.
‘실은 가주에게 장로를 선출할 권한은 있을지 몰라도, 장로들을 마음대로 해임할 권리는 없지.’
애당초 장로란 직위 자체가 가주의 조력자일 뿐만 아니라.
가주를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막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저들이 선을 넘기 전까지의 얘기였다.
‘선은 저쪽에서 먼저 넘었으니까.’
이미 한 번 가주의 권력을 탐했던 장로들은 탐관오리에 지나지 않다.
어쩌면 장로들 가운데에서도 충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행적 대부분이 역신의 것이 가까웠다.
다 그냥 토사구팽 해버려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누이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겠어.”
긴 상념을 마친 끝에 회의실을 나왔다.
모두가 이 건물 밖으로 나갔는지, 회의실 바깥은 고요했다.
“……고얀 놈들.”
아무리 내가 늦게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가주가 나오기까지 한 명도 대기하는 사람이 없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내가 방패막이 삼아서 감투를 쥐여준 신입 장로들은 끝까지 남았어야지.”
안 되겠네, 기강 한번 잡아야겠다.
제대로 혼내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찰나.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익히 아는 발걸음 소리였다.
“오, 이거 우리 누이 아니야?”
“…….”
얼굴만 겨우 아는 누이.
정확하게는 큰 누이. 백승우의 누나다.
“정말 반가워.”
“…….”
아니, 사실 아는 것은 많았다.
일기장에 적힌 사소한 일화들.
머릿속에 남은 그녀와의 추억들.
무엇 하나 내 것은 아니었지만, 백승우의 것이었기에 그의 심장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인사와 함께 그녀를 천천히 훑었다.
“낯빛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군.”
“……뭐 어쩌라고.”
“가주 후보가 되어서 몸에 좋은 음식을 공양 받은 모양새 같은데. 건강해져서 보기 좋다.”
“……지랄하지 말고 어서 꺼져.”
나를 대하는 말투가 험하다.
싫어해서 그러나 싶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만큼이나 백승우를 돌봐주고, 훗날 백승우가 죽는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슬퍼해 줄 사람.
“그런 말 말고. 오랜만에 만난 김에 식사나 한번 어때?”
“…….”
“적어도 올해 중에 가족 식사를 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야.”
“……742일.”
“그게 뭐야.”
“……너랑 내가 식사를 한 마지막 날.”
어……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역시 싸움에 대한 재능은 없어도 정치와 운영, 선동에 모든 재능이 집중된 여인다웠다. 이런 재능이라면.
‘믿고 맡길 만하지.’
내 식사 권유에도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보아하니 그다지 흥미가 없는 눈치였다.
흥미가 없을 때는 역시 미끼 상품을 걸어야 하는 법.
나는 귀한 물건을 꽁꽁 숨겼다가 내놓는 도매상처럼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을 거론했다.
“가주의 좌.”
“……그건 또 왜?”
“그거 누이에게 줄게.”
“……?”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