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0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05화(30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05화
마석(5)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왔다.
평소 같았으면 연구실에 출근했겠지만.
괜히 연구를 했다가는 시간을 낭비할 것이 분명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 감각도 잊은 채 연구에만 몰두하여 강의에 늦고 말겠지.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도서관에 온 건데.
“저기 좀 봐봐.”
“와, 나 저 사람이 책 읽는 거 처음 봐.”
“1학기에는 강의도 맡고, 매일 도서관에서 볼 수 있었는데 2학기부터는 안 보이더라고.”
고요해야 될 도서관에 이런저런 소리가 들렸다.
그래, 뭐. 조용히 책만 읽는 것보다는 책 속의 내용에 관하여 학생들끼리 얘기하는 건 도서관의 예절에는 맞지 않아도.
학생들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니 납득할 수 있다.
근데 이건 아니지.
“지금 여기 보고 있는 거 맞지?”
“조교님 눈빛 진짜 매력적이다.”
“저 눈빛 뭔가 우리들을 째려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조교님이 우리 같은 놈에게 눈길을 줄 리가 없잖아.”
“……아무리 봐도 우리한테 좀 닥치라고 눈치 주시는 것 같은데.”
좀 닥치라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 시선에 뒷걸음질 칠 법도 했지만.
어째 학생들은 싸늘한 눈빛에 열광했다.
특히 여학생들이 그랬다.
간혹 남학생들도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른 남학생들밖에 없었다. 립스틱도 바른 애들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잘못 봤나?
눈이 건조한 것 같아서 눈을 비볐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학생들에게 눈빛을 보내는 것을 포기한 나는 그대로 책을 덮었다. 도서관에서 나올 작정이었다.
어차피 슬슬 강의 시작 직전이라서 책을 덮은 거지.
‘결코 도망치려는 게 아니다.’
─그거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나 자신에게.’
─아하.
그대로 도서관에 나온 나는 본능적으로 배후의 기척을 살폈다.
혹시나 도서관에 있던 학생들이 나를 쫓아오는 것은 아닌가 확인할 생각으로 감각을 넓게 펼쳤지만 감지되는 것은 전무했다.
“……역시 확대 해석이었겠지.”
순간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도서관을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확대 해석한 것 같다.
─그러면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갈 거야?
‘아니. 읽던 책까지 반납한 와중에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다.’
─지금 강의실에 가려고? 아직 시간 꽤 많이 남았잖아.
강의 시작까지 30분은 더 남았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지만, 아직 모든 강의실에서 수업이 끝나지 않은 참이다. 오늘 내가 강의할 강의실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 봤자 수업 방해 말고 뭘 할 수 있겠는가?
쉬는 시간 10분을 고려한다면 수업이 끝나기까지는 무려 20분이나 남았다. 적당히 시간이나 때워야지.
터벅터벅.
아카데미 도처를 돌아다니며 주변 풍경을 구경했다.
작은 산과 계곡. 절벽과 사막을 비롯한 온갖 환경들이 나를 맞이했다.
여기는 진짜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네.
“참 이상한 발상이야.”
─학생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이 정도 규모의 부지에서 온갖 환경을 조성한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생각이지.
“매년 유지 비용이 말도 안 된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수시로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잖아.
“이건 효율의 문제다.”
칠성 아카데미는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물론, 초인의 달리기 속도로 충분히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렇지만 아카데미 중심과 도시와의 거리는 학생들도 함부로 가기 힘들 정도로 멀지.’
칠성 아카데미는 그 정도로 거대하다.
학생 수에 비해 정말 많은 강의실과 거대한 기숙사,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지를 채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거대한 틈을 채운 것이 바로 수많은 환경들이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돈이 아까웠다.
환경 조작과 기후 변화 정도는 마법사 개인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었다. 물론 전 세계에 10명도 없는 대마법사여야겠지만.
─그거 상식적으로 못한다는 뜻이랑 매한가지잖아.
‘그렇지만 칠성에는 대마법사가 두 명이나 있는걸.’
─……아!
대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거대한 부지에 다양한 환경을 조성한 것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칠성 아카데미에는 나와 스승이 있었다.
“우리 둘에게 각각 유지 비용의 1/10만 준다면 이 정도로 공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물론 우리 둘 다 돈이 궁한 사람도 아니고.
꼭 필요한 일이거나,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면 관여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유지 비용의 절반을 준다고 하더라도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합리와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로서 이런 비효율적인 공간 활용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하는 중에 미안한데. 이 아카데미가 처음 지어질 무렵에는 네가 없었잖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절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
─……아, 그래.
말의 앞뒤가 안 맞는다.
아카데미는 20년도 전에 지어졌다.
그 시절에 내 몸의 원주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남화연은 태어났을지 몰라도 마법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이다.
사실상 지금까지의 얘기는 전부 무의미했다.
그냥 대화하는 것이다.
어떤 정보와 진실에 입각해서 의견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대화를 나눴다.
타마모는 그런 그의 모습이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너 지금 좀 피곤한 것 같아.
“잠은 제대로 잤다만?”
─그런 의미로 꺼낸 얘기가 아니야. 그리고 하루에 세 시간 밖에 안 자는 놈이 잘 자기는 개뿔.
타마모가 반투명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내 시선을 따라갔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줄곤 작은 꽃밭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열심히 기른 흔적이 역력한 작은 장미 화원.
그렇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장미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지금이 몇 월이었지?”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체계적인 연구와 계획을 위해 날짜를 모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건 의식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저절로 튀어나왔다.
─지금? 10월이잖아.
“아, 맞다. 그렇지.”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10월인 것이 당연하다.
불어오는 바람도 그렇고, 당장 눈에 들어오는 붉은 단풍과 점차 죽어가는 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가을이 지나면.
장미꽃은 완전히 죽겠지.
그리고 다음 해에 새로운 장미가 피어날 것이다.
─아까 전의 대화도 그렇고. 너 괜찮아?
“아니, 그냥 좀 감성적이게 된 것 같아서.”
유독 가을에 감성적인 사람이 더러 있다.
다만 그들과 달리 나는 감성과 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을은 무슨. 사시사철 감성보다 이성을 추구하는 게 내 성향이다.
나를 곁에서 줄곧 지켜보던 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래? 그건 처음 알았네.
“…….”
타마모는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는 눈치로 화답했다.
어째서 그녀가 그런 대답을 했나 생각했다.
처음에는 나를 놀리려는 속셈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말투가 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로 처음 알았다는 말투였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1년도 되지 않은 관계였네.’
내가 착용한 반지에 얽힌 영혼이라서, 둘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기에 망각했지만 우리는 그다지 오랜 관계가 아니었다.
단지 함께 지낸 시간의 밀도가 짙었을 뿐.
이제 겨우 반년 동안 어울린 사이였다.
‘그러면 모를 법도 하지.’
새삼 떠올려 보니 그렇다.
어째서 그녀가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나.
반년이라는 시간은 절친한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서로의 비밀에 대해 파고들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시간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시간은 남들과 달랐다.
한쪽은 잠을 자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시종일관 공부와 연구를 진행하는 미친놈이고. 다른 한쪽은 진작에 죽은 몸이라서 따분하거나 지친 영혼을 회복할 때가 아니라면 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길었다.
─……? 왜 그렇게 쳐다봐?
“내가 너를 왜 쳐다봐.”
─그래? 이상하다. 분명 네 시선을 느낀 것 같은데.
반지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의 의식 표면에 떠오른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주 빠르게 지나가거나 의식 깊은 곳에 내재된 생각은 읽을 수 없다. 나는 그녀를 보며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들을 전부 의식 깊은 곳에 꽁꽁 숨겨뒀다.
딱히 부끄러운 건 아니고.
굳이 이런 주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 헤어질 관계에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야, 너 평소답지 않게 멍을 그렇게 오래 때려.
“……아.”
─시간 다 됐어. 어서 가자.
생각을 하는 족족 의식 깊은 곳에 가둔 덕분에 타마모는 내가 멍을 때리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 착각에 반박하지 않은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강의실을 향해 걸어갔다.
터벅터벅, 정갈하게 차려입은 구두와 정장을 확인하고 강의실에 입성했다. 내가 들어간 곳은 대강의실. 마침 쉬는 시간이었지만 하나의 자리도 빠짐없이 학생들로 꽉 찬 상태였다.
“아직 쉬는 시간이 6분이나 남았는데, 다 왔군.”
오늘 내가 하는 강의는 1학년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였다.
쉬는 시간이니 당연히 학생 대부분이 자리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학년 전교생이 6분이나 먼저 자리에 착석했다.
쉬는 시간이 4분인데.
그사이에 벌써 화장실을 갔다 오고 착석했다고?
“화장실에 갈 사람은 손을 들도록.”
쉬는 시간이 6분이나 남았으니 어서 화장실에 가라.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뭐야, 진짜로 다들 그 짧은 시간에 화장실까지 갔다 온 거야?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내 강의는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혹시 모르니 화장실에 갈 사람은 어서 가라.”
그제야 학생들이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그 숫자가 매우 적었다. 10명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 화장실은 다녀온 모양이다.
다들 열정이 엄청나네.
─그만큼 네 강의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겠지.
‘알고 있어.’
아마 아카데미 최고의 교수로 불리는 남화연의 강의 정도는 되어야 학생들이 붐비고, 화장실을 진작에 다녀올 정도로 열정적일 터.
지금 이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내 강의 또한 남화연의 강의만큼이나. 아니, 그녀 이상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축하해. 학기 초와 다르게 이제는 완전히 학생들의 인정을 받았네.
‘애당초 강의 특성상 당연한 광경이다.’
남화연의 강의는 훌륭하지만 정규 교육 과정에 적힌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 만큼 강의의 전체적인 초점이 ‘지식’에 편향되어 있다.
반면 교수조차 아니라서, 비정기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가 강의에서 집중해야 될 것은 지식이 아닌 번뜩이는 ‘깨달음’이다.
지식은 기반이고.
깨달음은 탑이다.
탑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반을 탄탄히 쌓아야 하지만, 탑을 쌓은 이후에 돌아보면 막상 기반보다는 탑이 더 눈에 띄는 법이다.
─물론 기반도 중요하지. 그렇지만 아무리 기반이 튼튼해도, 위에 쌓는 탑이 엉성하면 튼튼한 기반도 무의미해져.
처억.
그녀가 반투명한 손가락으로 학생들을 가리켰다.
─학구열에 타오르는 저 얼굴들을 봐봐. 저게 엉성한 탑을 세우는 선생의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의 얼굴로 보여?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르친 학생들과 기억에 없는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 떠오른 학구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