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11)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11화(311/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11화
생각보다 따스하다(1)
승우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채색의 세상에 하늘과 땅의 구분은 없었지만, 어째 전보다 확실히 밝아진 것 같다.
무채색이라고 하더라도 구분이 있듯.
지난번에는 완전히 검은색으로 뒤덮였지만 지금은 한없이 회색에 가까운 세상이었다.
“심상이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나?”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승우는 심상을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생각했다.
뭐, 그래 봤자 별로 대단한 것은 없지만 확실히 큰 차이가 나는 영역도 있었다. 특히 승우가 꽁꽁 감춰둔 영역이 그러했다.
“산이 언제 사라졌지?”
산과 바다가 흐르는 영역.
본래라면 여기 태산이 우뚝 서 있어야 했다.
물론 심상 속 산인만큼 평범한 산은 아니었다.
‘시산이 없다.’
시산(屍山). 시체의 산.
등을 지키던 전우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지금까지 죽여왔던 마물들의 죽음이 투영되어 마음 한곳에 차곡차곡 쌓이다 못해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이 솟은 산이 이 자리에 있었다.
그 대신.
‘……민둥산? 이게 왜 여기 있지?’
나무 없는 산이 그 자리에 있었다.
시산이라고 해서, 진짜 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체가 산처럼 많이 쌓였다는 비유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태산만큼이나 거대했던 시산이 한낱 민둥산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마음이라는 것이 자유분방한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이게 이렇게 쉽게 변할 것은 아니었다.
‘괜히 정신병 치료가 어려운 것이 아니지.’
거대한 시체의 산은 쐐기나 다름없었다.
승우가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는 동료들의 무게.
죽여온 것들에 대한 삶의 무게.
그런 것들이 한데 모여 쐐기마냥 깊게 박힌 것이 바로 산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네.’
승우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산도 산이지만, 바다도 이 꼴이 될 줄이야.”
뚝뚝.
산등성이,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봉오리에서 물이 흘렀다.
계곡과는 사뭇 다르다.
계곡의 물과 달리, 본디 이 액체는 산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었으니까.
액체는 그렇게 끝없이 흘러내려 산 밑을 가득 채웠었다.
‘시산이 있으면 혈해는 뒤따르는 법이지.’
피의 바다.
시체가 태산처럼 쌓이면 피가 강을 이루다 못해, 핏방울이 바다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했다.
심상 속 이 영역에는 시산과 쌍을 이루는 바다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민둥산과 같은 논리로 다른 것이 바다를 대체했다.
“강줄기?”
바다는 더 이상 광활하지 않다.
가뭄이라도 들었는지 넓은 바다는 메말랐다.
색깔이 많이 탁하지만 피보다는 물에 가까웠다.
진짜 왜 이러지?
‘최근 들어서 무언가를 많이 죽이지 않아서 그런가?’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손에 피를 묻히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그건 심상 속 깊은 곳에 새겨진 흔적을 지울 수 있는 것과 하등 상관없었다.
심상은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장소이다.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
둘 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점차 망가지는 자신을 가감 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망가진 정신과 정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뭐지.
왜 이제 와서 바뀌고 있는 거지?
영문을 알 수 없다.
“이런 건 도대체 무슨 의미 부여를 해줘야 되는 거지?”
승우는 심리학자가 아니다.
나무를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집을 그리는 것으로.
그 사람의 심리와 정신적인 무언가를 알아차릴 정도의 정신적인 학문에서 조예가 깊지 않았다. 그냥 제 주관으로 평가하는 것이 승우의 최선이었다.
‘확실히 눈에 들어오는 것 전부가 전보다는 온화해졌네.’
무채색의 세상.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없는 민둥산
졸졸 흐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짧은 강줄기.
이것들을 합친 세상은…… 엄밀히 따지면 불길한 것이 맞다.
무엇 하나 긍정적인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는 분명…….’
승우는 과거를 회상했다.
이전에 봤던 자신의 심상을 떠올리자면, 그래.
하늘은 칠흑처럼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밤하늘 위에 피를 뿌린 듯 불길하고 스산한 검붉은 빛 하늘이 심상을 감싸고 있었다.
시체로 이루어진 가장 큰 태산을 기준으로 길게 이어져 능선을 이루었고, 결국에는 시체로 이루어진 산맥이 되었다.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그대로 바닥에 고여 바다가 되었다.
시체가 하도 많다 보니 피가 마르는 일이 없었다.
마르기보다는 도리어 출렁출렁 쌓이고 있으니 그 규모가 태산과 마찬가지로 가히 대해를 방불케 했다.
‘많이 피폐했던 심상이었지.’
생기라고는 느껴지지도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심상 속을 엿본다면.
말해주지 않고서야, 눈앞의 광경이 산 자의 마음속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멸망 이후의 세상조차 이토록 흉측하지는 않을 터.
너무나도 잔혹하고 끔찍한 세계였다.
‘그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지.’
민둥산과 무채색의 하늘로 세상과.
시체의 산과 피로 이루어진 바다 위에 시체 몇 개가 둥둥 떠다니는 세상을 비교하면 당연히 전자가 훨씬 쾌적하고 상큼할 것이다.
승우 또한 전자를 더 선호한다.
이는 좋은 변화였지만.
왜 하필 이 시기에 좋아진 것인지 모르겠다.
“심상 속 풍경이 좋아질 계기가 있었나?”
전쟁이 끝나고, 검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심상 속 살풍경은 좋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심상 자체가 망가지고 무너지려고 했다.
시산혈해. 그것보다 더 끔찍할 몰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승우 또한 자신의 심상을 포기했다.
아무리 좋은 일을 경험해도 마음이 이토록 흉측하게 망가졌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죽느니만 못할 것이다.
차라리 안식을 가지는 것이 훨씬 낫겠지.
승우는 심상의 살풍경들을 보며,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내 수명이 얼마 남지도 않은 지금에서야 개선의 여지가 느껴지는 걸까.”
시한부 인생의 끝났지만.
스스로 죽기를 소망하는 지금에서야 무언가 나아질 기미가 보였다.
참 여러모로 이상한 기분이다.
어지럽고 오묘하게 기묘하다.
안 되겠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간다.’
여기에 오래 있으니 머리가 아프다.
터벅터벅.
승우는 산과 강을 뒤로하고 저 멀리 걸어갔다.
더 깊은 곳.
잔뜩 망가져서 끊어진 실타래마냥 이것저것 엉킨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산과 바다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아무것도 없었다.
잔뜩 망가진 흔적과 흉터만이 가득했다.
이곳이야말로 승우의 심상 속 가장 깊은 곳.
하도 망가져서 더 이상 본래의 형태를 유추할 수조차 없는 영역이다.
“그래도 여기는 예전과 똑같네.”
여전히 망가진 채, 방치된 영역을 보며 승우는 생각했다.
그래, 시산혈해 정도는 어떻게 변할 수 있지.
그렇지만 여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영역은 맨 처음 심상을 관조할 수 있을 적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줄곧 망가진 상태였다.
“어릴 적에도 이랬지.”
맨 처음.
어릴 적에 아직 검을 통달하기 전.
나름대로 경지에 도달하고 자신만의 검술을 고안하던 승우는 처음으로 제 심상을 관조했다.
그 시절 심상에는 민둥산도 시산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더 나은 내일을 향한 간절한 소망뿐.
그 소망은 빛이 되어 척박한 심상을 밝혀주고 있었다.
이후 희망이 꺾여 빛이 바래지고.
척박한 땅 위로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 산을 이뤄, 피가 뚝뚝 고여 바다가 되기까지는 대략적으로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10년. 금수강산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
그 긴 시간 동안 변치 않았던 유일한 풍경이 지금 승우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금 봐도 공허하네.”
그래야 했는데.
“여기는 또 깨진 유리창 같네. 이러다가 찔릴지도 모르겠군.”
손을 뻗어서 찢어진 부분을 매만졌다.
이전에 만졌을 때처럼 날카롭고 텅 빈 감촉이 손을 통해 느껴졌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손을 통해 전달된 감각에는 어딘가 저항감이 느껴졌다.
마치 그물. 아니, 거미줄을 손으로 지그시 누른 것 같았다.
어느 정도의 저항감은 있지만 세게 누르면 분명히 망가진다.
딱 그 정도의 감촉이었다.
“……이게 왜?”
만지자마자 이것의 정체를 금방 깨달았다.
엄청 쉬웠거든.
“반창고? 그게 아니라면 딱지인가?”
마음은 무척이나 심오하지만, 생각보다 단순한 면이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원리를 생각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 또한 그렇다.
깨진 유리창처럼 날카로운 부분이 서서히 붙어가고 있었다.
공백은 무언가로 채워진다. 이는 곧 마음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아.”
승우의 입에서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의식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고.
방금 전 민둥산을 보며 줄곧 입가에 맴돌았던 말이었다.
“왜, 이제 와서?”
왜 이제 와서…… 회복되는 거지?
왜 이제 와서…… 나아지는 거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관조했던 심상이 도리어 승우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두통이 어찌나 심한지 지금 승우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이대로 심상에서 일어나,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할지 고민하는 그때.
쿵!
심상 속에서 무언가 큰 진동을 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처참히 망가진 상태로 무너지는 하늘이 보였다.
군데군데 실금이 간 유리창처럼.
하늘이 무너지며 그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뭐야? 저기는 왜 붕괴하고 있는 거야?”
방금 무너진 것 또한 심상의 한 영역이었다.
저쪽도 공허한 것은 똑같은데.
저기는 또 왜 무너져?
한쪽은 회복되고, 또 한쪽은 원래대로 무너지고 있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승우의 머리를 스쳤다.
원인을 분석하려고 했지만 평소에는 잘만 돌아가던 비상한 두뇌 회전이 오늘은 가동을 멈췄다.
아무리 고민해도 중간에 자꾸만 턱턱 막힌다.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는 승우를 보며, 하늘 위에 두둥실 떠오른 여우 한 마리가 이 광경을 유유히 지켜보고 있었다.
─후후, 아무래도 골이 아픈 모양인데.
갈색 털과 아홉 개의 꼬리.
사람의 몸에 여우 귀와 꼬리가 달린 것이 아닌, 본래의 짐승 형태를 취하고 있던 타마모는 흉측하고 삭막한 주변을 보면서 조소했다.
─이 또한 너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주는 성장통이겠지.
성장통치고는 그 규모가 거대하고.
나이도 이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건만.
아무튼 고통 속에서 성장하면 성장통이지.
안 그런가?
─성장하면 성장통이고, 못하면 죽는 거지.
타마모는 승우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비록 감정의 표면.
껍데기만 읽을 수 있고, 숨기고 싶은 속내는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도 심상 속의 변화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영특한 너라면 금방 알아차리겠지.
다시 말해서.
그녀는 승우의 심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그에게 설명해 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고통은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비로소 성장이 되기에.
남을 관망하기 좋아하는, 성질머리 나쁜 여우는 짧은 발로 턱을 괴며 일련의 순간들을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