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1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12화(31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12화
생각보다 따스하다(2)
심상을 정처 없이 활보하던 와중.
황량한 폐허처럼 살풍경한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도 어둠도 없고, 그저 회색의 세상만이 짙게 드리운 세상이었다.
너무 텅 빈 세상이라서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금방이라도 미칠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아니지. 애초에 분위기랄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회색 세상에 분위기가 웬 말이냐.
“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군.”
아무것도 없기에.
도리어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털썩.
곧바로 자리에 앉은 나는 가부좌를 틀었다.
지금 이 순간 시각과 청각같이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감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오로지 입만 활짝 열었다.
‘무엇이 이리도 나를 힘들게 하는가.’
스스로에게 되묻는 선문답.
나는 진리를 찾기 위해 참선하는 수행자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꼬인 실타래는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지금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은 뭐지?’
가장 먼저 풀어나갈 것은 바로 이거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나. 무엇을 얻고자 연고 없는 소녀들을 자식으로 받아들였는가.
진지하게 고민해 봤을 때 결국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사람들을 돕기를 바랐다.’
나처럼 자라기를 원했다.
소년병. 어린 나이임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과 실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보우하기를 소망했다.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에르제베트와 백아를 양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손에서 내려놨다.’
다들 확실히 강해졌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내 등을 맡기기에 학생들의 성장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물론 이사벨 같은 소수의 천재라면 짧은 시간 동안 성과를 내서 등을 맡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 아이들이 나쁜 길로 들지 않고, 언젠가 다가올 재앙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강하게 키울 작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재앙에 맞서 강하게 키우는 것보다,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에만 교육의 초점이 맞춰졌다.
‘내 마음이 약해졌나? 그도 아니라면 괜한 사욕을 품은 건가?’
어째서 학생들을 더 독하게 가르치지 않은 걸까?
어째서 아이들의 건강하게만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한 걸까?
다양한 의문이 떠오르지만 정답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저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뇌까리지 않았을 따름이다.
‘지금의 나는…… 그 녀석들이 나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원한다.’
확실히 힘없는 초반에는 학생들과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다가올 재앙들에 저항하기에는 애로 사항이 많았다.
심지어 그 시절에는 시한부의 목숨이라서 더더욱 교육에 목을 걸었다.
그렇지만 막상 내 성장에 제동이 걸리지 않다 보니, 아이들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뒷전이 되었다.
가능하다면 나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이 좋다.
영웅으로 산다는 것이, 자신을 도외시하고 누군가를 구하는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괴로운 일인지 알고 있기에.
대마법사가 된 이후로는 혼자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첫 번째 질문은 이걸로 해답을 찾았다.
“다음은…….”
마지막 의문이었다.
바로, 심상의 회복에 대한 건이다.
‘나도 전말을 잘 모르겠네.’
심상 세계의 풍경이 회복된다는 것은 마음이 치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거나 봉합하는 것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외상과 달리.
마음의 상처는 그리 쉽게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낫지도 않고, 아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방치했다가는 상처가 벌어지다 못해 더 큰 상처로 이어지기 일쑤이니.
‘괜히 정신병이 지독한 게 아니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심상은 복구할 수 없다.
하물며 심상이 나처럼 처참하게 망가지고 깨져서 한껏 뒤틀린 내 것과 같다면 치료의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진 마음은 식물과 달라서.
말라서 죽어가기 직전의 화단에 물을 뿌려 기적적으로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식물처럼, 아무리 많은 사랑을 주더라도.
한 번 마른 뿌리는 두 번 다시 재생하지 못한다.
이미 심지가 박살 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내 심상을 일부나마 재생의 여지를 보였다.’
수많은 구역으로 나누어진 심상.
그 가운데 매우 좁은 구역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마저도 완벽하게 회복된 것이 아니라, 회복될 가능성만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는 놀랄 만한 일이었다.
‘나처럼 심상이 망가진 사람의 경우, 회복된 아예 사례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단언컨대 전체적인 무력의 수준은 이 세상 사람들이, 내 전우들보다 월등히 높다.
쌓아온 기술과 학문의 연차가 달라도 아득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딱 하나.
싸움.
죽고 죽이는 싸움만큼은 이 세상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인류가 통합하여 싸워야만 했으니.
투쟁에 관한 기술과 지식은 앞서면 앞섰지.
결코 뒤처지는 일은 없다.
‘예전에 보고서에서 읽은 기억이 있지.’
나는 기억을 되새겼다.
최근 일어났던 일을 되짚어본다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과거를 되짚자 심상 속 풍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심상이 공허하다고 해도 이곳은 엄연히 내 마음속이었다.
내가 생각하면 그에 따라서 움직이거나, 비치는 풍경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돌아가자.
눈으로 봤던 일들이 온 사방에 투영됐다.
마치 거대한 영화관 스크린 수십 개를 동시에 틀어둔 것 같다.
눈은 살짝 아프지만.
이러면 내 심상이 조금이나마 회복의 전조를 보였던 이유를 알아낼 수 있겠지.
‘확실히 싸운 기억들이 강렬해서 오래 기억에 남았군.’
싸우고 죽이는 것이 가장 먼저 투영됐다.
특히 최근에 싸웠던 싸움은…… 아주 강렬했지.
강렬한 기억이지만 싸움에 관한 것은 전부 넘겼다.
그러자 가문의 정치 싸움이 눈에 들어왔다.
흠, 저건 살짝 애매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장로들을 내쫓고 새로운 장로들을 영입해서 둘을 싸움 붙인다. 솔직히 재미있었지.’
그렇지만 저걸로 마음이 회복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
누이와의 식사는.
뭔가.
음…… 가슴이 따뜻했다.
내 머리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백승우’의 심장이 반응했다.
정말로 그립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
가슴이 따뜻하고 어딘가 뭉클해지지만, 내 심상이 나아진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른 기억을 투영했다.
이번에는 불이 눈에 들어왔다.
저주를 품은 자염도 원혼이 비명 지르는 검은 불꽃도 아니었다.
붉은빛의 일반적인 불꽃.
특별한 형태를 취한 것도,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것도, 질량을 갖추어 내 마음대로 조작하기 위한 불꽃이 아닌.
극히 평범한 일반 가정집의 가스레인지 불꽃이었다.
그 불꽃으로 음식을 조리한 나는.
털썩.
식탁에 음식을 올려두고, 주변에 아이들과 둘러앉아서 식사를 즐겼다.
“…….”
입가에 음식을 묻히고 먹는 아이들.
저걸 보니까 떠오른다. 저 날은 분명.
‘애들에게 식사법을 알려주다가 포기한 날이었지.’
아무리 품위 있게 먹는 식사법을 알려줘도 아이들이 따라 하질 않자, 결국 포기한 나는 말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그 모습이 뭐가 그리도 웃긴지 아이들은 나를 보며 웃었고.
백현아도 아이들과 동조해 웃었다.
나는 그들이 왜 웃는지 몰랐다.
그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겠다.
혹시 내 입가에도 아이들처럼 음식물이 묻었나 싶어서 닦아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냥 웃었다는 뜻인데.
정말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해할 수 없어도.
굳이 제재하지는 않았다.
“…….”
그들의 밝은 미소가.
내게는 너무나도 부러웠고, 또 듣기 좋았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순간을 넘기지 못했다.
다른 장면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지만, 이 순간은 뭔가 기묘했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따뜻함.
굳이 누군가 짚어주지 않아도.
이것이 내 심상이 회복되기 시작한 원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아이들의 모습이 스쳤다.
학생들을 가르친 순간들 역시 눈앞에 흘러갔다.
그들을 보는 것은 아이들과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나와는 다른, 창창한 학창 생활.
지금까지 조교로서 교단을 걸으며 지켜본 학생들의 웃음이 시야를 스쳤다. 이로써 나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은 하나의 요지였구나.’
내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
내 심상이 회복할 기미를 보인 것.
이것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야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이들과 학생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그 행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 삶은 충족되니.’
그저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끝까지 내가 해낸다.”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는 게 아니라.
나 홀로 이 세상의 끝을 보기로 결심했다.
문득 오른쪽 주머니가 무겁게 느껴졌다.
주머니 속 열쇠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웠던가.
‘……아.’
이제야 눈치챘다.
나는 이 열쇠를 사용함으로써 지킬 수 있는 관계들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고 있었구나.
아마 심상 깊은 곳에서 오지 않았더라면.
마지막 순간이 오더라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 행복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삶이 너무 괴로워서 나를 떠난 전우들과 선생님, 스승의 뒤를 따르고 싶었다.
그들처럼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무료한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다.
‘줄곧 죽을 장소만을 찾고 있었다.’
전우들이 그러했듯.
대의를 위해 희생했다는 최후를 맞이하고 싶었다.
삶은 지치고 고단하나, 평범하게 죽는 것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을 위한 예우가 아니니.
한 번 장렬하게 목숨을 태워보자.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죽어서 만날 이들 앞에서 가슴을 떳떳이 펼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것만이 내가 치열하게 살아간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준 원동력은 힘을 잃었다.
대신 새로운 원동력이 내 의지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친히 죽어줄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은 더 나은 삶.
지금은 적어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큰 것을 받았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돌려줄 차례겠지.”
받은 은혜를 갚아줘야만 한다.
나는 금수가 아니다.
원수를 복수로 갚을 줄 안다면, 응당 은혜도 은혜로 갚아야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들에게 갚을 수 있는 은혜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세상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바로 앞으로 예정된 고난들의 근원.
그 싹을 제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