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화(3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화
고독(2)
“이거 완전히 생지옥인데요.”
“아니, 아직 좀 더 난장판이 되어야 해.”
나는 높은 곳에 올라 던전을 한눈에 바라보며 혀를 찼다.
에프넬의 화원에 있는 모든 나무들은 이미 고에게 먹힌 지 오래다.
남은 것은 독을 내뿜는 생물들과 독에 절여진 토지 정도려나.
‘내 예상보다도 시간이 좀 더 걸리겠네.’
벌써 고를 지상에 풀어준 지 한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던전의 생명체 70%가 저 녀석에게 먹혔다.
덕분에 고의 크기는 어지간한 마물을 뛰어넘었다.
족히 30미터, 아니, 태산처럼 거대한 녀석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만.
‘글쎄, 이대로는 이 화원을 전부 먹어 치우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척 보면 알 수 있다.
입에 닿는 것은 뭐든 삼키던 때에 비해, 고는 지금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마물들이 도망치고 있다.
한입에 잡아먹을 수 있는 거리와 크기임에도 녀석은 움직이기는커녕 구경만 하고 있었다. 거듭되는 식사에 포만감이 들어서 만사가 귀찮은 눈치다.
과연 저 상태의 고가 더 이상 움직일까?
나는 고가 이 던전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길 바란다.
그런데 과연 녀석이 내 의도대로 움직여 줄지가 문제다.
내게 있어 이 던전, 에프넬의 화원은 클리어해야 하는 곳이다.
다만 고에게 있어 이 던전은 태어나고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녀석이 화원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는 것은 이 토지 위에 오직 자신만 남긴다는 것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이 생태계는 멸망한다는 뜻이다.
그걸 과연 고가 일으킬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조금 자극을 주는 수밖에.”
나는 고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이번에 이미호가 되며, 마력과 이 중나선의 통제에 능숙해지며 펼칠 수 있게 된 절기(絶技).
열양지(熱陽指).
내가 익힌 여러 무술 중 하나로.
오직 손가락만을 이용해 싸우는 지법(指法)의 일종이다.
본디 마력을 열기와 양기의 형태로 변환해, 손가락에 둘러 혈도와 혈관을 공격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지금은 몸에 넘쳐흐르는 것이 양기이고, 특기가 화염 마법이기에 앞선 과정을 전부 생략하고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열양지 또한 무술인만큼 몸으로 직접 펼쳐야 하기에 부상의 위험이 있었다.
허약한 몸뚱어리의 내구성으로는 지법도 힘드니까.
그런데 거기서 발상을 조금 바꿨다.
지법은 여타 무술처럼 고강한 묘리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굳이 손으로 싸운다면, 손톱과 손을 이용하는 조법(爪法)을 섞어서 사용하지.
지법만 사용할 것이라면, 구태여 이 연약한 몸으로 접근전을 펼칠 필요가 없다.
그저 멀리 쏘아내면 될 뿐이다.
스윽.
오른손의 검지를 고에게 겨누었다.
마치 저격 총을 들고 있는 것 같은 자세를 잡았다.
“선생님? 뭐 하시나요.”
“쉿.”
손이 남는 왼손 검지로 입을 가렸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
지법은 오랜만에 사용하는 데다가, 고의 체구가 워낙 거대해 목표점을 찾기 힘들어 집중할 환경이 필요했다.
노리는 것은 포만감에 빠져, 굼뜨게 움직이는 고의 복부.
조준은 마쳤고, 이제 남은 것은 쏘는 것뿐.
[열양지(熱陽指).]검지에서 붉은빛이 점멸했다.
빛은 순간 반짝이더니, 강렬한 광선이 되어 고를 노렸다.
───!
대기를 찢으며 발사한 광선.
그렇게 강렬한 위력은 아니었지만, 고의 오장육부 중 한 군데에 구멍을 뚫어버리기에는 충분했다.
키에에에에!
뚫린 장기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받았는지.
고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순식간에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저건 재생 능력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자극에 적응한 것이다.
‘저게 바로 내가 원하는 능력이지.’
어떠한 상황과 자극에서도 적응하는 능력.
저건 몸이 허약한 내게 꼭 필요하다.
스윽, 그렇기에 다시금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엄지로 조준했다.
검지는 방금의 일격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지, 덜덜 떨려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차례대로 열 손가락을 이용하여 고의 뱃가죽과 오장육부에 구멍을 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녀석이 불꽃을 이용한 공격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위력을 조절해서 역치에 도달하기 애매한 위력으로 공격했다.
생각보다 복잡한 공정이 필요해서, 체력과 마력이 둘 다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후우우, 그래 이 정도면 됐겠지.”
키에에에엑!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고는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 쳤다.
녀석이 발버둥 치면 칠수록 뚫린 몸에서 섭취했던 식사들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고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내장에서 떨어지는 음식물보다 더 많은 것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게으름은 없었다.
고는 정말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려고 했다.
다행히 던전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거대한 고를 보고는 지레 겁먹으며 도망쳤다.
물론 모든 플레이어가 도망친 것은 아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이 던전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아직도 이곳에 있었다.
이 던전을 클리어하려는 나와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지.
그리고 저택에서부터 나를 쫓아온 스토커 세 명.
이렇게 다섯만이 남았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고는 세 명의 스토커가 있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이제 두 명만 남으려나.
* * *
거대한 지네 형태의 마물.
그것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 알고 있던 그림자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정도였다. 무능한 가주가 손 위에 올리자 벌벌 떨 정도로 연약한 지네.
아마 등급을 추정한다면, 가장 낮은 위계인 10위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약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태산만큼 거대해져서는, 이제는 자신들을 노린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들은 나인테일 길드의 그림자로써, 전능한 길드장의 수족들 중 하나.
저따위 지네가 아무리 거대해 봤자, 길드장에게 기술을 사사한 자신들을 먹잇감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무시하고 방심했다.
그것은 그림자가 가져서는 안 될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림자에게 사사로운 감정은 불필요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눈과 생각.
그 외의 인간성은 거세해야만 그림자라 불릴 자격이 생긴다.
그에 반해, 이들은 너무 미숙했다.
콰과과광!
대지를 질질 기어 다니는 지네.
그것은 화상을 입고, 내장에 구멍이 뚫린 채로 화원을 종횡무진했다.
그리고 그 경로에는 숨어 있던 그림자들이 있었다.
─일영!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이영, 진정해라. 지금까지 배운 대로 잡생각을 죽이고 침착해라.
일영이라 불린 사내가 다른 그림자를 다독였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연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여기는 삼영. 나는 이미 늦었다.
─뭐라고……?!
두 그림자가 뒤를 돌아봤다.
치이익, 검은 옷과 그 속의 살점이 검붉게 타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막내인 삼영의 몸 위로 녹색의 무언가가 뿌려져 있었다.
강력한 부식독(腐蝕毒)과 산성독(酸性毒)의 흔적.
분명 고가 내뱉은 것이다.
“안 돼!”
이영은 자신도 모르게 육성을 내뱉었다.
마력을 이용해 서로의 머릿속으로 대화하는 그림자로서, 스스로의 은밀함을 죽이는 최악의 실수.
그러나 형제나 다름없이 성장해 온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은 암살자라도 기겁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이영, 말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목표물에게 발각될지도 모른다!
─그, 그렇지만 삼영이!
─어차피 우리는 오래 살지 못하는 족속들이야. 지금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몸을 피해라.
─그래, 나는 버리고 가도록. 차라리 부식독에 당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목표물에게 시신을 들킬 일은 없을 테니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콰드득!
고는 독으로 뒤덮인 사내에게 아가리를 들이박았다.
날카로운 이빨과 엄청난 흡입력으로 단숨에 삼영을 잡아먹었다.
유언치고는 시답지 않은 말이 그의 최후가 되어버렸다.
“제기랄! 삼영의 복수를 해주마!”
“안 돼! 멈춰라!”
동료의 죽음에 흥분한 이영이 그림자로 단검을 만들고 고에게 달려들었다. 형제처럼 자라온 동료를 죽인 원수.
절대로 가만둘 수 없는 상대였지만, 그의 단검으로는 생채기 하나 내는 것조차 무리였다.
“……어?”
고에게는 단단한 외골격이 있었다.
일반적인 칼날 이상의 강도와 절삭력을 지닌 그림자 단검이 허무하게 부러졌다.
도리어 고는 자신의 거구를 크게 휘두르며 이영을 쳐냈다.
순식간에 갈비뼈와 관절들이 망가지고 내장이 곤죽 되었다.
엘릭서가 없다면 살아나기 힘든 치명상.
당연하지만 그들의 수중에 엘릭서는 없었다.
엘릭서는 천호 그룹 밑의 천호 제약에서 극히 희소하게 제조되는 포션.
천호백가의 가주조차 쉽게 다루기 힘든 그것을, 기껏해야 암살자들이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영은 그렇게 유언은커녕, 단말마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죽었다.
그나마 그림자들 중, 가장 연륜이 있는 일영이 죽은 이영의 시체를 부여잡으며 고를 올려다봤다.
그림자들 중 뛰어난 은신 능력 덕분에 녀석에게 들키지 않고, 바로 코앞에서 녀석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네 형태의 마물 치고는 단단하다 못해, 견고한 외골갑.
그건 자신들의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린다면 말랑한 내장을 노려야 겨우 가망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단시간에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고는 여러 마물들을 잡아먹는 과정에서 손톱이나 발톱으로 여러 상처들을 입었었다.
그 상처들은 고가 가진 적응력의 역치에 다다를 정도였으며, 이윽고 녀석의 몸은 날붙이에는 타격을 입지 않는 도검불침(刀劍不侵)과 같은 피부를 만들어냈다.
‘…….’
그림자를 통해 물리력이 있는 무기나 지형지물을 만드는 자신과 상극되는 마물.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영은 저 멀리 두 인기척을 노려봤다.
깡마른 사내와 어린 애새끼.
저 둘은 무언가 믿는 곳이 있는 것처럼,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해, 다리가 덜덜 떨리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
콰드득.
이빨이 부서질 정도로 입을 세게 물었다.
가슴속에 불쾌한 감정이 파문을 일으켰다.
일영은 감정을 숨기며 오래된 소망을 되새겼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길드장님의 유능하고 유일한 충복이 된다.
그림자로 영원토록 묶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둘을 어떻게 해야겠지.
무능한 가주는 사지를 자르고, 어린 쪽은 나중에 자살로 위장시키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죽은 동료들에 대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