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0화(32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0화
종족 연합(5)
싸움이 일어났으나.
선혈이 낭자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일은 없었다.
퍽─!
그저 주먹을 때려 넣으면 상대가 픽! 하고 쓰러졌다.
생각보다 허망한 싸움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이들도 제 능력을 온전히 발현할 수 없을 테니까.’
막사는 사람 여럿을 수용하기에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진심을 다해서 싸우기에는 좁은 편이었다.
특히 체구가 큰 종족들은 주먹 한 방 날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물론.
쿵!
‘주먹 한 대에 쓰러지는 건 좀 너무하지.’
3m의 거인이 움직였다.
거인은 큰 몸짓 탓에, 막사 내에서 자세를 잡고 주먹을 쥐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속도는 느리지만 자세는 잘 잡았고 체중도 주먹에 실었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공격을 한 번 허용할 시간을 주었지만.
“그런 작은 주먹은 간지럽지도 않지!”
사람의 작은 주먹은 견딜 자신이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고, 좁혀진 거리를 이용해 더 큰 공격을 날린다.
그것이 거인의 전투 스타일이었고 지금까지 그를 살아남게 해준 전투술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한 가지 방심한 것이 있다면.
훅!
설마 작은 주먹 한 방에 몸이 뒤집혀서 땅에 처박힐 줄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 어?”
허공에 뒤집힌 상태로 당황한 거인이 허우적거렸다.
바닥에 손을 짚으며 충격을 줄이지도 못한 그는─
────쿵!
머리부터 부딪혔다.
“설마 대가리 깨진 건 아니지?”
“피는 안 나는 것 같은데?”
“다행이군. 그러면 높은 확률로 뇌진탕이겠네.”
“그게 차라리 낫지.”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거인이 의식을 잃었다.
그 모습에 이를 지켜만 보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말을 거들었다.
“지금 몇 명이나 쓰러졌지?”
“몰라, 궁금하면 네가 일일이 세보던가.”
“그래 그러지 뭐. 음, 어디 보자…… 32, 33 아, 방금 걸로 딱 34명 쓰러졌다.”
“밖에 눕힌 사람들은?”
“아! 그렇네. 밖에 쓰러진 사람 16명까지 더하면 51명이네.”
“50명 아니야?”
“그새 한 명 더 쓰러졌거든.”
“……이거 이제 10분 지났지?”
불과 10분. 장교들은 지금까지 많은 병사들이 쓰러졌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을 느꼈다.
“저거 물건이네 어느 부대 소속이야?”
“애초에 저거 종족이 뭐야?”
“가면을 착용하고 있어서 얼굴은 모르겠지만, 가면의 코가 높지 않으니 수인 중에서도 짐승형 수인은 아니겠네.”
“그러면 무슨 종족이지?”
“아니지 뒤에 꼬리와 머리의 귀를 봐. 딱 봐도 수인이잖아.”
“마법이나 장식일 가능성은?”
“당연히 없지. 너 저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꼬리를 마법으로 만들 수 있어? 그 이전에 만들 방법이라도 알아?”
“아니.”
“그러면 정해졌네. 수인. 게다가 털을 보면 여우가 확실해.”
장교들끼리 열띤 대화의 장이 열렸다.
수많은 종족들이 모여서 이룬 종족 연합이기 때문에 각 장군과 장교별로 선호하는 종족이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자신과 같은 종족을 원하고, 또 누군가는 힘에만 치중된 동족들의 움직임을 보조하기 위해 발 빠른 종족을 부대에 함께 편성하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가면의 여우.
백승우는 가장 탐이 나는 인재였다.
처음 보는 인상착의지만 속도면 속도, 힘이면 힘, 기술이면 기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육각형의 전사였다.
‘어떤 부대 소속인지는 몰라도 꼭 내 부대에 넣고 싶다!’
이는 막사에서 일어난 개싸움을 지켜보던 장교들이 공통적으로 품은 생각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백승우가 외부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적은 같은 인간이 아닌 마물과 타락한 정령, 기수였다. 인간의 형상을 한 그가 적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게다가 다소 다혈질에 혈기왕성한 수인들이 간혹 이렇게 마력을 배제한 채 육탄전으로 싸우며 전우들끼리 우열을 가리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그들은 저 멀리서 요란한 갑옷을 착용한 엘프가 달려올 때까지 싸움을 중재할 생각을 품지도 않았다.
“그쯤 하세요!”
“어라? 견습 기사 엘프 나리. 여기는 또 무슨 일이래?”
“당신 제가 말했죠! 견습 기사든 엘프 나리든 하나로 부르라고요. 도대체 몇 년째 둘을 합쳐서 부르는 겁니까!”
“하하, 엘프 견습 기사 나리가 좀 용서해 줘. 우리 대장은 용맹해 보이지만 결국 강아지 대가리라서 기억력이 그 정도로 좋지 않다고.”
“당신도 갯과 소속이거든요!”
“아, 그랬어? 난 몰랐지, 엘프 견습 기사 나리.”
“진짜 염병하네! 당신도 똑같아요!”
지랄 맞은 성격.
유난히 높은 고음.
특유의 목소리에 싸움을 벌이던 온갖 종족의 병사들이 싸움을 멈추고 그쪽을 돌아봤다.
그곳에 있는 것은 허리 부근까지 내려오는 찰랑이는 황금의 머릿결과 산천초목의 풍요로운 녹색을 그대로 담고 있는 녹색의 엘프였다.
“우리 아가씨가 이런 곳에는 무슨 일로 행차하셨지?”
“그러게 말이야. 평소에는 우리 아저씨들하고는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다 조용히 하세요! 저는 상부의 명령과 신고를 받고 왔으니까요!”
“…….”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적막. 이토록 고요함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싸움을 즐기던 수인들과 그녀를 놀리던 장교들도 다 함께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그녀가 입에 담은 ‘상부의 명령’이라는 말은 큰 무게감이 있었다.
또각또각.
나무 구두를 신은 그녀가 백승우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껏 수인들과 전투를 벌이던 그는 자신의 앞에 당도한 소녀의 모습에 주먹을 풀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승우는 왠지 모르게 그녀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무슨 볼일이지?”
그래서 승우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라면 뭇 여심을 흔들었을 적당히 듣기 좋은 저음이 가면을 타고 흐르며, 어딘가 신비하되 다가가기 힘든 목소리로 변했다.
이에 작은 엘프 기사가 주먹을 쥐며 입을 뻥끗 열었다.
아마도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상급 기수 사냥에 관해서 도움을 받고 싶은…….’
“거기 신원 모를 너! 너를 일반 엘프 부대의 신고와 상부의 결정으로 체포한다!”
어?
* * *
죄인은 얌전히 오라를 받아라.
그렇게 소리치며 포승줄로 나를 묶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줄과 수갑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말이지.
작은 엘프 기사의 주머니에는 긴 줄과 수갑이 있었다.
호시탐탐 내 손목을 노리던 그녀였으나, 내가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쓰러진 수십 명의 병사들을 가리키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결과 그녀는 내 포박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격한 체포 작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쪽에서 먼저 접선할 생각이었으니까.’
저쪽에서 먼저 부르면 편하지.
─그렇지만 대우가 별로잖아. 죄인이 뭐니 죄인이.
‘죄인이라니. 아무도 나한테 죄를 지었다고 한 적 없어.’
─신원불명이면 그게 죄인이지. 뭐 더 필요한 게 있어?
‘그렇게 말하면 더 할 말이 없네.’
그렇게 몇 분을 더 대화했을 무렵.
거대한 평원에 도착했다.
“결투장?”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엘프 기사가 긍정했다.
“알아보니 부연 설명은 필요하지 않겠군. 이곳은 네 짐작대로 결투장이다.”
온갖 형질의 마력이 잔뜩 뒤섞였다.
오랜 시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피의 냄새는 나지만 죽음의 냄새나 흔적은 일절 감지되지 않았다. 치열하게 싸우지만 죽이지는 않는다?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결투장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너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된다.”
“내가?”
굳이 왜?
스윽.
주머니에서 주먹 크기의 돌을 꺼냈다.
상급 기수. 붉은 갑주의 녀석을 쓰러트리며 얻어낸 사냥의 증표.
이를 손으로 들어 올리자 그녀가 고개를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급 정령석. 네가 손에 쥔 그것 때문이다.”
“지나가다가 사람 좀 구해줬는데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설마 연합이라는 게 사실 탁상공론이나 하는 집단은 아니겠지?
만일 그렇다면 여기 있는 놈들 다 뿌리치고 나 혼자 행동할 작정이다.
“그건 아니다.”
이에 정면에서 부정하는 그녀였다.
“다소 정치적인 입김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지?”
“……정치.”
“그래, 엘프 부대가 너를 신고하는 일이 약 7분 전에 있었다.”
“내가 구해준 놈들이군.”
“그래, 그리고 네가 그들에게 폭언을 사용한 모양이던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러면?”
나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폭언을 할 가치가 있어야 폭언을 하지.”
“……아하, 그런 쪽이었나.”
“멍청한 놈들에게 할 폭언은 없다. 그러기에는 내 입이 더 소중해.”
“그래?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부대에는 연합의 높으신 분의 손주가 있었다고 하더군.”
“그 양반에게 있어서 나는 손주의 은인일 텐데?”
“정치인들과 높으신 분들에게 은인이 대수인가?”
“……어.”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다.
방금 전 군인들 앞에서 목소리만 무작정 높였던 것과 달리, 지금 엘프 기사의 모습은 기사라는 직위에 걸맞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견습 기사지만 말이야.’
모두가 그녀를 보며 웃던 것을 떠올렸다.
그들의 웃음에는 악의가 없었다.
딱히 그녀를 비웃는 것 같지는 않고, 다들 어린 조카를 대하는 삼촌이나 귀여운 아이돌을 대하는 매니저 같은 태도였다.
하나 그 모습은.
“뭐, 긴말은 됐고. 결국은 나와 싸워서 이기라는 뜻이다.”
그녀가 자세를 잡는 순간 무너졌다.
─어라? 완전히 다르네.
‘그러게. 앞선 엘프들과 군인들과 비교해 봐도 분명 달라.’
내게 실망감을 준 엘프들.
소녀 또한 그놈들과 같은 엘프였지만, 이번 녀석은 이전 놈들과 달리.
나름대로 기도가 잡혔다.
잘 훈련된 군인. 아니 전사가 분명하다.
과연 기사는 기사다.
“창잡이로군.”
“……내가 말해준 적 있었나?”
“설마, 자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손바닥의 굳은살. 걸음걸이. 팔의 가동 범위.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창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이 여자는.
“장창. 체구에 비해 까다로운 걸 다루는군.”
“……이제는 놀랍지도 않네.”
“한쪽으로 쏠린 무게 중심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창은 무겁고 날 때문에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창술에 정통한 대가라면 이를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쉽게…… 쉽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졸졸졸.
물이 흐르듯.
허공에서 튀어나온 물이 그대로 허공에 스며들었다.
스며든 물은 반투명한 한 자루의 창이 되었다.
덥석, 엘프가 그 창을 꼬나쥐었다.
“그런데 당신 왜 자세 안 잡어?”
설마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창을 쥔 엘프가 내게 말했다.
“싸울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으니까?”
“……아하.”
내 대답에 납득한 눈치의 엘프.
그녀는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이해했다는 양 입을 열었다.
“날 이겨. 그러면 연합의 가장 높은 분이 너를 찾을 거야.”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아는 눈치인데?”
“신원 모르는 외부인이 군 막사에 왔으면 상부를 만나고 싶어서 온 게 뻔하지 않아? 자, 이제 동기 부여는 확실하지?”
그래, 아직도 왜 싸워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상부에 접촉해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동기부여는.
“확실하다.”
반지 속 공간에서 꽁꽁 숨겨 둔 요도(妖刀)를 뽑아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