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1)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1화(321/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1화
엘프(1)
“너는 누구지?”
검을 뽑자 눈앞의 전사가 말을 걸었다.
나를 적대하며 물어보는 질문은 아니고, 순수한 의문과 투쟁심에 비롯된 질문이었다. 승우는 그 질문에 답했다.
“……수.”
깔끔한 대답은 아니었다.
정직하게 진짜 이름을 알려줄 정도로 승우가 친절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런 눈을 한 전사를 앞에 두고 기만을 펼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철컥.
텅 빈 왼손으로 가면을 매만졌다.
“저 너머 협곡에 살던 검객. 수라고 한다.”
“인간들의 그 민간 신앙?”
“민간 신앙?”
전설이라고 들었는데.
전설 속 인물이라면 그럭저럭 흉내 낼 수 있지만 신앙이라면 살짝 얘기가 다르다.
신앙에는 해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괜히 타인을 모방한 자신의 입장만 난처해질 수 있다.
“뭐, 정작 신자들은 신앙이 아니라 전설이라고 하는데. 기도하고 절하면 그게 신앙이지. 안 그래?”
“……그것도 그렇군.”
“그나저나 수백 년 전에 퍼진 인간들의 전설이 실제로 나타났다. 라는 얘기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없겠지.”
그래, 믿기 어렵다는 거 잘 안다.
수백 년 전 나타났다는 강력한 힘의 은거기인.
장수하는 종족의 전설이었다면 또 몰라도, 단명하는 인간 세상의 전설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수백 년을 버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받아들였다.
이 세계에서 승우는 신분과 연고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승우가 자신을 드러낼 방법은.
오직 무력이 전부였다.
“그러니 증명하지.”
자신의 힘을 증명한다면 이들은 전설을 믿고 싶지 않아도 전설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자라는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여기서 승우가 자신의 무력을 증명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전설 속에 나오는 은거기인 수라고 믿게 될 터.
싸울 의지가 충만한 승우는 저주받은 도검, 요도(妖刀)를 기어코 검집에서 뽑았다.
그렇게 저주받은 검이 허공에 드러난 순간.
훙──!
창이 공기를 갈랐다.
정확한 찌르기가 미간을 꿰뚫기 직전.
챙!
도검과 창이 부딪혔다.
안에서 바깥으로 휘두른 도검은 마력으로 대충 강화한 근력과 원심력이 맞물려 창을 바깥으로 쳐냈다.
“실망스러운 기습이군.”
입을 열기가 무섭게.
─훅!
창이 승우의 머리 위를 스쳤다.
창끝으로 찌르려는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돌변해서 내 목을 그으려고 했지만, 그 궤적이 훤히 보였다.
서걱!
머리카락의 끝이 살짝 잘렸다.
놈의 창날은 아슬아슬하게 여우 귀를 스쳤다.
“……이건 제법이네.”
“아직 싸우면서 말할 여유가 있는 모양인데!”
그러다가 혀 깨물고 가느다란 목이 창에 뚫려도 난 모른다?
한껏 도발한 그녀가 창을 크게 회전했다.
땅을 가로지르며 밑에서 위로 올리는 창.
정확히 하복부를 노리는 창을 도검으로 튕겨내며 승우는 하체에 힘을 줬다. 정확한 자세를 위해 하체의 힘으로 몸을 고정하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서걱!
이번에도 날카로운 걸로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른 것도 똑같이 머리카락.
그렇지만 이번에 벤 것은 승우의 머리가 아닌 엘프의 황금 같은 긴 머리카락이었다.
승우의 검 끝에는 잘린 머리카락의 끝에 놓여 있었다.
“나도 종달새처럼 높고 시끄럽게 재잘재잘 떠드는 그 여린 목을 노리고 휘두른 검이었는데 실패했군.”
이번에는 승우 쪽에서 펼치는 도발.
“…….”
그 도발에 상대는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게 식은 눈으로 응수했다.
작은 체구에 어린 소녀 같은 말투지만 기술과 행동거지는 이미 훌륭한 전사이자 기사였다.
‘조금 더 진중하게 싸워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는 승우는 어느새 좌측으로 몸을 틀었다.
감에 의존하는 본능적인 움직임.
쿵!
덕분에 왼팔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빠르게 움직인 몸에 비해, 한 발자국 느린 뇌의 사고가 방금 전 일어난 일을 분석했다.
‘방금 뭔가 공기를 찢으면서 돌진했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쿵! 하고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건 폭탄이 아니었다.
그저 창끝에 마력으로 응집한 공기 덩어리가 강한 압력에 의해 재빠른 폭탄이 되었을 뿐이다. 공기를 활용한 투창.
이 정도 위력이라면 그럭저럭 마력을 필요로 하고, 효율도 떨어지게 마련인데 그 전조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는 곧 그녀가 제 능력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
감탄한 승우는 자신의 팔을 훑었다.
큰 부상은 없지만 압력에 의해 압축된 공기가 피부를 스치며 찰과상이 발생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친 바람의 궤적을 보며, 둘의 싸움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다양한 종족들이 아쉬운 탄성을 삼켰다.
“와…… 저건 진짜 아쉽다.”
“그러게 말이야. 잘하면 방금 저걸로 끝났는데.”
“지금 너희들은 승패가 중요하냐? 저 싸움을 봐라. 발걸음마다 펼쳐지는 수 싸움을 이해 못 하면 너희들은 아직 안목이 부족한 것이다.”
“그 어린 소녀가 저렇게까지 성장하다니. 이 할아버지는 감개무량하네.”
“할아버지 예순인 주제에 앓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일흔 살이라고요.”
“나는 인간이고 너는 엘프잖아 이놈아.”
태평한 분위기.
연합은 어린 엘프 기사가 외부인에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믿고 있는 듯. 그다지 승패를 논하지 않았다.
그들이 승패보다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은 둘의 전투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싸움이네! 씻다 말고 달려오길 잘했어!”
“인정. 사흘에 한 번 있는 샤워 시간보다 이거 더 가치 있지.”
“우리 조카 이겨라!”
“네 조카 아니잖아.”
“우리 모두의 조카 비슷한 거잖아. 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그런 것치고는 공격이 좀 매섭긴 하지만. 귀여운 건 사실이지.”
한쪽은 군인들에게 사랑받는 소녀 기사.
또 한쪽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외부인.
“그런데 저 녀석. 왜 마력을 안 사용하지?”
“그게 아니라 사용 못 하는 거 아니야? 왜, 그런 종족도 있잖아.”
“야, 네 눈하고 감각 기관은 장식이냐? 놈의 심장 부근에서 거대한 태동이 안 느껴져? 저 정도로 방대한 마력은 연합 내에서도 공주님 말고는 없어!”
“그러면 왜 마력은 안 사용하는 건데?”
“난들 아냐? 미친놈인가 보지.”
덧붙이자면 싸우는 내내 마력 한 번을 사용하지 않은 괴짜였다.
‘몸은 잘 움직이네.’
근육과 뼈. 무엇 하나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오직 마력 회로. 하나뿐이었다.
‘기존의 마법은 최소한만 사용할 수 있고.’
마력 회로를 크게 다쳤다.
이 정도 회로 손상은 마법사로서 임종을 선고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지만, 대마법사는 얘기가 다르다.
‘주술은 상대적으로 회로의 영향을 덜 받네.’
대마법사. 그 명칭은 허울이 아니다.
축적한 지식과 확립한 세계관. 방대한 마력과 뛰어난 센스.
이 모든 것이 일정 수치를 뛰어넘었기에 손에 넣은 것이다.
승우는 자신의 몸 상태를 분석해,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최선의 수들을 도출했다. 역시 가장 좋은 건 몸을 활용하는 싸움이었다.
그것도 내기를 일절 활용하지 않는 순수한 육탄전.
그것이라면 가뜩이나 망가진 회로에 영향이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너. 맨몸으로 싸울 생각 없잖아.
‘그야 당연하지. 맨몸으로 싸우면 그 상급 기수한테도 못 이겨.’
적당히 제 살을 갉아먹으면서 싸워야지.
장기전보다는 적당히 간을 보다가 단기전으로.
가능하다면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용한다면 최소한의 양으로 최대의 효율을 뽐낸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스릉!
왼손에 착용한 반지 속 공간을 열어, 그 속에 손을 집어넣고 미리 준비해 둔 검을 잡아서 뽑았다.
당연하다는 듯 재빨리 움직인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지금 승우의 오른손에 들린 도검도 그렇고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검에 대해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움직였다.
“자세가 흔들렸다!”
빠르게 검을 꺼내는 와중 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완벽에 가까웠던 검의 파지(把持)가 살짝 흔들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엘프의 창.
창끝에 모인 바람은 보이지 않은 또 한 자루의 창이 되어 상대를 구멍 뚫린 도넛으로 만들기 위해 날아갔다.
날아간 바람의 투창으로 만족하지 않은 그녀는 곧장 투창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재빨리 평원을 질주했다.
다다닥!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발바닥에서 방출되는 마력이 그녀를 밀어내며 엄청난 추진력이 되었다.
작은 체구 덕분이었다. 남들이 두 발자국 걸을 때, 그녀는 남들보다 땅을 서너 배는 더 밟을 수 있었다.
“다리!”
그녀가 입을 연 직후.
창이 다리를 노렸다.
이럴 경우 보통 사람들의 신경은 다리에 쏠려서 다리를 보호하게 마련이다. 그녀는 이때 창의 움직임을 수정해서 팔을 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상대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팔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늦었어.”
그녀는 다시 다리를 노릴 수 있는 위인이었다.
정확하게 다리를 노려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하는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반짝거렸다.
엘프의 기술로 다리에 난 구멍 정도는 쉽게 치료할 수 있다.
그러니 죄책감이 그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진 않았다.
퍽!
대신 다른 것이 제동을 걸었다.
살점을 관통하는 푹! 소리가 아니라, 둔탁한 머리나 뼈를 때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어린 엘프 기사가 평원에 쓰러졌다.
뒤통수에 큰 혹이 생긴 소녀.
다리를 관통시키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던 그녀는 애석하게도 제 뒤를 보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실책이었다.
“검뿐만 아니라 검집도 신경 썼어야지.”
승우의 허리춤에는 검을 보관할 검집이 없었다.
소녀가 바람으로 이루어진 투창을 날리는 것처럼, 승우는 그녀가 움직일 경로에 미리 검집을 위로 던져서 그대로 명중시켰다.
치열한 전투와 달리.
다소 심심한 마무리.
그렇지만 승자가 얼굴도 모르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연합의 군인들은 열광했다. 수인을 비롯해 혈기 왕성한 종족들로 이루어진 연합은 새로운 강자를 환영했다.
이윽고 그들 사이에서는 승우의 가명이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수.
다른 말과 혼동하기도 쉬운 그 짧은 한 글자는 이제 연합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야, 너 그 소문 들었냐?”
“본론만 말해. 무슨 소문?”
“그 사람 있잖아. 그 사람.”
“……그냥 이름으로 말해. 무슨, 말하면 안 되는 사람인 것도 아니고.”
“그래? 크흠, 그 수라는 사람 있잖아. 어제 그 사람한테 싸움 거는 양반이 있었는데 곧장 때려서 눕혔다고 하더라.”
“싸우다가 기절하는 것 정도는 흔한 일이잖아.”
“실은 여기서부터 본론인데. 쓰러진 사람 뒤통수에 큰 혹이 생겼데.”
“……또?”
뒤통수 성애자, 수.
그는 또 다른 의미로도 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