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2화(32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2화
엘프(2)
나는 연합에 가입했다.
특별한 확인 절차 같은 건 없었다.
“거듭 생각해 봐도 허술한 절차다.”
“수. 그건 당신이 사회와 단절한 삶을 살아서 그렇습니다.”
“……수? 아, 그렇지 그래.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연합에 소속된 군인, 전사, 기사들의 수준은 상당하다.
말단이야 평범했지만 먼발치에서 내 싸움을 지켜보던 눈빛들은 하나같이 매서웠다. 시선만으로 느낄 수 있다.
단련된 안법(眼法).
여간 단련한 수준이 아니다.
그런 강자들이 여럿 있음에도 연합에 들어가는 절차는 서류 한 장.
아무런 마법적인 처리도 이루어지지 않은 서류 한 장을 작성하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유서를 작성하는 게 입단 조건이라니.”
“그게 그렇게 이상해 보이나?”
“너희들이야 10년 동안 지속된 절차이니 익숙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내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정도 규모, 이 정도 세력의 단체는 종족 연합이 유일하다.
이 땅에 존재하는 나라들은 전부 멸망했고, 생존한 인류는 종족을 구별하지 않고 마물과 기수에 대항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연합을 배신하고 마물과 기수의 편에 붙는 작자가 나올 법도 하지만.
“절차도 그렇고, 배신자가 없다는 것도 이상해.”
“……?”
연합에 가입한 사람 가운데 배신자는 없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연합에 가입한 직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선에서 읽을 수 있는 서류들을 닥치는 대로 읽은 결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배신자? 연합을 배신한다면, 마물 세력에 붙는다는 뜻인데. 마물이 인간을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요.”
내게 뒤통수를 허용한 이유 말투가 공손해진 엘프 기사가 말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배신자가 있을 수 없다.
마물과 기수.
둘은 인간과 협력하지 않는다.
마물에게 있어서 인간을 비롯한 종족들. 인류 전반은 먹이에 불과하다.
타산적인 먹이?
자신들의 편에 선 먹이?
머리가 잘 돌아가는 먹이?
먹이는 결국은 먹이일 뿐이다.
“……그래.”
문서에 적혀 있었다.
전쟁 초반에는 연합을 배신하고 마물과 기수의 편에 서려던 이들이 있었다고.
“……마물이니까. 인간이 배신하든 말든 결국 먹겠지.”
그들은 살기 위해, 강자가 되기 위해 마물과 기수에게 접근했다.
수준 낮은 마물들과 기수들은 인간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지만, 고위 마물과 상급 기수부터는 인간과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다.
이를 노리고 접근한 인간들은 죄다 죽었다.
내 태어난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지만, 마인은 얘기가 다르지.”
“마인? 그건 또 무슨 종족이죠? 혹시 저희가 모르는 전혀 새로운 종족인가요? 그렇다면 연합의 전력 증강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마인은 예외다.
이 세상에는 마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마물을 숭배하며, 기어코 그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도리어 마물들을 잡아먹은 놈들이 있다.
마물의 살을 먹고, 그 유전자를 몸에 투여하고 인간이 아닌 족속으로 탈바꿈한다. 그리함으로써 놈들은 마물과 공존한다.
“그냥 지껄인 소리다. 그리고 너희가 모른 종족이 살아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너희가 알면 연합에 합류한 종족이라는 소리고.”
“저희가 모르면 아예 종족 자체가 멸종했겠군요.”
“알았으면 더 이상 말 시키지 마라. 바쁘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뭘 그렇게 읽고 계시나요?”
“……다음 대련에는 뒤통수에 혹을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겠다.”
“에이, 다시는 수 당신하고 대련 안 해요.”
내 뒤에 와서는 이것저것 묻는 엘프.
어린 모습에 어울리는 철부지 같은 행동이지만, 그녀와 창과 도검을 맞대며 싸운 내 기억 속 소녀는 한 명의 강인한 전사였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의 행동거지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루나. 내가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좀 닥치라고.”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여우 가면에 그려진 눈빛이 작은 엘프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와 동시에 내 심장을 맴돌던 마력이 아주 살짝 사라졌다.
인지부조화. 가면에 내장된 능력과 내가 가진 여우의 기질이 맞물리며 상대방의 정신 체계에 혼란을 야기했다.
“아니, 말 정도는 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당신 제 상사라고요.”
그러나 엘프 소녀, 루나. 그녀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노려봐요? 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면을 착용해서 저를 노려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조금 예상외의 결과인데.
내 정신 착란을 가볍게 떨쳐내는 강력한 정신력.
나처럼 정신의 어느 한구석이 맛이 가거나, 어지간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될 정도로 가볍게 떨쳐냈다.
‘특별한 물건 혹은 능력인가?’
루나 스스로의 정신력이 그렇게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력의 흔적이나 특이한 기물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면 종족적인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정신 간섭을 막아내는 특성 말이다.
“그래서! 뭐 읽고 있냐고 오늘로 다섯 번 물어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거 나도 궁금했어.
오늘따라 쌍으로 지랄이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정신 착란이 제대로 걸렸다면 좋았을 텐데.
하아…… 한숨을 내뱉은 나는 책상에 놓인 책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어. 각 종족들의 언어를 익히고 있었다.”
“언어요? 그런 재미없는 걸 왜?”
책에 적힌 가지각색의 언어와 기호들.
나는 이곳에 적힌 내용들을 암기하며, 다른 책들을 해석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내 학습을 보조하는 「마도성」은 이곳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오로지 제 암기력만을 믿고 언어들을 통째로 외웠다.
그리고 다음 책.
곰이나 산양 등, 수인들의 언어로 적힌 책을 펼쳤다.
“그건…… 발자국?”
“원시적인 주술이지.”
마력 회로가 망가진 몸으로 펼칠 수 있는 마법은 하급이 한계다.
내 육체가 가진 재능. 열에 관련된 마법의 재능을 더한다면 화염 마법은 중급까지 가능하다.
‘주술만 제외하고서.’
주술. 여타 학파의 마법과 같이 마력을 대가로 구사하는 것이 흔한 사용 방법이지만, 주술의 근간은 결국 동등한 거래다.
마력으로 먼저 주입해야 되는 통상적인 마법과 달리.
주술은 시작부터 완성되어 있다. 완성된 주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고, 보통 이 대가를 마력으로 지불한다.
하지만 이는 풀어서 말한다면 필요한 마력의 양만큼.
다른 대가를 제공한다면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력 다음으로 효율이 좋은 자원은.’
─역시 생명력이지.
‘그건 대가가 너무 크다. 마력보다 커.’
마력은 소모해도 회복하면 되지만.
생명력은 한 번 소모하면 회복되지 않는다.
생명력은 곧 수명.
수명을 갉아먹는데, 다음 날 회복되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러면 건강이지.
‘하지만 머나먼 타지에서 아플 순 없는 노릇이다.’
─조건 참 까다롭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거야.’
내가 모르는 미지의 지식을 공부해서 견문을 넓힌다.
넓힌 견문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설령 주술의 새로운 지평선을 여는 학문을 개발하는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해낸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으며 연구를 진행했다.
내가 바쁘다는 것은 알았는지 루나가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주술을 사용한다고 그래요. 그거 완전 구닥다리 학문이잖아요.”
─저, 저 애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는!
“아무도 안 쓴다고요 그런 거. 심지어 마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인기 없는 시대인데, 주술은 오죽하겠어요?”
그건 맞다.
이 세계에는 마법보다 검이 대중화된 느낌이었다.
내가 본 사람 대부분은 몸을 사용하는 전사였다.
아무래도 기수라는 녀석들 때문이겠지.
원소 마법에 상당한 저항력을 갖추고 있고, 자신과 일치하는 속성의 공격은 아예 통하지도 않는 갑주의 기사. 그런 놈들을 다수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법보다 무기와 육체를 연마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리라.
“다들 주술과 마법에 큰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다들 그렇죠.”
“내가 책을 대출할 때도, 아예 반영구적으로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다면서 오히려 떠넘기더군.”
덕분에 아주 많은 책을 가져와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주술과 마법에 대한 인식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친 세상이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읽을 수 있이 많아서?”
“그럼 물론이지.”
“취향 참 특이하네요.”
보통 따분한 책보다는 단련이 더 재미있지 않나?
작게 중얼거린 루나.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눈치였지만, 이상하게 내 눈치를 봤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더 해라.”
“어라, 저 그렇게 티 나요……?”
“엄청나게 난다. 그러니까 본론만 얘기하도록.”
너와 말 섞어줄 시간 없다.
수많은 책들을 분석하고, 이를 정리할 종이가 없어서 닥치는 대로 머릿속에 거대한 지도를 그리는 중이었다.
할 얘기가 있다면 빨리해라.
그녀를 닦달하자 결국 입을 열었다.
“실은 그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거든요.”
“무슨 명령이지?”
“순찰 임무요.”
“나랑 네가 같이 하는 임무인가?”
“아니요. 제 단독 임무요.”
이어서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신과 싸워서 이기면 상부의 높은 사람과 연결해 주겠다는 루나의 약속은 일주일 동안 지켜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듣자 하니 그녀가 이어주겠다는 당사자가 긴급한 문제로 자리를 뜬 상황이라고 하더라. 이에 죄책감을 느끼는 루나였으나.
“그래.”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연합의 높으신 분과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정보 때문이었는데, 그녀와의 전투가 나름대로 인상적이었는지 시도때도 없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덕분에 정말 온갖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녀 덕분이다.
“다녀와라.”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입만 벙긋거렸다.
화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아까웠다.
이 세계에서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시선의 움직임조차 완벽히 통제했다.
연구에 모든 것을 초점을 맞춘 나는.
“…….”
순백의 빛이 명멸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채 연구에 몰두했다.
* * *
한편 승우가 없는 세상은.
“엄마…… 아빠는 언제 와?”
“……글쎄? 아마, 다음 주에는 오지 않을까?”
“벌써 일주일이나 기다렸다고!”
“빠!”
“…….”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야, 너 뉴스 기사 봤냐?”
“당연히 봤지. 의혹이 정말 많던데 그 사람 그냥 죽은 거 아니야? 랭킹에 이름이 사라졌으면 십중팔구 죽은 거지.”
“야 혹시 몰라. 마인이 된 거 아니야?”
“하하하. 부족한 거 없는 사람이 왜 마인이 되겠어. 그냥 죽었겠지 뭐.”
승우에 대한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넘쳐나고.
“야야, 우리 저런 소리 듣지 말고 기말고사 준비나 하자.”
“……당장 찾으러 가자.”
“누구를? 어디로?”
“당연히 선생님 찾으러 가야지.”
“선생님 찾으러 어디로 가려고?”
“아무 데나 찾으면 나오겠지.”
생겨나기 시작한 금은.
어쩌면 조금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