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3화(32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3화
엘프(3)
연구의 진척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설마 고차원적인 발상보다 짐승처럼 직관적인 발상이 이토록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 조금 자존심 상하는데.
“좋게 생각하자고.”
주술. 특히 수인이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주술은 효과와 작동 방식이 무척이나 단순하고 명쾌했다.
배가 고프다면 허기를 채워주고.
킁킁 코가 막혀서 사냥을 할 수 없다면 후각을 높여준다.
수인들의 주술은 그런 식으로 원하는 것을 즉각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새로운 관점의 주술 아니야?”
─그렇기는 하지.
“그러면 좋게 생각하자, 우리가 또 언제 이런 걸 접할 수 있겠어.”
그녀의 밑에서 주술을 배우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건 수백 수천 년 전의 학문이라도 이 학문의 창시자들은 전부 머리가 좋은 천재라는 것이다.
내가 알던 주술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천재였기에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나 신념 따위를 주술 체계에 포함시켰다.
덕분에 그들의 주술은 대단했다.
차마 누구도 익히지 못할 정도로 대단해서.
후대에 계승되지 못하고, 만들자마자 사장될 정도로.
주술의 창시자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천재이기에 구태여 파고들지 않은 분야.”
책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직관적이고 저돌적이다.
말을 어렵게 돌렸지만 결국은 단순하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까지 단순하진 않다. 수많은 문서들을 번역하며 온갖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기본에 쌓은 지식들과 이것들을 합치면 상상만 이루던 것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누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하루 만에 새로운 공식을 만들 수 있다.”
“사, 사람 살려……!!”
“도와주세요!!!”
“……내 이럴 줄 알았다.”
─그거 네가 입 밖에 그런 말을 꺼내서 그런 거 아니야? 왜, 그 주술 중에서도 그런 거 있잖아.
참, 바람 잘 날 없다.
연구를 향한 확실한 길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인데.
선명한 비명이 들린다.
하는 수 없지.
나는 읽던 책을 덮은 채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귀에 들리던 비명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귀에 들리는 대부분의 비명들이 짧게 내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폐에 있는 모든 공기를 내뱉으며 절규하는 최후의 유언처럼 들렸다.
엄마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악!!!
온갖 음역대의 비명이 들린다.
다양한 종족들의 하모니.
셀 수 없이 많은 종족들이 지금 자신들만의 절규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나도 이유 좀 알자.
“도, 도망쳐……!”
“야, 거기 너.”
“누, 누구! 아, 기사님!”
“기사님?”
그 호칭은 또 뭐지.
난생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나는 기사라는 호칭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매만지며 말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토록 소란스럽지?”
“아! 저, 그, 그게!”
“…….”
말을 떠는 병사를 보며 직감했다.
이 녀석 지금 패닉 상태다.
떨리는 말과 손, 창백한 얼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표정.
도저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몰골이 아니다.
“됐다. 너는 가던 길을 가도록.”
“네, 네!”
후다닥!
전속력으로 달리는 병사를 뒤로하며, 바쁘게 움직이던 다른 병사를 붙잡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비교적 멀쩡했다.
“안녕하십니까, 기사님. 저희의 죄악이 끝까지 치달은 끝에 결국 창백한 말과 함께한 기사가 땅의 짐승과 함께 이곳에 당도했겠군요. 하하.”
“…….”
비교적 멀쩡한 것이 문제였지만.
아무튼 대화는 성립했다.
“그래서, 지금 이게 무슨 소란이지?”
“백기사. 그가 왔어요. 우리는 모두 벌레에게 물어뜯기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사님도 서둘러 피신하세요!”
“피신? 어디로?”
“어디든! 그의 벌레가 닿지 못하는 곳으로!”
이 말을 끝으로 병사는 곧장 전력 질주했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풍덩!
병사가 호수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호수에 몸을 던질 정도로 벌레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나도 예전에 벌을 피하려면 근처 물웅덩이에 몸을 던지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군.’
확실히 벌레는 물에 들어오지 않지.
대부분의 벌레는 물과 연이 없다.
그들의 유충이 보통 고인 물. 혹은 물가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벌레를 싫어하는 눈치였는데 안타깝게 됐다.
“저놈도 제정신은 아닌 모양이야.”
방금 들린 풍덩! 소리 이후 5분이 지났다.
그동안 누군가 호수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강화했던 청각을 닫았다.
가장 큰 막사. 전시에 전략 회의를 한다는 장소로 이동하는 나는 골몰히 생각했다.
방금 호수에 제 몸을 투신한 녀석이 했던 말.
“백기사.”
그게 거슬렸다.
기사라니, 기수를 잘못 말했나?
음, 아닌데. 분명 기수가 아니라 기사라고 발음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걷는 속도를 높였다.
“그래서 지금 뭘 어쩌자는 거요!”
“도망쳐야지! 뭐 어쩔 수 있나?”
“도망? 도마앙? 지금 그게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이 기지에는 모든 게 있어. 우리들의 역사, 기록, 무기,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당장 도망을 쳐? 대체 뭘 포기한 채 도망가고 싶은데?”
“살루트! 말조심해라.”
“조심 안 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너!”
“둘 다 좀 닥쳐! 시끄러워서 대화가 안 되잖아!”
가장 큰 막사.
딱 봐도 높으신 분들처럼 보이는 양반들이 눈에 들어왔다.
젊게 살기로 유명한 통상적인 엘프와 달리 중년 남성처럼 멋들어진 턱수염을 기른 정장의 엘프.
거대한 도끼와 터질 것 같은 근육의 사자 수인.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악마 뿔의 여인.
등등. 정말 다양한 군상의 종족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연, 저게 루나 그 아이가 말한 상부인가?”
그들의 가슴 부근에 달린 배지가 증명하고 있었다.
“마침 잘 됐다.”
묻고 싶은 정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40개가량의 종족들을 대표하는 그들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동원할 수 있는 부대는 모조리 보내!”
“우리 군의 실력으로는 뭘 어쩔 수가 없다고 몇 번을 말해!”
“여기 있으면 다 죽을 거야!”
모두 하나같이 패배를 직감하는 말뿐이다.
사실상 패배를 시인한 잔당 같은 꼬락서니다.
그 백기사? 그놈이 그렇게 강해?
“상부는 높으신 분들이 있다고 들었건만. 순 겁쟁이들뿐이군.”
겁쟁이.
그 말에 열이 받은 한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멋들어진 콧수염의 중년 엘프.
또 엘프였다. 난 왜 이렇게 엘프하고 연이 깊은 거야.
“자네, 방금 뭐라고 했…!”
손가락질하며 다가오던 엘프였으나, 한 번 째려보자 기가 죽은 모양.
그는 오다 말고 제자리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시선을 올려서 내 가면을 쳐다봤다.
가면에 그린 눈가와 눈을 마주치자 그의 표정이 싹 굳는다.
아무래도 가면에 내장된 능력. 인지부조화를 비롯한 정신 계열 능력들이 제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는 눈치다.
‘이상하네.’
루나한테는 안 먹혔는데.
상부라는 놈한테는 왜 이리 잘 먹히지?
이 사람이 약한 건가. 아니면 루나가 유난히 강한 건가.
‘나는 분명 엘프의 종족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한 건 강한 정신 방벽이 엘프의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기에 나는 겁에 질린 중년 엘프를 지나치며 그가 있었던 자리에 놓은 서류 뭉치를 잡았다. 서류에 적힌 세 글자.
백기사(白騎士).
서류를 뒤로 넘기니 녀석에 대한 정보가 싹 적혀 있었다.
궁금했는데 마침 잘됐네.
“이거 내가 가져간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게.”
“음.”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한없이 인간을 닮은 노인이 보였다.
인간……은 아니다. 나이와 달리 주름 없이 탱탱한 손.
그는 슬라임 같은 액체 형태의 종족이었다.
지금은 그저 인간으로 의태한 것 같다.
“내게 무슨 볼일 있나.”
가면에 얼굴을 숨긴 나는 최대한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노인이 푸르르 떨었다.
마치 내 한마디에 한기라도 느낀 양.
추워서 죽을 것 같은 눈치였다.
입이 얼어붙은 듯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에도 그는 무거운 입술을 꾸역꾸역 움직였다.
“그…… 서류.”
탱탱한 손가락이 내 손을 가리켰다.
정확하게는 방금 잡은 서류를 말이다.
“무슨 일에 사용할 생각이지?”
그는 불안하다는 눈치로 말했다.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사냥을 하는데 상대의 정보를 몰라서야 쓰나.”
“……사냥?”
마치 자신이 사냥꾼이고, 적이 사냥감이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
이에 악마 뿔 달린 여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되물었다.
“사냥? 방금 사냥이라고 하셨나요?”
“그런데 왜.”
“……예?”
“내가 사냥이라면 사냥이지. 뭐, 할 말 있나?”
허! 그렇게 상대를 얕보면 오히려 당신이 사냥감이 될 걸요.
그렇게 당돌하게 말하려던 여인이었으나, 가면 너머로 보이는 핏빛의 섬뜩한 눈빛이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마치, 정령들의 왕.
그들이 타락했던 순간 보인 위압감과 맞먹는 기운이 앞에 있었다.
“아, 아…….”
뭐라고 할 말을 잃은 그녀를 끝으로 소란스러운 토론을 막을 내렸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게 아니라, 입이 닫혔다.
방금까지 좌중을 압박한 거대한 기운에 차마 일어날 용기가 없었다.
이는 내가 막사를 떠난 이후에도.
심지어 백기사라는 녀석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는 곳까지 도착했어도 매한가지였다.
읏차. 큰 나무의 넓은 가지에 발을 디뎠다.
“어디 보자, 저놈이군. 워낙 이질적인 색깔이라서 잘 보이네.”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 순백,
진흙 묻기 딱 좋은 흰색.
그는 기수들의 왕. 기사.
다른 말로는.
“저게 정령왕이라는 놈이었나.”
정령왕.
놈은 상급 기수와 똑같이 생겼다.
전신을 덮은 갑주.
다른 요소가 있다면.
놈의 왕권을 증명하는 증표, 왕관.
“강하네.”
보면 이 말 말고는 할 게 없다.
백기사에게서 느껴지는 기백과 풍압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닿는 모든 것이 찢기고 날아간다.
그의 발이 닿은 곳에는 거대한 구멍이 뻥뻥 뚫렸으며, 다가오는 연합의 전사들을 상대로 손을 뻗는 것만으로 수십 조각 분쇄됐다.
마치 놈을 구성하고 있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거대한 폭풍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 하나가 그 정도인데, 나머지 부위는 오죽할까.
그야말로 살아 있는 폭풍의 덩어리.
그게 내가 백기사를 보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여기서 한 발 날리고 시작하지.”
선제공격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손에 마력을 응집해서 날릴 준비를 했다.
마력이 화염이 되어 밑바닥으로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조심해.
“나도 충분히 조심하고 있─!”
──슝!
바로 그때, 바람이 귀를 스쳤다.
눈먼 공격은 내게 맞지 않았다.
마력으로 보호막을 상시 형성한 덕분에 바람이 스치며 얼굴에 생채기 하나 없었지만, 나를 지나친 공격은.
콰가가가강───!!!
저 멀리 떨어진 작은 막사에 부딪히며 성대하게 터졌다.
무지막지한 위력.
도대체 무슨 무기를 사용해서 공격했길래!
나는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백기사의 손에 들린 무기가 보였다.
성인 남성보다 거대한 무기.
그건 바로.
“활?”
거대한 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