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4화(32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4화
엘프(4)
승우의 눈에 거대한 활이 들어왔다.
분명 백기사는 멀리 떨어져서 작게 보임에도, 그의 활은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원근감을 무시하는 크기.
“저건 그냥 발리스타잖아.”
머릿속에 어떤 전쟁병기가 스쳐갔다.
공성병기인 그것은 성벽을 부수는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법이 없는 세상에서나 통한다.
마력과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 무기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병기이기에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절대 개인이 사용하거나 소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소지를 논하기 이전에 마력과 마법이 존재하는 이상, 구시대적인 공성 병기는 별 효과가 없다.
“화살 보급도 문제지.”
휘두르면 그만이고, 날이 빠지면 갈아서 사용하는 검과 달리.
활에는 화살이 필요하다.
화살이 없으면 활은 탄력 좋은 끈과 기다란 막대기로 이루어진 장난감에 불과하다. 발리스타 또한 마찬가지다.
발사할 화살이 없으면 장난감이다.
‘그런데 화살 없이도 잘만 쏘네.’
쭈욱.
백기사가 활의 시위를 당겼다.
단단하고 탄력 좋은 끈으로 만든 시위를 힘껏 당기자 거대한 활대가 휘어진다. 반으로 접히기 직전까지 휘어진 활.
범상치 않은 크기의 활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시위에 백기사의 손길이 닿자.
후우우우웅─!
바람이 불었다.
작은 돌풍에 지나지 않던 그것은 백기사가 활시위를 놓은 순간.
──────!
거대한 돌개바람이. 폭풍이 되어 한 점으로 날아갔다.
강력한 탄력으로 날아간 한 점의 폭풍은 꼴에 활로 쏘았다고, 화살처럼 멀리 날아갔다가 그 자리에 꽂히며 주변의 모든 것을 바람으로 난도질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몇 채의 막사들이 바람결에 사라졌다.
사람들도 피분수가 되어 바람에 녹아 들었고.
그들의 흔적은 피 웅덩이가 고인 크레이터로 남았다.
─효율이 저게 맞아?
저 멀리 화살이 떨어지며 생긴 구멍을 지켜보던 타마모가 한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효율이 미쳤다.
마법이 3의 마력으로 최대 10의 위력을 낼 수 있다면.
정령은 1의 마력으로 계속 7의 위력을 내고 있다.
“그래, 비정상적인 마력 효율이군.”
이제야 알겠다.
저게 바로 엘프들이 말한 정령술(精靈術)이다.
왜 처음 만났던 엘프들이 정령에 대해 모르던 나를 이상하게 봤는지도 잘 알 것 같다.
저런 미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정령을 모르면 그게 이상하지.
“위력은 고정됐지만 쏘는 족족 「상급 마법」에 준해.”
─괴물이네.
그래 괴물이다.
이길 수는 있겠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상상되지 않는 괴물.
실력과 행운이 따라준다면 수백 명의 피해로 끝나겠지만, 조금의 운이라도 따라주지 않는 경우.
이 연합의 절반은 죽는다.
털썩!
승우가 높은 나무에서 저 밑바닥까지 몸을 던졌다.
중력가속도를 무시하고 가볍게 착지한 승우가 허공에서 검을 뽑았다.
반지 속 공간에 보관된 도검 중 아무거나 꺼냈다.
스릉─!
날카로운 금속의 도신에 새하얀 갑주가 반사되었다.
이내 도신에 반사되는 것은.
서걱!
잘린 갑주의 파편이었다.
* * *
‘얕다.’
검을 휘두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잘 벼린 검과 검을 감싸고 있는 순백의 검기가 백기사의 갑옷 조각을 베어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쾌거였다.
방금 전까지 백기사 앞에서 무기를 쥔 병사들은 누구 하나 백기사의 갑주에 흔적조차 내지 못했다.
강력한 태풍이 백기사를 수호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력과는 전혀 다른 정령 기운이 갑주를 보호하며 상대방의 타격을 허용치 않았다. 그래서 백기사의 갑주를 살짝 베어낸 것만으로도 쾌거임에는 분명하지만.
쿵!
본체의 핵에는 조금의 영향도 없었던 백기사가 발을 굴렀다.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갑주 때문인지.
백기사 발을 구르자 땅이 한차례 크게 진동했다.
─지진?
‘그건 아닐 거다.’
엘프들이 남긴 서적에 적혀 있었다.
하위 정령일수록 관장하는 영역에 대한 가짓수가 분분하고 다양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영역은 4개로 통일된다.
원소 마법에서 가장 기초로 알려진 불, 물, 바람, 땅.
이렇게 4가지다.
‘새하얀 갑주를 착용한 기수들은 한때 전부 바람의 정령이라고 불렸다고 하더라.’
─바람?
‘백기사는 본래 바람의 정령왕이었고, 그런 그에게는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지진은 땅의 정령왕의 몫이야.’
백기사는 땅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니 이것은 지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진동은.
“바닥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약한 바람이 땅속에 들어갔다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터.
하나 상대는 폭풍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사.
그가 시위에 걸어서 쏘아낸 바람은 한 발에 수백 명을 분쇄하는 칼날 폭풍과도 같다.
그런 그의 바람이 지금 땅에 주입됐다.
당연히 이후 펼쳐지는 양상은.
──────!!!!
땅바닥의 폭발이다.
바람에 의해 땅거죽이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대지 위에 자란 풀과 꽃, 나무들은 흙과 바위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져서 본래의 원형조차 남지 않았다.
땅속에 살던 벌레들이 영문도 모른 채 지상으로 튀어나왔고.
대부분의 알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죄다 터져 버렸다.
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대가리 또한 터졌다.
특히 신체 능력이 약한 인간들이 제일 먼저 고통을 호소하다가 죽어가기 시작했다. 충격은 생각보다 널리 퍼졌다.
“……아.”
─괜찮아? 귀 잘 들려? 혹시 눈이 먼 건 아니지?
충격은 승우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워낙 빠른 속도로 일어난 공격이기에 막는 것이 살짝 느렸다.
다행히 정통은 피했지만 충격의 여파가 생각보다 크다.
‘머리가 어지럽고…… 감각도 죄다 맹탕이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귀에는 이명이 들린다.
오감이 죄다 맛이 갔다.
이제 남은 감각은 육감 하나.
그렇지만 육감 하나 믿고 싸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하는 수 없이 성냥불 크기의 작은 불꽃을 여러 개 피웠다.
퐁.
수백 개의 불꽃이 두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허공의 불꽃이 승우를 반경으로 여덟 개의 원을 그렸다.
‘평소에는 사용할 일이 하등 없는 수단이지만.’
이럴 때 사용하려고 개발한 마법이다.
불꽃의 열기를 활용한 인조 감각기관.
팔방에 넓게 퍼져 눈과 귀를 대신해 주는 불꽃의 인도에 따라서 승우는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강──!!
금속과 금속이 강하게 부딪히면서 생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승우의 검이 갑주를 갈랐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열기를 포착하는 인공 감각과 육감을 활용해서 적을 놓치지 않고 베었다. 그렇게 갑주를 집요하게 벤 검은 갑주를 투구부터 각반까지 베어내 심장 부근의 핵을 잘랐다.
‘진짜 엄청 단단하네!’
슬슬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각.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에 손에 들린 검이었다.
날이 뒤틀리고 망가져서 다시 녹여서 사용하기도 힘들 정도다.
검을 덮은 검기가 날의 예리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검의 내구도 또한 높여서 검 전체를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이 꼴이 났다.
도대체 갑주가 얼마나 두껍고 단단했으면 검이 이런 몰골이 되나 싶다. 그래도 핵을 베어냈으니 다행이지.
‘S급 도검을 한 자루 버리게 됐지만, 이 한 자루로 백기사를 무력화시켰다면 훨씬 이득이지.’
자, 이제 직접 베어낸 백기사의 시체를 확인하려는 순간.
‘어? 갑주 다자인이 단순하네?’
순백의 갑주인 점과 모양도 백기사와 똑같다.
그런데 갑주에 달린 장식이 심각할 정도로 빈약했다.
마치 열화판에 양산으로 찍힌 갑옷을 보는 것 같았다.
아, 그렇구나.
‘진짜 양산이구나.’
승우가 죽인 것은 백기사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청각이 돌아왔다.
주변의 소리를 모두 들은 승우는 곧장 마력으로 다리를 강화해.
바닥을 걷어찼다.
퍽!
다리가 다소 아플 정도로 바닥을 걷어차자, 승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공에 떠오른 눈에.
─────!
바닥의 모든 것이 분쇄되어 가루가 되는 것이 보였다.
익숙한 바람. 파괴적인 폭풍.
분명 저건 백기사의 공격이었다.
‘분쇄된 흙바닥이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방향, 착탄 지점을 고려한다면 이 공격은 대략적으로…….’
자신의 오른쪽.
300m 너머에서 날아왔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백기사가 아니었다. 분명 백기사도 승우의 시야에 들어왔지만, 지금 가장 승우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나무 한 그루였다.
“전에 봤던 나무.”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비율이 이상할 정도로 크다고 생각했던 나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저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나무였다.
익숙한 나무를 보고 있다는 기시감이 든 순간.
바람이 살랑살랑 불며 그 나뭇잎을 실어 승우의 손바닥에 안착했다.
독특한 외형과 기질의 나뭇잎.
이런 잎을 가진 나무는 승우가 알기로는 하나뿐이었다.
역시, 그가 알고 있는 품종의 나무였다.
“신단수(神壇樹).”
한때 자신의 세상에 나타났던 일곱 재앙 중 일각.
땅의 모든 생명을 빨아먹던 고혈의 나무.
당시 명확한 이름 없이 각 나라마다 분분한 명칭 탓에 남들이 어떻게 부르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승우는 신단수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땅에서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된 지금.
저 나무를 굳이 별칭으로 부를 이유는 없었다.
“세계수.”
세계와 세계를 잇는다는 이름을 가진 거목.
엘프들이 ‘숭배했던’ 위대한 어머니이자.
이제는 타락한 정령들 정령, 기수들을 위시해 제 아이들을 심판하는 비정한 어머니 나무.
“너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구나.”
승우는 저 나무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아니, 가까이 본 것으로도 모자라서 직접 베었다.
직접 벤 신단수와 수상할 정도로 닮은 저 세계수는, 신단수 그 자체였다. 아예 동일한 나무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큰 나무가 우주를 통틀어서 둘씩이나 존재할 리는 없겠지.
거기에 사족을 덧붙인다면.
“네가 원본이었어.”
아마 저 나무가 신단수보다 더 어리다.
바로 그때 승우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쳤다.
곧게 뻗은 가지와 나뭇잎만으로도 하늘을 전부 가릴 정도로 울창한 나무가 불에 타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잿더미가 사방에 휘말리며, 시체들이 파묻힌다.
‘이제는 떠올릴 필요도 없는 먼 과거였건만.’
과거의 잔재가 다시금 승우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안 좋은 기억들이 머리를 잠식하려는 것도 찰나.
쿵! 쿵! 쿵! 쿵!
거대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수많은 소리들이 겹쳐서 들리는 거대하고도 웅장한 발소리.
거대한 괴물이 움직이는 것으로도 날 수 없는 이 소리는 분명, 수만 명 단위의 군대가 행군할 때만 들리는 발소리였다.
승우의 시야가 나무에서 내려와.
바닥을 향했다.
“……진짜로 군단이잖아.”
따스한 바람이 승우의 볼을 간지럽혔다.
곧 여름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였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바라보는 땅바닥에는 이미 눈이 잔뜩 쌓여서 제설이 필요할 정도였다.
온 천지에 빼곡한 하얀 눈.
안력을 높이자 더 확실하게 보인다.
눈꽃과 같은 그것들은 연합의 막사를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