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5화(32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5화
엘프(5)
땅바닥에서 눈꽃이 행군했다.
연합의 상부에서도 그 광경이 보였다.
이내 시력 좋은 조류 수인들이 나서서 확인하자 모두들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저 넓은 범위에 흩뿌려진 눈들이 전부 기수였다.
그리고 그들의 선봉장.
성인 남성보다 훨씬 거대한 활을 들고 있는 거대한 기수가 말을 이끌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푸르르!!
말이 투레질을 하며 거칠게 울었다.
등에 태운 기사와 같이 말 또한 순백의 백마였다.
그렇지만 말의 눈알까지 하얗지는 않았다
녀석의 눈은 굳은 피를 떠올리게 만드는 암적색의 암울한 색깔이었다.
그 눈빛은 굳은 피를 연상시키고, 이내 곧 연합의 미래를 연상시켰다.
“……우리는 모두 끝이야.”
말을 탄 백기사를 보자 상부는 전의를 상실했다.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말과 기사를 본 그들은 그저 겸허히.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한 예언자처럼 굳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순간 옛날이 떠올랐다.
화르르르!
세상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는 언제나 말에 탑승한 네 명의 기사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직 기수를 기수라고 부르기 전.
그들의 정체가 타락한 정령이라는 것도 모르던 시절, 네 명의 기사가 말을 이끌며 온 세계를 호령했다.
말을 타고 온 천지에 종말을 흩뿌리는 기사들.
그런 점에서 착안해서 기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
기수는 오직 그 네 명을 위한 명칭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가 본디 정령.
그것도 자연의 순환을 담당하는 4체의 정령왕이라는 사실을 엘프들이 깨달은 이후, 왕을 따라서 자신들도 갑주의 괴물로 변모한 정령들을 보며 기수라는 표현이 타락한 정령 전반을 일컫는 말로 확대됐다.
그러자 반대로 네 명의 기수들을 특정할 새로운 명칭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갑주 색에서 착안해, 정령왕이었던 그들은 기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순백의 백기사.
진홍의 적기사.
칠흑의 흑기사.
창백의 청기사.
이렇게 4개의 명칭이 정착했다.
정령이 타락하자, 그들의 보금자리인 어머니 나무도 검게 물들었다.
사실 인과관계는 아무도 모른다.
정령이 타락해서 나무가 검게 물든 것인지.
나무가 물들어서 정령도 악에 물든 것인지.
정령의 친구라고 불리는 엘프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연합이 알게 된 사실은 고작해야 기사들이 가진 능력들이었다.
“……결국 그녀가 말과 함께 왕관을 착용했구나.”
“왕관이 아니라 월계관이다.”
“저 월계관이 짐승들의 왕이라는 뜻인데, 월계관이고 왕관이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녀는 그저 정복자일 뿐이라네.”
“덤으로 질병 또한 옮기는 정복자이지.”
“……저항하려면 진작에 저항해야만 했다.”
“……활을 들어 올릴 때까지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기사의 상징인 말을 타고, 월계관을 착용한 이상 우리에게 가망은 없다.”
상부는 연합 가운데 그 누구보다 기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들의 전력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상부의 간부들은 기사들에게 대적하는 것보다, 포기하고 순응하는 것을 택했다.
순백의 백기사. 본래 바람의 정령왕이라고 불렸던 백발의 반투명한 여인은 태초부터 가지고 있던 바람의 권능에 더해 모든 땅 짐승들의 왕이라는 증표. 황금빛 월계관을 머리에 착용했다.
땅 짐승.
멧돼지나 곰 같은 야생동물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 짐승이란, 땅속에 사는 짐승들은.
다름 아닌 벌레들을 말한다.
“……온다.”
위이이이잉.
벌레 없는 지역이거늘.
작은 날벌레의 날갯짓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점점 늘어나는 벌레들은 군세처럼 모이며 저 멀리 눈꽃처럼 내려앉은 기수들과 함께 움직였다.
흑과 백.
검은 벌레들과 하얀 기수들.
무채색의 덧없은 그들에게 공통점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지만, 벌레와 기수들이 공투하여 사람들을 몰살하는 이유는 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가슴속의 충성심.
같은 왕을 섬기는 입장이기에 벌레와 기수들은.
종족도, 생김새도, 지능도, 실력 차이도 크게 나지만.
서로 힘을 합쳤다.
“……여기는 안전한 거 아니었냐고. 엘프들이 호언장담했잖아! 정령이었던 이상, 오래된 맹약 때문에 기수들은 절대 침범할 수 없다고!”
“사, 살려줘! 나는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처음 수십만 명의 기수들을 발견할 때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뭐, 사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것이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현실감이 없어서 병사나 장교 할 것 없이 모두들 정신줄을 놓았다.
놓은 정신줄은 끝끝내 잡지 못했다.
들끓는 벌레들이 사람들의 살점을 물고 파고들었다.
그 정도는 마력으로 몸을 방어하면 쉽게 막을 수 있지만, 밤새 보초를 서느라 지친 장병들과 반응이 느린 병사들은 늦었다.
“한 마리가 피부에 파고들었어!”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워! 마력으로 태워 죽여!”
“이, 이미 늦었어. 아! 아……!!!!”
“내 상처에 벌레가. 벌레가. 아.”
사방에서 비명이 들린다.
이에 마력으로 잘 보호하던 병사들의 정신이 살짝 흔들리며 미세한 틈이 드러났다. 이를 놓치지 않은 벌레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어서 기어코 살점을 물어뜯었다.
정신이 흔들리지 않고 마력도 충분한 병사의 경우, 마력이 다할 때까지 벌레들이 제 몸을 비비며 억지로 달라붙었다. 그 과정에서 수천 마리가 터졌지만 벌레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수에 있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평범한 벌레와 마력을 품은 벌레, 한없이 마물에 가까운 벌레까지.
온 동네 곤충들이 연합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벌레 진짜 더럽게 많네. 마력을 두른 채 손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200마리씩 죽고 있어.”
“야. 너희 종족 벌레도 먹는다면서. 너 오늘 포식하겠다?”
물론, 그걸로 연합의 단련된 전사들을 몰살시키는 것은 무리다.
그런 방식으로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약해 빠진 일반 병사가 전부였다. 그들은 온갖 수단으로 벌레들을 퇴치했다.
특히 마물에 가까운 2m 크기의 개미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적이었지만, 더듬이와 눈을 부수면 결국 박제된 곤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미친놈아. 우리는 오동통한 애벌레만 먹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것들 전부 단백질 아니야? 단백질이잖아. 그렇지?”
“왜, 먹으려고?”
“요즘 가뜩이나 연합군 식단에 단백질이 부족하던데, 단백질이 늘어나면 좋지. 특히 저 큰 개미. 잡으면 얼마나 많은 단백질을 줄까?”
“아니, 미친! 너 지금 저거 먹으려고 잡냐?!”
“왜 너도 줄까?”
“꺼져.”
슬슬 벌레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다.
어차피 벌레는 벌레.
밟고 누르면 쉽게 터져서 죽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벌레와 함께 검과 창을 든 기수들.
“벌레는 거의 다 죽였어! 그런데 백기사는 어디 있어?!”
“저기 있다! 저기! 사방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있다!”
그리고 그들의 왕인 백기사였다.
투구 위에 월계관을 착용하고, 말을 탄 채 활을 쏘는 그의 상대는.
서걱─!
검 한 자루로 백기사가 쏘아내는 바람의 화살을 가르는 검사.
승우였다.
다그닥다그닥!
백기사가 탄 말이 평지를 질주했다.
말을 탄 그의 거대한 위용이 가까이서 드러나자 새삼 그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었다.
백기사 본인만 하더라도 3m 수준의 거인이었다.
그런 그가 성인 남성 세 명보다 거대한 활을 쏘고, 5m 크기의 말을 타고 다닌다. 대적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온다! 백기사가 온다!”
“나, 나는 못해! 못한다고!”
지레 겁에 먹은 전사들은 백기사의 투구를 본 순간부터, 진작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장 곳곳에서 이탈자가 속출했다.
“이 멍청한 녀석들!”
그런 병사들을 보며 백승우가 외쳤다.
“지금 도망치면 병력을 잘라먹기 좋은 구도가 나와서 오히려 죽을 확률만 높아지는 걸 왜 모르는 거냐!”
기세는 연합이 불리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연합의 땅이었다.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수성이 더 유리한 법이다.
그런데 앞뒤에서 전선을 이탈하는 병사가 많아진다면 그 최소한의 이점조차 잃게 된다.
심지어 놈은 활을 다루며 바람을 다루는 괴물.
백발백중은 물론이고, 바람을 조종해 화살 한 방에 사람 대가리 수십을 명중시킬 수 있는 명사수란 말이다.
명사수 앞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것은 자살 행위다.
그런 승우의 생각을 긍정이라도 하듯.
후우우우웅!
일대의 바람이 요동치며 한 발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본 바람의 화살 중에 가장 큰 화살이었다.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활에 걸린 화살은 그대로 발사됐다.
수많은 병사들이 도망치는 곳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승우는 그 화살을 똑바로 직시하며 조금의 주저도 없이 달렸다.
화살은 발사 직후.
───────!!!!
일직선을 노리는 폭풍이 되었다.
거대한 폭풍.
그 앞에 선 승우는 검을 치켜들어서.
휙!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렇게 검이 바람을 갈랐다.
두부를 자르듯 부드럽게 들어간 검.
경지에 다다른 검술은 사람을 반죽으로 만드는 폭풍조차 가볍게 베어냈으나.
반으로 잘린 폭풍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쿠구구구구궁!
쿠구구구구궁!
바람이 둘로 나뉘어 승우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부터 백기사의 목표는 도망치는 병사들이 가장 많은 무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가장 많은 병사들이 도망치는 방향에는 백기사의 폭풍을 저지할 수 있는 강자가 개입할 테니까. 백기사는 여기서 폭풍의 진로에 약간의 장난을 쳤다.
“도망쳐!”
이건 백기사의 수작이었다.
재빨리 알아차린 승우가 큰소리로 말했으나.
쿵!
건물과 사람에 부딪힌 회오리가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 압도적인 소리 앞에서, 승우의 외침은 허무하게 묻혔다.
폭풍은 피로 물들어, 그대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끔찍한 광경이지만, 그 모습에 비명을 지르거나 연연하는 이들은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그런 자들은 진작에 죽었기에.
남은 자들은 묵묵히 무기를 들고 저항할 따름이다.
* * *
지속되는 전투에 사망자가 속출했다.
방금 전 일어났던 대규모 학살 사건은 벌써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래도 백기사가 다루는 폭풍에 한차례 크게 데인 전사들은 백기사의 움직임 하나하나 놓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 인해 기수들을 상대할 병력이 부족해졌다는 것이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군단이다.’
하얀 갑주를 두른 기사들.
수십만 명의 기사들이 순백의 갑주를 두른 채 각자의 무장으로 전장을 누비는 광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멋지다는 생각을 주는 한편.
‘지랄 맞은 놈들 같으니라고.’
저놈들을 다 언제 죽이지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마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전쟁이란 때로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강자 한 명에 의해서 기울기도 하지만.
이 세계에는 그런 존재가 없다.
‘말세다. 말세야.’
그나마 그런 역할을 최대한 비슷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도.
나 혼자였다.
‘진짜 말세네.’
이걸 진짜 어떻게 이기지.
아니, 백기사는 내가 혼자서 어떻게 담당한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병력들이 적군의 남은 9만 기수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