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27화(32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27화
없는 사이(2)
─나. 너 안 도와줘.
나이로 가지고 놀린 거.
그거 다 장난이었다.
모든 것은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장난.
당연히 그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래. 알고 있어.
잘 알고 있는 거 맞지?
진짜로 이거 못 알아들으면 진짜로 나이 들어서 귀를 먹은 게 아닌지 슬슬 합리적인 의심을 품어도…….
─아! 잘 알고 있거든!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는 반응.
나도 모르게 잔뜩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슬슬 여기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쉬엄쉬엄 놀면서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목숨 걸고 싸울 정도의 엄청난 강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눈팔면서 싸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놈의 군세를 해치우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타마모의 임무는 막중하지.’
다음에 유부 큰 거 사야겠다.
그냥 유부 말고 아주 비싼 유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기 어렵고, 한입 먹자마자 반해서 그녀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유부를 먹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정도로 비싼 유부? 너 그거 약속한 거다!
‘그래, 한 입으로 두말 안 한다.’
─그러면 나 열심히 할게!
서둘러 분석하기 시작하는 타마모.
집중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쟤는 왜 저렇게 순수해졌지?’
분명 처음에는 저런 인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강한 누님 같은 인상이었는데, 어느새 저런 인물이 되었다.
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썩 나쁘지는 않지만.
‘뭐 아무래도 좋나.’
그래도 까칠한 여우보다.
비싼 유부 하나면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낫지.
이렇게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나였으나.
─…….
타마모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지.
집중해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리기 이전에, 지금 그녀가 발 벗고 도와주고 있는 연구는 정상적인 범주의 고찰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도와주고 있는 것은 각 주술에 대한 기수들의 반응과 변화를 구체적인 도표로 분석하는 것이지만.’
그 내용물은 일반적인 분석과 결이 다르다.
다양한 종족들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주술과 천 년 묵은 구미호가 기초부터 내실을 다진 시조의 주술.
둘을 적절히 혼용해서 수많은 기수들에게 부여했다.
기수들은 원소에는 내성이 있을지언정.
주술까지는 내성이 없으니,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연구 조건이 갖추어졌다.
‘수만 명의 기수들을 피시험자 삼는 연구만큼 최적의 순간은 또 없지.’
수만 명의 표본.
이들에게서 최대한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뽑아내서 이를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을 만든다면!
‘이 싸움. 내가 이긴다.’
백기사의 승리가 아니고.
연합의 승리도 아닌.
오직 내 승리가 된다.
챙──!
금속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다름 아닌 내 검에서 나는 소리였다.
비명을 지르는 검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눈치로.
쨍그랑!
유리처럼 청량한 소리를 내며 반으로 깨졌다.
검의 손잡이는 여전히 내 손아귀에 있지만, 검의 날붙이 부분 60%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음.
‘또 처참하게 망가졌네.’
평소 같았으면 부러진 검을 「파이로키네시스」의 불꽃으로 대체하여, 명검 부럽지 않은 날카로움과 질량을 부여했을 터.
그렇지만 놈에게는 화염이 큰 의미가 없으니.
스릉─!
그냥 허공에서 검 한 자루를 또 꺼냈다.
이걸로 벌써 8번째 명검이었다.
구야자가 만든 S급 검들이 백기사의 맹렬한 근접전에 하나같이 버티질 못하고 부러졌다.
이제 슬슬 반지 속에 보관했던 검의 재고가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보통 무기는 같은 종류로 10개 이상 보관하는 편인데.
8번째 검까지 망가지면 앞으로는 진짜 검에 최대한 손상이 없도록 애지중지하면서 싸워야 한다.
‘내가 얼마나 버텼지?’
주술 분석을 시작한 뒤로, 못해도 90분 이상을 싸운 것 같은데.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야 되지?
‘앞으로 1시간만 더 버티면 돼?’
─……응.
‘완전히 무아지경이네.’
방금 나온 저 ‘응’은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말 걸지 말라는 뜻이다.
딱히 의도해서 한 말은 아니고,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대답이다.
‘저 상태라면 앞으로 2시간은 더 버텨야겠네.’
이기려면 버텨야 한다.
지금 내가 가진 수단 중에는 백기사를 꺾고, 기수들을 몰살시킬 방법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중에서도 전무하다.
그래서 새로운 학문이 필요하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체계.
마력 회로가 망가진 상태로도 펼치기 용이한.
정순한 마력 회로, 순수한 마력을 필요로 하는 고리타분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나만의 고유 주술이.
─아까 기수들에게 부여했던 주술의 영향. 분석 결과가 전부 나왔단다.
바로 그때 머릿속에 울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분석한 내용들이 머리를 스쳤다.
너무나도 방대한 양의 자료들.
덕분에 내 체력과 마력이 크게 닳았다.
순식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나였으나.
‘이건 된다.’
그 순간 승리를 직감했다.
‘일단 자료들을 재편성한다.’
타마모가 준 자료들은 일정한 정보들을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다.
우선 그 정보들을 내 입맛대로 꺼냈다.
기수의 등급. 일단 등급대로 재조정했다.
기수는 하급 기수, 중급 기수, 상급 기수, 최상급 기수.
네 단계로 분류된다.
가장 밑에 있는 하급 기수는 저급 마물과 비슷하지만, 중급 기수만 되더라도 평범한 사람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갖춘다.
상급 기수, 최상급 기수라면 머리 좋은 마법사와 맞먹는다.
전략을 짜고, 전술을 구사할 정도다.
‘머리가 똑똑할수록 잘 먹히는 주술이…… 아, 여기 있다.’
기존의 주술은 잠시 내려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비상한 머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전부였으니. 백기사가 거대한 활을 도끼처럼 휘두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새로운 영감이 몸과 머리를 잠식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대량의 체력과 마력이 한 번에 빠진 탓에.
힘없이 움직이던 내 몸에 닿은 활은.
정지했다.
“……!”
백기사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성대가 존재하지 않기에 그의 비명은 오직 주변에 일렁이는 바람으로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바람으로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만.
‘……광풍.’
사납게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백기사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 광풍조차 내 몸에 닿기 직전, 그저 현상이었을 바람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순간.
“……!!!”
그의 바람은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았다.
향하는 것은 주변의 전사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연합의 전사들과 병사들이 바람에 휩쓸려 한낱 고깃덩어리로 전락했다. 믹서기 같은 바람.
그렇지만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도.
내게 닿기 전에는 반드시 정지한다.
“…….”
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무언가 멈추는 기이한 현상.
명확한 형태를 갖춘 사물인 활은 그럴 수 있지만, 언제나 유유히 흘러야 할 바람이 현상째로 굳어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마치 불에 질량을 부여해.
불 그 자체를 무기로 삼는 것과 같은 괴현상이었다.
“……!”
달그락!
백기사의 투구가 거칠게 움직였다.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가 저렇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정도로 드디어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것이 전신에서 드러났다.
퍽! 퍽!
백기사가 양손에 피를 묻히고, 제 갑주에 시체를 발랐다.
맨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피와 내장을 몸에 뒤집어썼다.
지금 그와 접촉하면 갑주에 닿기 이전에 인간의 살점과 피가 먼저 닿았다. 백기사가 노린 것이 바로 그거였다.
무언가 닿아서 멈춘다면.
제 몸이 닿기 전에 다른 것이 먼저 닿은 사이 타격하면 그만이라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만히 둘 수 없었던 백기사는 그렇게 피와 살점이 흐르는 거대한 주먹을 내게 휘둘렀다.
“……모든 주술은 대가를 필요로 하지.”
주먹이 내게 닿기 전.
또 멈췄다.
“……!”
왼팔이 통째로 굳어버린 백기사가 으르렁거렸다.
그런 그를.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물론 가면을 착용한 지금 표정 같은 건 보이지 않겠지만.
눈빛 정도는 가면의 틈으로 충분히 전달됐다.
“나는 이 주술을 백기사에게 초점을 맞춰서 사용했지.”
오로지 백기사만을 위해 준비한 주술.
주술이란 명확한 대가와 확실한 결과를 교환하는 학문이기에.
대가가 확실하다면 그 어떤 결과라도 얻을 수 있었다.
“대신 한 가지 제약을 내걸었지.”
대가는 선불도 좋고, 후불도 좋다.
지금 내가 건 대가는 후불.
정확하게는.
“백기사가 하얗지 않게 된다면, 주술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대가를 없는 것으로 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눈알 하나를 내놓는다.
그런 계약이었다.
그런데 지금 백기사의 몰골은 어떻지?
“……!”
뒤늦게 깨달은 백기사가 제 호구를 쳐다봤다.
언제나 순백으로 반짝이는 그의 갑주는 모든 것을 반사했다.
덕분에 백기사의 거울은 마치 거울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갑주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백기사의 갑주는 더 이상 흰색이 아니었다.
순백이 더럽혀졌다.
더러운 흙먼지, 피와 뇌수가 섞인 진흙더미, 끈적하게 달라붙은 사람의 피, 잔뜩 그을리고 깨져서 산화되고 망가진 갑주.
이제 더 이상 그를 백기사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가 없다.
“이걸로 확실히 죽었다.”
목숨도, 그를 증명하는 이름도.
백기사를 상징하는 모든 것이 죽었다.
‘백’을 잃은 그는 그저 평범한 기사가 되었다.
이 순간,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 * *
칼과 갑주가 부딪히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눈을 감고 몸을 숙인 채, 들려오던 싸움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아, 끝났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연합이 승리이든 패배이든.
끝난 전쟁에 힘없는 사람들은 부디 승리를 간절히 기원했다.
이내 그 간절함은.
“다들 저기 좀 봐!”
드디어 통했다.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
단 한 번도 마물과 기수들에게서 승리한 적 없는 인류.
매번 땅과 자원을 빼앗기기만 한 삶을 살아온 그들은 전쟁 이래 처음으로 전사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우리가 진짜 이겼다고? 지, 진짜로? 우, 우와아아아!!!”
“이겼다! 정말로 이겼어!”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 아아아! 아아아아! 드, 드디어 한 번이라도 이겼구나!!!”
기수들이 아니다.
창과 검으로 무장한 갑주의 무자비한 학살자가 살육과 약탈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었다. 자랑스러운 연합의 전사들이 왔다.
그리고.
연합의 전사들이, 막사에 떨어지는 폭풍을 보며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숨죽이며 죽음을 기다리던 시민들이 나를 보며 환호했다.
‘지금이 딱 연출이 필요한 순간이네.’
전쟁을 매일같이 치르며, 하도 사람들의 사기를 증진시키는 방법을 익히다 보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지 눈에 훤하다.
이방인을 보며 환호하는 그들을 위해.
나는 걷는 것을 멈추며 손을 움직였다.
척!
깃발처럼 어깨에 기대고 있던 백기사의 시체를 위로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들이 온 사방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