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3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32화(33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32화
폭풍이 분다(2)
─왜 안 받았어?
‘뭘.’
─군대 말이야, 오천 명으로 이루어진 군대.
공주의 집무실까지 직접 간 나였지만.
결국 정보만 들은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받기 싫으니까 안 받았지.’
맨손으로 돌아온 건 내 선택이었다.
‘그런 부담스러운 걸 왜 받아?’
애초에 받을 이유가 하등 없었다.
죽으라면 반발 없이 사지에 뛰어들 5,000명의 군인들.
심지에 개개인의 자세한 능력들을 들어보니 실력이 떨어져서 목숨 걸고 싸우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물들에 의해 가족이나 연인 등 소중한 것을 잃어서, 남은 삶의 의미가 복수밖에 없는 귀신들이었다.
그래, 그들은 복수귀다.
기필코 복수하겠다며 제 목숨을 기꺼이 바칠 그 순간만을 고대하는 미치광이들. 내가 그 미치광이들을 직접 이끌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그런 놈들 이끄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래? 어차피 죽음도 불사하는 놈들인데 그냥 막 다루면 되잖아?
사람을 마치 장난감처럼 여기듯.
타인의 죽음을 논하는 타마모의 말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간혹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에 착각할 때도 있지만, 타마모는 역사상 가장 악랄한 구미호였다. 심지어 타마모라는 이름조차, 그녀의 무수히 많은 이름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녀는 백 개의 이름.
백 개의 얼굴.
백 개의 모습으로 살아왔고.
그 모습 가운데 상냥한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한없이 날카로웠다.
그런 타마모의 성향을 이해하고 있는 나는 막사로 돌아가며 말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야.’
하물며 그 생명이 죽음을 불사하고 이루고 싶은 대업이 있다면.
‘삶의 의지를 잃고 죽음을 각오한 놈들을 관리하는 것은 한층 더 귀찮지. 자신의 죽음조차 초석으로 쓰이기를 바라는 놈들의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정신력이 필요한데.’
진짜 엄청 귀찮다.
그 귀찮음을 감수하고 다룬다면 분명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찰나의 편함을 위해서, 5,000명의 목숨을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다루는 정신 고생은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그 여자. 루나도 그냥 되는대로 지껄였을 가능성이 커.’
─어떤 부분이? 5,000명이라는 숫자가?
‘아니, 아까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하는 얘기를 살짝 엿들어봤는데 5,000명은 줄이고 줄여서 나온 숫자 같더군. 내가 보기에 자신의 죽음을 불사한 놈들은 9,000명보다 더 많을걸.’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다.
─그러면?
‘너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상부가 군인들의 목숨을 도외시한다면.
그 집단의 머리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는다.
설령 본인들이 그걸 원했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사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결과다.
연합의 상부가 군인들을 폭탄처럼 소모품을 사용했다는 결과.
연합의 시민들에게는 그 사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터.
그런 의미에서 이 미치광이 테러 부대는.
‘그녀는 내게 덤터기를 씌우려고 했어.’
처음부터 조직할 생각이 없었다.
시민들에게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르고, 괜히 사람들의 신뢰만 해친다면 조직하지 않으니 못한다.
하지만 연합의 영웅이 그런 집단의 조직에 일조한다면.
시민들이 뒤로는 욕할지 몰라도.
앞에서는 환호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원했다면 말이지.’
이래서 정치라는 게 무섭다.
수명이 긴 엘프인 점을 감안해도 루나는 어린 나이였다.
그런 소녀가 벌써부터 사람을 이용하고, 허수아비를 세울 줄 안다.
“나 원 참,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니까.”
그렇게 어린 소녀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용할 줄 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타산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살고 싶으면 살고 싶을수록 타인을 속이고 기만하며 제 밥그릇만을 챙기는 경향이 있다.
─만일 네가 거기에서 고개를 끄덕였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걸 구태여 묻는 거야?’
악질이네 진짜.
그걸 굳이 물어보다니.
본인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그래도, 너랑 나랑 생각이 다를 수도 있잖아.
아마 그럴 일은 없을 텐데.
분명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하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도 뻔해서 눈에 훤하다.
“내 이름 아래, 새로운 부대가 신설되겠지. 말한 대로 죽음을 불사하는 미치광이들만 모인 특수 부대가.”
그리고 부대에 속한 이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지시에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런 임무 중에는 내가 지시 내린 임무도 있겠지만, 절반 정도는 상부에서 그동안 지나치게 위험해서 차마 내리지 못한 임무도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많은 군인과 전사들이 죽어갈 것이고, 상부는 대량으로 죽어가는 군인들로 인해 조성되는 불안함의 책임을 내게 떠넘기겠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연합에서 나를 추종하고 두둔하는 분위기를 사라질 터.
그렇게 나와 5,000명을 대가로 연합의 상부는 다시 강력한 군권을 유지하게 된다. 그동안 골치 아팠던 문제들도 겸사겸사 해결하겠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스토리.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연합의 속셈이다.
─너무 인간 불신에 찌든 생각 아니야?
‘경험해 봤으니까 그렇지.’
─진짜로……?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음…… 어차피 막사로 가도 할 일이 없는데 산책이나 하자.’
오늘처럼 생각이 복잡한 날.
막사에서 가만히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산책을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때마침 오늘은 원래부터 공부와 연구를 쉴 작정이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밖에서 자료 조사를 해야지.’
공부와 연구는 야심한 시간에도 할 수 있지만, 창창한 하늘과 따스한 햇빛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솔직히 말해봐. 그냥 네가 놀고 싶은 건 아니고?
‘사실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지.’
나도 가능하다면 마음 편하게 쉬고 싶다.
지난 일주일을 열심히 보냈으니 하루 정도는 보상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마냥 노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로 관찰도 할 거야. 아마 생각만큼 재미있지는 않을걸.’
─뭐든지 간에 나흘 동안 괴상한 문자의 책을 번역하면서 읽는 것보다는 재미있겠지. 그때 처음으로 너에게 얽혔다는 걸 후회했다니까.
‘하하, 하기야 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러겠지.’
연합에 존재하는 기록들과 정보들을 모조리 분석하던 지난날.
반지라는 매개를 통해 내게 얽혀서, 내 등 뒤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타마모 입장에서는 가장 끔찍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모르는 언어투성이의 책들.
흥미가 생길 수가 없다.
심지어 번역한 내용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선 자연환경부터 분석하자.”
가장 먼저 관찰하는 것은 생태계.
어디에 어떤 식물이 사는지, 대체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철저하게 분석했다.
가장 철저하게 분석한 것은 흙의 분포였다.
어떤 땅에 어떤 흙이 있는지.
흙에 어느 정도의 영양분이 있는지.
철저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끝에.
내가 유용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공기 좋네.”
─경관도 엄청 예뻐. 모든 나라들이 멸망했다고 했나? 덕분에 자연환경은 엄청나게 아름답네.
“애석하게도 인간이 줄어듦으로써 환경이 안정된 거지.”
산의 정점.
거대한 나무의 밑동.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바위 옆.
갈 수 있는 모든 지역에 발을 들이며 이 세계를 관찰했다.
확실히 모든 나라가 멸망하고, 남아있는 연합마저 전멸할 위기에 처한 세계 치고는 무척이나 평온하고 아름답다.
“…….”
말없이 세상을 구경했다.
일주일 동안 처음 보는 언어를 해독하고, 책을 읽고, 연구를 하고.
1분 단위의 시간도 철저하게 쪼개서 사용할 정도로 바빴다.
그렇게 지친 머릿속에 이런 웅장한 자연을 집어넣으니 연기가 잔뜩 낀 것처럼 어지러웠던 머리가 깔끔하게 개였다.
“……끝내는 조건이 뭐지.”
이 세계가 이면 세계라는 것은 진작에 인지했다.
이미 멸망한 세계의 파편.
아니 멸망한 세계의 덩어리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멸망의 근원을 도려내야 한다. 그런데 이 자연환경을 두고 감히 멸망을 논할 수 있나?
설령 인간과 비슷한 지성체들이 전부 죽는다고 한들.
이런 자연 생태계를 구축한 세계에서 인간이 전부 사라지면 그건 멸망이 아니라 멸종이다.
그렇지만 이면 세계는 멸종해서 사라진 세계만 입장할 수 있다.
‘이건 집중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겠어.’
어쩌면 나머지 기사 세 명과 그 밑의 기수들.
무리를 지은 마물들까지 전부 죽여도 멸망과는 연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멸망의 단초는.
“마계수밖에 없는데.”
연합과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도 하늘을 뚫는 거대한 나무가 훤히 보인다.
아마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저 나무는 보이겠지.
본능과 정황이 외친다.
저 나무가 수상하다고.
당장 도려내라고 머리가 외친다.
‘……일단 그건 나중에.’
당장 눈앞에 직면한 문제들부터 해결하고 나서 생각하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막사에 도착하자 야심한 시각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
축제 분위기를 뒤로하고 막사에 도착하니.
웬 술 한 통이 막사 입구에 놓여있었다.
술통 밑에 놔둔 편지를 읽어보니 나 먹으라고 남긴 술 같았다.
독 내성이 있어서 암살 걱정은 하지 않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침 하루 종일 걷느라 목이 마른 참이었다.
‘직접 담근 포도주네.’
먹어보면 안다.
전문적인 장인이 만든 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만든 술 특유의 맛과 향이 있다. 정감 가는 맛.
이 술에는 그런 풍미가 있었다.
워낙 비싼 술을 많이 마신 덕분에 입이 고급이 되어서 황홀한 느낌은 없었지만,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아.”
막사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시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생각보다 술술 들어가는 포도주에 뱃속이 따뜻하다.
취기가 적절히 올라온 딱 좋은 기분.
더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사자 혹은 개새끼가 되겠지.
─그만 마시려고?
‘응. 더 마시면 진짜로 취할 것 같아서.’
이런 곳에서 취할 순 없다.
안전한 곳이라고 확신하는 장소라면 몰라고 연합 내부는 좀 그렇다.
─못 믿는 거야?
‘처음부터 아무도 안 믿었어.’
아무리 연합이 내게 우호적이라고 하더라도, 여론이라는 건 원래 손바닥 뒤집듯 확 변하는 성질이 있다.
지금 연합의 전사들과 시민들에게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자 영웅이었지만, 만일 모종의 계기로 사람들의 평가가 바뀐다면.
‘바뀌는 건 없겠지.’
상대할 적이 한 집단에서 두 집단으로 늘어날 뿐이다.
작정하고 게릴라전 열 번만 뛰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건…… 너무 최악의 가정 아니야?
‘가정? 아, 그것도 그렇지.’
마치 연합이 자신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높다는 뉘앙스의 말투.
타마모가 이 부분을 지적함과 동시에 내 눈에 번쩍 떠졌다.
그래 일단은 어디까지나 일어날 수 있는 가정이었다.
‘그런 걸 몇 번이나 경험해서 미리 대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지만 대비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나는 애초부터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이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