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33)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33화(333/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33화
폭풍이 분다(3)
비교적 호화로운 축제가 끝난 이후.
철컥!
갑주를 착용하고 무기를 정돈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덜컥!
성벽을 정돈하고, 벽 위에 설치한 무기들을 정비했다.
한바탕 축제를 즐긴 연합은 곧장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 모두들 들어라! 당분간은 최고 전시 태세로 일대를 수비한다.”
“우! 털 없는 대장! 여기 질문 있어!”
“왜 그러냐 가슴 털만 수인 같은 짐승아?”
하하하하!!!
화려한 갑주를 착용한 인간의 외침에 늑대 수인이 손을 번쩍 들었다.
늑대 수인은 인간을 두고 ‘털 없는 대장’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전시 상황. 성과가 곧 승진을 향한 지름길이었고.
전쟁에서 공훈을 내기 적합한 종족은 대체로 신체 능력이 우수한 수인들이었다. 덕분에 전선에 위치한 대부분의 부대를 지휘하는 대장들은 수인들이었다.
그렇지만 여기 유일무이한 인간 대장이 있었으니.
수인들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그를.
털 없는 대장.
무모증 대장이라고 불렀다.
“아! 그건 좀 너무하잖아!”
“너도 나 털 없다고 놀리잖아! 그러면 나도 놀려야지!”
부하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가만 있을 대장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털 없는 대장이라고 부르는 수인들에게 각각 별명을 지어줬다. 방금 전 늑대 수인의 경우, 가슴 털은 북슬북슬하지만 나머지 부위의 털이 비교적 짧아서 흡사 생닭을 보는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러게 왜 나한테 먼저 시비를 걸어.”
“아이, 그냥 질문하기에는 분위기가 좀 그러니까 그렇지.”
“그냥 질문해 이 녀석아.”
“그러면 있지. 우리 왜 이렇게 모인 거야? 평상시에도 이렇게 많이 안 모이면서 오늘은 왜?”
이 부분은 사실 모두가 품은 의문이었다.
수비한다는 인원이 평상시의 10배가 넘었다.
다들 한눈에 알아봤다.
외부에 차출된 인원과 남는 인원까지 전부 수비 병력에 배치했다.
이렇게까지 인력을 합치면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그 손에 꼽는 횟수 전부 전쟁을 치르던 때였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불안해하고 있어.”
“나도 안다, 알아.”
“혹시 못 알려주는 그런 거야? 기밀 같은 거?”
기밀이면 어쩔 수 없지.
하하하! 웃으면서 말을 마친 늑대 수인이었으나.
이번에는 따라서 웃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만큼 모두가 이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자, 대장인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후우.”
크게 숨을 쉬고 내뱉은 대장.
그가 정신을 다잡으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사가 죽었다. 그 휘하의 기수들도 모조리 학살당했지. 그 여파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람으로 무장한 기수들과.
태풍으로 전신을 휘감은 순백의 기사.
그들을 전부 죽이는 데 성공했다.
전선을 휘젓는 4개의 세력 가운데 일각을 몰살했으니, 당연히 축하해야 될 일이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 누구도 후폭풍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나머지 3명의 기사들이 합심하고 백기사의 복수를 위해 단체로 몰려올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얘기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놈들에게 동료 의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얘기다.
그렇지만 대비는 해야지.
“또한 기수들은 본래 정령들의 왕이었다. 정령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가장 순수한 생명체이자, 세상의 순환 그 자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그의 외형이 어떻든 백기사는 바람의 정령왕이었다. 그를 죽인 이상, 우린 바람을 잃을 각오도 해야 된다.”
바람을 잃는다는 것은 대류와 기류를 비롯한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
대규모 마법들을 사용한다면 그런 바람의 부재를 대신할 수는 있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중환자처럼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된다.
이 또한 가능성의 얘기였다.
그렇지만 미리 얘기하고, 미리 대비해야 막상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다.
‘발버둥도 제대로 치지 못하고 죽을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저 멍청한 얼굴들을 보면 안심이 되네.’
좋은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부하들은 서로의 머리를 때리면서 웃었다.
“너는 이해했냐? 나는 이해 못 했는데.”
“멍청한 새끼 그럴 거면 머리는 왜 붙이고 사냐? 떼라, 때.”
“내 머리가 어때서? 자꾸 그러면 네 머리를 뗀다!”
“내 머리 건드리지 마!”
“와, 얘네 싸운다! 돈 누구한테 걸래?”
진짜 답 없네.
이런 놈들도 전사라고, 참.
“근처에 본받을 분도 계시겠다. 그분의 티끌만큼이라도 보고 배운다면 소원이 없을 텐데.”
수. 그 사람은 연합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노력가이시다.
술과 도박으로 노는 수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짜로 우리 애들이 조금만 그분을 보고 배우면 좋겠다.
아…… 생각난 김에 떠오른 의문인데.
“그분 전설하고 많이 다르단 말이지.”
협곡 전설.
인간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짧은 전설 속에서.
“분명 가면과 꼬리 같은 건 없었는데”
─수는 똑같이 가면을 착용했다.
전설에 의하면 여우 꼬리가 아니라 반투명하고 반짝반짝하는 날개를 가진 존재였다.
그 탓에 요정이니 뭐냐?
하여튼 말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뭐.”
전설은 그냥 전설이니까.
지금은 현실이 더 중요하다.
설령 그가 협곡의 영웅이 아니더라도.
수. 그는 분명한 연합의 영웅이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 * *
쨍쨍!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서 뜨거운 햇빛이 땅바닥으로 여과 없이 쏟아졌다. 피부가 약하다면 순간 살이 타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태양빛이었지만, 햇빛은 거대하고 울창한 나무의 가지와 나뭇잎에 가로막혔다.
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초록빛.
워낙 촘촘하게 자란 나무 덕분에 그 밑에 자생하는 식물들이 받을 수 있는 빛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양의 빛이었기에.
나무와 식물들은 제법 그럴듯한 크기까지 컸다.
뚜벅뚜벅.
정돈되지 않은 흙바닥과 잔디를 밟는 둔탁한 발걸음 소리.
칠흑색의 갑주가 거대한 나무 밑을 활보했다.
그는 이제 막 땅에 뿌리를 내린 작은 새싹을 발견했다.
“이대로 가면 금세 죽을 터.”
푹!
호구를 착용한 손이 땅바닥 깊은 곳을 퍼냈다.
온전히 퍼낸 흙 위에는 잔디와 작은 새싹이 뿌리박은 채 숨 쉬고 있었다. 그 흙은 통째로 운반해, 비교적 햇볕이 잘 드는 땅에 옮긴 그는 새삼 회한에 잠겼다.
“이 풍경은 여전하지만, 그 속이 참 많이도 바뀌었구나.”
갑주의 투구 부분이 좌우로 움직이며 사방을 응시했다.
녹색투성이.
줄기와 뿌리로 가득한 세상.
대륙에 육박하는 거대한 숲은 어머니 나무가 자생하는 거대한 생태계였다. 이 숲에는 모든 것이 존재했다.
독자적인 대기 환경과 숲에만 존재하는 식물들.
그리고 그런 숲에는 당연히 주민들도 존재했다.
반투명한 외형의 작은 생물들.
사람을 닮은 것도 있지만, 짐승을 닮은 것도 있고, 아예 형태가 없는 것도 있었다. 그들은 정령.
정령들은 나무줄기를 그네로 삼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거대한 나뭇잎으로 미끄럼틀을 탔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너무나도 먼 과거처럼 느껴질 따름이네.”
이 모든 이야기는.
10년 전에 사라진 먼 과거의 모습이었다.
“더 이상 어머니의 포근한 나뭇잎은 아기들을 감싸지 않는다.”
어머니 나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연을 놀이터로 여기던 어린 정령들은 차갑고 딱딱한 갑주를 만들어, 그 속에 자신들을 녹여냈다.
“아이는 기어코 친구를 제 손으로 죽였으며.”
엘프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정령 특유의 정서 덕분에 이제 막 어린아이 티를 벗은 하급 정령들은 엘프들과 맞대며 놀던 손으로 그들을 터뜨려 죽였다.
“인간 곁에서 보고 배운 것들은, 지금 그들을 향해 되돌아오는 철퇴가 되었다.”
바깥세상의 무서움을 인지하게 된 중급 정령들은 다양한 종족과 계약했던 시절, 계약자들 곁에서 보고 배운 무기술과 마법들을 자신들의 정령술에 대입해서 인간의 기술로 인간들을 학살했다.
“고귀한 정령의 권능은, 푸른 피와 붉은 피. 쓸데없는 논쟁으로 다투는 인간들을 공평하게 분쇄했지.”
인간 세상에서 상급 정령은 무척이나 고귀한 존재였다. 오죽하면 국가 차원에서 상급 정령과 계약한 인간이 평민이나 노예 신분의 하층민이라도 기꺼이 자작 이상의 작위를 하사할 정도였다.
상급 정령이 가진 권능은 곧 국력이며.
유사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줄 전략 병기와도 같았다.
하지만 상대 국가에도 상급 정령이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정령이 각각의 상대국을 멸망시켰다. 이 과정을 말없이 지켜본 상급 정령들은 인간의 허례허식과 무의미한 작위와 우생에 치를 떨었다.
“왕은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보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 결정을 주저했다.”
정령왕.
생태계 그 자체를 상징하는 그들은.
바람의 현신이요.
세상에 흐르는 물 그 자체이다.
땅 위에서 발을 붙이고 사는 동물들은 모두 그들에게 감사해야 될 것이다.
그들은 덜덜 떠는 불쌍한 인간의 아이들을 모닥불 앞에 앉혀 놓고, 아이들을 긍휼이 여겨서 축복을 베풀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배신이었다.
“결국 우리들의 선택은 이렇게 돌아왔구나.”
검은 갑주의 기사.
흑기사(黑騎士). 지금 그가 밟고 있는 땅을 더불어, 세상 모든 생물들이 밟으며 사는 땅바닥은, 한때 대지의 정령왕이라고 불렸던 그의 가슴팍이었다.
흙은 흑기사의 살점.
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의 인지 아래에 있었다.
“흐름을 담당하는 왕이 죽었다. 바람은 다시 주인을 찾아, 자유로이 날아가겠지만. 우리는 오늘부로 오랜 동포를 잃었다.”
바람의 정령왕이라고 불렸던.
백기사가 죽었다. 무척이나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슬픔에 잠기지는 않았다.
“명복을 빌어주지는 않겠다. 우리도 곧 떠날 테니까.”
계속 걸어서 거대한 어머니 나무.
세계수 앞에 당도한 흑기사는 땅의 틈으로 살짝 올라온 나무뿌리를 살폈다.
뿌리 깊이 스며든 질척한 검은 기운.
차마 이 세상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 그 기운은 우주의 모든 악의를 품은 양 불길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
흑기사가 나무뿌리를 보며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을 유추했다.
“얼마나 남았길래 그렇게 호들갑이야?”
진중한 흑기사와 달리 촐랑거리는 바다색 갑주의 청기사가 물었다.
그 대답에 흑기사가 딱딱한 말투로 답했다.
“넉넉하게 잡아도 2년. 촉박하게 잡는다면…… 지금 당장.”
“뭐, 뭐? 그것밖에 안 남았어?”
그의 딱딱한 말투는 차마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흑기사는 예나 지금이나. 단단한 바위와 흙처럼.
과묵하고 매사에 진지한 성격이었기에 제아무리 가벼운 성격의 청기사라도 이번 발언에는 차마 뭐라고 말할지 고민이었다.
“어머니 나무께서 고통을 호소하고 계신다. 어머니의 자식인 우리들은 서둘러 병든 싹과 뿌리를 절제할 의무가 있다.”
흑기사가 말했다.
그는 검은 투구 사이로 비치는 광경을 머릿속에 담으며 재차 결의를 다졌다.
모든 것은 자신들을 잉태한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를 괴롭히는 모든 종자들을 검의 녹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설령 정령을 사랑하는 인간일지라도.
그 어떤 종족보다도 사랑스러운 엘프일지라도 예외는 없다.
“썩은 가지는 잘라내고, 병든 뿌리는 뽑아내야 하는 법.”
사적인 감정은 진작에 배재했다.
이건 어머니 나무와 행성을 위한.
아주 거대한 규모의 가지치기이자, 청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