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4화(3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4화
고독(4)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만 있을 것 같나?”
“걱정하지 마. 싫어도 순응하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니, 네가 수작을 부리기도 전에 네놈의 눈알이 먼저 빠질 것이다. 장님이 된다면 주제를 좀 알겠지.”
녀석은 진지하게 내 눈을 노리고 있었다.
참, 취향도 독특하네.
기선 제압으로 한 말 같지는 않다. 눈을 보면 안다.
“다만──.”
일영의 눈이 저 멀리의 풍경을 담았다.
교복을 입고 손도끼를 들고 있는 소년을 빤히 바라봤다.
“─그전에 목격자는 전부 죽여야겠지.”
설령, 목격자가 아니어도 죽였겠지만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뒷목을 잡았다.
이거 생각보다 더한 녀석이었네.
살기로 가득한 암살자의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죄 없고 어린 학생을 임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죽이려고 한다.
“원로회의 그림자라는 것치고는 상당히 저열하고 치졸한걸?”
내 평생 수많은 암살자들을 봐왔지만, 이렇게 감정을 죽이지 못하는 암살자는 처음 본다.
암살자란 가장 먼저 자신의 인간성과 도덕성을 죽여야 제대로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녀석.
아니, 이곳에 파견된 세 명의 그림자들은 형편없었다.
아마 원로회의 입장에서는 버리는 말이 아니었을까.
“…….”
“왜 갑자기 말이 없어. 방금까지는 꼬마를 노리겠다면서, 살기까지 내뿜었잖아. 아, 혹시 말이야.”
내 얼굴에 조소가 깃든다.
한심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녀석을 내려다봤다.
“내가 너희들 주인이 누구일지 몰랐던 거야?”
“…….”
내 말에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은 곧 긍정이라는 것도 모르는 걸까.
아무래도 암살자 훈련을 전문적으로 오래 받은 녀석이 아닌 모양이다.
암살자 훈련을 오래 받았으면 저런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당장 단검으로 내 약점을 찌를 시늉이나 해야지.
저런 모습은 이도 저도 아닌 꼴이다.
‘뭐, 나는 저 이도 저도 아닌 놈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지만 말이야.’
내 몸은 아직 치료가 덜 됐다.
엘릭서 덕분에 외상은 전부 나았지만, 내상은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다리 관절이 그렇다.
즉, 도망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맞서 싸워야 하는데, 가뜩이나 허약한 내 몸이 내상까지 입은 상태라 화력을 얼마나 키워도 될지 모르겠다.
잘못했다가 또 부상을 입으면, 이번에는 엘릭서도 없단 말이다.
‘최대한 말로 시간을 끌며, 원거리 전투 위주로 상대한다.’
가뜩이나 체력도 마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이봐, 일영이. 우리 치사하게 어린애한테 그러진 말지.”
“치사하다고?”
사내의 눈동자가 살의로 번들거렸다.
그 강렬한 기세에 이지는 주춤했으나,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치사하잖아.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라고.”
“……그렇다면 너는?”
“나야 어른이잖아. 너희들도 마찬가지고.”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군.”
후우웅, 바람을 가르며 단검이 날아갔다.
방향은 내 쪽이 아니라 이지가 있는 장소.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불꽃의 벽을 세웠다.
[파이로키네시스]콰가강!
불꽃과 단검이 부딪쳤다기에는 요란한 금속음이 났다.
특히 단검의 속도가 빨라서, 소리가 컸다.
이거, 진심으로 이지를 노리고 던진 거네.
“진짜 치졸하네.”
“그게 바로 어른이란 거다!”
“내가 보기엔 너도 애 같은걸.”
치이잉!
양손에 두 개의 그림자 단검을 만든 일영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허공에 두 개의 불씨를 흩뿌렸다.
불씨는 순식간에 커져 발화했다.
발화한 불씨는 일영의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그의 손을 묶었다.
화염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함부로 다가올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후우웅, 일영의 팔이 불꽃을 가르며 내게 당도했다.
화상이고 나발이고, 우선 나부터 노리는 모양이다.
이거 순 미친놈이다.
콰아아앙!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다만 이번에는 전보다 묵직한 소리가 났다.
“불꽃으로 만든 방패라. 심지어 내구도 튼튼하군.”
“그치, 내가 만들었지만 유용한 마법이라니까.”
“그래, 유용한 마법이군. 다만 술자가 약해 빠져서 아쉽지만.”
콰아악, 바닥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손처럼 올라왔다.
거대한 손아귀를 불꽃의 방패를 가볍게 우그러뜨렸다.
저 손에 잘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네.
물론 그럴 걱정은 없었다.
녀석의 상부인 원로회.
특히 가문의 무력과 나인테일 길드의 길드장을 담당하는 5장로는 귀찮은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죽으면 승계 구도가 개판이 되겠지.’
아무리 실권이 없어도, 나는 엄연한 가주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죽으면 누이들과 장로들 간의 세력 다툼이 시작될 것이고, 그것은 가문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적어도 승계 구도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죽이지 못하겠지.
‘물론 그것도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5장로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브가 천호백가의 장로들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해 준 적은 없거든.
소설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카일인 시점에서 천호백가는 그저 곁다리에 불과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리 참을성이 좋아 보이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수틀리면 아무리 가주라도 나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성격 나쁜 그림자를 보냈을 리가 없지.
우우웅, 바닥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수십 가닥의 손이 뻗어 나오며, 내 다리를 잡으려고 꿈틀거린다.
저 손에 잡히면 큰일 난다.
「요마안─미래시(未來視)」
자줏빛으로 물든 눈에 미래가 들어왔다.
십 리 밖의 짧은 미래에 불과하지만, 저 손아귀들을 떨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부족하다면 내 마력이 부족하겠지.
열양지를 비롯해 여러 기술을 쓰느라, 내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컨디션.
그 순간 생긴 짧은 틈.
일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양손에 그림자 단검을 만들어낸 그는 곧장 내 품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열양지를 사용해서 튕겨냈다.
그러자 손이 따끔했다.
“아, 엄청 아프네…….”
“멍청하군! 그따위 손가락으로 무얼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러게, 손가락이 조금 타버렸네.”
일영이 내 손을 가리켰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영 좋지 않은 손.
열양지를 너무 과도하게 사용했는지, 손가락에 큰 화상을 입었다.
3도 화상처럼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흉터는 평생 가겠네.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분간 근접전은 무리다.
하는 수 없지.
나는 바닥에 고인 액체를 손바닥에 담았다.
아니, 애당초 이걸 액체라고 부를 순 있을까나?
걸쭉한 감각의 액체를 손에 담자, 장갑이 조금씩 부식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걸 들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쪽으로 오도록 유도해야겠네.
이걸로 접근전 때 손을 대신할 생각이다.
바로 그때.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거면 되겠다.
“푸하하!”
“너 지금 상황에서 웃는 거냐?”
“그야 웃길 수밖에 없잖아.”
쿠구궁, 거대한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일영는 지금 전세가 자신에게 기울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웃기 시작하니 녀석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겠지.
나는 일영이 내 손바닥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성질을 긁었다.
“아니, 이걸 안 웃으면 언제 웃어. 그림자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속내를 숨기지 못할 줄이야.”
“속내라고?”
“그래, 속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화상의 고통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기라도 하는 거냐.”
“아니, 뻔해도 너무 뻔하잖아. 너 애초에 여기서 동료들을 살릴 생각이 없는 거 아니었어?”
흠칫, 일영이 내 말에 반응했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은 모양이다.
일영의 반응이 정직해도 너무 정직했다.
그 순간, 일영의 그림자가 가시처럼 내 후방을 노렸다.
손가락을 튕겨 불꽃의 벽으로 응수했다.
그러나 이미 그 찰나에 녀석은 내 코앞으로 이동했다.
“네놈이 나를 우롱하는 것은 참더라도, 죽은 동료들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조금만 움직이면 죽을 수도 있는 거리.
녀석은 짙은 살기를 방출하며 나를 협박했다.
우스운 꼴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면…….”
“애초에 동료들도 못 구했으면서. 너무 폼 잡는 거 아니야?”
“이 녀석이!”
더 끈적한 살의를 표출하는 일영.
그는 내 팔을 노리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
손을 따라 그림자가 날카로운 예기를 드러내며, 전기톱처럼 진동했다.
그러나 그림자가 내게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마력을 방패처럼 견고하고 넓게 펼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중나선]을 토대로 만들었기에 쉽게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방패 뒤에 숨은 채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동료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잖아. 네가 원하는 것은 길드의 그림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로서 길드장에게 인정받는 거겠지. 그러니 다른 그림자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 동료들이 죽어가는 꼴을 방관하고 혼자서 나를 습격한 거겠지.”
“……!!!”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일영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리 길게 대화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함께 생활한 동료들조차 모르던 속마음.
그걸 왜 이 녀석이 알고 있는 거지?
싶었는데.
“그런데 있잖아. 주변에 이거 안 보여?”
촤아악, 나는 손에 들린 액체 흩뿌렸다.
녹색의 액체를 집어던지자 운무(雲霧)처럼 자욱하게 퍼진다.
순간 당황한 일영이었으나 그는 그림자로 단검을 만들어 운무를 휘저었다.
단검으로 휘젓자 시야가 조금 트였다.
시야를 확보한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로 녹색 늪지대였다.
아니, 이건 늪지대 따위가 아니다.
‘……내장? 그리고 선혈인가.’
방금 그 거대한 지네가 질질 흘린 것이 분명했다.
일영은 더러운 것과 접했다며, 헛구역질을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우, 우웨에에엑! 이게 뭐지……?”
그는 입에서 무언가를 질질 흘렸다.
처음에는 평범한 구토라고 생각했지만, 바닥에 무언가 검붉은 것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피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검게 물든 죽은 피.
바로 그때였다.
파스슥!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
운무를 휘저은 검이 부식되는 소리였다.
‘!!!’
그제야 깨달았다.
저 녹색 액체는 독이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맹독.
어엿한 그림자가 되기 위해, 온갖 암살자 훈련을 견딘 자신조차 저항할 방법이 없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자신에게 독을 뿌렸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것도 잠시.
아까부터 백승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디 있는 거지? 이 운무 틈에 숨은 건…….’
“나 찾아? 나 여기 있어.”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마구 돌리길래 나를 찾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기에 입으로 내 위치를 알렸다.
양손 가득히 출렁이는 고독과 함께.
이번에도 손바닥으로 가득 퍼왔다.
“너, 너 그 손에 들린 것은……!”
“아, 이거 생각보다 괜찮지?”
손에 들린 독과 방금 뿌린 독은 고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아직도 시체에서 흘러내리는 용해액(溶解液).
그 정체는 이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독은 마구잡이로 섞어서, 고의 체내에서 제조된 맹독이다.
고의 내장에서 숙성시키고, 녀석의 죽음으로 하여금 원념을 섞은 독.
이것이 바로 고독(蠱毒)이다.
“나도 피부가 조금 녹긴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잖아. 그치?”
촤아악, 손에 들린 고독을 뿌리자 사방에 안개처럼 퍼진다.
운무가 더 넓게 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일영은 생각했다.
저 녀석은 미쳤다.
이런 맹독을 계곡물처럼 뿌리며, 자신 또한 중독될 범위 안에 있다니.
분명 어딘가 망가진 것이 확실하다.
“이런 미친놈이……!”
“이거 쉽게 구할 수 없는 독이라고?”
“그만해라!!!”
“왜?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놔야지.”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독을 넓게 퍼뜨렸다.
움직일 때마다, 운무가 자욱하게 퍼지며 나와 일영을 감쌌다.
더 이상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야 내가 너무 넓게 퍼뜨렸거든.
“자, 이젠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싸움이 돼버렸네?”
녀석의 반응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까 네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세상에는 심영이 없다고 했지?”
“아까부터 대체 그놈의 심영이 뭐란 말이냐!!”
그게 궁금했구나, 미리 말을 해주지.
그래도 너무 궁금해할 필요 없어.
조만간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될 테니까.
자, 경쟁이다.
나인테일 길드에서 가르치는 독 내성 훈련이 뛰어난지.
아니면 내가 얻은 「십독불침」이 뛰어날지.
내 눈과 네 남성성을 걸고 시험해 보자.
갑작스러운 경쟁에 내가 웃음을 삼키며 조소하자, 일영의 표정이 점점 두려움으로 물든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거늘. 지레 겁부터 먹은 그에게 나는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너는 아무런 걱정 할 필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설령 잘못되더라도. 내가 너의 의사 양반이 되어줄 테니까.”
죽는 일은 없을 거야.
다만, 죽음보다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