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4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40화(34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40화
개판 오 분 전(5)
“저거 안 잡아도 돼?”
손가락으로 수십만의 군세와 3명의 기사를 가리켰다.
나와 루나는 나뭇가지들을 밟고 고속으로 이동하며, 전장을 한눈에 살피고 있었다. 연합은 불과 며칠전에 10만이라는 엄청난 병력과 백기사라는 자연재해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전장의 판도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거지. 좋다는 건 아니지만.’
공성전에서 방어하는 입장이라서 전술적인 영역이 우위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다.
기수들은 불과 흙, 물 같은 원소들로 무장한 반면 연합의 전사들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싸웠으니까.
사실 상대조차 안 되는 게 맞다.
그나마 이렇게 싸움 자체가 성립하는 것도, 연합의 구성원들이 기수들과 싸워온 세월이 거의 10년에 육박하기에 그들의 전투 방식에 익숙해진 게 한몫했다.
그렇지만 이를 다르게 말한다면.
“10년 동안의 전쟁에도 승리 한 번 없이, 경험만 쌓은 머저리들.”
“음 솔직히 부정할 순 없네요.”
“아군과 적군의 교환비가 거의 1:1이다. 수성하는 입장에서 방벽이 뚫린 것도 아닌데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 말에 루나가 긍정했다.
“뭐 어쩔 수 없잖아요. 전력의 수준이 다르니까.”
“전력의 질이 낮다면 획기적인 전술이라도 구상했어야지.”
“그거 당신이 할 말인가요?”
루나가 어이없다는 눈치로 말했다.
“이틀 전에 지휘관 계급의 대부분을 죽였으면서.”
“내가 장담하건대 그것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이것보다 더 처참했을 거다.”
“음…… 그건 그렇죠.”
나라고 지휘관들을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게 아니다.
획기적인 전술을 고안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그런 무능한 지휘관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나마 이게 나은 상황이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정도라면 적어도 이틀 정도는 버틸 수 있겠죠.”
“이틀?”
내가 내뱉은 말에 루나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달리기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으니 과연 엘프다운 움직임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저 속도가 유지되다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저희 연합에서 가장 큰 전력은 분명 당신과 저니까요. 이틀이 최선이에요.”
“아니, 이틀이나 버틴다고?”
“……그래서 의문이었던 거예요?”
순간 루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홍조가 창피함 때문인지, 자신들을 얕봤다는 분노 때문인지 몰라도.
그 이유를 들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쉿!
큰 목소리를 내려는 루나의 곁으로 다가가서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반대쪽 손으로는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우리가 있는 방향을 빤히 쳐다보는 붉은 갑주의 기사.
적기사가 있었다.
“녀석에게 시선이 끌렸군.”
“그, 그러면 어떡하죠?”
루나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냥 지금처럼 달려야지.”
“예? 지금 이 속도로요?”
“그러면 속도를 줄일 생각이었나.”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건 이 난잡한 전장에서 서둘러 벗어나기 위함이었는걸요.”
체력 분배를 고려하지 않은 달리기.
그녀는 그렇게 달리는 이유를 전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잘됐네.
“그 말은 곧 놈에게 계속 쫓기는 한, 계속 전장이라는 뜻 아닌가.”
“어? 그 말이 그렇게 해석되나요?”
“그러면 계속 달리자고.”
루나는 속도를 높였다.
그 뒤를 따르는 루나가 숨을 헉헉거리며 필사적으로 따라붙었다.
“자, 잠시만요! 제가 길잡이인데, 왜! 제가 뒤따라가고 있죠?!”
이럴 거면 저 필요 없지 않나요?
루나의 공허한 외침이 숲을 울렸으나, 이에 대답해 주는 사람이 누구 하나 없어서 결국 그녀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한편 승우는.
─저거 네가 착용한 검 때문에 시선이 끌린 거 맞지?
‘아마도 그렇겠지?’
* * *
주먹 하나에 사람 하나.
착실하게 사람들을 죽이던 적기사는 자신에게 돌진하는 검사의 몸을 비틀며 생각에 잠겼다.
‘뭐였지.’
적기사는 열풍에 휩싸인 여우를 떠올렸다.
그를 타격할 때 손맛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그는 멀리 날아갔을 뿐이지. 멀쩡히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적기사가 뭐라고 중얼거리려고 했으나.
그는 새삼 자신에게 성대가 없음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같은 정령들과 텔레파시로 대화하느라 발성 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음을 망각했다. 뭐, 아무렴 어떤가.
구태여 발성 기관이 필요하지 않았던 적기사는 손으로는 사람들을 죽이되, 머리로는 자신의 갑주를 타고 정령 핵까지 오르는 위화감을 철저히 분석했다.
‘놈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싸움의 경험이 많거나, 감각이 예민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가면의 사내는 적기사가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의 대응에는 막힘이 없었다.
마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움직임.
‘그렇지만 미래를 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미래를 엿보는 물건과 능력은 분명 존재한다.
적기사가 불의 정령으로 활동하며 인간들과 어울리던 시절에, 그는 인간이나 괴물들이 짧은 미래를 엿보는 능력을 가져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했던 모습을 종종 보았다.
하지만 그런 괴물들도 압도적인 화력.
대응 자체가 무의미한 폭력 앞에서는 무너졌다.
아무리 미래를 엿봐도 모든 선택지가 압도적인 화력 앞에 가로막힌다면, 그럴 때 가장 쉽게 망가지는 족속이 바로 미래를 보는 것들이다.
‘분명 나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놈을 압도하려고 했다.’
하나 놈은 인지를 초월한 괴력도 가볍게 흘려냈다.
정령들의 왕. 불이 처음 피어나는 시원(始原)으로써 놈을 영혼까지 불사를 작정이었지만 불꽃조차 통하지 않았다.
괴력은 몰라도 적기사의 불꽃은 초장에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일 그걸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한차례 그 불꽃을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몸으로 맞으면서 배우는 것만이 적기사의 불꽃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건만.
‘이미 수백 번은 경험했다는 듯 여유롭게 대처하고는.’
주먹으로 열풍을 일으켜 놈을 날리던 순간에는 아예 눈이 호선을 그렸다. 재미있었다는 눈빛.
그 눈빛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돼?’라고 놀리는 것 같은 비웃음에 가까웠다.
‘어디서 놈과 조우한 적이 있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정령 시절의 적기사를 본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터.
혼란에 빠진 적기사.
그의 감각에 한 가지 기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사람보다는 정령의 기척에 가깝다.
그것도 불의 정령인데.
‘내 기척?’
저 멀리 자신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의문을 적기사는 아주 깊은 생각에 잠겼다.
푹!
푹!
양손의 사람이 각각 다섯 명씩 박혀서 갑주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고뇌하던 적기사는 결국 자리에서 이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적기사의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나무 위를 달리는 둘은 적기사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방금 전 싸우던 여우 가면과 하이 엘프의 소녀.
둘을 발견한 적기사는 먼저 소녀를 쳐다봤다.
엘프는 정령들과 가장 가까운 종족.
특히 엘프들의 왕족인 하이 엘프는 고위 정령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니. 소녀를 본 순간 적기사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굳은 몸은.
‘아!’
승우의 허리춤에 달린 검.
적기사의 별운검을 보는 것으로 순식간에 풀렸다.
그 검을 본 순간 적기사는 자신이 느꼈던 기이한 기척과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의문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하다!’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저 가면 쓴 괴한은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칼을 쥔 채 손발을 섞지 않아도 자신의 약점을 진작에 인지하고 있을 정도다. 적기사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인간과 달리 뇌에 한계가 없는 그의 머리를 곧 결론을 도출했다.
‘놈은 나를 죽였다. 먼 훗날 나는 놈에게 죽는다!’
자신의 시체로 추정되는 무기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체를 녹여 다양한 부산물들과 함께 만든 검 한 자루.
그 중심에 박힌 정령의 핵은 분명히 적기사의 핵이었다.
‘하하하하.’
적기사가 높낮이 없는 웃음소리를 품었다.
동물처럼 발성 기관도 없기 때문에 그의 웃음소리를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스스로도 이상하고 멍청한 짓처럼 보인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적기사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참으로 보잘것없는 최후야! 안 그래?’
─……!
‘비명밖에 못 지르는 몸이라니. 참으로 처량하구나.’
이미 죽은 지 5년도 더 된 정령의 핵은 빛을 잃었다.
빛은 잃은 지 오래됐지만 핵은 여전히 귀곡성을 질렀다.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적기사의 미래가.
지금 눈앞에 보였다.
‘이런 꼴의 자신을 보고도 뒤쫓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철컥!
갑주의 이음새가 격하게 움직였다.
다리 부분의 갑주가 굽어지며 다음 나뭇가지로 관절이 거칠게 움직였다.
그걸 반복하면서 거대한 갑주가 나무 사이를 내달렸다.
여우 가면을 착용한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성과 작은 소녀가 나무 사이를 고속으로 달리는 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저거 너무 빠르지 않아요?”
“그러게 좀 빠르군.”
“지, 지금이라도 저놈은 잡고 갈까요?”
“분명 네가 말하지 않았나? 쓸 게 없는 곳에 힘 뺄 시간 없다고. 그러면 적기사가 우리를 잡을 수 없도록 더 빨리 달려야지.”
승우와 루나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나뭇가지를 쿵쿵 짓밟으며 하늘을 이동하는 갑주가 있었다.
“여기서 더 빨리 달리라고요?! 지금도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데……!”
“그게 한계라고? 엘프는 자연과 친하고 숲에서 평생을 사는 종족이라고 들었는데. 엘프들만의 나무를 뛰어다니는 보법은 없어?”
“있기는 한데……! 그 보법은 어디까지나 엘프 전사들의 기술이지. 저 같은 공주는 가장 높은 곳에서 기거하느라 배운 적이 없어요!”
“그것참 쓸모없네.”
승우는 자신보다 나무를 타지 못하는 하이 엘프를 보며 혀를 찼다.
하이 엘프라는 작자가 이토록 속도가 느려서야.
“그러면 업고 간다.”
“예? 자, 잠깐만요……! 지금 어디에 손을 넣으시는……!”
“왜 싫나? 그러면 네 발로 저 금속 덩어리로부터 도망칠 수는 있고!”
순간 루나의 얼굴이 뒤를 향했다.
그곳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붉은 갑주가 있었다.
밟는 족족 나뭇가지가 무너졌다.
그런데 적기사가 발에 담은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약한 나무는 아예 반으로 쪼개지는 경우도 있었다. 강한 나무라도 예외는 아니다.
나무가 강해서 쪼개지지 않았다면 뿌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휘었다.
그 공포스러운 모습을 지켜본 루나가 외쳤다.
“잘 부탁드려요!”
“그래.”
승우는 그녀를 어깨에 업고 나무 위를 달렸다.
그 달리기에 방금 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훅!
한 걸음에 나무 수십 그루는 가볍게 넘길 정도로.
속도가 점점 붙기 시작했다.
“자, 잠깐 당신 지금 무리하고 있……!”
“아직 속도 덜 냈으니 입 닫아라. 혀 깨물라.”
“헙!”
아직도 최고 속력이 아니라고!
이제는 기어이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리고 있건만.
승우의 속도는 멈출 줄을 몰랐다.